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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은 어렵다고 한다. 아니 어렵다. 큰 맘 먹고 뛰어들었던 도시인 대부분은 고개를 저으며 도시로 돌아온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가 있다. 그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귀농의 꿈을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도시에서도 생태적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도시에서 텃밭을 가꾸면 어떨까. 상상은 현실이 돼가고 있다. 칼바람 불던 1월24일 늦은 저녁, 그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안산의 ‘바람들이 농장’을 찾았다. 호탕한 웃음의 농부 안철환씨가 반갑게 손님을 맞는다.

”?”얼떨결에 결심하고 선택한 귀농

“1993년에 풀무원공동체에 한 달간 있었습니다. 절친한 선배 한 사람이 농사를 짓고 있었죠. 그때 처음으로 농사를 접했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자랐죠. 출판사에서 일할 때 두밀리자연학교를 만드신 이티(ET) 할아버지, 채규철 선생에 대한 책을 펴냈습니다. 너무 감동을 받고 농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안씨는 1998년 귀농운동본부에 들어가 귀농을 결심했다. 처음에는 불편한 몸(지체장애) 때문에 엄두를 못 냈다. 사업에 실패한 친구와 술잔을 나누다 길가에 세워진 주말농장 팻말을 보면서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얼떨결의 일이었다.

“안산에 살면서 군포 쪽에 다섯 평 땅을 얻어 배추를 심었습니다. 싹이 트는 걸 보고 필이 꽂혔죠. 그 다음해 8백 평을 더 얻어 친구들에게 1백 평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농사를 가르쳐 주며 오히려 제가 배웠죠. 얼마나 농사가 재미있는지 새벽 5시부터 라면 한 봉지, 막걸리 한 병 들고 가서 종일 머무를 정도였습니다.”

농사를 반대하던 아내도 밭에서 가져온 농산물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고 한다. 전셋집에 머물던 형편이었지만, 안산 부곡동에 4백 평 땅을 샀다. 지금은 회원들 땅까지 합쳐 1천4백평 규모에 이른다.

“정말 열심히 농사를 짓고 공부를 했습니다. 영농일기도 쓰고 책도 보았죠. 선배 한 분이 귀농을 정의하기를 ‘홀로서기’라고 했습니다. 당시는 공동체 붐이 일 때입니다. 팀을 짜서 외국 여행을 가면 잘 못 느낍니다. 혼자 가서 고생해야 제대로 느끼죠. 그 선배 말이 ‘사람들과 어울려 농촌에 가면 술 먹고 부부싸움이나 한다’는 겁니다. 혼자서 자연 안에 들어가야 흙을 이해할 수 있다는 거죠. 저는 혼자서 농장을 굴러다니며 온 종일 흙을 느꼈습니다.”

”?”귀농은 ‘홀로서기’

2003년 말부터 농장에 회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귀농을 꿈꾸는 이들이 농사 연습을 하기 위해 농장을 찾았지만, 두세 달을 못 버텼다. 회사까지 그만두고 농장을 찾은 사람들은 몇 평의 땅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 중에는 귀농이 아닌 도시에서의 생태적인 삶을 꿈꾸며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도시농업’이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귀농과 무관하게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살려는 사람이 있구나’ 라고 생각을 했죠. <생태도시 아바나>라는 책을 번역했고, <도시사람을 위한 주말농사 텃밭가꾸기>라는 책도 썼습니다. 전국귀농운동본부 홈페이지에 주말농장 회원을 모집했더니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죠.”

안씨에 따르면 귀농학교 졸업생의 10%도 귀농에 성공하지 못한다고 한다. 장벽이 있는 것이다. 도시인은 흙을 싫어하고, 벌레를 무서워한다. 농촌을 두려워하다 보니 이질감이 생긴다. 이질감은 곧 장벽이 된다. 그는 자신과 같은 귀농 운동가들이 이 같은 장벽을 허물어줘야 한다고 믿는다.

“귀농운동 1세대는 너무 관념적이었어요. 은둔 주의적 경향도 있었고요. 소수자의 운동이었던 셈입니다. 저는 귀농운동 2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보다 대중운동으로 가야한다는 것이죠. 텃밭보급운동과 같은 도시농업이 그 방법 중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이성적으로는 흙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몸은 비 생태적입니다. 일상적으로 흙을 가까이 하다 보면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도시농부학교를 시작하다

그는 2004년 가을, 전국귀농운동본부 안에 도시농업위원회를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4년째 도시농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쿠바 아바나의 ‘도시농업보급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지금까지 약 100명의 학생이 이 학교를 졸업했다.

“2006년부터 ‘주말농장’식 도시농업에 한계를 느껴 도시에 텃밭을 가꾸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옥상, 초등학교 교정 등을 이용해 지금까지 수도권에 10개를 만들었습니다. 올해에는 50개 이상을 만들려고 합니다. 생태유아공동체와 함께하고 있죠. 어린이들의 급식을 유기농 농산물로 하자는 단체입니다.”

안씨는 공공부지도 텃밭으로 꾸미고 싶다고 했다. 이미 난지도 등에 텃밭을 조성하겠다고 관청에 제안하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그는 “공무원들이 텃밭에 대한 부정적인 요소들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했다. 텃밭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쓰레기장이 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텃밭은 참여하는 생태공원이죠. 공무원은 참여하면 일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공원은 업자에게 맡겨 설계하고 시공하면 끝나지만, 텃밭은 땅을 나누어 준 다음 계속 관리해야 하니 공무원들을 설득하기 힘듭니다.”

경기도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주말형 별장’ 사업도 도마에 올랐다. 그는 “공무원들의 발상이 이 정도 수준”이라며 탄식했다.

“독일의 주말형 별장인 ‘클라인 가르텐’을 모델로 한 겁니다. 분양 경쟁률이 150대1 이고 1년 사용료가 320만 원입니다. 들어가 보았더니 펜션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클라인 가르텐은 시골에서도 도시에서처럼 살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한 것입니다. 레저 형 도시농업이죠. 또 다른 상업주의에 불과합니다. 우리 사회를 생태적으로 바꾸는 데에는 역부족인거죠.”

그 역시 ‘별장형 주말농장’을 꿈꾸고 있다. 경기도와는 생각이 많이 다른 듯 했다.
“언젠가는 제대로 된 주말 농장을 이곳에 만들려고 합니다. 또 다른 펜션이나 별장이 되어선 안 되죠. 전기도 안 들어오게 하고, 농사를 잘 짓는 사람에게만 분양할 겁니다.”

”?”도시에 흙을 부활시키자

그는 “도시에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흙을 부활시키는 것”이 자신의 궁극적인 꿈이라고 했다. 농사만이 참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농사는 남는 것이 많죠. 벼 하나를 심으면 천 알이 넘게 나옵니다. 돈은 안 되지만 나오는 것은 많죠. 농사에는 ‘B급’이 많습니다. 공장에서는 불량품을 나누어줄 수 없지만, 농사는 나눌 수 있습니다.”

농부들은 근본적으로 나눔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옛 글에서 읽은‘조선 농부는 소 눈망울을 닮았다’는 구절을 소개하기도 했다.

안씨는 현재 ‘십시일농’ 운동을 벌이고 있다. 도시농업을 하는 도시인 열 명이 농촌의 농부 한 명과 결연을 하는 운동이다. 도시인들은 농부로부터 농산물과 종자를 얻고, 농사를 배운다. 농부는 생산물을 팔아서 함께 이득을 볼 수 있다.

“일방적인 소비자와 생산자는 없습니다. 소비자도 생산의 과정을 이해하고 체험해야 생산물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겁니다. ‘한 살림’ 정신이 퇴화하는 것도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생산자는 납품자로 전락하고, 소비자는 ‘웰빙’만 생각하는 이기적 소비자가 되고 마는 거죠. 생산하는 소비자만이 진정한 소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날 안씨와 이야기를 나눈 곳은 그의 비닐하우스 안이었다. 살을 에는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저녁이었지만, 난로를 곁에 둔 터라 그럭저럭 훈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개인사를 소재로 출발한 인터뷰는 어느새 우리 사회와 문명으로 그 화두를 넓혀가고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적벽대전을 치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풍을 예상했던 조조가 예상 못한 남풍을 만나 참패한 전투죠. 인구의 대부분이 도시에 살고 있는데, 에너지 자급률은 10%가 안 되고, 식량자급률은 20%에 머물고 있습니다. 모든 식량이 무기가 되는 세상이죠. 옥수수가 바이오에너지 원료로 쓰이면서 가격이 두 배로 뛰었고, 모든 식량작물이 서구의 거대 기업에 귀속되고 있습니다.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쌀이 넘어가면 안 됩니다. 사람들은 지금 순풍이 불어 석유나 쌀 모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역풍이 불면 어쩌죠?”

순환이 농업의 본질

그가 문명의 지속을 위해 강조하는 것은 ‘순환’이다. 이는 농업의 본질이기도 하다.

“<4천 년의 농부>라는 책을 번역한 적이 있습니다. 한 외국학자가 근대 이전의 한ㆍ중ㆍ일 농업을 비교해 쓴 책이죠. 그는 ‘앞마당, 뒷마당 어디에나 똥이 있는데 식탁에는 파리가 없는 것이 이상하다’고 했죠. 모두 퇴비화해서 그렇습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뉴기니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순환시키고, 쓰레기를 없애는 겁니다. 사람이 못 먹는 것은 돼지가 먹고, 돼지가 못 먹는 것은 아궁이로 들어갑니다. 재는 다시 밭으로 갑니다.”

인터뷰 도중 안씨는 둥근 플라스틱 통 안에 정성스레 담은 곡식 종자들을 보여줬다. “종자는 나누어야 한다”는 믿음 아래 토종 종자들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통 안 가득 담긴 윤기나는 씨앗이 탐스럽다.

“농사는 똥에서 시작해서 종자로 완성됩니다. 토종 벼는 원래 천 종이 넘지만, 현재는 400종만 남았습니다. 농부들이 수많은 종자를 키워 왔지만, 종자 상인들이 종자를 단순화시키고 있는 거죠. 종자는 다양해야 합니다. 또 종자를 자기 동네에만 심으면 퇴화한다고 합니다. 제가 토종 종자를 모으고 나누는 이유입니다.”

정리_ 이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