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만 명의 ‘무조건 연대’, 30년 뒤엔……

7월 19일~22일, 일본 큐슈지역에서 여행사공공과 희망제작소 주관으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해외연수가 진행되었다. 이번 연수에서는 ‘열린소통 및 거버넌스 구축’을 주제로 일본 큐슈지역의 사회적기업, 사회복지법인, NPO, 커뮤니티비즈니스ㆍ도시재생 사례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연수 기간 동안 깊은 인상을 받았던 방문지들을 소개한다.


(3) 그린코프

그린코프(Green co-op)는 후쿠오카현을 본거지로 규슈ㆍ주고쿠ㆍ시고쿠ㆍ간사이 지방에 있는 14개의 생협으로 구성된 생협 연합 조직이다. 규슈 ? 야마구치 ? 히로시마에서 활동하던 비누파 생협이 그 모태인데, 1988년 3월, 25개의 비누파 생협 15만 명의 회원이 모여 그린코프를 설립했다. 당시 각각의 생협들은 모두 소규모였으며 적자를 안고 있는 곳도 많았는데 지속적인 생존을 위해 연대를 선택한 것이다. 규모와 역사가 다른 조직들이 연대해 가는 데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상대방을 존중하고 한발 한발 양보해 가면서 ‘연대는 무조건이다’라는 그린코프의 정신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고 한다.

93년에는  ‘자연과 사람’, ‘남과 북’, ‘여성과 남성’, ‘사람과 사람’의 ‘4가지 공생’을 기본 이념으로 한 중기 계획 기본 구상을 작성해 그 방향성을 정립했다. 1994년에는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을 살고 싶은 마을로 바꾸기 위한 그린 코프 복지 연대 기금을 설립하고, 2003년에는 ‘생명을 키우는 먹을거리 운동’을 상징하는 병우유 개발 사업을 전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왔다.  또한 20여 년 동안  카고시마에서 오사카에 이르기까지 14개 단위 생협과 40만 명 이상의 동료들을 확보해 왔다.

● 먹을거리

그린코프의 안전 ? 안심 먹거리 운동의 대표적인 사업이 병우유 사업이다. 35년 전 성분 무조정 우유 공동 구입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진보에 진보를 거듭해 왔다. 쿠마모토현 키구치 지역의 낙농가 약 50호와 계약해 그린코프 병우유 공장에서 만든다. 공장은 2003년 조합원이 출자한 밀크 출자금으로 건설했다. 1998년부터 생산자는 유전자 변형을 하지 않은 사료와 무농약 사료를 사용하고 있으며, 원유는 파스처라이즈(Pasteuriz) 살균을 거쳐 공급한다. 낙농홈스테이, 낙농 생산자 교류회, 생산장려금 등 조합원과 생산자의 신뢰 관계를 쌓아가는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또한 그린코프는 계란, 쌀, 육류, 어류, 야채, 과일 등의 농수산물과 가공식품, 세제, 화장품, 가정용품을 자체적으로, 혹은 계약 생산해 판매한다. ‘안전ㆍ안심’ 상품을 공급하기 위해서 산지 직송과 일본산 원료를 고집하며, 일본내 생산량이 적은 작물 생산을 늘리려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산지 직송 농산물은 생산자와 의논해 생산자가 재생산을 계속할 수 있는 가격으로 거래하고 있다. 또한 가공식품 및 상품은 가급적 산지직송 농산물을 원료로 사용하며, 수산물은 가능한 자연산을 사용하고, 양식산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호르몬제와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은 것, 유전자 변형을 하지 않은 것의 사용을 원칙으로 한다. 그리고 화학적인 식품 첨가물은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 복지

그린코프는 ‘고령자, 장애인, 모자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마을 만들기’를 기본 슬로건으로 내걸고 다양한 복지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2003년 시즈오카 현에서 그린코프 생협과 재택 복지 워커즈가 공동으로 ‘사회복지법인 그린코프’ 를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8개 현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복지사업에 쓰이는 기금은 협동조합원들이 참가와 협동의 이념에 근거해 매달 100 엔씩 모아서 만든 참여형 지역 복지 재원으로 충당한다.    

[##_1C|1002819484.jpg|width=”161″ height=”22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복지 사업으로는 고령자와 장애인 개호(곁에서 돌보아 줌)사업, 육아 지원 사업, 배식 서비스 사업, 리사이클링 사업, 생계 곤란자를 위한 무료 또는 저렴한 요금의 숙박 및 시설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행정기관에서 위탁받은 사업도 실시하고 있다. 특히 2010년 5월, 홈리스와 빈곤층을 위한 자립 지원 시설 ‘포복관’을 후쿠오카 시내에 개설했다. 포복관은 홈리스 등이 생활하면서 상부상조하며 재취업을 준비해 지역 생활에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가정의 역할을 하고 있다.

[##_1C|1273762476.jpg|width=”250″ height=”17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포복관 건물 전경_##]
그린코프가 추구하는 또 하나의 가치는 공정무역이다. 공정무역을 시작한 것은 1985년이다. 당시 사탕수수 가격의 대폭락으로 필리핀 네그로스섬은 기아의 섬이 되어 버렸다. 긴급 지원을 위해 일본 생협과 소비자 단체가 협력해 ‘네그로스 캠페인’을 펼쳤다. 기금 기부는 일시적인 지원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네그로스에서 생산된 상품을 정당한 가격을 치르고 사기로 했다. 이 캠페인을 통해 네그로스섬의 마스코바도당과 바나나가 일본 소비자에게 전해지기 시작했으며, 이렇게 시작된 공정무역이 20여 년 동안 확대되어 인도네시아의 새우, 팔레스티나의 올리브오일, 동티모르의 커피로 확대되었다.

[##_1C|1216561669.jpg|width=”200″ height=”319″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
● 환경과 평화

그린코프는 ‘낭비하지 않고 물건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생활 방식’을 기본으로 1988년 ‘그린코프 환경 정책’을 제정해 다양한 친환경 활동을 펼쳐왔다. 그 중 하나는 4R 운동이다. 4R은 Refuse(불필요한 물건은 사지 않음), Reduce(쓰레기를 줄임), Reuse(반복 사용함), Recycle(가능한 것은 재생해서 사용함)을 뜻한다. 그린코프는 정책적으로 식품 트레이와 병을 회수해 재사용하며, 비닐봉지와 계란팩을 재활용해 사용하고 있다.

[##_1C|1329870013.jpg|width=”270″ height=”172″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재사용한 용기에 표기되는 마크 _##]
또한 재활용과 복지 사업을 결합한 활동도 펼치고 있다. 그린코프 물류센터 내에는 화이바 리사이클센터가 있는데, 이 곳은 다음의 세 가지 목적으로 운영된다. ▲자립지원 시설 포복관 입주자들의 취업훈련 ▲파키스탄 슬럼가 아동을 위한 학교 건립 기금 마련 ▲재활용과 재사용을 통한 회원 간의 교류 이다. 작업과정은 제품보관 → 1차 분류 → 2차 분류 → 일본 판매 → 파키스탄 판매 순으로 진행되는데, 재활용 사업의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 재활용품 생산량의 20%가 일본에서 판매된다.

[##_1C|1253360714.jpg|width=”400″ height=”22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2차 분류된 재활용품들_##]
1995년 그린코프 연합 제3기 총회에서 ‘부전결의’ 를 채택한 이래 이는 그린코프 평화운동의 기본 이념이 되었다. 매년 8월 8일 ~ 9일 양일간 종전을 기념하여 ‘공생ㆍ나가사키 자전거대회’를 개최하여, 조합원과 스탭 약 500명이 후쿠오카시에서 나가사키 원폭지까지 약 125km를 달리면서 평화와 생명의 소중함을 새긴다.

다음은 그린코프에 대한 더 상세한 이해를 돕기위해 카타오카 그린코프 전무이사와 나카노 그린코프 후쿠오카 물류센터장의 설명을 풀어 정리한 내용이다. (more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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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생활협동조합법 제1조를 보면 다음과 같이 목적이 나와있다. “생활협동조합은 국민의 자발적인 생활조직의 발달을 위해 국민의 생활안정과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다.”

또한 국제협동조합연맹은 1995년 100주년 기념대회에서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제도, 민주적 관리의 원칙,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의 원칙, 자율과 독립의 원칙, 교육ㆍ훈련ㆍ정보 제공의 원칙, 협동조합 간의 협동의 원칙,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등 7가지 원칙을 채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일본의 생활협동조합이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고, 단지 소비중심의 조직으로 전락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린코프는 여전히 판매조직이 아닌 원칙을 지키는 협동조합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조합원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을 소중히 생각하면서 모든 일을 결정해가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하는, 자녀를 위하는, 더 나아가 지역과 자연을 위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고 있다. 조합원들의 생각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그린코프의 비전이 수립됐다.

하지만 많은 생활협동조합에서는 조합원이 아닌 실무자들이 사업을 결정해 나가기 때문에 그 목적이 변질되어 나중에는 수익을 늘리는 데 가장 큰 가치를 두고 끝내 조합원은 손님처럼 취급한다. 그린코프는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서 이사장은 반드시 조합원 중에서 선출한다. 중요한 결정은 조합원들이 중심이 되어 하고 실무자는 그것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그린코프의 이사장, 이사들은 모두 보통의 어머니들이고 주부들이다. 일상적으로는 가정에서 생활하고, 일이 있을 때만 생활협동조합에 나와서 일하는데 다른 조합원들처럼 생활의 감성을 잃지 않기 위해 이런 시스템을 운영한다.

출발은 먹을거리

그린코프는 3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당시 일본사회는 고도 성장기여서 경제적 효율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그러다보니 먹을거리의 생산 및 소비 과정에서 자연이나 사람에게 해로운 것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래서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을 먹이고 싶었고, 결국 협동조합을 만들기로 했다. 그린코프에서 소비되는 상품의 상당수가 자체생산으로 만들어지고 있고, 상품개발도 조합원들이 직접하고 있다.

먹을거리에 관한 관심은 점차적으로 이와 연관된 환경이나 농업으로 확장되었고, 합성세제가 환경오염의 주요 원인임이 알려지자 자연비누만을 사용하자는 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합성세제를 사용하지 않는 생협은 드물다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에는 필리핀에서 발생한 기아사건을 접하고, 그 곳의 주요 생산물인 바나나와 설탕을 공정무역을 통해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자연산 새우를, 팔레스타인에서는 올리브 오일 등을 수입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와 관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복지, 평화까지 영역 확장

1994년 일본이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그린코프 역시 고령화로 인한 사회문제를 예측하고 고민했다. 그 결과로 지역복지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 전까지만 해도 먹을거리를 판매하는 조직이었으나, 복지사업에 진출하면서 생협 본래의 의미인 ‘생명을 소중히 하는 곳’으로 좀 더 지향점이 분명해졌다. 특히 홈리스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홈리스가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으나 곧 그것이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그린코프는 홈리스의 대부분이 채무 문제를 안고 있어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파악하고 대부사업을 시작했다. 조합원들의 자산을 소중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줘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더 나아가 홈리스가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하고, 구직을 지원하는 포복관을 설립하게 되었다.

이 외에도 그린코프는 평화운동을 하고 있는데 먹을거리가 지켜지기 위해서는 평화가 지켜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조합원들에게 평화가 운동의 기본 바탕임을 주지시키고 있다. 또한 원자 폭탄이 떨어진 날짜에 자전거를 타고 나가사키를 방문한다든지, 한국과의 역사적 관계를 반성하면서 평화여행을 하는 등 구체적인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린코프는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자’라는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사업을 진행해왔고 또한 결실을 맺었다. 앞으로 그린코프는 학교를 세울 계획을 가지고 있다. 편리성이 우선시 되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생명’과 ‘자연’이 우선시되는 사고방식으로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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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김준호 (전 교육센터 연구원)

● 연재목록
1.
일본 조이구락부의 특별한 예술가들   
2. 관광농원은 고기집이 아니다 
3. 15만 명의 ‘무조건 연대’, 30여 년이 흐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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