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태어나고 자란 장소’의 영향을 받은 ‘어디 사람’입니다. 이 말은 나 또한 우리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방인’이자 ‘소수자’가 된다는 의미죠. ‘소수자’를 떠올리기 어렵다면 나의 경험을 비춰보면 됩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다르면 풍경도 달라집니다. 노래 ‘여수 밤바다’를 즐겨 부르고, “머선 일이고!”라는 사투리를 즐겨 쓰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출신 지역으로 ‘우리’와 ‘그들’을 구분합니다.
희망제작소 지역차별언어 바꾸기 프로젝트 ‘어디 사람’은 지역의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지역차별의 말을 모아, 시민들과 함께 더 나은 말을 찾는 프로젝트입니다.
🔶차별은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전라도 사람을 비하하는 ‘전라디언’이나 ‘홍어’는 대표적인 지역차별언어다. 우리는 ‘차별은 나쁜 것’ 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특정 악의를 지닌 이들이 아니라면) 당연히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이처럼 악의를 담지 않았다 하더라도, 차별을 내포한 언어를 인식하지 못한 채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차별이 그렇지만, 당사자가 아니면 ‘차별을 하는지’, 또는 ‘당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특히 국내 인구 절반이 수도권에서 사는 한국사회에서 ‘서울·수도권 사람’은 ‘지역 차별’을 경험하기 더 어렵다. 하지만 지역차별은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수도권 내에서도 차별의 층위는 겹겹이 존재해왔다.
돌이켜보니 알게 된 ‘지역차별’의 경험…내면화된 차별 이겨내기
수도권에서 청년 시절을 보낸 30대 오의석 씨는 몸소 차별을 겪은 적이 없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인터뷰를 하면서 돌이켜본 과거 속에서 ‘지역 차별의 시선과 말’을 발견했다. 학교 선생님에게, 이웃에게 들었던 ‘그 언어’는 청년 시기의 의석씨를, 더 나아가 그 지역에 관한 마음을 움츠려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청년들과 함께한 지역 활동을 통해 지역차별을 줄이는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기도 했다. 오의석 씨의 이야기를 전한다.
‘지역차별언어’는 나의 일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Q. 지역차별언어 들어봤나.
‘지역차별언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사례가 있다. 예를 들어 “전라도 사람= ‘홍어’” 라고 부르는 것? 다만, 당사자가 아니라서 그런 표현은 내가 해결해야할 나의 일이라고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나도 모르게 지역차별적인 언어를 사용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지역차별적인 표현을 듣는 일에도 둔감했던 것 같다. 그동안 진중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에 말하고 싶다.
Q. 어디서 나고 자랐나.
인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부산과 김해에 살다가 초등학교 입학 이후에는 안산과 시흥에서 오래 거주했다. 성인이 된 후로는 줄곧 서울과 시흥을 오가다가 5년 전에 베트남에서 파견근무로 2년가량 살았고, 현재까지 서울에서 살고 있다.
외국인이 많이 살면 우범 지역?
Q. 다양한 지역에서 거주했다. 혹시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는지
사춘기 시절을 안산과 시흥에서 보냈다. 안산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를 두고 “사건사고나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지역”이라는 편견이 존재했다. 우스운 별칭도 있다. 혹시 들어봤는지 모르겠지만. 안산을 두고 ‘안산안드레아스’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온라인 총격게임의 가상배경인 ‘산 안드레아스’ 주(州)를 빗댄 말이다. 게임 속 우범도시인 ‘산 안드레아스’를 배경으로 총싸움 게임을 벌이는데, 마치 안산을 우범도시마냥 폭력이 발생할 거라고 해서 붙여진 말이다.
Q. 또 다른 사례도 있나.
반면 시흥에서 살 땐, 근처 산업단지와 환경오염으로인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진 곳이었다.시흥에 ‘시화호’가 있는데 근처 산업단지의 오폐수로 인해 악취가 났고, 밤에 냄새가 더욱 심하게 났다. 주변에 많은 공장에서 매연이 발생했다.
이러한 환경으로 시흥 지역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 않았다. 나처럼 시흥에 거주하는 사람은 수도권이라고 받아들였지만, 가끔 몇 몇 사람들로부터 “(거기에) 어떻게 사람이 사냐. 공장이 있는데”라는 식의 편견 섞인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었다. 했다. 이러한 편견이 결국 지역의 패배의식으로 자리잡는 것을 느꼈다. “우리 동네는 냄새나는 동네다→ 사회적 위치가 낮거나 충분한 재력이 없기에 서울이 아닌 이 곳에서 산다→ 그러니 이 지역은 비난받을 만 하다”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내가 사는 지역을 두고 이런저런 얘기를 워낙 많이 들어서인지 이러한 편견을 차별이라 인지하지 못했다. 오히려 편견을 내면화하고 묵인했다. 한 번은 중고등학교 때 타 지역에서 순환 근무 온 교사로부터 “부모님이 이러니까, 너네가 이렇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역사람들 스스로 지역에 대한 자존감이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일상의 차별 언어 경계선
Q. 지역차별언어가 꽤 많은 영향을 미친 셈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에서 거주한 적이 있다. 지역차별언어가 더욱 증폭되는 걸 체감했다. 단원고에 다니는 아이들이 사는 지역이 안산에서도 평균 가구소득이 높지 않은 동네였다. 이와 관련해 “어차피 저 학교 졸업해봐야 공장밖에 못 가는데 차라리 다행이다”라는 이야기가 돌았던 적이 있다. 안산 내에서도 “(유가족들이) 돈도 없는데 (유족 지원금이라도) 보상받길 잘했다”, “세월호인지 네월호인지 받을 돈 빨리 받고 얼른 좀 끝났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지역에서 돌았을 정도다. 기존에 안산시 내 특정 지역에 관한 차별적 시선이 세월호라는 사회적 참사와 연결되면서 지역 내, 외부에서 또 다른 차별언어로 증폭되는 걸 경험했다.
Q. 지역 혐오와 차별이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았다.
사실 일상에서는 차별이 만연해서 ‘이게 차별이지’라면서 그 때 그 때 느끼는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막상 차별언어를 쓰지 않으려고 해도 어디까지 조심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예를 들어 평소에 차별언어를 사용하는 데 조심하는 사람인데, 축구나 야구 경기를 보러 갔을 때 내가 응원하는 팀이 서울이고, 상대팀이 바닷가에 있는 지역팀이라면, 해당 팀에게 “짠내난다~”와 같은 조롱 섞인 표현을 사용한다. 평소 차별언어를 쓰는데 조심하는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도 가려서 써야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상황적 맥락에서는 지역 비하의 의미를 담지 않고, 지역의 개성을 살린 표현으로 중립적, 긍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지역을 비하하거나 차별하려는 의도 없이 자신이 사는 지역에 대한 소속감과 애정을 담아 출신지를 알리려고 하는 의도라면 귀엽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안산 지역처럼 세월호 참사라는 사회적 큰 아픔을 겪고 있는 지역의 경우 상처를 건드릴 수 있는 차별언어를 절대 쓰지 말아야 한다.
지역 자존감 ↑ 지역차별 민감도 ↑
Q. 지역차별이 만연하지만, 이를 드러내는 언어가 주목받지 않는 이유는.
언어는 다른 문제 중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 같다. 여성 혹은 성소수자 문제의 경우 피해자가 명확하지만, 지역차별은 내가 어디있는가에 따라가해자일 수도, 피해자일 수도 있다. 또한 이것이 차별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인지하지 못할 만큼 우리 일상에 스며든 것도 크다. 그래서 지역차별은 손쉽게 휘두를 수 있는 도구이자, 소재가 된다.
또한 지역에 대한 자존감이 낮은 것도 크다. 예를 들면, “나는 지금 전라북도 군산에 사는데 서울 사람이야. 군산에 대한 지역혐오나 차별이 있어도 난 상관없지. 난 군산을 뜰 사람이니까.” 이런 식으로 외부에서의 지역에 대한 차별적 평가에 순응한 나머지 지역과 나의 연결고리를 약화해 인지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실 모든 문제는 나의 문제라고 생각해야 고치려는 의지가 생기고, 실제로 개선되는데도 말이다.
Q. 지역차별과 지역차별언어는 어쩔 수 없는 문제일까.
사례로 빗대어 말하고자 한다. 시흥에 살 때 동료 청년 활동가들의 활동을 지켜본 적이 있다. 주민의 서명을 모아, 주민참여형으로 발의한 ‘청년기본조례’를 통과시키는 활동이었다. 조례 당사자인 청년운동으로 전국 지자체 최초로 통과돼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같이 활동하던 친구들의 정서도 시흥에 대한 연고의식이 없었다. 시흥을 ‘탈출해야하는 곳’으로 여겼고 결국 서울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활동을 통해 “전국 최초로 ‘청년기본조례’를 통과시켰다”라며 외부에서도 인정해주고, 지역 기반으로 활동을 하다보니 ‘시흥을 위한 일=나를 위한 일’이라고 여기게 됐다고 한다. 자연스레 시흥을 주제로 한 글쓰기를 한다던지 시흥의 청년문제를 포함한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기 시작했다. 시흥을 비하하는 차별 언어에도 이전보다 민감하게 반응했다. 같이 활동하던 다른 친구가 “시흥에 있으면 뭐하겠어”라고 하면, 그 친구는 “그런 이야기 하지 마라. 시흥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라며 반문하는 등 친구의 말과 행동의 변화를 볼 수 있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비판적인 말을 들어도 패배의식으로 직결되지 않는 것처럼 지역을 바라보는 마음도 비슷한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관한 자존감이 올라갈 때, 나의 고장과 도시를 좋아하는 마음도 생겨난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관한 연고의식이 강해진다면 우리 지역을 비하하는 언어에 대한 민감도도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지역주민의 자존감을 올리는 입체적이고 다각적인 해결방안이 모색될 때 지역차별언어도 나아질 수 있다고 본다.
서로 섞여 알아갈 때 차별이 없어진다
Q. 지역차별언어를 줄일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번 인터뷰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부끄럽게 여겼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데, 지역차별에 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의 내가 장애인을 차별적으로 바라보던 시선을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었는지 돌이켜봤다.
당시 몇 년간 장애인과 함께 지냈다. 서로 섞여서 살았던 경험을 계기로 나도 모르게 장애인을 바라볼 때 차별적인 시선을 줄일 수 있었다. 오히려 ‘장애인’이라고 대상화한 생각도 잘 들지 않고, 휠체어를 타는 사람, 조금 느린 사람 등으로 여기게 되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개념도 거의 희미해질 정도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역차별언어 해소도 결국 경험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지역별로 섞여서 서로 알아가는 계기가 많아진다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여러 지역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서로 섞여 교류하는 계기가 있다면, 서로 살았던 지역의 차이에 관해 자연스레 이해하고, 나도 모르게 했던 차별을 인식하며, 나아가서 차별적인 상황이나 언어를 줄여나갈 수 있지 않을까.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유다인 이음팀 연구원 yoodain@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