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곳곳에 ‘해결사’들이 있습니다. 변화를 꿈꾸지만 않고 실행합니다. 희망제작소는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라고 호명하고 연결합니다. 오는 12월 14일 <2023 소셜디자이너클럽 사회적가치 투자(SIR) 대회(링크)를 여는 이유입니다. 이날 청중심사단(링크)이 소셜디자이너 10명의 피칭을 듣고 모의 투자합니다. 시민을 만날 소셜디자이너 10명을 소개합니다.
“동네 연예기획사 전성시대, 곧 옵니다” | 배준호 BCY엔터테인먼트 대표 @부산
아마도, 국내에서 하나뿐이리라 짐작되는 ‘비영리’ 연예기획사 BCY엔터테인먼트의 BCY는 보충역의 영문머릿글자를 땄습니다. 이야기는 배준호 대표가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하던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갑작스런 부상으로 다니던 학과(축구스포츠의학 전공)를 포기하며 마음고생을 하던 그는 사회복무요원을 “꿀 빤다”며 경시하고 “하자 있는 사람”이라 차별하는 세상을 확 바꾸고 싶었습니다. 마음 맞는 동기 한 명과 보컬팀 ‘보충역 듀오’을 결성했지요. 현역 아닌 보충역도 자기 역할과 이름이 있는 당당한 존재라는 걸 알리고 싶었고, “1등급 가수는 아니지만 목소리와 음악으로 세상에 도움(보충)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뜻도 담았습니다. 군에서 주는 월급을 모으고 고물상을 뒤져 스피커도 하나 장만했습니다. 아직 버스킹이 생소하던 시절, 보충역 듀오는 직접 수리한 버스킹 앰프를 들고 주말마다 공연에 나섰습니다.
공연료 대신 책을 기부받아 부산의 지역아동센터에 전달했는데, 그렇게 기부한 책이 야금야금 2만 권을 넘어섰을 땐 유명인이 되어 있었어요. 노인복지관, 장애인 주간보호센터, 생명사랑걷기대회 행사…. 음악이 필요한데 예산은 부족한 곳들은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재능을 뽐낼 무대를 갈망하던 이들이 보충역 밴드의 소개로 무대에 섰습니다. 그렇다면 돈을 매개로 하지 않아도, 공연이 필요한 사람들과 공연하고 싶은 사람들을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2017년 “스스로 도전하는 사람을 돕는 동네 연예기획사”이자 “음악으로 소외받지 않는 사회를 꿈꾸는 비영리단체”인 BCY엔터테인먼트가 출범했습니다. 단체를 이끌며 보컬리스트이자 진행자(MC), 프로듀서, 엔지니어로 자의반타의반 스펙을 쌓은 배준호 대표는 본격적으로 작곡 공부를 하고 싶어 30대에 대학에 갔습니다. 지난 10월 30일, 그가 다니는 부산 대동대학교 교정에서 배준호 대표를 만났습니다.
누구나 뮤지션…자체 기획공연으로 공연 수준 높여
-BCY엔터테인먼트는 소속 뮤지션이 몇 명이나 되고, 어떤 음악을 하나요? 연예기획사가 ‘비영리’라니, 어떻게 운영되는지도 궁금해요.
뮤지션은 저 포함해서 33명이에요. 장르는 힙합, 댄스, 발라드, 트로트, 웬만한 대중음악 장르는 다 있어요. 나이도 중학생부터 50대까지 다양하고요. 처음 시작할 땐 워낙 지원자가 많아서 오디션을 했는데, 우리가 뭔가 평가한다는 게 되게 건방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상시모집이고, 3개월 정도 함께해보고 본인이 계속할지 말지 스스로 결정하는데, 그만두는 분과 계속하는 분이 반반 정도 돼요.
저희는 비영리단체니까 수입은 없고, 소속 뮤지션들이 회비를 내서 운영해요. 뮤지션들은 각자 다른 직업이 있으니까 말하자면 ‘N잡러’인데, 정규직 회사원도 본업은 음악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다들 열정이 넘치죠(웃음). 운영비는 연산동에 있는 저희 공연장 겸 연습실 겸 녹음실(아이보리움) 월세 45만 원, 세금과 관리비 15만 원 해서 한 달에 60만 원이 들어요.
-자체 공연장을 운영하다니 놀라워요.
반지하에 있는 35석 규모의 작은 공연장이에요. 평소엔 연습실로 쓰다가 공연할 땐 의자를 놓죠. 그곳에서 일 년에 4~5번 자체기획 공연(무료)을 여는데 외진 곳의 작은 공연장인데도 매번 관객이 꽉꽉 차요. 꾸준히 보러 오는 팬도 있고요. 외부 공연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기획공연을 해야 소속 가수들이 열심히 연습하면서 실력이 업그레이드되거든요. 그래서 꾸준히 자체 기획공연을 하고 있어요.
-운영이 힘든 시기는 없었나요? 코로나19 대유행 때 문화예술인들이 많이 힘들었잖아요.
저는 코로나19가 오히려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코로나19 전에 소속 뮤지션이 60~70명 됐거든요. 버스킹 문화가 퍼지면서 거리에 특설무대 같은 것도 많이 생겼고, 저희가 취지만 좋으면 교통비 정도만 받고 직접 수리하고 만든 음향장비까지 제대로 갖춰서 공연을 하니까 만족도가 높아서 불러주시는 분들이 점점 많아졌거든요. 정신 없이 공연 다니면서 ‘지금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때 코로나가 터졌어요.
이김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 싶어서 영상콘텐츠를 만들어 해외시장에 뛰어들어보기로 했어요. ‘마이시티아이돌’이라는 앱을 만들어서 30~90초짜리 1인 공연영상을 올리고 팬들이 투표를 하게 했어요. 그땐 숏폼이 대중화되기 전인데 제가 어느 책에서 짧은 영상이 인간에게 더 중독성 있다는 내용을 봤거든요. 또 요즘 유행하는 챌린지를 열어서 참가자들이 자기 영상을 올리고 서로 소통하게 했어요. 집합금지 시절이라 다들 답답해서 그랬는지 호응이 너무 좋았고, 우리 뮤지션들도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 무대에서도 활동하는 계기가 된 거죠.
그때 저는 개인적으로 인문학 공부를 해서 인문학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여러 책을 읽고 고민하면서 ‘그동안 BCY엔터가 아무 방향성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비전이라고 할까, 저 나름대로 방향과 목적을 세웠는데, 저희는 지역의 가수를 발굴하고 만든다는 개념보다는, 지역에 가수들이 사실은 어디에나 있단 말이에요. 재능 있고 열정 있는 사람들이 이미 많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보금자리가 없으면 지역을 떠나서 서울로 가요. BCY엔터는 누군가 도전하려고 할 때 그 도전을 감싸주고 도와줄 수 있는 둥지가 되어주는 거죠. 서울 가서 대형기획사에 들어가야만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건,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지 않나요? 음악은 우리 일상 어디에나 있고 있어야 하잖아요. 저는 지금 여기에 살면서 하고 싶은 음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누군가의 뒷배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우리 동네에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뒷배’ 되기로 결심
-지금은 회복이 좀 됐지요? 한 달에 몇 번이나 무대에 서는지, 전부 비수익 공연인지 궁금해요.
코로나19가 끝나고 그동안 미뤄뒀던 행사들을 앞다퉈서 하니까, 전국에서 섭외가 물 밀 듯이 들어와요. 10월 한 달에만 전국에서 행사를 수백 개씩 하니까요. 올해 들어 자체 기획공연 외에 한 달에 큰 무대를 2~3건씩 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요즘은 프로들이 서는 무대에 같이 서는 일도 있고, 출연료도 꽤 받아요. 그동안 노하우가 쌓여서 음악공연 말고 음향기기 렌탈이나 행사 사회를 봐달라는 요청도 많이 들어오고요. 저희도 수익이 생기는 거죠. 이렇게 생긴 수익은 단체에 귀속하지 않고 100% 출연자가 가져가고 있어요.
-앞으로 계획을 들려줄 수 있을까요?
저와 동료들은 인생의 진짜 의미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직장생활 하고 돈 벌어서 가족과 함께 사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고 중요한 일이지만 그게 인생의 전부인 삶은 이제 과거의 삶이라고 봐요. 자기가 뭘 원하는지 알고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삶,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함께하는 삶이 진짜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그 꿈을 다 이룬 건 아니지만 그 맛을 찍어 먹어 보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앞으로 이렇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점점 많아질 거고, 그럼 언젠가 전국에 저희 같은 동네 연예기획사가 생기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수도권 과밀화에 질리고, 생활 수준이나 의식 수준이 더 높아지고, 정신을 좀 차리면요(웃음). 그때를 대비해서, 그리고 혹시 제가 내일 잘못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저는 제가 BCY엔터를 만들고 운영한 모든 노하우를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어요. 누군가 저와 같은 일을 하고 싶으시면, 다 전수해드릴 테니 언제든 찾아오세요.
– 인터뷰 및 정리: 이미경 시민이음본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