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부터 희망제작소 시니어사회공헌센터 블로그에 시니어 창업 해외사례 ‘시니어, 그들은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 가고 있나’를 연재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가까운 일본에서부터 저 멀리 아일랜드까지 전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시니어들의 이야기를 부지런히 나르고 있습니다. 바로 행복설계아카데미 16기 회장 김경회 선생님입니다.
영리기업에서 35년간 일하고 퇴직한 김경회 선생님은 퇴직이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배움을 시작하는 흥미롭고 설레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무엇이 김경회 선생님을 설레게 하는 것일까요?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배영순(희망제작소 시니어사회공헌센터 선임연구원/이하 배) : 선생님, 안녕하세요. 2012년 5월 25일 1편 ‘시니어 SOHO 보급 모임 미타카’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해외 시니어들의 활동 사례를 연재 중이신데요. 어떻게 연재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김경회(행복설계아카데미 16기 회장/이하 김): 네, 저는 퇴직 전부터 퇴직 후에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서 제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희망제작소 행복설계아카데미가 인생 2막을 설계하는데 도움이 되는 교육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퇴직 후에 교육을 받게 되었지요. 그 인연이 이렇게 연재기사를 쓰는 기회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배: 선생님의 퇴직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김: 저는 퇴직 3년 전부터 준비를 했어요. 직장을 다니는 중에는 여유가 없어서 교육을 받고 직접 체험을 하기는 어려웠고요. 책이나 언론기사를 통해 퇴직 후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조사하거나, 이미 퇴직한 선배나 친척에게 물어보곤 했죠.
배: 그럼 퇴직하셨을 때 심경은 어떠셨나요?
김: 3년 동안 천천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서 그런지 심적인 충격은 없었어요. 사실 직장생활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의무에서 벗어났구나 싶어 홀가분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시기가 드디어 왔구나! 어떤 면에서는 가슴이 설레었죠.
배: 퇴직 후에 어떤 일을 하고 싶으셨는데요?
김: 나는 공부하는 게 좋아요. 그리고 가르치는 일도 하고 싶고요.
배: 의무감이 컸던 직장생활은 어떠셨나요?
김: (웃음) 열심히 일했죠. 특히 CEO가 되면 기업의 영속성에 대한 책임이 있으니까 혼신의 힘을 다해서 일했습니다. 흔히 책임자는 지시 명령만 내리면 된다고들 생각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아요. 위로 올라갈수록 솔선수범 해야 직원들이 따라옵니다. 그리고 직원들을 키우는 일 또한 CEO의 중요한 직분 중의 하나이죠. 끊임없이 배우고, 가르치고, 지도하는 일이 중요 업무 중의 하나였으니까, 어떤 면에서는 CEO로서의 생활을 즐겼던 셈입니다.
배: 퇴직 후 개인시간이 많아졌는데, 어떠세요?
김: 나로서는 아주 기뻤죠. 모자란 부분을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가득 생긴 거잖아요. 사실 청년 창업 멘토링 기회가 있었는데 기업에서의 경험 가지고만은 쉽지 않았어요. 지도방법이라든가, 실무의 세세한 부분에 대해 다시 배워야 젊은 사람들이 필요한 걸 가르쳐 줄 수 있겠더라고요.
배: 그 와중에 행복설계아카데미를 수강하신 건가요?
김: 책으로 공부하는 건 한계가 있었어요. 그래서 교육기관을 찾다가 행복설계아카데미를 알게 되었고, 연락을 했더니 그해 교육이 끝났더군요. 다시 연락하고 기다렸다가 그 다음 해에 16기로 참여했죠.
배: 행복설계아카데미 교육은 어떠셨나요?
김: 그런 교육을 받는 것이 처음이라 기대가 많았어요. 강사나 사례발표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이렇게 살아온 분들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기업 말고는 몰랐는데 다르게 살아온 분들을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편으로 새로운 세상, 사람들에 대해 눈을 떴지만 주눅도 들었습니다.
나는 남들이 다 가는 길, 대학 졸업하고 기업에 취업해서 그냥 정규 코스 같은 길을 갔잖아요. 사회공헌이나 사회적경제 이런 부분에서 활동하는 분들은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간 거잖아요. 그 용기가 대단해 보였습니다.
배: 누구나 선생님처럼 CEO까지는 못하는데요. (웃음)
김: (웃음) 남이 가지 않은 길보다는 쉽죠. 나는 행복설계아카데미 교육에서 만난 강사나 사례들을 보면서 압도된다고 느꼈어요. 이건 내가 따라가기 어려운 세계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 정규 코스가 아닌 다른 세상을 선택하고 간다는 것이 용기가 필요한 일이잖아요.
배: 다른 사람의 삶에 압도된 이후 선생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김: 작은 데서부터 시작하자 그런 생각을 했어요. 희망제작소 홈페이지를 말 그대로 많이 들여다보았는데, 시니어사회공헌센터에 미국의 시니어에 관한 글이 있더군요. 마침 나는 국내자료를 나름 섭렵하고 일본자료를 보고 있었어요. 일본에도 좋은 인생 2막 사례가 많더라고요. 나 혼자만 알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희망제작소 시니어사회공헌센터 연구원과 이야기를 해서 이렇게 연재를 하게 됐습니다.
배: 일본어는 언제 공부하셨나요?
김: 대학교 1학년 때 배웠어요. 당시에 공부를 하려면 한국 서적으로는 한계가 있었어요.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면 외국 서적을 봐야 하는데 영어로 된 책을 구하기가 어려웠죠. 그런데 일본서적은 명동이나 종로에 많았거든요. 그래서 일본어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배: 전공서적을 보고 싶은 욕심에 일본어를 시작하신 거네요. 영어는 언제 공부하셨나요?
김: 영어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때 배우잖아요.
배: 다들 그렇게 영어를 배우는데… 선생님처럼 잘하진 못하죠.(일동 웃음) 언어에 남다른 센스가 있으신 거 아닌가요?
김: 글쎄요. 사실 제가 연재하는 사례에 유럽권은 많지 않아요. 불어나 독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쪽 사례는 번역을 하지 못하죠. 그런 거 보면 꼭 그렇지 않은 것도 같아요.
배: 언어도 그렇지만 2주마다 꾸준히 글을 업데이트하는 것이 놀랍습니다.
김: 의무감이 아니라 재미가 있으니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례를 찾는 일은 내가 인생 2막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는 데에도 직접 관련된 일이라 꾸준히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배: 연재 기사를 보면 대부분 일본하고 미국 사례입니다. 언급하셨지만 언어 때문에 미국, 일본 사례에 집중하시는 건가요?
김: 아무래도 그렇죠. 영국과 아일랜드 사례는 한 편씩 소개했는데 다른 유럽권은 어렵죠. 미국과 일본은 고령화 경험이 한국보다 20~30년 앞서 있기 때문에 시니어의 활동 사례가 정말 풍부합니다. 그래서 그 점은 보완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다른 시니어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 보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배우는 것도 많고요. 그리고 이걸 다른 사람하고 공유를 한다는 것은 더 의미가 있죠. 그러니까 번역할 때 더 신경을 쓰게 돼요. 이걸 어떻게 표현하면 읽는 사람이 더 잘 이해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니까 굉장히 흥미도 있고, 애착도 갑니다. 그리고 이건 내가 참고용으로 쓱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하니까 영어 숙어 하나, 일본어 단어 하나 사전을 찾아 꼼꼼하게 작업을 해요. 그러니까 공부도 더 되고요.
배: 소개해 준 사례 대부분이 시니어 창업입니다.
김: 재취업 부분도 몇 건 소개는 했는데, 전직의 의미가 있어 크게 비중을 두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이나 아이디어를 소개하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싶어 창업 쪽을 많이 소개했습니다.
배: 해외에서는 시니어가 NPO로 경력을 전환하는 일이 자주 있나요?
김: 미국은 NPO에 재취업하는 것보다 같은 영리 분야로 이직하는 경우가 흔한 것 같아요. 사실 이건 내가 보기엔 한국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똑같은 문제가 있어요. 영리를 추구하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NPO를 잘 모르죠. 그래서인지 인텔 같은 기업은 NPO와 연결해서 회사 비용으로 퇴직 예정자들에게 NPO 인턴 기회를 주고 있어요. 이런 기회는 퇴직자들이 좀 더 준비해서 NPO로 경력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성공률도 높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업 입장에서도 이건 굉장히 훌륭한 사회공헌 사례라고 봅니다. 이런 제도나 기회가 확대되면 좋겠어요.
배: 다시 연재기사 이야기로 돌아와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김: BBC 출신의 여성이 시작한 자서전 사업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참조: 이야기의 가치로 창업한 60대 영국 여성의 이야기)
그 사례를 찾아 번역하면서 느낀 것이 자서전 사업을 시니어에게 특화한 사례가 많다는 거였어요. 컴퓨터 사용에 익숙하지 않아도, 글을 쓰는데 서툴러도 아주 쉽게 편집할 수 있도록 만들고, 제작비용도 저렴하고요. 누구라도 자서전을 만들어서 가족들이나 주위 가까운 사람들한테 선물을 할 수 있게 한 것이죠. 그래서 행복설계아카데미 출신들이 설립한 자서전 쓰기 사업단에 이 사례를 소개해 주었어요.
배: 이 사례의 경우 아이디어도 좋지만 한국에서의 적용 가능성을 높이 보셨군요.
김: 자서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꼭 참고하라고 이 사례를 소개해 주고 영국의 사이트도 알려줍니다. 또 흥미 있었던 연재기사로는 More Than Wheels라는 미국 단체입니다. 그 단체를 설립한 시니어도 자신의 경력과 경험을 잘 활용해서 사회에 의미 있고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어요. (참조:부당한 것을 알고 해결할 수 있을 만큼 나이와 경험이 있다)
배: 저는 최근 사례 중 하나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재미교포 최임자 씨 사례였는데요. 사실 이민자의 성공 사례라고 하면 경제적 성공이나 학업 성취 등의 이야기가 많은데 이 사례는 달랐던 것 같아요.
김: 그 사례를 조사하면서 미국 언론 기사를 많이 봤는데 최임자 씨의 아이디어가 뛰어나고 창의적이라고 칭찬을 많이 했더라고요. 사회공헌뿐 아니라 혁신적이고 사업적 마인드도 풍부한 아이디어라 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참조:재미교포, 재가서비스에 혁신을 입히다)
배: 연재기사를 준비하실 때마다 한국에서의 적용 가능성을 보시나요?
김: 내가 볼 때는 각 나라마다 문화나 사고방식이 다르지만 시니어 사회는 서로 비슷한 점이 있어요. 방금 이야기한 자서전 사업도 영국이나 한국 모두 시니어가 관심을 갖잖아요. 시간의 문제이지 시니어 사회는 비슷한 것 같아요. 그래서 굳이 한국의 적용성을 고민하면서 사례를 고르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를 다루지는 않죠.
배: 연재기사를 쭉 보면 시니어 개인의 열정이나 아이디어에 의존한 창업 사례가 주를 이루는데 지자체나 기관의 역할을 어떻게 보세요?
김: 그건 문화나 국가 마인드 차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사실 미국은 문화 자체가 남에게 의존하기 보다는 창의를 강조하죠. 그런 특성 때문에 창업이 활성화된 반면에 일본은 관료주의 국가라고 할까요? 공무원이 존경받는 사회거든요. 그래서 지자체나 기관의 도움을 받는 케이스가 많아요.
김: 우리나라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여러 시니어 지원 정책을 진행하고 있는데, 형식적인 경우가 많죠. 그렇지만 그런 지원이 필요하기는 해요. 통계를 보면 노후생활에 대하여 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주 적어요. 현실적으로 창의적인 모험을 하기가 쉽지 않죠.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중간 지원센터에서 지원정책을 펴는 게 훨씬 더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사실 지금까지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창의적인 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열심히 근무하나 하는 근면한 것이 중요한 시대를 살아 왔어요. 압축 성장 시기였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그것 가지고는 안 통하는 시대잖아요. 애플 같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단순히 열심히 일만 해서는 안 되죠.
시니어들도 이제는 이 흐름을 알아야 하고 익숙해져야 하는데 오랫동안 다른 방식이나 습관에 익숙하다보니 지자체나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서 같이 해나가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배: 연재기사는 어떻게 준비하세요? 따로 준비하는 요일을 정해 두셨나요?
김: 주로 가는 사이트들이 있어요. 거기서 흥미로운 내용을 보면 관련 자료들을 찾아다니는데 그렇게 여러 샛길을 탐색해요. 신문기사도 보고 관련 책도 찾아보고요. 예전에는 아마존으로 책 주문하고 기다려야 했는데 킨들로 볼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참, 이번에도 책 한 권 읽고 있어요. 이건 국내에 번역되어 있더라고요.
▲ 김경회 선생님은 요즘 읽고 있는 책이라며 우리에게 ‘A Long Bright Future’을 보여주셨다.
김: 주로 시니어, 사람에 관한 글을 쓰다 보니까 여러 자료를 발췌 취합하게 돼요. 처음에는 출처를 신경 쓰지 못했는데 희망제작소 연구원이 출처를 요청해서 이제는 그 부분도 신경 쓰고 있습니다.
배: 앞으로 연재 기사는 계속되죠?
김: 그럼요. 공부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연재하는 것이 힘들지 않고 즐거워요. 이렇게 연재 기사가 계속 쌓이면 사례집을 출판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시니어들이 참고 자료로 활용할 수 있으면 어떨까 해서 그런 고민도 합니다.
사실 청년도 그렇지만 중장년들도 일자리가 중요한 이슈입니다. 그래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해외의 좋은 사례나 아이디어를 공급해 주고 싶어요. 그리고 아이디어만으로 창업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경험을 안내하고 연결해 주는 사이트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사이트 만들기 수업도 듣고 있어요. 예쁘게 꾸미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웃음)
배: 홈페이지 제작까지 직접 해보시려고요? 대단하신데요. 이후 계획이 모두 준비되어 있으신 것 같아요.
김: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이제 딱 정해 놓고 시작하지 않아요. 요새 90세 넘어서도 사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렇게 보면 앞으로 30~40년은 더 활동해야 될 거 같거든요. 그래서 서둘러서 하고 싶지는 않아요. 무슨 일이든 올바른 일이라면 계속 하면 돼요. 포기하지 않고요. 그래서 급하게 계획 세우고 급하게 갈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나이에 대한 김경회 선생님의 이야기는 인터뷰 중 갑자기 내린 눈만큼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이 들면 시간이 줄어든다는 생각에 초조함이 커질 거라 생각했는데 인생 2막을 걷고 있는 김경회 선생님의 모습에는 즐거움과 여유가 가득했습니다.
그 즐거움에 연재기사도 포함되어 있다니 우리는 2014년에도 전 세계 시니어들의 이야기를 계속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_ 배영순 (시니어사회공헌센터 선임연구원 alice@makehope.org)
사진_ 김우주 (시니어사회공헌센터 보조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