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령화 시대, 중년층의 성장과 발전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만 60세 생일을 축하하는 환갑잔치는 사라지고 칠순, 팔순 잔치가 늘었다.
대한노인회는 노인 기준 연령을 70세로 높이는 방안을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최근의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평균수명의 증가로 인한 생애주기상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사실 65세를 노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평균수명이 50세가 안되던 1880년대의 일이다. 평균수명이 거의 두 배로 증가한 지금 과거의 기준은 적절치 않을 뿐 아니라 비현실적이다. 1세기 훨씬 전에 ‘청소년기’라는 새로운 생애단계가 출현하여 생애주기상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처럼 고령화는 생애주기 상의 새로운 명명과 적응이 요구되는 중대한 사회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라 불리는 고령화 시대의 생애주기 핵심은 인생 후반기의 증가이다. 한국 은퇴 연령 53세를 기준으로 보면 은퇴 후 무려 40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한다. 우리는 이런 인생 후반기를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중년의 항변처럼 “올인하고 은퇴하고 나왔는데 30~40년 남았다니 황당”한 감정을 가지게 된다. 우리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이 시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변화에 대응하느냐는 것이다.

고령화 시대에 이런 변화를 가장 크게 느끼고 있는 대상은 늘어난 인생 후반기를 처음 경험하는 중년층이다. 특히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최근 은퇴를 경험하면서 늘어난 인생 후반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과 혼란 속에 있다.

희망제작소는 2006년부터 고령화 시대의 사회적 과제를 헤쳐 나갈 주체로 베이비붐 세대를 주목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 운영하면서 고령화 시대에 대처하는 문제의식과 새로운 관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고령화 시대의 새로운 사회적 요구, 시니어의 욕구에 맞는 비전과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새로운 생애주기 New Life Cycle을 제안하였다. 희망제작소는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고학력·사무직 중산층 베이비부머들의 인식과 욕구를 자기인식, 일, 관계 영역 중심으로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원방안을 제안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새로운 생애주기 New Life Cycle은 고령화 시대에도 개인의 삶이 변화와 발전을 연속할 수 있는 라이프 사이클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래서 인생 후반기에도 성장과 발전을 연속할 수 있는 새로운 생애단계를 두었다. 이 새로운 생애단계를 제2성인기(중년전환기+중년안정기)로 명명하고 연령 범위는 50~60대로 설정하였다.

이번 연구를 통해 제2성인기를 직접 겪고 있는 고학력?사무직?중산층 베이비부머들이 기존의 생애주기 관점과 고령화시대의 현실 사이에서 변화의 와중에 있으며, 은퇴를 삶의 마무리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견하고 실행하는 기점으로 여기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 시기에 사회공헌활동에 대한 욕구가 매우 높게 나타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발견이었다.

은퇴 후의 삶에 대한 이런 인식 전환은 개인에 대한 충분한 시간 투자로 이어져 개인의 성장과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이들은 이 시기에 은퇴를 경험하면서 생활 패턴이 이전과 달라지는 것을 인식하고 삶의 전환을 위한 학습, 체험 등을 통한 탐색의 과정을 요청하고 있다. 이 탐색의 과정을 충분히 가지면 일,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의미가 형성되고 새로운 기획과 실행으로 이어져 제2성인기가 또 다른 성장의 시기가 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은퇴 전후에 이들이 자연스레 탐색의 시기를 가질 수 있도록 지지와 지원이 필요하다. 청소년기를 지원하는 각종 제도, 시스템, 프로그램을 생각해보면 제2성인기 대한 인프라와 지원이 얼마나 미흡한지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은퇴자들의 탐색을 지원하는 사회적 합의와 인식 개선 등의 정책적 노력이 절실하다.

실제로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를 경험한 나라들을 보면 고령화 관련 정책을 수립할 때 우선적으로 정책의 관점을 점검했다. 독일의 경우 정책 수립 전에 대국민 캠페인을 통해 노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실시했고, 호주는 고령 근로자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New Life Cycle은 50~60대가 인생에서 어떤 단계인지 보여줌으로써 삶의 예측가능성을 높여 개인이 변화와 성장을 미리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는 고령화 시대의 지원책을 설계하고 제시하는데 적절한 관점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새로운 생애주기 관점에서 파악한 제2성인기는 인생 후반기의 삶에 대한 패러다임 변화를 제안한다. 특히 이번 연구를 통해 도출된 이 시기의 생애과제는 삶의 방식의 변화 또한 보여주고 있다. 제2성인기의 생애과제는 자신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자아실현 욕구와 사회적 책임감을 조화롭게 결합하여 자아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생애주기 특성에 적합한 새로운 일을 찾고 더 성숙한 방향으로 관계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제2성인기의 생애과제를 달성하는 것, 즉 자아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것은 이 시기의 개인의 성장과 발전, 새로운 중년 문화의 창출뿐 아니라 다음 생애단계인 노년기의 성숙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노년세대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여러 부정적 이슈를 풀기 위한 방법도 베이비부머들이 제2성인기에 생애과제를 얼마나 충분히 수행하느냐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연구의 심층면접에 참가한 중년층들은 ‘책임 있는 노년’, ‘세대통합의 주체로서의 노년’ 등 새로운 개념과 비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비전에 입각할 때, 제도적 지원과 정책도 기존의 시혜적 복지를 뛰어넘어 자발성과 책임감에 의거한 생산적 복지로의 변화를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글_ 배영순(연구조정실 선임연구원 / alice@makehope.org)

* 100세 시대 새로운 생애주기 제안을 담은 희망리포트 <새로운 생애주기 관점으로 파악한 베이비부머들의 욕구 및 지원방안 _ 사무직 중년층을 중심으로>는 동그라미재단의 지원으로 수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