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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충주 이상창 ‘세상상회’ 대표

희망원정대의 유일한 대원인 저는 몽덕 대장을 규탄하며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개플루언서가 돼 희망제작소에 후원금을 몰고 올 줄 알았는데, 제작소 연구원들에게 간식만 착취하고 있네요. 장판처럼 누워있는 몽덕 대장과 다투고 올해 첫 원정도 저 혼자 떠났습니다.

제가 만난 사람은 충북 충주의 ‘오지라퍼’(오지랖이 넓은 사람)들을 모아 연결하는 ‘오지라퍼 중의 오지라퍼’입니다. 이 오지라퍼들의 작당이 빈집이 절반이던 구도심 골목을 ‘핫플’(핫플레이스의 줄임말)로 바꿨습니다. 그런데 이상창(40) ‘세상상회’ 대표의 목표는 핫플이 아니랍니다. ‘웜플’(warm+place)이랍니다. 골목상권 살리기는 모든 지방정부의 꿈이지만, 행정이 주도해 성공한 적이 별로 없는 미션이기도 합니다. 그의 ‘오지랖’은 뭐가 달라서 이 ‘미션 임파서블’에 성공한 걸까요?

▲충주에서 13년 동안 비어있던 구옥을 리모델링해 카페 ‘세상상회’를 연 이상창 대표가 자신이 직접 그린 리모델링 설계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있다.

쉬려고 왔는데, 자꾸 빈틈이 보여

2016년 이상창 대표는 7년차 지역활성화 컨설턴트로 충주에 왔습니다. 그가 참여한 사업으로 충주시가 중앙정부 예산을 확보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그해 10월 30일, 그는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무균실에서 버티며 여동생의 골수를 이식받았습니다. 그가 회복될 즈음 아내가 암에 걸렸어요. 부부는 요양차 아무 연고 없는 충주로 왔습니다. 13년 동안 빈집이던 20평짜리 일본식 옛집과 1970년대에 지어진 한옥을 7천만원에 사서, 2018년 5월 카페 세상상회를 열었습니다.

세상상회가 들어선 관아골 뒷골목은 ‘담배골목’으로 불렸습니다. 신도시가 생기며 주민이 빠져나가 슬럼이 된 이곳에서 청소년들은 담배를 피웠습니다. 관 주도로 지원사업이 여러 차례 벌어졌지만 간판 정도만 바뀌었어요.

“충주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애매모호하죠. 저한텐 블루오션, 백지 같았어요. 제대로 뭔가 하면 주목받기 좋은 곳이고, 싼 부동산 가격도 큰 장점이었어요. 그 구옥을 보자마자 사고 싶었어요. 꽁꽁 싸맨 보물 같았거든요.”

장사는 처음부터 잘됐습니다. 상창 씨는 커피를 볶고 아내 이세은 씨는 충주 과일로 케이크를 만듭니다. 가게 한편에 작가들의 소품을 전시해 팔고요. 충주 작가의 작품이 절반입니다.

“세상상회가 충주에선 구옥을 고쳐 만든 첫 카페예요. 당시에 중고등학생들이 다이어리를 꾸미려 해도 갈 곳이 다이소하고 아트박스밖에 없었어요. 충주에 없었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준 거죠. 다음해에 구옥 카페랑 소품숍이 여기저기 생기더라고요.”

그는 충주 골목을 살리러 여기 오지 않았습니다. 쉬러 왔어요. 그런데 자꾸 빈틈이 보입니다. 메우고 싶었습니다. 혼자가 아니었어요. ‘오지라퍼’ 5명이 보탬협동조합(이후 ㈜보탬플러스)으로 뭉쳤습니다. 그중 한 명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벌이는 ‘관광두레 사업’에서 2023년 최우수 피디(PD)로 선정된 박진영 씨입니다.

▲충주에서 13년 동안 비어있던 구옥을 리모델링해 카페 ‘세상상회’를 연 이상창 대표

우정으로 사회 문제 해결할 수 없을까?

“처음 만났을 때 진영이 누나는 남편이랑 식당을 운영했어요. 남편 따라 충주에 왔는데 10년간 하고 싶은 걸 못해 우울해했어요. 각자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 만나 작당하는데 재밌는 거예요. 자기 먹고살기도 바쁜데 골목, 동네, 도시를 생각하면 오지랖이죠. 한 명이 그러면 ‘또라이 민원인’이지만 ‘오지라퍼’들이 모이면 변화를 만들어요. 아무리 좋은 컨설턴트가 지역에 와도 사업 기간이 끝나고 가버리면 도루묵이잖아요. 우정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까 고민하던 차였어요.”

우정에 기반한 이들의 첫 ‘작당’이 ‘담장마켓’입니다. 혹시 가보셨나요? 세상상회는 두 사람이 걸으면 어깨가 부딪칠 좁은 골목에 있는데, 이 골목에서 장터 겸 축제를 열었습니다. 7년 전 시작할 때 전국에서 20개 팀이 판매자로 참여했습니다. 20여 차례 벌인 뒤 판매는 60개 팀으로, 하루 방문객은 2천 명으로 늘었어요.

“협동조합으로 상상이 실현된 적이 많아요. 진영 누나가 전국 마켓에 공예품을 팔러 다녔거든요. 거기서 셀러들한테 충주에 와보라고 영업했죠. 저희는 다 ‘본캐’와 ‘부캐’가 있어요. 제 본캐는 카페 2곳과 스테이(숙박시설) 하나를 운영하는 거예요. 본캐가 탄탄하면 부캐를 지역에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활용할 수 있어요. 부캐에 의존하면 지원사업의 노예가 돼요.”

이 골목에선 한 사람이 수직으로 자라지 않습니다. 릴레이로 밀어주며 수평으로 확장합니다. 세상상회를 거쳐간 ‘알바요정’(그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이렇게 불러요)은 12명, 그 가운데 3명이 창업했습니다. 알바요정 4호는 10년 넘게 빈 여인숙을 사서 카페와 숙박업을 시작했습니다. 상창 씨가 알바요정 4호의 부모님을 설득하고 창업을 도왔죠. 알바요정 4호의 점포 옆에 보탬플러스 멤버가 청년들의 작업공간인 청년몰을 열었습니다. 이 ‘여인숙 골목’에서 스테이, 책방, 카페, 영상 작업하는 5명이 모여 보탬플러스의 다음 세대인 ‘자작자작 협동조합’을 꾸리고 ‘골목투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합니다.

‘관계’가 브랜드다

세상상회에서 만난 상창 씨는 16명이 복작이는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을 보여줬습니다. 자작자작, 보탬플러스 외에 그의 “형, 누나들”이 모인 ‘위(We)관아골’ 단톡방입니다. 이들이 제안한 위(We)관아골 브랜드로 충주시는 2023년 행정안전부가 벌인 ‘생활권 단위 로컬브랜딩 활성화 지원사업’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습니다.

“우리 관계가 관아골이죠. 이 브랜딩 아래 관아골을 ‘창조 커뮤니티 실험지구’로 만들려고요. 충주만 할 수 있는 게 뭘까요? 다 복제할 수 있어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서사만 복제할 수 없죠.”

충주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문화도시’에 도전했다가 세 번 떨어졌습니다. 네 번째 도전에 상창 씨가 선임기획자(PM)로 참여했고, 2022년 충주시는 예비 문화도시로 선정됐습니다. 그때 그가 내세운 것도 ‘사람’입니다.

“그전엔 깨끗한 물, 사통팔달, 중원 문화를 내세웠는데 시민들도 잘 모르는 거로 심사위원을 설득할 수 없었어요. 저희는 ‘충주 살면, 충주 사람’을 제안했어요. 없는 걸 있는 척하지 말자고 했어요. 충주는 실험하기 좋은 곳이에요. 충주에서 개인사업자 비율이 40%예요. 인구가 30년 동안 20만 명인데, 해마다 3만 명 정도 빠져나가고 그만큼 새로 들어와요. 상대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싸서 젊은이가 창업하기 좋고 귀촌 인구도 많아요.”

‘연결 장인’의 비법은…

‘우리’를 만드는 상창 씨의 구획 가로지르기는 전방위적입니다.

“충주에서만 9개 동에서 도시재생사업을 하는데 서로 뭘 하는지 몰라요. 동별 사업의 실제 주인공인 주민상인협의체들이 한자리에 모여보자고 했어요.”

9개 동은 도시재생사업에서 협력하기로 업무협약을 맺었습니다. 충주 로스터리카페(원두를 직접 볶아 판매하는 카페) 7곳도 엮어 ‘충주 콩 볶는 사람들’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충주 호수 축제 때는 각자 잘하는 커피를 묶어 충주 원두 브랜드로 함께 판매했죠.

이 ‘연결 장인’의 비법은 뭘까요?

“관계를 잘 맺으려면 일단 많이 나눠야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지역활성화 컨설턴트로 일했으니 기획을 잘하고, 행정이나 학계에 인맥이 있죠. 이걸 저만의 무기로 움켜쥐었다면 관계 맺지 못했을 거예요. 청년들이 공모사업에 지원하는 거 도와주고 어떤 문을 두드려야 하는지 알려줘요. 도시재생센터처럼 공공 영역에 중간 지원조직이 있지만 그것만으론 잘 작동이 안 되더라고요. 주민과 행정 사이에 다리가 필요해요. 제가 민간에서 중간 지원조직 역할을 하죠. 행정 언어를 주민 언어로 통역해요. 지역활성화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왜 역량 있는 플레이어들이 같이하지 못할까 고민했거든요. ‘오세요, 오세요’ 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바쁜 청년들은 참여를 잘 안 해요. 누군가 그 판에 꾸준히 있어야 해요.”

상창 씨가 처음 세상상회 문을 열었을 때 관아골 뒷골목에 있던 상점은 인형공방 하나였습니다. 이제 화실, 사진작업실, 잡화점 등 20여 곳이 들어섰습니다.

“서울 경리단길 같은 데랑 비교하면 이 골목이 보잘것없어 보일지 몰라요. 우리가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뭘까? 저는 커뮤니티라고 생각해요. 세상상회만 혼자 크면 세상상회가 다 흡수해버려요. 관계가 깨져요. 제가 한 번 건강을 잃었잖아요. 그 뒤엔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아요. ‘이게 뭐 별거라고’ 우리끼리 재밌게 살면 되지.”

“덕분에”와 “이게 뭐 별거라고”

“죽다 살아난 뒤” 그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 또 있습니다. “덕분에”입니다. 상창 씨가 관아골 뒷골목에서 구옥을 사려 했을 때 주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 골목 공방 사장이 그에게 전화해 구옥 주인 연락처를 알려줬어요. 한 할머니가 오랜만에 집 청소하러 온 걸 보고 연락처를 받아놨다는 겁니다. “저 혼자 해서 잘된 건 아무것도 없어요. 덕분에 자리 잡았고 덕분에 외롭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도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 ‘이 사람 좀 잘됐으면 좋겠다’ 싶어요.”

세상상회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콘크리트 기둥에 난 상처도 그대로 뒀죠. 명절이면 이곳에 살던 옛 주인 가족들이 모입니다. “사실 돈 주고 살 수 없는 그분들의 시간을 제가 산 거잖아요. 누군가의 서사 위에 저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거죠.”

로컬크리에이터의 전제는 ‘로컬프라이드’

상창 씨는 2년 전부터 그의 이야기 위에 다음 이야기를 써나갈 세대를 만납니다. 보탬플러스의 2.0 버전이 ‘자작자작 협동조합’이라면, 이 네트워크 3.0 버전의 씨를 뿌립니다.

“로컬크리에이터의 전제가 ‘로컬프라이드’인 거 같아요. 그런데 지방에 살면 어릴 때부터 공부해서 서울 가라고 해요. 제가 아팠을 때 고향 경북 구미로 돌아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아프고 힘들어서 돌아가면 ‘루저’(실패자) 취급 하니까요. 주민이 살맛 나야 누군가 올 만한 도시가 되잖아요.”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와 함께 보탬플러스가 충청권 중고등학교 네댓 곳에서 ‘로컬인사이트스쿨’을 하는 이유입니다.

“동네를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게 돕죠. 저는 관아골을 소개하고 폐가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줘요. 학교마다 교사연구회가 있는데 선생님들이 이 분위기를 살려 창업동아리나 도시재생 스터디를 꾸리고 저희한테 자문해요. 그 수업을 듣고 학생들이 세상상회로 찾아와요. 동네 삼촌으로 만나는 거죠. 저는 오지랖들이 오래오래 남아 관아골이 ‘웜플’이 됐으면 좋겠어요.”

PS: 뭣이 중한가.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결국 중요한 건 관계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몽덕 대장이 좋아하는 고구마를 사 들고 퇴근했습니다. 몽덕 대장도 문서로 남기진 않았지만 올해부터 열심히 일하겠다고 눈빛으로 약속했습니다.(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몽덕 대장이 구독자 여러분께 새해 인사 올립니다.

– 글: 김소민 시민이음본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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