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그래,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먼 길이지만 이번 캐나다 연수(지속가능한 도시정책을 위한 사회적경제와 거버넌스 사례)에 동참한 이유이다. 광주에서 인천공항까지 4시간 반, 인천에서 밴쿠버까지 11시간, 밴쿠버에서 토론토까지 4시간, 그리고 다시 퀘벡까지 1시간 반. 이동하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리는 일정이었다. 7박 9일 동안의 일정 역시 빡빡했다. 목민관클럽의 연수는 ‘고되다’는 풍문은 사실이었다.

강이 좁아지는 곳, 퀘벡에서

연수 첫 일정은 퀘벡에서 진행되었다. 이따금 언론에서 분리 독립을 요구한다는 기사로, 캐나다의 대표적인 협동조합 도시로 소개되었던 그곳이다. ‘퀘벡’의 뜻은 원주민 말로 ‘강이 좁아지는 곳’이란다. 오래전에 본 영화 ‘늑대와 춤을’이 떠올랐다. 원주민들의 이름 짓기가 재미있다. 인구 8백여만 명, 언어는 불어를 쓰고 캐나다에서 가장 큰 주이다. 한반도의 7∼8배쯤 되는 큰 면적이다. 아침 식사 전 잠시 산책에 나섰다. 우리나라 초겨울 날씨다. 추웠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차분한 아침 공기와 유럽풍의 그림 같은 건물들로 내 눈은 호사를 누렸다.

첫 번째 방문지인 ‘CLD(퀘벡지역개발센터)’로 향했다. 도심에 위치하고 있었다. 건물도 자기들 것이란다. 캐나다의 그 유명한 신용협동조합인 데자르뎅과 국립협동조합본부, 그리고 CLD와 CDEC(지역사회경제개발공사)가 협동조합을 결성해서 각기 다른 지분율로 건물을 매입해서 운영하고 있었다. CLD 측의 간단한 설명이 있었다. CLD는 퀘벡에만 현재 120개가 운영 중이란다. 정부조직은 아니지만 80% 정도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로 치면 몇몇 지자체에서 지원하고 있는 중간지원 조직으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쯤 된다.

우리와 큰 차이점은 역시 금융 지원이다. 광주 광산구에도 어룡신협과 10억 규모의 협동조합 융자 협약을 맺고 있다. 하지만 대출 업무는 신협에서 직접 담당하고 이용률은 아직 낮은 편이다. 우리와 비슷한 점도 있다. 최근 선거를 통해 정부가 바뀌면서 정부 보조금 지원이 삭감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경제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길은 다른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퀘벡의 그들이나 우리나 제도와 체계를 갖추는 것, 무엇보다 주민들이 사회적경제의 가치에 동의하고 함께 응원하는 것 말이다. CDEC은 또 무엇인가. CDEC도 넓은 틀에서 사회적경제를 지원하는 일을 하는 중간지원조직이지만 정부의 보조금을 받지 않는 비영리조직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우리나라 주요 은행 지점처럼,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데자르뎅 신용협동조합

우리나라 주요 은행 지점처럼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데자르뎅 신용협동조합

다음은 시민사회단체지원센터, 또는 시민사회단체 공간 공유 플랫폼인 ‘프레데릭 백 문화환경센터’를 들러보았다. 광산의 ‘주민참여 플랫폼’과 유사하다. 협동과 신뢰의 생활공동체, 경제공동체를 고민하는 이들은 언어, 문화, 환경은 달라도 방향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8시 특강이란다. 전국사회연대경제지방정부협의회 김영식 국장이 수고해 주었다.

이제 뒤풀이다. 전국 16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참여한 50여 명의 연수단이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다. 모두 대한민국에서 일 좀 한다는 지방자치단체의 단체장과 공무원들 한자리에 모였다. 거리가 좁혀진다.

프레데릭 백 문화환경센터

프레데릭 백 문화환경센터

핵심은 거버넌스였다

둘째 날, 퀘벡 주정부와 몬트리올 시정부를 방문했다. 핵심은 ‘거버넌스’였다. 행정과 민간이 정책을 함께 수립하고 집행도 함께하는 튼튼한 민관 협력구조다. 또 있다. 사회적경제와 지역공동체 회복 또는 활성화는 한 묶음이다. 맞는 말이다. 함께 가는 것이다. 퀘벡 주정부에서 사회적기업으로 인정하는 기준인 여섯 가지 원칙은 명료하다. 커뮤니티 구성원의 필요에 부응해야 하고, 정부와 공공으로부터 의사 결정의 독립성이 유지되어야 하며, 구성원간 민주적 거버넌스 구조를 갖춰야 하고, 경제적 지속가능성 확보, 잉여금의 배분 제한, 그리고 기업의 해산 시 잔여재산을 유사한 목적의 사회적기업에 넘겨야 한다.

이어서 사회적기업인 ‘라퐁텐’에서 점심을 먹었다. 몬트리올 시정부에서 라퐁텐 공원과 건물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민간(사회적기업)에 위탁한 경우다. 광주 광산구는 장덕도서관의 까페와 매점을 수완어깨동무라는 협동조합에 위탁했다. 우리가 배울 점은 ‘공원 관리, 공공시설 운영 등 민간에 위탁하고 있는 부분을 어떻게 사회적경제와 연결해 볼 것인가’이다. 또 라퐁텐과 지역의 빵집, 가게들과 파트너십을 구축하며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완어깨동무협동조합에 제안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퐁텐 공원 안에 있는 사회적기업 레스토랑 라퐁텐

라퐁텐 공원 안에 있는 사회적기업 레스토랑 라퐁텐

역시 리더가 중요하다

셋째 날, 책으로만 보던 퀘벡 사회적경제 단체 연석회의 ‘샹티에’로 향했다. 샹티에는 재정위기와 실업극복 전략에 대처하기 위해 1999년에 창설된 다양한 사회적경제 조직 주체들과 노동운동, 사회운동 대표자들과 함께 하고 있는 사회적경제 조직 협의체의 네트워크이다.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샹티에 대표 낸시 님탄을 만날 수 있었다. 1995년 경제위기 상황에서 ‘빵과 장미의 행진’이라는 대규모 시위를 이끌었던 여성노동운동가이다. 인상적이다. 사회운동의 대모다운 풍모다. 오늘날 샹티에를 있게 하고 지금도 대표의 자리를 지키며 퀘벡의 사회적경제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다. 질문들이 이어진다. 샹티에 이전과 이후의 가장 큰 변화가 뭐냐는 질문에 “이제 협동조합, 협의회 등의 이름으로 불렸던 단체들이 ‘사회적경제’ 라는 공통의 언어(이름)를 쓸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정부와 시민들이 사회적경제를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에 제안하고 싶은 것으로는 민간과의 긴밀한 협력을 주문한다. 동등한 파트너로서 말이다.

사회운동의 대모 샹티에 대표 낸시 님탄

사회운동의 대모 샹티에 대표 낸시 님탄

이어서 샹티에 주도로 만든 사회적금융기관인 ‘피두시’와 사회적경제 영역의 교육훈련기관인 ‘씨에스모-에삭’의 활동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샹티에를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캐나다 사회운동의 지도자 낸시 님탄의 당당함이 긴 여운으로 남았다.

노동운동 지도자들과 함께 왔어야 했다!

넷째 날 방문한 곳은 콩고디아대학이다. 낯선 도시의 대학을 둘러 볼 때면 늘 가슴이 설렌다. 대학은 그 도시와 그 나라의 미래를 여는 요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일 것이다. 콩고디아대학에서 칼 폴라니 연구소가 주관한 ‘거대한 전환’ 출판 70주년 기념 국제 컨퍼런스가 열렸다. 조촐하다. 젊은 사람보다 나이 든 이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이들만으로 이 광풍의 신자유주의에 맞설 수 있을까? 협동이 경쟁을 이길 수 있을까? 사회적경제가 시장경제의 보완을 넘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미뤄 놓았던 의문이 다시 고개를 내민다. 거대한 전환은 나의 책꽂이 한 귀퉁이에 자리한 채 아직 끝까지 읽어 내지 못한 책이다. 돌아가면 낭독모임을 꾸려 찬찬히 읽어 봐야겠다.

‘테크노폴 앵거스’에 도착했다. 1992년 기관차 생산 공장이 폐업하자 지역에 해고자가 넘쳐났다. 이런 지역 문제를 풀어 보고자 1997년 사회적기업인 앵거스 개발회사가 CDEC, 지방자치단체, 지역 주민들과 함께 설립한 비즈니스 파크다. 10년이 넘도록 지금까지 200만 제곱미터의 공장 부지를 조금씩 매입하며 기존 공장 건물을 개조하거나 새로 건물을 지어 가며 현재 55개 기업에 2,300여 명의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다. 파리지엔느를 연상시키는 앵거스 마케팅 담당자의 설명을 듣는다. 젊은 그녀와 그들은 상업 주거 공간이면서 일자리 창출 본부가 되는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이곳을 조성하려고 한단다. 물론 환경은 기본이다. 도시재생사업의 모델이었다. 무엇보다 부러운 점은 캐나다 전국노동조합연맹이 ‘실직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는 일에 노동조합연맹이 함께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대규모 투자를 했다는 점이다. 아하! 퀘벡의 사회적경제는 노동조합과 함께했구나! 노동조합은 기금으로, 샹티에와 같은 사회적합의기구의 이사로… 민주노총과 함께 왔어야 했다. 우리나라 사회적경제에서는 노동조합의 역할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

첨단산업단지로 탈바꿈한 테크노폴 앵거스

첨단산업단지로 탈바꿈한 테크노폴 앵거스

광주가 주목된다고?

다섯째 날,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로 향했다. 오타와는 퀘벡과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온타리오에 있다. ‘오타와’는 원주민 말로 하면 ‘무역’이란다. 아마도 오타와강을 사이에 두고 교역이 활발했던 지역이었나 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땅 캐나다를 차지하기 위한 프랑스와 영국의 치열한 식민지 쟁탈전으로 원주민들이 느꼈을 분노와 박탈감, 그리고 영국 제국의회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기까지 초기 개척자들의 투쟁을 떠올려 본다. 눈발 날리는 오타와강은 그저 고요하다.

목민관클럽 단체장들과 참가자들은 ‘국제 지속가능 발전연구소’로 향하고 일부 사람들은 모처럼 여행자가 될 수 있었다. 오타와의 상징인 국회의사당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오타와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하지만 호사도 잠시였다. 오타와에 오면 꼭 들러야 한다는 국립 미술관과 박물관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고 다음 방문지로 이동이다.

‘우타우에-로랑티드 지역개발 협동조합(CDR-OL)’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협동조합 네크워크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의 설립 운영을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이지만 협동조합을 통해 지역발전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는 특징이 있다. 즉 협동조합은 경제위기 해결책만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늦은 밤 또 특강이다. 한국에서 칼 폴라니 연구소 아시아 지부 창립을 준비하고 있는 정태인 박사가 수고해 주었다. 인간은 협동 능력이 가장 뛰어난 동물이라는 것, 그리고 사회적경제를 대표하는 스페인 몬드라곤, 에밀리야 로마냐, 퀘벡 모델을 비교 분석해 준다. 이들의 공통점으로 ‘정체성이 강하고 어려운 또는 소외된 지역’이라는 점을 제시한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에서는 광주가 주목된다고 한다. 나도 동의한다.

지하도시를 어슬렁거리다

여섯째 날, 마지막 일정으로 단체장들은 아침 식사 후 바로 공식일정인 ‘에코뮤제 드 피에몽드’로 향하고 일부 사람들은 현장탐방이다. “일정이 너무 빡빡하다”는 항의가 있었는지, 아님 진행팀의 눈치가 그러했는지… 어쨌든 어떤 이들은 맥길대학으로, 어떤 이들은 박물관으로 향하고 우리 일행은 세계 최대라는 몬트리올 지하도시로 향했다. 이곳은 다운타운의 주요 빌딩과 쇼핑몰과 호텔, 그리고 일곱 개의 지하철역을 연결한 지하도시로 길이만 32킬로미터라고 한다. 눈이 많고 추운 날씨 때문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이른 아침이라 상점들이 아직 문을 열지 않았지만 지상의 도심보다 더 화려하다. 내게는 자본의 냄새가 더 많이 느껴졌다. 1∼2킬로미터 쯤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지상으로 올라왔다. 바람이 느껴지고 하늘이 열려 있는 지상이 내게는 역시 더 낫다. 완벽하게 익명이 보장된 낯선 거리에서 이방인이 되어 잠시 자유를 느꼈다. 구 몬트리올까지 걷다 보니 아름다운 교회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몬트리올이 세계 유네스코 디자인 도시로 등재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구 몬트리올과 신도시가 조화롭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장님 코끼리 만지기다.

그리고 내게 남겨진 것들

다시 16시간 비행기를 타야 한다. 13시간의 시차 탓인 듯 오늘이 며칠인지 감이 없다. 어쨌든 돌아가는 날이다. 센터 식구들과 함께 나눌 기념품으로 퀘벡의 특산품인 아이스 와인도 챙겼다. 로키 산맥을 보겠거니 기대했던 창쪽 자리건만 맹탕이다. 지난 일주일이 뒤섞여서 머릿속을 흘러 다닌다. 몇몇 분의 단체장들과 함께 했던 정치토론도 떠오른다. 진보정당의 당원이지만, 우리나라 제1 야당의 실력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절망스럽다고, 격정적으로 토로했었다. 그나마 새정치민주연합의 희망은 생활정치를 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에 있다고도 했다. 정치인이면서 행정가인 그들 역시 답답했을 것이다. 진보정당의 답답한 처지로부터 나온 하소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말이 많았다. 결례가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20년 가까운 노동운동, 그리고 진보정당운동, 이제는 자치구의 중간지원조직에서 지역공동체와 사회적경제를 고민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회의감을 느끼면서 조심스러워졌다. 하지만 거침없이 주장하고 내달렸던 그때에 살피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있게 됐다. 주권자인 국민의 권리라는 것이 딱 선출투표까지다.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의제에 대해 서는 제대로 발의도, 결정도 할 수 없다. 오로지 요구투쟁으로만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밖에 없는 절름발이 민주주의,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아졌다. 사회적경제, 공동체 운동은 주권자가 요구투쟁의 한계를 넘어 스스로 필요와 문제를 해결해 가는 생활운동이고 자치운동이다. 최근 센터 활동가들과 다시 정리한 우리의 사명이 떠오른다.

“공익활동지원센터는 협동과 신뢰의 힘으로 주민 스스로 일구는 광산 공동체와 함께 한다”

글_ 윤난실(광주시 광산구 공익활동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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