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희망제작소는 2012년 한 해 동안 월간 도시문제(행정공제회 발행)와 함께 도시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로 제시해보려고 합니다. 희망제작소 각 부서 연구원들이 매월 자신의 담당 분야와 관련된 다양한 아이디어를 풀어놓습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의 90%는 도시에 산다. 그런데 최근 한참 회자되는 ‘마을만들기’, ‘마을공동체’ 등은 농어촌 지역에 해당되는 이야기로 들린다. 도시, 특히 서울에서 대부분을 살아온 사람들은 내가 ‘마을’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쉽게 하지 못한다. 도시 사람들은 마을에서 이웃들과 살아가는 삶을 꿈꾸며 귀농을 준비한다. 최근에 이러한 움직임은 가속도를 붙이고 있어, 10년 전까지만 해도 귀농이라고 하면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떠올렸다면 지금은 2~30대 청년들 중에도 생태적인 삶을 꿈꾸며 귀농을 준비하는 이들이 상당하다.

물론 귀농이 마을에 살고 싶은 욕구에서 나온 대안이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속도로 달려가는 도시의 삶, 그 속에서 반복되는 출퇴근과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에서 나온 한 가지 대안이 도시를 떠나는 것으로 표출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농촌의 공동체가 회복되어야 하고, 농촌 지역이 늘어나야 하는 것은 생태적인 이유, 식량수급 문제로서의 전략 등에서 당위적이다. 그런데 도시의 삶은 필연적으로 척박해야만 하는 것일까?

마을이 학교다

여기 도시에서 마을을 일구어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 서울에서 마을이 화두가 되면서 관련된 모임이나 강좌 등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희망제작소에서 운영하고 있는 ‘마을이 학교다’라는 프로그램이다. (필자가 PM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수강생들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도시 사람들이다. 80%는 서울, 나머지는 경기 지역에서 살고 있다. 주중에 한 번은 퇴근 후에 모여서 마을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관련된 강의를 듣는다. 매주 토요일에는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먼저 활동하고 있는 분들을 찾아가서 마을 구경도 하고 활동가들의 속사정도 듣는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역 어르신과 각 직능 단체를 연결하여 지역의 장점을 살려 우리 마을에서만 할 수 있는 사업을 펼쳐 보려고 합니다. 봉사와 취업과 교육 실현이 가능하도록 하고 싶어요”

“건축을 전공하고 실무를 하는 사람으로 늘 커뮤니티와 사람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을 하면서는 건물이 어떻게 사람과 어우러지도록 하고 마을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관하여 생각도 해왔고요”

“’한 명의 아이를 온전히 키우기 위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글자 그대로 실천하고자 하는 꿈이 있습니다. 마을의 이웃들과 아이는 물론 마을 전체가 즐거운 배움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고민 중입니다”

마을에서 자라왔으나 더이상 마을에 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끼는) 우리는 이제 다시 마을에 살고자 한다. 도시를 떠나지 않고 내가 사는 이곳에서 대안을 찾아보려 한다.

아파트도 마을이다

오히려 도시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예술가들은 대체로 도시에 사는 것을 선호하는데, 이들이 커뮤니티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기쁨과 예술적 재능을 나누는 일, 그리고 미술관 흰 벽에 걸리거나 ‘손대지 마시오’라는 표지판 뒤에 있는 예술이 아니라 누구나 그로부터 영감을 얻을 수 있도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예술에 대한 관심이 예술가와 향유자 모두에게 늘어나고 있다.

마포구 성산동의 ‘명랑에너지발전소’는 문화예술 분야 사회적기업 문화로놀이짱에서 운영하는 공방이다. 이들은 단순히 목공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버려질 뻔한 목재를 구출하여 다시 숨결을 불어넣는 일을 지역의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한다. 이들은 손으로 하는 일, 그 느낌이 갖는 잠재력을 믿는다.

삼선동에는 이른바 ‘장수마을’이라 불리는 삼선4구역이 있다. 마을기업 ‘동네목수’ 또한 함께 만들어 가는 주민들의 작업장이다. 재개발 예정지이지만 획일화된 재개발과 그로부터 원주민이 소외되는 방식을 따르지 않고, 대안적인 계획을 만들어 가는 공간이다. 일본에서 마을만들기(마치쯔쿠리)는 도시계획을 주민참여에 의해 진행하는 과정에서 초기의 틀을 갖추었는데, 장수마을은 바로 그 마을만들기의 원형에 가까우면서도 서울 한 구석의 특수한 한 마을에서 그러한 대안적 계획이 가능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아파트도 마을이 될 수 있다. 시흥의 참이슬아파트에서는 공동의 공간을 교육장으로 만들어 아파트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학교’ 운영위원회를 만들고,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원어민 영어, 요가 등의 교육 프로그램 면면만을 본다면 저렴한 문화센터 정도로 볼 수도 있겠으나, 그러한 프로그램을 스스로 만들고 꾸려가는 과정에서 주민들간의 소통이 현격하게 늘어나고 사는 곳에 대한 자긍심이 높아지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

행정에서 할 수 있는 일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찾아나서라. 분명 어딘가에 있다. 도시에도 있다. 그리고 행정에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장과 통로를 마련해 주자. 행정에서는 마을을 만들 수 없다. 워크숍, 교육의 장소를 제공하고 단초가 될 만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는 있다. 토론의 화두를 던질 수도 있으며, 진행을 도울 수 있다. 사람을 찾고 있는 사람들은 행정이 그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촉구할 수 있다.

다른 한 가지 행정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느 동네에 살든, 그곳에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그리하여 내 마을에 대한 애착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균형 발전 정책의 실질적인 구현이다. 돈을 좀 더 벌면,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당연히 떠날, 전세값이 오르면 밀려나야 하는 임시 거처에서 마을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내가 사는 이곳에서 만족스러운 공공서비스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동산 시장의 체질 개선을 통해 집을 가졌든 그렇지 않든 오래 한 곳에 머무르며 지역과 집과 사람들에게 온전한 애착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행정구역이 아닌, 삶의 터로서의 마을

마을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곧 사람들이 더 충만한 삶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즉 마을이 된다는 것은 삶이 풍요롭게 되는 일이며, 그 풍요는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정부 시책으로 마을만들기 공모사업을 한다고 해서 공동체성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마을에 살고자 하는 욕구를 표출할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되고, 거기에 사람들의 의지와 관심이 모이면 그 마을은 마을이 된다.

글_ 김보영 (뿌리센터 선임연구원 boykim@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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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목록
1. ‘마음껏 걸을 권리’ 되찾으려면
2. 우리가 몰랐던 ‘마을’의 모습
3. 세상을 바꾸는 ‘시민 아이디어’의 힘
4. 도시는 마을이 될 수 있을까

*본 글을 월간 도시문제 2012년 4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