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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곁의 소셜디자이너(10) – 김만이 ‘초록코끼리’ 대표

김만이 대표는 서울토박이에 영문과를 나온 천상 ‘도시남자’였다. 진로를 고민하던 그에게 한 지인이 “농업‧농촌 분야는 할 일은 많은데 사람이 참 없다”고 했다. 조사를 해보니 실제로 그랬다. 비슷한 문제가 되풀이되는 데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내는 사람이 드물었다. 제대로 일하려면 제대로 알아야 할 것 같아 대학원에 진학했고 농업자원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국책연구소(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들어가 농업·농촌 분야 연구자가 되었다. 그런데 문득, 자괴감이 들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흙 한줌 만져보지 못한 제가 연구한 결과가 농촌과 농민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좀 무섭더라고요. 대학원에 진학할 때 한 가지 결심을 했거든요. 연구자가 되든 현장 활동가가 되든, 커리어를 마감할 때는 그 분야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이 되자고. 그런데 그 약속을 못 지킬 것 같았어요. 현장을 모르고 연구만 하다간 빈껍데기가 되겠구나 싶어 현장 경험을 쌓기 위해 사직서를 냈어요.”

▲ 김만이 초록코끼리 대표

연고도 없이 무작정 농촌살이를 시작할 수 없어 ‘중간단계’를 거치기로 했다. 농업·농촌 관련 교육·컨설팅 기업에 입사한 것이다. 한주에 지방 출장이 3~4일씩 되는 고된 일정을 3년간 소화하면서 느낀 것은 “농촌은 정말 힘이 있는 공간”이라는 것, 그리고 “농촌에선 안 된다고 하는 것들이 많은데 실제로 해보면 다 된다”는 것이었다.

“농촌엔 사람이 없으니까, 콘텐츠가 없으니까, 예쁘게 브랜딩할 디자이너가 없으니까…, 없으니까가 참 많아요. 그런데 그걸 된다고 믿고 진심을 다해보니 생각보다 잘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충남 청양에서 가장 오래된, 버려진 여관을 청년 커뮤니티 공간으로 바꾸는 ‘청춘 시드’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청양군 공무원들과 주민들은 ‘청양에 청년이 어디 있느냐’며 말렸거든요. 탁상공론에서 나온 허무맹랑한 얘기라고까지 하셨죠.(웃음)

저희가 사전조사를 해보니 인구 3만이 조금 안 되는 청양군에 청년인구가 1천에서 2천 명 사이, 대학교도 있으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어요. 만류하는 분들을 설득해가며 프로젝트를 추진했는데, 결국 기대 이상의 성과가 났죠. 그 공간이 엄청나게 활성화됐고, 이후 후속사업이 계속 추진되고 있어요. ‘청년 시드’라는 이름 그대로, 지역에 청년의 씨앗을 심은 거죠.

이런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니 농촌에는 안 된다고 하는 것들이 많은데, 그 말을 반대로 하면 가능성이 굉장히 많은 공간이다, 나도 이 공간에서 뭔가를 주도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싹 텄어요. 그래서 다시 사직서를 썼죠.”(웃음)

▲ 청양군에서 청년 커뮤니티 공간 조성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김만이 대표(맨 오른쪽) ⓒ초록코끼리

원래는 좀 쉬면서 농촌살이를 준비하려고 했다. 그런데 회사를 그만둔지 2주 후에 서울시가 서울 청년들의 지역 창업을 돕기 위해 마련한 ‘넥스트로컬’ 사업 공고를 봤다. 좋은 기회라고 여긴 김만이 대표는 그동안 생각해둔 것을 정리해 지원서를 냈다. ‘넥스트로컬’은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한 150여 명(팀)을 대상으로 단계적인 교육과 지원, 심사를 한 후 최종 20개 안팎의 팀을 선발하는, 일종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당시 1차 심사를 통과해 충남 홍성군에 함께 온 10여 개 팀 가운데, 유일하게 김만이 대표가 이끄는 ‘초록코끼리’ 팀만 지역에서 살아남아 창업에 성공했다.

“서울에서 사업을 할 땐 페이퍼(계약서)를 매개로 빠르게 협의해서 효율적으로 거래를 해야 하잖아요. 당시 홍성에 함께온 다른 팀들은 대부분 그렇게 시작했어요. 계약서를 가지고 다니면서 ‘내가 농작물을 사줄테니 얼마에 거래하겠느냐’는 식이었죠. 그런데 여기(농촌)선 그게 굉장히 무례한 방식이에요. 농부님들 입장에선 알뜰살뜰 키운 농산물을 귀하게 여겨주지 않는 낯선 사람에게 굳이 팔 이유가 없거든요. 다른 판로가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저희 팀은 천천히 다가갔어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지역의 문화와 정서, ‘법’을 따른 거죠. 농부님들의 터전인 밭과 하우스로 들어가서 일손을 거들면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저희가 하려는 일을 설명했더니 ‘취지는 좋은데 농촌의 현실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고 조언해주셔서 사업 방향을 완전히 바꾸기도 했고요. 차츰 농부님들의 마음이 열리니 저를 다른 분들게 추천해주시고 다른 농가들을 소개해주시고… 그 다음부턴 일이 술술 풀렸죠.”

“농촌 현실과 문화에 맞춰 천천히 다가갔다”… 이들이 준비하는 차기 사업

▲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콩국수 레스토랑’을 열고 마을 주민들을 초대했다. ⓒ초록코끼리

김만이 대표가 애초 구상한 사업은 파지(일정 규격에 못 미치는) 농산물을 활용해 비투비 커머스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만난 농부들은 “농촌에는 지금 정품 농산물 딸 사람도 없어 문제인데 누가 파지까지 따서 김 대표에게 주겠느냐”고 했다. “파지 농산물은 정품에 비해 신선도가 떨어져 빠르게 유통해야 하는데, 신생업체가 그걸 해낼 수 있겠느냐”고도 했다. “농산물을 유통하려면 저온창고가 필수인데, 처음부터 창고를 짓고 사업을 시작하는 건 위험하지 않겠느냐”며 걱정어린 시선을 보내는 농부도 있었다.

농부들의 조언을 듣고 ‘친환경 밀키트’로 사업 아이템을 바꿨다. 초록코끼리는 홍성군의 농가 30여 곳과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친환경 밀키트와 제철 농‧축산물을 가공‧판매하고 있다. 2021년 4월부터 판매를 시작했는데,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밀키트 시장이 커지고 제품이 입소문을 타면서 매출이 순조롭게 늘었고, 불과 1년여 만에 지역에 탄탄히 뿌리내린 기업이 될 수 있었다. 자신감을 얻은 김만이 대표는 친환경 밀키트를 초록코끼리의 피비상품으로 두고, “진짜 해결하고 싶었던 농촌문제”에 주목해 차기 주력사업을 준비 중이다.

“저는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농산물 유통구조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어요. 우리나라는 전체 생산량의 60%가 넘는 농산물이 농산물 도매시장에 집결돼 가격이 매겨지고 전국으로 유통되거든요. 근대화 과정에서 서울과 수도권에 자원과 인력이 집중되면서 이를 뒷받침할 일종의 식량기지가 필요했기 때문에 이런 시스템이 생겨난 것인데요, 덕분에 홍성군 주민들은 홍성군에서 난 농산물을 곧장 사먹지 못하고 ‘가락동을 한 번 찍고 온’ 비싼 농산물을 구입하게 되는 거죠.

저희가 지역에서 난 농산물을 그 지역 소비자들에게 새벽배송하는 사업 모델을 만들고 있어요. 지금은 서울과 경기, 대전, 부산의 소비자들만 대기업들이 제공하는 새벽배송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데요, 저희는 지방 중소도시 소비자들도 그 지역 농산물을 새벽배송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려고요. 현재 홍성군 내포신도시에서 테스트 중인데, 내년에는 충남도 15개 시군 전체로 확대하고 다음엔 충북, 경북…, 이렇게 도 단위로 확대해가며 물류망을 새롭게 짜보려고 합니다.”

▲ 초록코끼리와 협업 관계인 농부들과 함께 ⓒ초록코끼리

김만이 대표는 얼마 전 ‘리본(Reborn) 프로젝트’를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상품규격에 맞지 않아 버려지는 작은 감자를 소비자들에게 값싸고 신선하게 공급한 것인데, 애초 그가 사업 아이템으로 기획했던 ‘파지 농산물 유통‧판매’를 초록코끼리의 사회공헌 이벤트로 삼은 셈이다. 그는 “돈은 안 되지만 꼭 필요한, 의미 있는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초록코끼리를 더 성장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초록코끼리는 곧 우리 농촌‧농업이다.

“코끼리는 굉장히 힘이 세고 지능이 높은 동물이지만, 우리는 코끼리를 종종 우습게 보고 희화화하잖아요. 저는 코끼리가 꼭 우리 농촌, 농업과 같다고 생각했어요.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공간인데 무관심하고, 무시당하는.

청년들에게 로컬은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농촌의 비어 있는 영역들을 진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척 많습니다. 다만, 도시살이가 너무 복잡하고 힘들어서, 어려움을 피하려는 마음으로 로컬을 선택하면 곤란해요.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오히려 인프라가 더 척박한 공간일 수 있으니까요. 긍정적인 에너지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과 열정이 있는 청년들이 로컬에서 재미있고 창의적인 일들에 도전했으면 좋겠습니다.”

* 인터뷰 및 정리: 미디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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