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아름다운가게 여섯 번째 헌책방인 동숭동 헌책방이 2010년 6월 16일 수요일, 문을 열었습니다. 오픈하기 전부터 행복설계아카데미(행설아)를 수료하신 선생님께서 참여해 봉사를 해오셨고요. 또 오픈과 동시에 5명의 행설아 선생님들께서 활동을 시작하셨답니다. 그래서 작은 화분 하나 들고 찾아갔습니다.


나는 1남2녀의 둘째다.
위로 누나와 아래 여동생이 있다.
여동생은 누나와 6살 차이로 옷을 물려 입기엔 나이 차이가 좀 많았다.

그렇다고 내가 누나 옷을 물려 입을 순…없고
대신 큰집 사촌 막내 형이 누나와 동갑이어서
명절 때 큰집에 가면 쇼핑백으로 한가득 헌옷을 받아오곤 했다.

형제가 많은 친구들이 형 옷을 물려 입는 것에 대해 늘 불평을 늘어놓고는 했지만,
나는 큰집 사촌형 헌옷을 받아 올 때는 무척 설렜던 기억이 있다.

당시 우리집이 잘 사는 형편이 아니어서
새 옷을 자주 살 여건이 되지 않았고
더욱이 메이커 옷이란 꿈도 꿀 수 없었다.

하지만,
사촌형의 옷은 조금 낡긴 했지만
꽤 고가의 좋은 옷이 많았다.
그리고 당시 학생들에게 잘 나갔던 메이커 옷도 제법 있었다.
아마도 사촌형이 아니었다면 그런 메이커 옷을 입어보기란 불가능 했으리라.
하지만 중3쯤 지나자 더 이상 사촌형의 헌옷을 받아올 수 없었다.
내가 형보다 키가 더 커버린 것이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사춘기를 지나면서 형의 낡은 옷을 입는게 창피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또, 세상은 이미 물려입지 않아도 값싼 옷이 풍족한 시대가 되어 있었다.

한동안 새것이지만 낡은 양 보이는 빈티지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지금까지도 구멍이 나거나 물 빠진 청바지는 젊은이들의 잘나가는 유행 패션이다.
언젠가 손녀가 새로 산 유명 메이커의 구멍 난 청바지를 입고 들어와 걸어놨더니
할머니가 밤새 손녀의 청바지를 모두 꿰매 놓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깔깔깔 웃은 적이 있다.

작년 11월.
행복설계아카데미 11기 현장탐방을 아름다운가게에서 진행했는데,
그때 구멍난 청바지는 아니어도
안국동에 있는 아름다운가게에서 알맞게 물 빠진 리바이스 501 청바지를 한 벌 구입했다.
7,900원.
어릴적 사촌형에게 물려 입은 게스(GUESS) 청바지가 생각났다.

내 인생의 첫번째 메이커 청바지.

진정한 빈티지를 다시금 의미 있게 유행시키고 있는 곳
그곳이 아름다운가게다.

‘낡은 것은 버려라!’ 이야기하는 자본주의 소비사회를 역행하는 가게.

”사용자전국에 100여 곳이 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아름다운가게의 재활용 가게는
지역 생활환경운동의 핵심으로 기부물품을 기부금으로 전환하여
자선과 나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름다운가게는 자원봉사자들을 활동천사라 부른다.
행복설계아카데미를 수료하고 댁에서 가까운 매장에서 활동하시는 선생님들도 무척 많다.

아름다운가게는 헌책방도 운영하고 있는데,
지난주 수요일(6월 16일)이 여섯 번째 헌책방이 열리는 날이었다.
오픈도 축하해드리고, 헌책방에서 일하시는 선생님들도 뵙고자
작은 화분 하나 들고 동숭동 헌책방을 찾아 갔다.

동숭동 헌책방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뒤편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지하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이미 북적북적 많은 사람들로 분주했다.
헌책방은 생각했던 것보다 넓었다.

헌책방이라 낡은 곰팡내 나는 책냄새로 가득차 있을 것이라
상상했지만 지하 공간은 커피향으로 가득차 있었다.

많은 봉사자들이 녹색 아름다운가게 앞치마를 하고 오고 갔지만
그 가운데서 행설아 선생님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얼굴이 환히 빛나는 두 분 선생님이 서 계셨기 때문에…
이영요(12기), 김완복(6기) 선생님.

”사용자

꾸뻑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렸더니 반갑게 맞아 주신다.
다른 분들은 어디에 계시냐 했더니
함께 일하시는 함오연(1기), 김차대(12기), 김흥수(12기) 선생님들은
주중 다른 날 나오신단다.
모두 뵙고 싶었는데…

선생님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행사 사진 몇 컷 찍는데,
너무나 낯익은 얼굴이 카메라에 잡힌다.
달팽이 건설의 박영규(4기) 이사님이다.
알고 보니 이곳 인테리어를 달팽이 건설이 했다고…
뿌듯함이 가슴 깊은 곳에서 뭉클 뭉클 올라왔다.
‘어쩐지..인테리어가 헌책방치고는 너무나 엘레강스하더라니.. ‘

가슴뭉클 올라오는 뿌듯함.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또 한 사람과 마주쳤으니..
현재 진행하고 있는 30-40대를 대상의 직장인 행복설계아카데미
‘퇴근 후 렛츠’에 참석중인 우인규씨였다.

우리는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입을 맞춘 듯 서로에게 물었다.
“아니.. 여긴 어쩐 일이세요…??”

”사용자

우인규씨는 오래전부터 아름다운가게에서 자원봉사로 일하고 있었단다.
그런데 오늘 이곳에서 오픈행사가 있다고 해서 지원코자 나왔다고…

사실 부끄러운 일이지만
희망제작소에서 일하기 전까지 이런 분들이
이렇게 많이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살았다.

노래로 시작된 오픈행사는 11시에 시작되어
12시가 가까워 단체사진을 찍는 것으로 끝났다.
그 와중에도 선생님들은 이곳저곳 분주히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 다니셨다.

”사용자

행사가 끝나고 식사를 함께 하자고 말씀드렸지만
모두 정리가 돼야 식사를 할 수 있다며 먼저 하란다.
이곳에선 나만 한가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밥 같이 안 먹어 준다고 삐지기엔 일하시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그냥 조용히 골라두었던 책을 한권 계산하곤 책방을 나왔다.

한산한 거리.
뒤돌아 헌책방간판을 바라봤다.

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떠 올렸다.
젊은 대학생에서 직장인, 행설아 시니어까지.
그리고,
지금은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낡은 책이지만
책상에서 아님 침대 머리맡에서
그 책을 통해
깔깔깔 웃음 지었을
때론 줄그어 가며 밤을 지새웠을
아니면 그렁그렁 눈물지었을
책 한 권 한 권의 기억 속에 담겨있는 기증자들까지…

작은 형은 요즘 뭐할라나…
석 달 남은 추석 명절.
찾아가면
옷 물려 입던 옛날이야기나 꺼내봐야겠다. 

글_시니어사회공헌센터 김돈회 연구원 (forest4u@makehope.org)

시니어사회공헌센터 사이트 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