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근] 그들의 차이, ‘뱉는 문화와 삼키는 문화’

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중국인들은 때와 장소의 구분 없이 아무 때나 여기저기 침을 잘도 뱉어 낸다. 중국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은 영문 모를 그들의 걸쭉한 ‘가래 로켓 공격’에 고스란히 노출되기 쉽다. 그런데 중국인들의 이와 같은 내뱉기가 중국인 특성의 한 단면인 ‘강한 자기주장’과 그에 못지않은 ‘책임회피’를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어떤 면에서는 미국인들과 유사한 면을 많이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개인주의가 미국 못지않게 심한(물론 그 속성이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중국인들은, 자기주장에 있어 조금의 양보도 없다. 저마다 자기가 옳다며 중구난방으로 한 마디씩 뱉어내는데, 이러한 모습은 각종 싸움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자전거 대 자전거의 간단한 접촉 사고가 발생했다고 치자.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특정 일방의 과실이 명백한데도 상대방은 뻔뻔히 무과실을 주장하며 굽히지 않는다. 피해 당사자도 이에 질리 없다. 이로 인해 길거리 한가운데서 고성방가하며 어느새 구름 떼처럼 몰려든 구경꾼들을 향해 미주알고주알 자신의 결백과 상대방의 책임을 하소연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자그마한 접촉 사고에도 그 일대의 교통은 곧 마비되고 많은 사람들의 불편을 초래한다.

이러한 기질은 중국인들의 업무 처리에도 잘 나타난다. 업무에서 오류를 발견했다 치자. 누가 봐도 명백한 자신의 과오이고 이에 따라 솔직하게 인정하면 끝날 일을, 중국인들은 왜 그렇게 말이 안 되는 변명만 해대는지……. 도무지 머리 숙일 줄을 모르며 더욱더 자기변명과 정당화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안타깝게 여겨질 때도 없지 않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자신의 이러한 태도를 꾸짖는 상사에 대해 타인들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구겼다며 복수를 다짐하는 적반하장을 연출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업무상 오류의 원인을 발견하는 일은 고사하고, 오류의 시정을 위한 업무 재추진에도 적지 않은 노고가 뒤따른다. 부부싸움 또한 마찬가지다. 부부싸움을 타인이 알게 되면, 중국인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 ‘체면’도 구겨지며 좋을 것 하나 없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집안에서 고래고래 싸우다가 갑자기 거리로 뛰쳐나와 제2라운드를 벌이곤 한다. 허름해진 남색 웃옷을 잠옷 대용으로 삼고 있는 아줌마는 분홍색 잠옷 바지 윗부분에 툭 불거져 나온 아랫배도 전혀 아랑곳없다. 거리에서 부부는 “이 인간이 글쎄 어쩌고저쩌고~.” “아이야오!,(”아이고!“에 해당하는 중국어 감탄사) 저 여편네가 말을 꾸며 대네.” 하며 미주알고주알 있는 말 없는 말 다 뱉어 낸다.
동네 이웃이나 지나가는 행인들이 이 부부를 빼곡히 둘러싸고 저마다 법관이 되어 이러쿵저러쿵 나선다. 내뱉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이기에 이처럼 나서기도 좋아한다. 이러한 부부싸움은 그들에게 있어 별 흉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너도나도 한두 번씩은 다 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이와 같이 중국인들은 적극적으로 자기를 세우려 주장하거나, 마찬가지로 적극적으로 자기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도무지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담아 두질 못하고 ‘뱉어 내려는’ 성향이 강한 것이다.

[##_1C|1292845715.jpg|width=”500″ height=”333″ alt=”?”|중국인들은 담아 두기보다는 ‘뱉어내려는’성향이 강하다. <사진제공/연합뉴스>_##]

이에 비해 일본인들은 ‘나서지 않으려는’, ‘자제하려는’, ‘삼키려는’ 경향이 더 농후하다.
“아이고! 제가 할게요, 제가!”
일본의 한 대학원 수업에서 다음 수업 시간의 발표자를 정할 때 미국에서 중ㆍ고등학교를 보낸 한 일본인 여자가 한 말이다. 그 여자는 1년간 계속된 수업에서 곧잘 이런 모습을 보였다.

발표를 자원하라는 교수의 말이 떨어지면 보통의 일본인들은 갑자기 숙연해지며 고개를 숙이고 책에서 눈을 떼려 하질 않는다. 어떤 이들은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열심히 뭔가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을 연출해 보이고, 또 어떤 이들은 마치 세상 고민을 다 짊어진 듯한 표정으로 순식간에 묵상에 빠져든다. 그리고는 무거운 정적만이 애타게 5분, 10분, 20분 잘도 흘러간다. 90분 수업 끝에 또 다른 수십 분을 이어가는 숨 막히는 적막이여! 결국 미국인처럼 다혈질이 되어 장기전에 숨 막히게 된 그녀는, 다른 일본인처럼 묵묵부답 버티지 못하고 복장을 터뜨리게 된다.

그런데 그녀의 복장은 잘도 터졌다. 학년 말, 과목 종강 파티 석상에서 알게 된 것인데 남들은 한두 번 발표할 때 그녀는 무려 8번이나 했으니 말이다. 고개 숙여 사념에 빠진 척하는 그들 일본인들은 어쩌면 이 숫자를 세어 가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을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일본인들이다.

일본인들은 자기주장을 거의 표면화시키지 않고 속으로 삼키는 성향이 강하다. 무표정한 그들은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성미 급한 한국인이나 미국인들은 제풀에 지쳐 일본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쪽의 의중을 죄다 읽혀 버리고 만다. 이와 같이 일반 일본인들은 자기 의견 표현에 ‘적극적으로 소극적’이다. 물론 자기주장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자기주장을 하고 있을 때도 상대방이 이야기를 꺼낼라치면 바로 자기 말을 ‘삼키며(즉 멈추며)’, 상대방에게 발언권을 넘겨주는 모습을 보인다(양보의 미덕인 것이다.).

사회 저변에 이와 같은 자세가 널리 퍼져 있는 곳이 일본이다. 중국과 같은 자전거 접촉 사고, 아니 그보다 더 심한 자동차 접촉 사고가 발생해도 서로 무과실을 주장하거나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고성방가는 접하기 힘들다. 이때는 일반적으로 쌍방 모두(무과실이 명백한 측에서조차) 습관적으로 튀어나오는 “죄송합니다.”라는 사과 표현과 더불어 상대의 안위를 먼저 묻고 사후 처리에 대해 협의한다.

미국이나 중국의 과격함이나 삿대질과 달리 일본의 ‘무표정’, ‘고개 숙임’은 매우 대조적이다. 이러한 일본인의 모습을 보고, 일본 우익의 한 대표적 인물은 “일본은 기질상 대국이 될 수 없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일본인들의 이와 같은 태도는 일 처리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즉 어디에선가 업무 처리에 오류라도 발견이 되면, 많은 경우 자신의 책임이 명백하지 않음에도 일단 자기의 실수일 것이라는 사과의 태도를 취하곤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오류의 원인 발견과 그 시정을 통한 업무 재추진이 원만하게 진행되기 쉽다.

일본인들의 부부싸움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의 부부싸움은 과연 부부싸움을 하긴 하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자신들만이 철저히 ‘삼키는(즉 감추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때에 따라서는 가까운 친우에게 부부싸움 사실을 밝히며 조언을 구하기도 하지만 일본에서는 이러한 경우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운 좋게도 한 부부의 으르렁거림을 목격한 적이 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부부의 집을 방문하고 있을 때, 집안일이 계기가 되어 그 부부의 목소리가 크게 격앙되는 등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그때 마침 외부에서 전화가 걸려 왔고 격앙되어 있던 그 부인이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그 목소리 톤은 어느새 평상시 일본인 특유의 부드러운 고음인 높은 ‘솔’ 음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었다.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말이다. 이러하니 단란하게만 보였던 일본인 친구가 사실은 이혼했음을 한참 후에 알게 되는 경우도 어쩌면 전혀 이상할 바가 아니지 않겠는가.

이와 같이 일본인들은 자기주장을 삼키거나, 마찬가지로 자기 책임회피를 적극적으로 하려 하질 않는다. 도무지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보이려 하질 않고 ‘삼키려는’ 성향이 강한 것이다. (이 글은 졸저, <21세기 한중일 삼국지>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글_우수근

우수근은 한국출신 ‘아시아인’임을 자처한다. 일본유학(게이오(慶應義塾) 대학 대학원) 중에 아시아를 자각했고, 미국유학(University of Minnesota, 로스쿨(LL.M)) 중에 아시아를 고민하다가, 중국유학(화동사범(華東師範) 대학, 법학박사) 중에 아시아인이 되었다. 좀 더 열린 마음과 좀 더 따뜻한 마음으로 국내외 외국인들과 더불어 살자고 외치는 그는 현재 중국 상하이 동화(東華)대학교 외래교수(外敎)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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