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곳곳에 ‘해결사’들이 있습니다. 변화를 꿈꾸지만 않고 실행합니다. 희망제작소는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라고 호명하고 연결합니다. 오는 12월 14일 <2023 소셜디자이너클럽 사회적가치 투자(SIR) 대회(링크)를 여는 이유입니다. 이날 청중심사단(링크)이 소셜디자이너 10명의 피칭을 듣고 모의 투자합니다. 시민을 만날 소셜디자이너 10명을 소개합니다.
담양의 웰컴드링크 ‘댓잎 모히또’가 탄생한 사연 | 배성현 포더로컬 대표 @담양
서울살이 3년을 뒤로하고 고향 광주로 돌아온 어느 날, 배성현 대표는 빨래를 개다 울음이 터졌습니다. 옷에서 햇볕 냄새가 나더래요. 서울 5평짜리 원룸에선 아무리 잘 말려도 눅진하고 퀴퀴한 냄새가 났는데.
지금 그는 가을이면 메타세쿼이아가 하늘을 태울 듯 붉게 물드는 담양군 금성면 양지바른 단독주택에 삽니다. 만 33살에 큰 집을 덜컥 산 건 “30년 동안 은행 대출 갚으며 이 땅에서 행복하게 먹고살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래요. 그리고 ‘이 땅’에서 어떻게 행복하게 먹고살지 궁리하다 담양군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해 알리는 일부터 해보기로 했답니다.
올해 지역 청년 5명과 비영리단체 ‘포더로컬’을 만든 배성현 대표는, 사회연대은행의 지원을 받아 담양군의 20개 작물을 생산하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이 작물을 활용해 담양군의 월별 ‘웰컴드링크’ 레시피를 개발했습니다. 무더운 8월엔 담양의 대나무와 레몬을 활용한 ‘댓잎 모히또’ 한 잔 어떨까요. 지역엔 이처럼 새로운 매력과 가치를 발굴할 청년이 필요하고, 그런 청년의 지역 정착은 “(주택) 임대가 아니라 (은행 대출을 낀) 소유에서 파생된다”고 농반진반 말하는 배성현 대표를 지난 10월 29일 만났습니다.
-연고가 없는 담양에 집을 사서 정착했어요.
“광주에서 쭉 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저 혼자 담양으로 전학했어요. 어릴 때부터 서울대 간 언니와 늘 비교당하며 살았는데 여기 오니 선생님도 친구들도 ‘잘한다 잘한다’ 칭찬만 하는 거예요. 뭐든 열심히 하게 되고 학교 행사도 기획하며 친구들과 재밌게 보냈죠. 처음으로 관심과 사랑을 흠뻑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행복한 기억이 두고두고 자산이 됐고 담양에 정착할 결심을 하게 만든 것 같아요.
전학 첫날 학교 급식에 아이 주먹만 한 딸기가 세 개씩 나왔는데, 친구들은 ‘이런 거 맨날 나온다’며 심드렁하더라고요. 담양은 급식에 친환경 로컬푸드를 일찌감치 도입해서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전라도 특유의 맛있고 푸짐한 반찬들이 매끼 나왔거든요. 사진을 찍어 싸이월드에 올리면 난리가 났어요. 담양의 질 높고 풍부한 식재료와 그걸로 만든 음식이, 여기선 당연하지만 다른 곳에선 특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어요.”
-그때부터 포더로컬과 같은 ‘지역 문화기획자’나 ‘로컬 브랜딩 전문가’의 자질이 충만했던 거네요. 당시에도 이런 일을 하고 싶었나요.
“원래는 목회자가 되고 싶어 공부를 마쳤어요. 그런데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다양한 일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직업훈련을 받고 요리도 배웠어요. 그러다 아는 분과 연락이 닿아 서울에서 비영리단체 만들고 운영하는 데 참여하게 됐어요.
학교로 찾아가는 음악회, 마을의 교회 공간을 활용한 돌봄 사업, 국제학술포럼…. 영역이 넓어지면서 비영리법인에 사단법인까지 만드느라 단체·법인 설립 전문가가 다 됐죠(웃음). 전국을 다니며 휴일도 없이 일하는 동안 사업 기획과 각종 행사 운영에 도가 텄고요. 그렇게 3년을 보내고 나니 번아웃이 왔어요. 딱 1년만 나 자신에게 휴가를 주기로 했어요. 버킷리스트를 만들어가고 싶은 곳 가고, 먹고 싶은 것 다 먹어본 후 결정했죠. 서울살이는 이제 끝이야, 나는 지역에서 행복하게 잘 먹고 잘사는 길을 찾겠어! ”
지역의 매력 발굴하고 새롭게 브랜딩…‘바이더로컬’ ‘오브더로컬’로
-포더로컬은 올해 6월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한 셈인데 벌써 지역 축제에 초대받고 일감이 몰려든다고 들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여행을 다니다 보니 ‘웰컴드링크’라는 게 참 좋더라고요. 따뜻하게 환대받는 느낌이 들고 여행이 시작된다는 설렘도 있고요. 담양에 온 사람들에게 담양의 제철 식재료로 만든 웰컴드링크를 대접하면 어떨까 싶었죠. 마침 사회연대은행에서 지역 청년 지원 사업을 공모하기에, 기획안을 쓰고 비영리단체도 만들었어요. 단체 만들기 달인이잖아요, 제가(웃음). 그때 심사위원들 앞에서 사업 프리젠테이션을 했는데, 교회에서 설교를 3천 번도 넘게 해봐서 남들 앞에서 떨지 않고 말을 술술 잘하는 편이에요(웃음). 공모에 당선돼 딸기, 포도, 레몬, 복숭아 등 담양의 20개 작물 농장을 찾아가 인터뷰하고 지역 작물을 활용한 열두 가지 웰컴드링크(칵테일) 레시피도 만들었어요.
한번은 포도농장에 인터뷰하러 갔는데, 농장주가 ‘날이 더우니 시원한 곳에서 이야기하자’며 데리고 가신 곳이 고서와인의 와이너리였어요. 그 유명한 고서와인을 여기서 만들다니! 그러고 보니 담양에 도가가 꽤 많더라고요. 도가들을 연결해 재밌는 이벤트를 열면 어떨까 생각했죠. 죽향도가(대대포막걸리), 추성고을(추성주), 하심당(석탄주), 담주브로이(수제맥주), 아침이슬포도원(고서와인)을 ‘담양의 5대 도가’로 엮고 술과 어울리는 요리를 지역 농산물로 만들어 함께 즐기는 축제를 기획했어요. 제가 한식조리사 자격증이 있잖아요, 요리 좀 합니다(웃음).
저희는 비영리단체라 축제 밑그림만 그리고 사회적기업 ㈜동네줌인과 담양군이 함께 ‘담양 다미(味)담주(酒) 페스티벌’을 열었어요. 축제에서 저희가 만든 웰컴드링크인 ‘댓잎 모히또’ 선보였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 그 뒤로 농가와 도가에서 특색 있는 투어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거나 새로운 가공식품이나 요리를 개발하고 싶다고 상의하는 분들이 생겼어요. 비영리단체로는 한계가 많아 조만간 영리법인을 하나 만들어야 할까 봐요. 제가 법인도 잘 만드니까요(웃음).”
-포더로컬이 영리법인으로 재탄생하게 되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포더로컬은 지금처럼 지역의 매력(자원)을 발굴하고 기록하고 알리고 연결하는 활동을 하되, 상근직원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함께할 수 있도록 열어둘 생각이에요. 여기에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해 다양한 상품을 개발·판매하는 ‘바이더로컬(BuyTheLocal)’, 담양의 5대 도가 투어 프로그램 등의 관광 콘텐츠를 개발하는 ‘오브더로컬(OfTheLoca)’ 같은 서브 브랜드를 만들어 확장하고 싶어요. ”
– 인터뷰 및 정리: 이미경 시민이음본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