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사용자
경제학자 케인즈(J.M.Keynes)는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낡은 사고를 버리는 것이 훨씬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굳어진 사고 패턴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 사람들, 특히 기성세대들의 생각이 쉽게 변하지 않는 이유는 예전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세대간 생각의 ‘차이’가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기성세대는 자신들에게 익숙한 생각의 틀에 맞추어 자녀세대를 바라본다. 공부는 조용한 곳에서 해야 효율이 높고, 성현들의 말씀 안에 진리로 향하는 길이 있으며, 세상에 맞서지 말고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고, 가능하면 위험이 적은 곳으로 걸어가라는 것 등이 대표적인 레퍼토리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생각은 이와는 많이 다르다. 음악과 학습은 충분히 멀티(multi)가 가능하고, 고전에 나오는 계몽적 수사는 반쪽 짜리 진실인 경우가 많으며, 새로운 세계를 열어간 사람들은 대부분 기존의 질서와 흐름을 부정하고 거역한 사람들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 더 이상 안전한 곳은 없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초점이 다른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모른다는 말

청년 사회적기업가들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대학생들이 사업을 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어른들은 ‘경험도 없는 너희들이 어떻게 사업을 하겠느냐’,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취직 준비나 해라’ 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것은 상당한 어려움과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을 어른들은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그들은 아직 서툴고, 순진하며, 세상을 잘 모른다. 눈에 보이는 것 이면에 어떤 지배질서와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지금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세상은 그들이 마음껏 뛰어 놀기에는 위험천만한 놀이터임에 분명하다.

우리가 매일 아침 접하는 소식들이란, 성장지상주의로 인한 환경파괴와 전 지구적 차원의 기상이변, 탐욕의 시대가 만들어낸 지독한 양극화와 가난, 화폐 시스템의 붕괴로 말미암은 세계경제의 마비 등 온통 뒤틀리고 엉킨 카오스의 형상뿐이다. 그리고 니체의 표현을 빌리면, 그들은 자신의 의지와 아무 상관없이 이 부조리한 세상에 내던져졌다.

그렇다면 세상을 위험한 공간으로 만든 사람들은 누구인가? 만일 한 젊은이가 이 잘못된 질서를 조금 바꿔보겠다는 착한 마음을 먹었다면, 그 일은 무모하니 나서지 말고 그냥 편한 길로 가라고, 위험을 무릅쓰는 대신 기존의 질서에 편승하여 흘러가라고 말해야 할까? 

지금 인류는 가히 전지구적 차원에서 심각한 위기상황을 맞이하고 있고, 기존의 접근방법으로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미래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기존의 방법이란 무엇인가? 더 이상 효과 없음이 증명된 해법, 침몰하는 배 위에서 테이블을 정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기존 시스템의 안정적 유지라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왜? 당연한 말이지만, 결국 배의 침몰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식량, 빈곤, 기후, 환경, 금융 등 지구촌의 위기는 가히 전면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겐 세계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문제해결 방법이 요구되고 있다. 만일 이 가정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젊은이들의 허무맹랑한 생각과 기발한 아이디어를 과거의 프레임에 가두어 재단해서는 안 된다. 재단하기는커녕,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격려하고, 응원의 박수를 보내야 한다.

그때, 그들은 몇 살이었나

우리가 청년들에게 희망을 가지는 이유는 그들이 뛰어나서도, 답을 가지고 있어서도 아니다. 지금이 위기라면, 그 위기의 장본인인 기성세대와는 ‘다른’ 생각과 시선으로 새로운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기성세대가 위기의 해법을 ‘과거의 안정된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젊은 세대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개척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세계에서 빠르게 대처해 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의 역동적인 교류와 통합,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과 통섭이 필요하다. 지식과 정보의 양이 7개월마다 두 배로 확장되는 세상이 아닌가. 미래를 예측하기는커녕 현존하는 복잡계의 질서를 제대로 설명하는 것 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 기성세대가 보유한 고전적 해법과 노하우는 빛을 잃어갈 것이 자명하다.

젊은이들은 이미 구조화된 시스템의 톱니바퀴로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생기 넘치는 조직의 주체적인 참여자이기를 희망하고, 다양하고 개방된 네트워크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즐기며, 기성의 질서로 편입되기 보다는 새로운 영역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한다. 한 마디로 그들은 ‘새롭고’ 아직 기성의 문화에 물들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이 새로움이 작금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인지 모른다.

독일의 미래학자 게세코 폰 뤼프케(Geseko von Lupke)는 “지금 중요한 것은 웅대한 비전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위기상황으로부터 빠져 나와 미래를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는 실천적인 대안들을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를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힘쓰는 혁신가들, 특히 청년 사회적기업가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피카소가 20세기 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입체주의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을 완성한 것이 불과 26살. 존 레논이 전설적인 록 그룹 비틀즈를 결성할 때의 나이가 22살이었고,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때는 그보다 어린 약관 20살이었다. 인류사에 빛나는, 새로운 변화를 창제한 이들의 첫 출발선은 대부분 이십 대 남짓이었고, 모두 햇병아리들이었다.

당시로선 낯설고 이상하기까지 한 그들의 모습에 차가운 냉소와 날 선 비판만이 존재할 뿐, 이들에게 아무도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면, 그래서 결국 그들이 기성세대의 압력에 굴복하여 자신들의 꿈을 접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인류는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세상은 지금보다 더 볼품없고 궁핍한 마을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남들이 가지 않는 길로 걸어가고자 하는 이 시대의 젊은 돈키호테들에게 갈채를 보내자. 그들의 맹랑한 생각과 무모한 도전을 격려하고 칭찬해주자. 콩나물 시루의 물을 부으면 대부분의 물이 아래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콩나물은 자라는 법. 누가 이들을 세상물정 모르는 병아리라고 부르며 폄하하는가?

글_소기업발전소 문진수 소장(mountain@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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