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공정여행을 떠났는가

2011년 1월, 공감만세의 필리핀 공정여행에 참가한 동화작가 이선희님의 여행 에세이 ‘편견을 넘어’를 12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공감만세는 공정여행을 진행하고 있는 청년 사회적기업으로 희망제작소의 청년 소셜벤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희망별동대 1기를 수료했습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조금 더 많은 분께 공정여행을 알리고, 또 다른 여행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견을 넘어 (1)  나는 왜 공정여행을 떠났는가

여행은 서른을 맞이하는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아무 것도 이룬 것 없이 서른을 맞이하는 자신이 스스로 애처로웠다. 번듯한 직장이 없어도, 결혼하자고 매달리는 남자가 없어도, 씩씩하게 서른을 맞고 싶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스물아홉 2월에 직장을 그만두면서 계획했던 건 인도여행이었다.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인도여행 계획을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는데, 결국 나는 떠나지 않았다. 이유는 오로지 하나. 두려움이었다. “여자 혼자 인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반응이었고 “그래, 떠나라!” 간혹 한두 명이 이런 반응을 보였다. 자꾸만 내 발목을 붙잡았던 것은 호객행위가 심하다더라, 소매치기가 많다더라, 성추행범도 많다더라, 주는 물은 마시면 안 된다더라 등 내 간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일화들, 소문들.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하든, 내가 절실했으면 갔을 것이다. 결국 떠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떠나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1년을 골방에서 보내고, 이제는 절실함이 생겼다. 서른. 그 절박함 앞에 나는 이번에는 정말 떠나자고 마음먹었는데 그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공정여행이었다.

[##_1C|1009330166.jpg|width=”500″ height=”37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결국, 나는 떠났다. 2011년 1월 11일, 폭설이 내린 인천공항. 비행기는 제설작업으로 인해 약 한 시간 늦게 이륙했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사진 속의 비행기가 아니라 필리핀의 국적기. 공정여행의 원칙1이란다. 모든 여행경비가 여행하는 나라의 정부와 지역과 지역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돈을 쓸 것! (사진: 루손섬 여행학교 참가자 이후성)


자주 가는 카페에서 북촌 공정여행 홍보글을 보고, 공감만세 카페에 가입을 했더랬다. 잘 알지도 못하고, 알아볼 의지도 별로 없었음에도 공정여행이라는 말이 주는 낯섦에 호기심을 갖고 있던 터였다.

어느 날 공감만세 카페에서 날아온 필리핀 공정여행 공지글. ‘편견을 너머-루손섬 여행학교’ 제목에서 공정함이 팍팍 느껴진다. 게다가 학교라니, 뭔지 모르겠지만 배움을 얻을 것도 같다. 일정을 살펴보았다. 필리핀 국립대학 호텔에, 슬픈 식민지의 기억을 걷고, 세계문화유산을 복원하고, 예술인 마을에서 체험을 하고, 세계 3대 빈민지역에서 홈스테이를 한단다. 리조트에, 해양레포츠에, 사파리 투어에, 마사지를 받는 여행과 차원이 다르다. 딱, 내가 원하는 여행이다.

내가 원하는 여행. 여행경비를 쉽게 마련할 수 없는 입장에서 한 번 여행에 참 많은 기대를 거는 것이다. 가격 대비 경험의 질을 높이고 싶었다. 500만 원으로 인도여행 6개월을 계획했던 나는 오래 있으면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배움을 얻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가격 대비 경험의 질, 상(上). 이런 짧은 소견. 그런데 필리핀 공정여행은 14박 15일에 199만원. 싸지 않다. 공정여행이라더니, 수수료를 많이 남기나? 그럴 것 같진 않은데.

게다가 필리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필리핀에서 볼 건 휴양을 위한 해변이 다가 아닌가? 몇가지의 불만족과 의심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공정여행을 끝내 선택한 건, 그 자세한 일정표 때문이었다. 무려 7장에 달하는 일정표 안에는 내가 모르는, 필리핀 사회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다지 관심 없는 필리핀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로 한 사회에 대해서 경험하고 돌아오는 것은 분명 큰 가치가 있을 것 같았다.

여행 참가비를 완납하고, 오리엔테이션을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대전으로 오란다! 사무실이 대전에 있단다! 왠지(사실은 왠지가 아니지만) 의심스럽고 실망스럽고 귀찮았다. 하지만 내가 가려는 여행이 무엇인가? 공정여행이 아닌가? 공정여행을 떠나려는 나도 공정해야 할 것 같다. 괜한 의심과 실망과 귀찮음을 버리고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기 위해 대전행 버스를 탔다.

공감만세 사무실로 향하는 길은 잔뜩 내린 눈이 꽁꽁 얼어붙어 미끄러웠다. 위치를 찾지 못해 전화했더니 공정여행 진행자가 함께 밥을 먹자며 큰 길에서 만나자고 한다. 횡단보도 앞에서 두 친구를 기다리려니, 왠지 저들일 것만 같은 두 청년이 길에 주저앉아 계신 할머니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신호가 바뀌고 나는 길을 건너 그들을 향해 갔다. 빙판길에 할머니께서 넘어지신 것이다. 공감만세 두 청년은 할머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기어이 할머니를 차로 모셔다 드렸다. 맞다. 이들이 공감만세 공정여행 진행자들이었다.

여행 참가자는 15명이었는데 오리엔테이션 참가자는 절반도 안 되는 7명이었다. 대전 거주 3명, 청주 거주 2명, 인천 거주 1명과 성남에 거주하는 나. 아, 오지 않아도 됐을 것을 괜히 공정 결벽증에 걸려 온 것인가, 후회가 살짝 파도쳤다. 게다가 무지 서먹하다. 커플 둘은 여행 가서도 보기 싫을 것 같고, 선생님 둘은 깐깐할 것 같고, 영상 찍는다는 친구는 무뚝뚝할 것 같고, 공대 다니는 친구는 가벼울 것 같다. (나는 편견으로 똘똘 무장한 상태였다!)

[##_1C|1329153293.jpg|width=”500″ height=”338″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

   필리핀의 마닐라만이다. 아직 여행은 시작하지도 않았다. 이 풍경은 곧 또 다른 풍경으로 이어진다. (사진: 이선희)    

진행자들은 공정여행과 필리핀 사회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여 발표하고, 지난 공정여행 참가자들이 찾아와 생생한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사실 여기에서 마음이 훅 끌렸다.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이 아빠와 함께 필리핀 공정여행에 다녀왔다며 들려준 경험담은 아무런 꾸밈없이 아이가 보고 경험하고 느낀 그대로 쓰여 있었는데, 여행을 통해 아이만큼만 느낄 수 있다면 성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따갈로그어(필리핀 공용어)를 맛보기로 배우고, 여행에 대한 질의응답 등을 한 뒤 오리엔테이션은 끝이 났다.

여전히 어색한 참가자들과 인천공항에서 보자는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 이 여행, 즐거울까? 마음이 심란하다. 

글_이선희
가늘고 오래 공부한 끝에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다방면에서 부족함을 절감, 불꽃 튀는 경험을 원하던 중 공정여행에 반해 청년 소셜벤처 공감만세의 일원이 되었다.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북촌을 여행하며 아이들이 스스로 동화를 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월간 토마토에서 어른들이 읽는 동화를 연재중이다. 
● E-mail: sunheemarch@gmail.co?m  ● Facebook: www.facebook.com/sunheemarch

공감만세는
‘자유롭게 고민하고 상상하며 길 위에서 배우는 청년들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 라는 구호 아래, 대전충남 지역에서 ‘최초’로 법인을 설립을 한 청년 사회적기업이다. 현재 필리핀, 태국, 제주도, 북촌, 공주 등지에서 공정여행을 진행하고 있으며 공정한 여행이 필요한, 공정한 여행을 실현할 수 있는 지역을 넓혀갈 생각이다. 공정함에 감동한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보자.  ● 홈페이지: fairtravelkorea.com  ● 카페: cafe.naver.com/riceterrace

  

● 연재 목록        
1. 나는 왜 공정여행을 떠났는가
2. 필리핀 ‘골목길 미소’에 반하다

Comments

“나는 왜 공정여행을 떠났는가” 에 하나의 답글

  1. 사회적기업가가 꿈 입니다.
    희망제작소의 무궁한 발전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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