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코랄’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게 떠오르나요. 저는 화장품 가게에서 봤던 립스틱 색깔이 떠오릅니다. 코랄은 2019년 팬톤사에서 선정한 올해의 색으로, 생기 넘치는 분홍색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한때 코랄 메이크업이 유행하기도 했었죠. 그런데 코랄(Coral)을 한글로 번역하면 ‘산호’라는 걸 아셨나요.

지난 8월 27일 희망제작소 2층 누구나학교에서 열린 ‘하이 후원회원’ 모임에는 약 30 여명 후원회원과 시민들이 모여 산호 뜨개를 했습니다. 뜬금없이 왜 산호를 뜨냐구요. 산호 뜨개는 보이지 않는 바닷 속 산호의 멸종위기를 알리는 시민참여형 공동체 아트워크의 일환입니다. 산호를 만들고 이를 전시해 알리는 제주생태프로젝트 오롯(바로가기)의 재인 활동가와 함께 한 모임 현장을 전합니다.

산호, 아름다운 볼거리를 넘어선 해양 생물의 삶터

“도시를 상상해보세요. 산호는 바닷속 고층건물을 짓죠. 놀라운 규모의 3차원 골격을 형성합니다. 도시처럼 물고기도 특정한 구역에 살아요. 한 장소에서 거의 평생을 살죠. 밤에는 산호초에서 자고, 다같이 나가 먹이를 찾아다녀요.” – 다큐멘터리 <산호초를 따라서>(Chasing Coral, 미국) 중에서

지상의 숲을 이루는 게 나무라면, 바닷속 숲을 이루는 게 산호입니다. 산호는 해양생물의 집이자, 피난처, 놀이터, 가끔은 먹이 그 자체입니다. 해양생물의 25%가 산호초에 의지해 살고, 5~10억 인구의 식량 자원이 산호초와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또 산호는 큰 파도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고, 항암제, 화학물질의 원료가 되기도 한답니다. 그만큼 산호는 해양생태계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

ⓒ 다큐멘터리 <산호초를 따라서>

산호는 생기 넘치고 다채로운 색을 띄고 있습니다. 초록색, 파란색, 붉은색, 샛노란색, 갈색까지. 그런데 1980년대부터 산호가 하얗게 변하는 백화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얀 산호 군락지는 우리 눈에 아름답게만 보이지만, 실제로 심각한 환경 위기에 직면했다는 걸 뜻합니다. 해양생물은 산호 곁을 떠나고, 산호 군락지는 폐허로 남았습니다. 최근 30년 동안 지구상 산호의 절반 가까이 사라졌다 하는데, 과연 우리는 지상의 나무 50%가 사라졌다면 이렇게 무심하게 볼 수 있었을까요.

산호가 환경 재앙에 놓인 이유는 해수 온도가 2도가량 상승했기 때문입니다. 해양생물에게 수온이 오른다는 것은 마치 체온이 2도가 오른 것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고온에 시달리면 생명이 위태로워지듯, 수온 상승은 해양생태계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해수 온도가 오른 이유,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기후위기 때문입니다. 공장식 축산업과 화석 연료 사용으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면 대기에 열이 많아집니다. 이렇게 발생한 대기열 중 93%를 바다가 흡수하고 있습니다. 만약 바다가 열을 흡수하지 않으면 지구의 표면 온도가 평균 50도까지 올랐을 것입니다.

우리가 발생시킨 열을 바다가 흡수한 대가로, 해양생물의 안식처가 위협받고 있는 셈입니다. 학자들은 기후위기가 가속화될수록 우리 세대 내에서 산호 전체가 멸종될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해양생태계의 주춧돌이었던 산호가 멸종된다면, 그 뒤에 벌어질 일은 쉽사리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연결되어 있어요. 우린 위태로운 카드 하우스에서 ‘산호초’ 카드를 하나 뽑고 있는 겁니다. 정말 두려운 건 이렇게 카드를 계속 뽑으면 어느 순간 무너진다는 거죠. 이 생태계를 구하지 못한다면 다음 생태계는 구할 수 있을까요?” – 다큐멘터리 <산호초를 따라서>(Chasing Coral, 미국) 중에서

사라지는 산호를 알리는 일, 산호뜨개로 합니다

산호뜨개는 놀랍게도 수학에서 시작됐습니다. 미국의 한 수학자가 쌍곡기하학의 쌍곡공간의 모형을 코바늘로 구현해 학회에 발표했고, 이러한 방식은 마가레트 웨르타임의 산호 뜨개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에 위치한 지상 최대의 연산호 군락지(천연기념물 442호)가 강정 미군 기지 건설로 파괴될 위기에 처하자 이를 알리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이번 모임에는 뜨개질에 관심이 있었지만, 막상 배울 기회가 없었던 분, 평소 뜨개질을 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는 분, 산호 뜨개로 참여와 경험의 기회를 아이들과 나눠보고 싶다는 교사 등 다양한 분들이 자리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날 희망제작소 후원회원이지만, 처음 모임에 참여한 분들이 많아서 반가운 마음이 컸습니다.

본격적으로 각자 마음에 드는 실타래를 하나씩 골라 뜨개질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오롯에서는 산호뜨개의 취지에 따라 뜨개실을 새로 구입하는 게 아니라, 쓰지 않은 뜨개실을 기부받거나, 뜨개질하기 쉬운 면소재 옷을 잘라서 재활용하고 있습니다.

산호 뜨개의 첫 코를 만드는 일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코바늘을 쥐는 것부터, 뜨개실의 장력을 이용해 한 코, 한 코 뜨는 일이 마음처럼 되지 않았지만, 각자의 속도로, 원하는 모양대로 뜨개질을 시작했습니다.

각자 조용히 뜨개질할 거라 생각했는데 웬걸요. 뜨개 ‘파티’라고 할 정도로 왁자지껄하고 에너지 넘쳤습니다. 이날 처음 보는 사이지만 옆사람에게 뜨개질하는 법을 물으며, 자연스럽게 담소를 나눴습니다. 물론 오롯이 뜨개질에 집중하시는 분도 계셨고요. 뜨개질을 하다보니, 잡념이 사라지는 게 명상같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손이 가는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또 산호 뜨개의 매력은 꽉 짜인 틀에 맞춰 뜨개를 하는 게 아니라 원하는 대로 만들면서 비정형의 모양에서 산호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겁니다. 한 시간 가까이 사람들은 하얗게 질려있다 검게 바스러진 산호에 대한 미안함을, 한 땀 한 땀에 담아 산호를 만들어갔습니다. 이어 각자 만든 크고, 작은 산호. 백화된 산화를 알록달록한 산호로 덮어 연결했습니다.

“중학교 때 이후로 처음 뜨개질했어요. 그동안 ‘1등을 하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살았는데 이걸 하니까 잡념이 없어지고 시간이 금방 가네요. 거친 마음이 둥글둥글해지는 것 같아요.” – 참여자 부활 님

“강사님이 친절하셔서 즐겁게 배웠어요. 모든 게 좋았습니다. 오늘 시간이 마음에 와서 닿네요.” – 참여자 풀할매 님

이어 기후위기를 늦추고, 산호 멸종을 막기 위해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이용하기, 100% 면으로 된 옷 입기, 채식하기 등의 행동으로 오늘의 마음을 이어가자고 일상의 실천을 나누며 모임을 마쳤습니다. 산호를 통해 마음과 마음을 잇는 뜨개 파티였습니다. 제주생태프로젝트 오롯에서는 9월 15일부터 제주에서 산호뜨개 전시회를 열 예정으로 이날 ‘하이 후원회원’에서 만든 산호들도 전시될 예정입니다.

– 글: 이규리 경영기획실 연구원 | kyouri@makehope.org
– 사진: 이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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