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곳곳에 ‘해결사’들이 있습니다. 변화를 꿈꾸지만 않고 실행합니다. 희망제작소는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라고 호명하고 연결합니다. 오는 12월 14일 <2023 소셜디자이너클럽 사회적가치 투자(SIR) 대회(링크)를 여는 이유입니다. 이날 청중심사단(링크)이 소셜디자이너 10명의 피칭을 듣고 모의 투자합니다. 시민을 만날 소셜디자이너 10명을 소개합니다.
농촌 마을 쓰레기 ‘모아’ 재활용하다 돌봄까지 | 김인호 삼삼은구 대표 @홍천
강원도 홍천의 가을을 보신 적이 있나요? 아~. 몇 초는 이렇게 입을 떡 벌리고 있게 됩니다. 지난 1일 김인호 삼삼은구 대표와 멤버인 인혜경 씨, 박경숙 씨는 이웃 들깨밭에서 깨를 털었습니다. 다음날 비가 올 예정이라 다들 정신없었어요. 단풍 든 골짜기를 알싸하고 고소한 깨 향이 휘감고 돌았습니다.
이런 강원도에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네요. 강원도 쓰레기 매립률이 전국 평균의 두 배랍니다. 온라인 쇼핑몰이나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경우도 늘어 쓰레기 배출량도 크게 증가했답니다. 쓰레기 분리수거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문제도 있습니다.
삼삼은구는 홍천군 물걸리 마을에 쓰레기 분리배출 시스템인 ‘자원순환텃밭 모아’를 만들었습니다. ‘모아’에서 일하는 70대 ‘모아짱’은 독거노인 돌봄 역할까지 하고 있답니다. 성미산학교 선생님이었다 5년 전 물걸리에 정착한 김인호 대표를 지난 1일 만나 삼삼은구의 프로젝트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와 멤버들은 “의리”를 외치며 다시 깨밭으로 돌아갔습니다. 밤 10시까지는 털어야 할 거 같다더군요.
– 삼삼은구는 무슨 뜻이에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를 구한다, 삶과 삶이 만나 지구를 구한다.’ 그런 모임이에요. 원래 우렁각시 프로젝트를 몰래 몰래 하는 작은 모임이었어요. 그냥 재미로요. 2018년께 하루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 나온 어르신들이 길가에 쪼그려 쉬시는 게 보이더라고요. 평상 하나 만들면 좋겠다 싶어 그날 저녁에 모여 하나 만들었어요. 저희라고 말 안 하고 슬쩍 가져다 뒀더니 다음날 거기 앉아 쉬시더라고요. 비 올 때는 (어르신들이) 평상을 처마 밑에 세워두시고요. 그걸 보니 행복했어요.
지난해 전 이장님이 사업 아이디어를 하나 제안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사업 계획서를 써드린 게 ‘모아’의 시작이에요. 이 지역 담당 환경미화원, 면장님 등 사람들을 모아 간담회를 열고 매주 쓰레기 문제를 이야기했어요. 그때는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어요.
– 어떤 쓰레기 문제가 있어요?
농촌의 생활방식이 소비 중심으로 달라졌어요. 시골이면 거의 자급자족할 거라 생각하는데 이제는 택배로 배달하고 마트에서 물건 사요. 특히 코로나 이후에 택배 쓰레기가 급증했어요.내촌인터체인지 바로 옆이 물걸리라 수도권에서 오기 쉽거든요. (세컨드하우스로 쓰는) 농막도 늘었는데 한번 와서 잔뜩 먹고 가면 쓰레기가 남아요. 홍천에서 하루 쓰레기를 다 처리 못해서 소각장을 하나 더 만들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요.(홍천군에서 하루에 발생하는 생활쓰레기 양은 75t으로 소각장에서 하루에 소각할 수 있는 48t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시골에선 쓰레기차가 집집마다 가지 못하니까 다들 쓰레기를 집 근처 큰 길가에 내놔요. 정해진 수거 날짜에도 안 가져가는 경우도 많아 길가에 내놓은 쓰레기를 새, 고양이가 다 헤집어놔요. 환경미화원께 들어보니 사정이 있었어요. 세 분이 내촌면 전체(1243가구, 면적 146.69 km2)를 맡는 거예요. 쓰레기 차 용량도 한계가 있고요.
강원도가 생활폐기물 매립률이 높고 재활용비율이 낮아요.(지난 5월 강원연구원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1인당 생활폐기물 배출량은 제주, 경북에 이어 강원도가 3번째로 많습니다. 매립률은 전국 평균의 2배인 24.4%입니다. 재활용비율은 51.1%로 전국 평균 54.7%를 밑돕니다.) 시골은 집이 뚝뚝 떨어져 있으니까 쓰레기를 태워버리는 일이 많아요. 어르신들은 종량제 봉투 사용이나 분리 배출에 익숙하지 않고 재활용 시스템이 아직 잘 갖춰지지 않았고요. 비닐과 스티로폼도 일반 쓰레기로 버리고 있어요.
70대 ‘모아짱’ ‘모아지기’, 노동 가치 인정 받아야
-그래서 만드신 게 ‘자원순환텃밭 모아’인 거죠?
강원도지역문제해결플랫폼에 실험 제안서를 제출했어요. 거기 선정돼 두 달 동안 마을 쓰레기 분리배출 시스템을 실험할 수 있도록 지원받았고, 지난해 8월 ‘모아’를 시작했어요. ‘모아’는 우리랑 인연이 닿았던 물건들이 생을 마무리하는 곳, 쓰여질 것들과 보내야 할 것들이 나눠지는 곳이잖아요. 쓰레기집하장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어요. ‘모아’는 텃밭이랑 비슷해요. 농사짓고 다시 땅으로 돌릴 것과 버려질 게 나눠지는 곳이 텃밭이잖아요. 마을회관에 ‘모아’를 만들었는데 처음엔 마을의 얼굴에 쓰레기를 모으는 게 말이 되냐는 의견도 있었어요. 두 달만 하고 뜯어내겠다고 설득했어요. 주민을 대상으로 여덟 차례 환경 관련 교육도 벌였어요. 그랬더니 실험 내내 마을 사람들이 길에 쓰레기를 안 내놓고 ‘모아’로 다 가져오는 거예요. 마을 쓰레기를 한 군데서 관리할 수 있게 된 거죠.
‘모아’ 관리를 노인일자리사업과 연계했어요. 70대인 최종하 ‘모아짱’님과 박만종, 이예구, 정윤배 ‘모아지기’님 세 분이 여기서 일주일에 세 번 마을 사람들이 재활용이라고 섞어서 버린 것들을 다 쏟아서 재분류하고 페트병 라벨도 떼요. ‘모아짱’과 ‘모아지기’들은 이 마을 초등학교 동창들이라서 티격태격하면서도 합이 잘 맞아요.
‘모아짱’은 쓰레기 관리만 하는 게 아니에요. 쓰레기를 마을회관까지 가지고 올 수 없는 독거노인이 마을에 20가구 정도 있는데 모아짱이 집집마다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해 쓰레기를 수거해요. 그게 자연스럽게 돌봄 서비스가 되더라고요. 방문 때마다 잘 계신지 살피고 얘기도 나누고. 동네 어르신들이 “쓰레기 많이 못 모아놔서 미안하다”면서 쇠붙이나 안 쓰는 물건도 챙겨주려고 하세요. 쓰레기가 많아야 ‘모아짱’이 좋아하는 줄 아시고요. ‘모아짱’이 쓰레기종량제 봉투도 나눠드리고 분리 배출하는 방법도 알려드려요. 혼자 사는 노인들은 쓰레기 치울 기회를 한 번 놓치면 집에 쌓아놓게 되는데 묵은 쓰레기들도 치워주니까 삶의 질이 올라가요. ‘모아짱’은 환경미화원과 직접 소통해 쓰레기가 잘 수거되도록 조율도 해요. 그 분은 처음엔 단순히 노인일자리사업으로 왔다는데 이 활동하시면서 점점 활동가로 변하시더라고요. “이렇게 분리한 다음엔 어떻게 되는 거지?” 그래서 같이 재활용처리장에 가봤어요.
사실 ‘모아’ 일이 점점 커지면서 저한테는 부담이 됐어요. 제 생계도 꾸려야 하는데 제 일을 자꾸 내려놓게 되는 거예요. 지난해 때려치우고 싶었는데 이렇게 좋은 분들을 만나니 그만 둘 수가 없어요.
-‘모아’의 효과는 어땠나요?
지난해 두 달 실험을 마치고 주민 설문조사를 해보니 95.2%가 유지를 원한다고 답했어요. 41.4%는 “마을 미관이 좋아졌다”, 31.5%는 “환경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달라졌다”고 했고요. 여기 담당하는 환경미화원들 말씀이 일반 쓰레기는 줄고 재활용 쓰레기는 확실히 많아졌대요. 정확한 쓰레기양을 파악하려고 지난 7월부터 모니터링을 하고 있어요. 이렇게 기록해가면 마을의 쓰레기양 목표를 정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모아’를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문제도 있어요. 생활쓰레기에 농약병이 섞여 나오더라고요. 농약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어요. 농약병도 상시적으로 수거할 필요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여기저기 문의했는데 환경공단에서 농약병 수거하는 통을 보내줬어요. 모은 걸 어떻게 처리할지는 마을에서 논의를 해봐야 해요. 원래는 일 년에 한두 번 중간 처리업자가 농약병을 가져가 특수하게 처리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굴러가요. 강원도는 수거하려면 굽이굽이 가야 하니 사업자가 수지타산이 잘 안 맞죠. 우리 마을만의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지원받기 어려워…폐교에 제로웨이스트 공방
-재활용공방도 만드셨는데요.
‘모아’가 관심을 꽤 받았어요. 군의원, 홍천군 환경과에서도 보러 왔어요. ‘모아’를 본 한 군의원이 조례를 발의했고 제정도 됐어요. 주민이 주체적으로 환경을 위한 노력을 하면 군이 지원해 줄 수 있다고 명시한 조례예요. 그런데 지원 기준은 안 만든 거예요. 막상 저희가 조례에 근거해 지원을 받으려고 했더니 군청 환경과에서는 멘붕인 거죠. 지원하는 게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모아짱’과 ‘모아지기’가 하는 일은 정말 가치 있거든요. 그런데 인정받기가 어려워요. 노인 일자리의 임금은 한 달에 27만 원이에요. 그나마 1월과 2월엔 노인일자리사업이 없어요. 임금을 더 드릴 방법을 찾다가 환경과 인문학을 이야기하는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제가 교원자격증이 있잖아요. 홍천군에서 평생학습동아리를 만들면 강사비를 지원해 줘요. 강사비 월 30만원은 ‘모아짱’에게 드렸어요. 1년은 그렇게 굴러갔어요. 저도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까 고속버스휴게소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최근 키오스크에 밀렸어요. 곧 잘릴 거 같아서 제가 그만둔 거니 잘렸다고 쓰진 마세요.
‘모아’가 지속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아짱’ 인건비와 ‘모아’를 굴릴 수 있을 만큼 수익을 내야겠다고 생각해 올해 폐교에 제로웨이스트 공방을 만들었어요. 천연수세미 100여개를 팔았고요, 슈퍼빈이라는 페트병 모으는 회사에 페트병도 판매하고요. 폐트병은 1kg당 200원이라 한 달 수익이 1만 원밖에 안 되지만 의미가 있어요. 여기서 잘 분류해도 선별장 가면 다 섞여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슈퍼빈은 100% 재활용하니까요. 한 달에 두 번씩 공방에서 환경 강의도 하고 비누도 만들고 수세미도 키워요.
-어떻게 물걸리에 오시게 된 거예요?
저랑 인혜경 선생님이 성미산학교 교사였어요. 저희 공방이 들어선 폐교에 예전엔 성미산학교 아이들이 일년살이를 했어요. 아이들이 1년 동안 농사도 짓고 마을 사람들이랑 어울리면서 살아보는 거예요. 17명이 밥도 직접 해 먹고요. 5년 전에 저랑 혜경 선생님이 담당 교사로 물걸리에 왔어요. 교사한테는 굉장히 어려운 프로젝트이지만 1년 지나면 아이들이 훌쩍 자라요. 홀로 서는 경험을 해보고 자기 관리를 할 줄 알게 돼요. 그 한해가 저는 좋았어요. 아이들이랑 허수아비도 만들어 주민들한테 드리고 영화제도 열고요. 그때 물걸리에 석산 개발 문제가 터졌는데 아이들이 마을 사람들과 같이 싸웠어요. 집회에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결국 막아냈어요. 그때 마을에서 아이들을 확 안아줬어요. 지금은 유명무실해졌지만 당시엔 주민자치위원회를 만들려는 움직임도 마을에 있었고요.
또 그땐 제가 좀 겉멋이 들었는지는 몰라도 아이들한테는 생태적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정작 저 자신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 게, 책에서 본 내용만 아이들한테 말하는 게 뻥치는 느낌이었어요. 사람들과 어울려 소박하게 삶을 꾸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 조금하고 편하게 살려는 목표도 있었어요.(웃음) 저는 사는 데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 없거든요. 갖고 싶은 것도 별로 없고요. 저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재미있어요.
‘모아짱’ 일 도와줄 캔패트병 압축기 등 필요
– 앞으로 계획은요
‘모아’가 굴러갈 수 있으려면 활동가들이 생활할 수 있을 만큼 최소한의 수익을 내야 해요. 사회적 가치 투자(SIR)대회에서 투자금을 받으면 캔, 패트병 압축기를 사고 싶어요. 지금은 ‘모아짱’과 ‘모아지기’들이 일일이 발로 밟아 찌그러뜨리는데 젊은 제가 해도 무릎이 아파요. 또 겨울에 쓸 난방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더 나아가 홍천, 강원도에서 환경을 이야기하는 단체를 만들고 싶어요. 홍천에 새끼줄협동조합이나 근처 팔공리 부녀회도 있는데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더라고요. 서로 활동 소개도 하고 함께 할 일을 도모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거 같아요.
삼삼은구 활동을 자기 일처럼 달라붙어서 할 수 있는 사람 5명이 모이면 협동조합으로 꾸려보고 싶어요. 솔직히 저희는 작은 골목가게인데, 큰 일을 하는 곳도 중요하지만 이런 작은 골목가게들도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 인터뷰 및 정리: 김소민 시민이음본부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