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제작소가 지금 우리사회의 아프고 뜨거운 이야기에 함께 귀 기울이고 해법을 고민하는 특집 인터뷰 시리즈 <희망마이크-할 말 있소>를 시작합니다. 첫 희망마이크는 교육 현장을 찾아갑니다. 지난 7월 18일 서이초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뒤 군산, 용인, 대전에서도 교사들의 부고가 이어졌습니다. 무너져가는 교실을 바로 세우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현장 선생님들과 학부모, 전문가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3주체 생활협약을 들어보셨나요? 몇몇 혁신학교에서는 교사, 학부모, 학생 이렇게 세 주체가 각자 자신이 지킬 약속을 정한답니다. 이런 약속이 악성민원을 줄이고 학교 안 신뢰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까요? 전은영 서울혁신교육학부모네트워크 공동대표에게 들어봤습니다. 그의 아이들은 혁신초·중학교를 다녔고, 그는 2015년~2016년 학부모회 임원으로 3주체 생활협약을 만드는 과정에 함께했습니다.
-악성민원 등으로 선생님들이 잇따라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녹아있고 악성민원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학급에 문제행동이나 정서 위기를 겪는 학생이 있을 때, 체계적 지원 시스템이 없어요. 교사가 도움을 청할 공식적 창구도 없는 현실이죠. 이런 위기는 지속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애초 교사 한 사람이 감당할 수도 없고 교사 개인에게 모든 것을 떠안게 해서는 안 돼요. 체계적이고 섬세한 시스템을 마련하고 전문인력 지원이 국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위기행동이 학교 전체에 한두 번 있었다면, 현재는 한 학급에서 여러 번 일어날 정도로 늘고 있다고 해요.
초등 저학년 교실을 상상해 볼게요. 위험한 다툼이 있어서 교사가 그 상황에 노출된 아이들을 수습해야 할 때, 같은 시각 다른 20여명의 아이들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공포에 떨기도 하고 교실 밖으로 나갈 수도 있겠죠. 이 경우, 불안한 학부모는 국가라는 허공에 외칠 수도 없고, 교장실과는 연결 자체가 잘 안되고 고민 상담할 창구도 없어요. 결국 담임교사를 찾고, 담임교사는 이중 삼중의 고충을 겪게 됩니다. 여기에 코로나19가 겹치면서 전반적으로 아이들에게 사회성 지체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요. 전면 대면 등교 이후에는 위기 학급도 전국적으로 상당히 늘었지만 이에 대한 전면적·총체적 접근은 부재했습니다.
위에 예로 든 학급의 위기상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위험행동을 하는 학생에 대한 전문적 지원이 있어 왔고, 다툼이 있을 때 20~30명의 아이들을 동시에 돌볼 협력인이 있었다면 상황은 어떻게 됐을까요? 공교육 시스템이 이런 신뢰를 주며 위상을 세웠다면 학부모의 대화 방법이나 민원의 양상은 지금과는 다를 거라 생각해요. 현재는 서너 단계로 이뤄져야 할 지원책 하나 없이 교사 개인에게 모든 것을 떠안기고 있고 이 상황이 위태롭고 예측불가능하다고 느끼는 부모들의 불안이 단위 학교로 다 쏠리고 있어요. 국가 차원에서 재정과 인력을 과감히 투입해 해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해결 로드맵에 대해 학부모들과 충분히 소통해야 서로 신뢰를 형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아직 많진 않지만 사례를 나눈다면, 한 초등학교는 몇 년째 위기학생을 위한 다중지원팀을 운영한다고 해요. 아이가 힘들면 담임, 교장, 교감, 상담교사, 필요할 때 의사, 관련 전문가 등이 팀을 이뤄 함께 논의하고 해결해 나갑니다. 문제행동에 대해 학년이나 학교에서 공동 대응하는 사례들도 있는데요. 문제행동 학생에게 낙인이 찍히지 않도록 섬세하게 접근하려는 노력과 보호자, 학급 친구들의 이해 역시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이럴 경우, 학급 다수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문제행동도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고 해요. 이런 사례를 시스템으로 안착시키고 교사는 교육활동과 생활지도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 중요해요. 1교실 2교사제, 학급당 학생수 줄이기, 다중지원팀과 같은 다양한 방안이 나오고 있지만 관심이 부족합니다.”
민원대응팀 실효성 적어··· 좋은 현장사례 찾아 연구·확산해야
-정부가 지난달 23일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내놨습니다.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아동학대와 분리하도록 법 개정 △수사기관의 아동학대 관련 조사·수사 개시 전 교육청의 의견을 의무적으로 청취 △교장, 교감과 교육공무직으로 민원대응팀 구성 △중대한 교권 침해 학생부 기재 등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의 절실함에 공감해요. 부당하게 아동학대 신고당했을 때 구제책을 마련하고 신고 당한 뒤 과도한 절차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현재 아동학대처벌법 취지와 달리 아동학대로 신고당한 교사 중 실제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는 1.6%에 불과해요. 분명히 문제가 있는 거죠. 하지만 학교 안에서 아동학대가 실제로 있을 수 있기에 아동학대 관련 법에서 학교를 원천배제하는 건 우려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저는 아동학대 신고로 가지 않았어도 될, 또는 신고로 해결되지 않은 98.4%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98.4% 안에는 소송까지는 원치 않으나 불편함을 해결하고 싶은 경우, 교육적 견해 차이, 아이의 성장에 대한 관점 차이 등 아동학대로 분류되지 않아야 할 사례들도 있어요. 잘못된 안내를 받거나 법조인에게 과한 조언을 듣고 무리한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고요. 이를 사례별로, 단계적으로, 내용별로 해결해 나가야 실제 불필요한 신고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학교 내 민원대응팀 구성 중에서 공무직이 대응한다는 방안에 대해서는, 실효성이 낮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이 다반사라 공무직이 ‘잠시만 확인 후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대응할 수밖에 없는 일이 반복되면, 질문자가 초반에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가도 불만이 커질 가능성이 높죠. 교육적 권한이나 보호 대책은 없는 상태에서 민원 응대를 하면, 부작용이 많을 것이라 현장에서는 보고 있어요. 민원이 들어온 후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겠지만 민원 발생 전에 시스템 부재, 인력 부족으로 오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병행되어야 근본적 개선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학부모와 교사 간 소통이 더 어려워질 거란 우려도 있는 거 같습니다. 학교에서 경험하신 3주체 협의회는 어떤 건가요?
“모든 혁신학교가 3주체협의회를 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혁신학교만의 특징도 아니고요. 학교의 정체성과 무관하게 학교 상황에 맞춰 진행하고 있는데요. 제가 경험했던 내용 정도만 말씀드릴게요.학생, 교원, 학부모가 만나는 소통의 장이 형식적으로 머물지 않으려면 실제로 기능하는 학생회, 교사회, 학부모회의 자치력과 민주성이 공존해야 해요.
학생회를 예로 들자면 학생회 임원 소수의 생각이 아닌 학급 회의부터 탄탄하게 안건들을 모아가요. 최근에는 퍼실리테이션 방법, 비폭력대화 등 민주적 회의 문화를 배워 적용하고 있죠. 토론이 있는 교직원 회의, 동학년 협의회, 교원학습공동체, 수업연구회 등 교사회도 발달해 있고요. 그 안에서 문제행동을 어떻게 다룰지, 위기 학생을 어떻게 지원할지, 수업 방법 등에 대한 의견도 나눠요. 이런 회의가 정례화되지 않으면 회의 시간을 정하는 데에 에너지를 쓰거나 ‘탑다운’ 방식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지요. 토론이 일정하게 이뤄진다는 것은 교사 개개인이 가진 고민을 수시로 털어놓고 공동 해결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수평적 회의 문화, 소수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적 회의 문화도 중요하고요.
학부모회에서도 학급 단위부터 의견을 모아 안건을 정리합니다. 1년에 한두 번 선생님들과 동학년 간담회를 하고요. 전체 소통의 장을 열기도 합니다. 평소 학부모간 소통이 활성화되면 오해가 작을 때 해소할 수 있어요. 학부모가 모이면 민원이 많아지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는데, 학부모회가 건강하게 발달하면 오히려 민원이 줄어듭니다. 학부모가 선생님에게 전화하기 전에 학부모회와 의논해 해법을 찾아보는 일은 실제로 많습니다. 선생님과 대화의 장이 주기적으로 열리면 그 안에서 오해가 해소되기도 하고, 몰랐던 고충에 대해 함께 고민하기도 하고, 대안을 함께 찾기도 해요. 물론 성숙한 대화가 의도만큼 잘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소통의 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각 주체별로 민주적 공동체 경험, 토론 역량, 협업 역량이 성장하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기반에 두고 학생회, 교사회, 학부모회가 만나는 것이 3주체 협의회입니다. 3주체 협의회에서는 수업시간 종소리, 교복, 학교 인근 환경문제, 학교 축제, 생활규칙, 상벌점제 등 다양한 안건을 다뤄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민주적 문제해결 역량이 성장하고, 주체 간에 이해를 동반한 신뢰가 형성돼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는 거죠.”
학생-교사-학부모 생활협약, 만드는 과정서 신뢰 쌓여
-3주체가 맺은 공동체 생활협약이 효과가 있을까요?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처음 시도했는데 협약을 맺기까지 1년 정도 시간이 걸렸다고 알고 있어요. 그만큼 신중했고 과정의 정당성과 민주성이 중요했다고 합니다. 과거에 학생규칙은 학생을 관리·통제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고 주로 학생을 제외한 상태에서 만들어졌는데요. 3주체 생활협약은 공동체 생활을 위한 약속을 학생들 스스로 만든다는 것이 핵심이에요. 학생회 임원 등 소수가 결정해 공지하는 방식이 아니라 학급 단위 개개인의 희망에서부터 의견을 수합해 구체화 시켜 나갑니다. 그리고 학생들만 지키라며 떠밀지 않고 선생님도 보호자도 아이들 곁에서 함께 호흡 한다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아이들이 규칙을 만들면 ‘어설프지 않을까? 너무 느슨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시기도 할 텐데요. 청소년의 도덕적 감수성이나 기준은 오히려 아주 높은 편이고, 항목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만들어 냅니다. 수업시간 몇 분 전에 자리에 앉기, 수업시간 매너 지키기 등의 약속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요. 중·고등의 경우 보통 15~25여개 항목이 만들어 집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만든 약속이기 때문에 주인의식이 더해져 잘 지켜나갑니다. 이 협약을 글쓰기, 토론, 체크리스트, 캠페인, UCC홍보 활동, 포스터제작, 로고송 등 교육과정과 연계 짓는 사례도 있는데요. 우리나라 사회과 교육목표가 이론적 지식을 넘어 사회참여와 기여라는 걸 감안할 때 아주 좋은 교육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교사회도 학부모회도 각각의 약속을 만드는데, 서로를 어떻게 대할지 태도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는 사례가 많아요. 학부모의 약속에 ‘아이들을 믿겠다, 교사를 신뢰하고 존중하겠다’라는 내용이 공통적으로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3주체 공동체 생활협약’은 혁신 중,고등학교로 확대가 되고 있어요. 핀란드 교육 수장 에르끼 아호(Esko Tapani Aho)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 협약을 보고 굉장히 인상 깊어 했습니다.
협약활동 후 이런 소감들이 나왔어요. ‘어른들이 학생들을 믿어도 된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친구들의 마음과 감정 상태를 듣게 되면서, 나도 타인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단 지성의 힘을 체감했다.’ 그리고 ‘선생님과 부모님들이 우리 학생들을 신뢰하고 있다는 존재의 무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서로 간에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합니다.이런 선례가 아직은 낯설고 구현하기 어려운 이상적인 개념으로 보일 수 있어요. 저도 초등학교에서 3주체 생활약속을 만들 때 학습 TF팀에 자발적으로 합류하면서 처음에는 막막했으니까요. 학생수가 급격히 많아진 우리 학교에 도움이 될지, 필요성, 실현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학부모회와 선생님들과 논의했습니다. 사례 조사, 인터뷰, 기대효과 등 분석을 마치고 각 주체의 약속을 만들어 공유하기까지 1년5개월 가량 걸린 것 같아요. 단순 프로그램이 아닌 학교 전체가 참여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일은 단숨에 되지 않더라고요. 법과 제도를 개선하더라도 현장에서 성숙한 소통 문화가 형성되어야 할 텐데, 어느 한 주체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 인터뷰 및 정리:김소민 시민이음본부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