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지 마, 놀아!

<박원순의 희망탐사 34>

나는 젊은이들이 부럽다.

그들의 젊음이 부럽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주장을 주저 없이 드러낼 줄 아는 그 당당함이 부럽다. 나의 젊은 시절이 그렇지 못했다는 아쉬움에서 시작된 부러움인지도 모르지만, 오늘의 젊은이들의 이런 모습은 시대와 맞부딪치면서 더욱 상승효과를 빚어내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때론 그들의 당당함이 당혹스러울 때도 있는 게 사실이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넘기 힘든 국경이 ‘세대’가 아닌가 싶을 만큼 세대 차이를 느끼곤 한다. 그건 논리적 차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느낌이다. 콕 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젊은이들과 우리세대, 그리고 그 중간세대 사이에는 특정시대를 살아온 이들의 감정과 감정이 만나 이뤄진 높은 벽 하나가 놓여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물론 그 벽 사이를 통과하는 공통된 감정들을 느낄 때면 그 벽의 높이만큼 큰 기쁨을 느끼지만 말이다.

그들에 대한 이러한 ‘부러움’과 ‘당혹함’, 그 사이에서 빚어지는 ‘세대차이’와는 상관없이 어른세대로서 그들에게 느끼는 또 다른 책임감이 있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우리의 미래가 그들에게 있고, 그들은 우리보다는 조금 덜 미숙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가 겪었던 착오를 조금이라도 덜 겪으면서 우리보다 더 넓고 큰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_1L|1071929878.jpg|width=”443″ height=”294″ alt=”?”|▲ 대전시 선화동의 청소년 교육문화공동체 ‘청춘’의 사무실. ⓒ희망제작소_##]그들이 그렇게 클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은 바로 어른세대인 우리에게 있다. 가정교육이 그렇고, 교육정책이 그렇고, 그들에게 꿈과 미래를 심어줘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입시지옥에서 간섭과 공부에 대한 압박에 치여 말을 잃은 아이들, 그들에게 “공부하지 말고, 놀라”고 말하는 곳이 있다. 청춘, 그 설레는 단어에 딱 어울리는 단체 청소년교육문화공동체 ‘청춘’을 찾았다.

대전 선화동의 청소년문화마당. 차에서 내리자마자 특별한 공원이 나타난다. 청소년들은 농구를 하고 있다. 의자 하나, 가로등 하나 새롭고 신기하다. 공원 끝에 보이는 작은 건물의 독특한 색채가 예쁘다. 바로 청소년 교육문화공동체 ‘청춘’의 사무실이다.

대전의 청소년 교육문화공동체 ‘청춘’

‘청춘’ 사무실에서 마음이 늙지 않는 이들을 만났다. ‘청춘’의 유낙준 대표, 윤미옥 사무처장, 권순표 교육국장, 최미리 홍보팀장 등이다.

대전의 청소년들을 위한, 청소년들이 만들어나가는 교육문화공동체인 ‘청춘’은 지난 2002년 이름을 달고 활동을 시작했지만 그 시작은 이미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말부터 학교 안과 밖에서 조그만 소모임과 동아리를 만들어 의미 있는 일들을 해보자는 이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그들이 한 땀, 한 땀 놓은 수가 지난 2002년에 완성된 셈이다.
[##_1R|1355497060.jpg|width=”500″ height=”374″ alt=”?”|▲ ‘청춘’이 대전시로부터 위탁받아 청소년들의 신명나는 문화의 장을 만들어가고 있는 청소년문화마당. ⓒ청춘_##]”1989년에 대전 청소년 문화공간으로 창립했습니다. 청소년 맘판이라는 행사를 개최하고, 동아리들을 만들면서 조금씩 대전의 청소년들 사이에서 저희의 자리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죠. 2000년부터 청소년 실업정책개발취업프로그램 등 몇몇 프로그램을 수탁하면서 조금 더 규모가 커지면서 2002년 청춘으로 개명하고 새로운 창립을 알렸죠.

청소년 기자학교를 개최하거나 문화기획이나 춤, 노래, 택견, 만화 등의 여러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어요. 여러 동아리를 통해서 저희 스스로 청소년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조금 더 청소년들과 가까워졌죠.”

창립 당시부터 대표를 맡고 있는 유낙준 씨의 설명이다.

‘청춘’은 또 지난 2005년부터는 대전 유일의 청소년 문화관장인 ‘청소년 문화마당’을 위탁해 운영하고 있으며, 신문일터 ‘닷’을 만들어 청소년들이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하도록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청소년 어울마당과 광장캠프, 다양한 배움터 프로젝트는 기본이다. 그야말로 청소년 운동, 혹은 활동에 대한 일상 속의 대안을 만들어 가고 있으며 그 속에서 청소년들의 자유롭고 자신에게 맞는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변화시켜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관련비용은 지자체로부터의 지원과 후원회비, 외부 프로젝트 지원비 등으로 충당한다.

“문화마당을 위탁하면서 지자체로부터 지원을 받고, 어울마당도 구청에서 지원을 받고 있어요. 후원회비는 월 100만원쯤 되는데 여기를 거쳐 간 청소년들이 운영위원회도 하고, 공연도 하고 그들이 우리 후원회원이 되기도 해요. 이제 17년을 넘어가니 그런 일이 생기더군요.”

말을 잃어버린 청소년

유낙준 대표는 한 고등학생의 이야기부터 전한다.

“어제 한 친구를 만났는데 ‘한풀련’이라고 대전지역 고등학교 학생회장 모임에서였습니다. 한풀련은 매년 12월마다 불우학우를 돕는 문화공연을 하는데 보통학생들의 이야기도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런 것을 하게 되면 교육청에서 한소리를 듣게 되는 거죠. 두발 자유화 문제도 전국적인 활동이 있었지만 일상적인 삶 속에서의 목소리를 내면 학교로 묶인 대부분의 학생들은 바로 제지당할 수밖에 없어요. 의사소통의 단절이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고, 그래서 학생들은 말을 잃게 되는 거죠.”

그렇지만 어른들의 관심은 저조하다. 당장 자기 자식을 키우는 문제에는 목숨 걸고 뛰어들지만, 그 자식이 포함되어 있는 청소년 세대에 대한 관심은 저조하니 아이러니하다. 그러니 청소년은 데미안이 말했듯이 스스로 깨고 뛰쳐나갈 수밖에 없다.

청소년 시기에 어떤 경험을 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 인생이 달라진다. 남다른 인생을 만들 수 있도록 청소년들을 위한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지만, 어른들의 관심은 낮고 당사자인 청소년들은 당장의 경쟁에 쫓긴다.

“프로그램 만들어도 ‘시험 때문에 못해요’, ‘취직 때문에 못해요’ 그런 이야기를 들어요. 지금은 과거보다 청소년들의 여유가 훨씬 없어졌죠. 어른들의 가치관이 청소년에게 물이 들어 그들 스스로 벌써부터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음도, 몸도 바쁘고 여유가 없어졌죠.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과 프로그램은 많아졌는데 과거보다 그들의 입지가 더욱 좁아진 느낌이고, 청소년들 스스로 얼마나 활용하고 있는지도 자신할 수 없어요.”

현재의 사회에 적응시키는 것이 지금의 교육이다. 지금의 교육은 지금의 사회에 적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래세대에 대한 교육이라면 현재 사회에 기반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비전을 담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꿈이나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물으면 모른대요.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지도 못하고 꿈 없이 사는 거죠. 아이들 스스로 꿈과 삶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 방법을 가르쳐주기보다는 주입해서 넣어주고만 있어요. 너무 안타깝지 않아요?”

절로 고개가 숙여질 만큼 당연한 문제의식이고, 많이 나온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속된 성공과 그를 위한 지름길과 그에 걸 맞는 직업을 가지라고 가르치고 있다. 아이가 어떤 직업을 원하는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지, 어떤 분야에서 성공하고 싶어 하는지 관심 없이 말이다.

공부 외에도 다른 길이 많다. 그 길을 인정하라
[##_1L|1046639798.jpg|width=”413″ height=”309″ alt=”?”|▲ 스스로 만들어가는 문화를 누릴 때 행복한 청소년들. ⓒ청춘_##]경쟁에 치인 그들, 벌써부터 어른들이 말하는 성공을 꿈꾸는 그들에게 ‘청춘’의 사람들은 다른 길이 많고, 그 길을 인정하라고 이야기한다.

“춤을 잘 추고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데, 지금은 춤을 그만두고 대학입시를 위해 공부에 전념하고 있어요. 동아리 활동, 학생회 활동은 성적과는 별도여서 입시에 도움이 안 되고 학교의 틀이 공부하고 취업하는 것 외에는 인정하지 않으니깐. 그 친구는 춤을 잘 췄고, 정말 좋아했지만 학교의 틀 안에서 공부할 수밖에 없게 된 거죠. 사회에 나온 이들 중에서 공부를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너무 많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하나의 틀로 학생들을 키워요.”

유낙준 대표를 포함해서 ‘청춘’의 사람들은 청소년들을 친구라고 부른다. 그저 호칭으로서 쓰는 표현이 아니라 진심으로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친구라고 여긴다. 그들이 겪는 시행착오를 나 또한 겪었고, 그들과 같이 나또한 후회할 선택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냥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길동무이다.

“학부모가 아이들에게 협박하며 하는 말이 ‘네가 지금 하는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니’라는 것에요. 낙오자 될 수 있다는 거고, 사실상 강요하는 거죠.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후회하더라도 가보라고. 분명 후회할 텐데 그대로 가보자’라고. 지금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후회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인생은 어차피 후회를 동반하게 마련이에요. 그래도 자기가 선택한 삶을 후회하는 게 선택하지도 않은, 강요받은 삶을 후회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나은 길 아닌가요?!”
[##_1R|1156512472.jpg|width=”477″ height=”357″ alt=”?”|▲ 경제교육의 일환으로 실시한 청소년 창업프로젝트 (2006년) ⓒ청춘_##]그렇기에 ‘청춘’의 방침과 방향이 때론 학교 교육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수평선을 그으며 대립적이기도 하다.

“학교에서는 공부하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놀라고 이야기합니다. 공부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즐겁지 않아요. 사실 즐겁지 않을 수밖에 없죠. 청소년들도 한 인간인데 ‘지금은 공부하고 나중에 자신의 삶을 살아라.’ 하는데 즐거울 수가 있나요? 함께 하는 것, 행복을 느끼는 것, 지금 살고 있는 것이 즐거워야 해요. 조금씩 그것을 도출해 주는 것이 ‘청춘’의 역할이죠. 다른 삶들에 대해 인정해주고, 희망이 있다고 격려해주고, 그것을 표출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겁니다. 현재의 삶을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건데 사실 마당만 열어주면 스스로들 너무 잘해요.”

이 사무실로 옮기기 전에 ‘청춘’의 사무실은 지하였는데 그 곳에서도 전혀 개의치 않고 북치고, 춤추며 놀 수 있던 게 청소년들이다. 그 탁한 공기나 답답한 공간과는 상관없이 그들에게는 마당이 열렸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끼를 펼쳤다. 왜 그럴까? 이곳에서는 큰소리치고 마음대로 발산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이 바로 청소년교육문화공동체 ‘청춘’이 존재하는 이유다.

문화소통공동체를 꿈꾼다
[##_1C|1347386878.jpg|width=”588″ height=”385″ alt=”?”|▲ 박원순 상임이사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청춘’ 임원들. ⓒ희망제작소_##]’청춘’은 최근 문화소통공동체 사업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청춘’의 방향이기도 하다.

“문화소통공동체는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대안적 삶을 풀어내는 문화적 생활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하면서 선과 악으로 나눠 해석하기도 하는데 사실 베짱이는 열심히 노래하는 사람으로 이해될 수도 있어요. 다른 시각으로 세상보기, 문화를 만들어내고, 가지고 노는 그런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내가 부르는 노래, 내가 추는 춤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는 거죠. 자기관찰프로그램, 자기기획, 공동기획 등 단계적이고도 지속적인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문화소통 공동체는 건물을 만들어서 청소년들이 갈 수 있는 공간을 하나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우리는 곧잘 덩그러니 큰 건물 하나 지어놓고 다 했다는 착각에 빠지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공간에서 함께 어울릴 공동체다.

“콜로세움 하나 만들어두고 청소년 정책 다했다고 생각하는데 근접한 거리에 청소년들이 갈 수 있는 작은 공간들이 많아야 해요. 동 단위마다 만들어져야 합니다. 홍콩은 아파트 1층을 도서관이나 어린이집 등 모두 공익공간으로 쓰고 있다고 해요. 우리도 그런 공공 공간이 있어야 해요. 집에서 밥 먹고 금방 나와서도 놀 수도 있어야죠. 생활의 일부분으로 놀이공간, 공부공간들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런 공간이 없다보니 청소년들은 길로 나가게 마련이다. 대전에서도 신개발지에 지하도를 만들었는데 차량이 아직 다니지 않다보니 청소년들이 그곳에서 춤을 추며 논다고 한다.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하자센터의 경우 아이들의 연습공간이 나름대로 많이 마련되어 있고, 그들을 위한 흡연실도 있었다. 놀라운 일이기도 하지만, 청소년들의 흡연이 이미 이뤄지고 있다면 그들을 더 이상 후미진 골목길로만 내몰 수도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_1C|1188611812.jpg|width=”553″ height=”415″ alt=”?”|▲ 제5회 청춘 정기총회 사진(2006년) ⓒ청춘_##]정부나 지자체, 교육청 등에서 제안이나 요청할 정책이 없는지 묻기도 한다. 하지만 ‘청춘’은 그저 간섭하지만 말아달라는 입장이다.

예컨대 청소년 어울마당 프로그램을 하더라도 마음대로 진행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경쟁적 프로그램을 지양하지만, 정부에서는 더 많은 인원을 동원하는데 더 주력한다. 백 명의 청소년이 조금씩 즐거울 수 있는 프로그램 하나보다 10명의 청소년이 더 많이 즐거울 수 있는 다양한 10개의 프로그램이 필요한데도 말이다.

유낙준 대표를 비롯해 ‘청춘’ 사람들 모두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일을 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조금이라도 청소년들을 향한 우리의 시선, 문화를 바꿀 수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감수하겠다는 각오로 일하고 있다.

그렇게 17년이 넘는 세월을 버티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청춘’이 조금 더 힘을 내준다면 지역 내 청소년들의 입지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면담일시 – 2006년 7월 6일 오후 2시

면담장소 – 대전 중구 선화동 청소년문화마당

면담인사 – 유낙준(대표, 성공회신부)
윤미옥(사무처장)
권순표(교육국장)
최미리(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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