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제’가 ‘우리 문제’일 수 있을까

‘사회혁신이란 무엇인가’. 여전히 어려운 질문입니다. 일찍이 ‘사회혁신’을 국내에 소개하고 연구해온 희망제작소가 작년 11월에 열었던 포럼의 질문형 제목 ‘사회혁신이란 무엇인가’(바로가기)는 우리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활동가들도 이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하거나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사회혁신’이라는 단어 자체는 익숙하지만 실제로는 사회혁신의 정의와 의미 자체가 모호하고 공유된 정의가 없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참고)

희망제작소는 올 여름 도봉구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혁신 아카데미(바로가기)에서는 캐치프레이즈를 ‘뜬구름만 잡지말고 사회혁신을 잡아봐’로 정했습니다. 도봉구가 위치한 서울 내 사례들을 살펴보며, 가까운 거리에서부터 시작해 사회혁신을 정의해보는 과정으로 구성했습니다. 본 글에서는 2019년 7월부터 8월까지, 8주간 진행한 도봉구 청년 사회혁신 아카데미에서 다뤄진 사례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어려운 문제를 쉽게 푸는 것

사회혁신을 광의적으로 정의하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슬로워크(바로가기) 창립자이기도 한 임의균 스티비 대표는 “사회혁신은 ‘어려운 문제를 쉽게 푸는 것”이라고 말 합니다. 디자인과 브랜딩과 같은 솔루션으로 사회문제를 접근해온 슬로워크는 어렵고 복잡한 사회문제를 사람들이 공감하기 쉽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슬로워크가 해온 작업들을 보면,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됩니다.

ⓒ슬로워크
ⓒ슬로워크

A4 용지 한 장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원이 필요한지 한 장의 그림으로 와닿게 하는가 하면, 우리 식생활과 밀접한 돼지고기, 과일, 커피 등이 운반되는 데 소비되는 탄소량을 인포그래픽으로 표현해 환경 문제를 딱딱하지 않은 언어로 환기시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또 디자인 견적서에 국제 표준으로 규격을 사용하거나 인쇄감리를 같이 가서 사고율을 낮추는 등 불필요한 인쇄과정을 최소한 줄이는 친환경적인 프로세스를 권장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슬로워크

우리 사이 보이지 않는 선 잇기

문제를 풀기 위해서 ‘관계’가 필수적이라고 모두 입을 모아 말합니다. 그리고 그 관계는 우연히 발생하기도 합니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개발자를 만났다면 어플리케이션이라는 솔루션이 나왔을 거에요.” 서울시 교통약자 환승지도를 만든 홍윤희 협동조합 무의(바로가기) 대표는 우연한 기회에 서비스디자인 교수를 만났고, 이를 계기로 장애인 입장에서 보기 힘든 지도나 안내문을 바꾸는 역할을 했습니다.

ⓒ협동조합 무의

이런 만남 자체를 기획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점을 잇다(connecting dots)’라는 뜻을 가진 씨닷(바로가기)은 국내외 사회혁신가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씨닷을 통해 아시아 사회혁신가들이 만나는 장이 열리고, 우리나라 사회혁신 사례들을 해외에 소개됩니다.

ⓒ씨닷

작년에는 ‘언유주얼 서스펙트’를 기획해 서울 곳곳에서 사회혁신가들이 우연히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네트워크를 통해 단단한 생태계를 형성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씨닷은 다양한 관계를 조화롭게 기획하는 세심한 방법들을 전했습니다.

ⓒ씨닷

행정 절차 거꾸로 뒤집기

사회혁신에서 중요한 것은 ‘관계’이고, 사회혁신의 관계를 구성하는 핵심 주체 중 하나는 ‘행정’입니다.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들에게는 절차를 중요하게 여기는 행정과 관계 맺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간 행정은 법적 근거 및 담당부서, 예산 책정 등이 수반돼야 해결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회혁신은 행정 절차를 거꾸로 뒤집기도 합니다. 서울 금천구 청춘삘딩(바로가기)은 청년 공간이 없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동네 청년들이 먼저 사업을 제안하고 직접 공간을 찾아 주민참여예산을 통해 예산을 확보한 사례입니다. 이후 담당부서도 관련조례도 생겼습니다.

‘아래로부터 위로’ 생긴 청춘삘딩은 독산동의 랜드마크로 어느 청년 공간보다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도봉구 청년들과 현장탐방으로 방문했을 때, 청년들은 부엌, 모임공간, 스튜디오 등으로 층층이 꾸려진 청춘삘딩에 수시로 드나들고 있었습니다.

벽 군데군데 모임을 알리는 홍보물은 생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소셜 다이닝, 취향 공동체, 소규모 공연 등 행정 절차를 거꾸로 뒤집을 만큼 청년 공간이 필요했던 청년들이 동네 청년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

‘내 문제’가 ‘우리 문제’일 수 있을까

그만큼 사회혁신에서는 당사자가 중요하지만, 당사자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사회혁신이 아닐 것입니다.

청춘삘딩은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 세대의 문제까지 해결하는지를 지역에서 수시로 소통하며, 뒤편에 위치한 재래시장에 대한 잡지를 만들어 지역 활성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도맡고 있습니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동조합 무의가 만들어낸 변화는 유아차 이용자에게도 유용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환승지도를 넘어 장애인 모빌리티 산업이나 옥션 케어플러스 등 장애인을 복지 수혜자가 아닌 서비스 수요자로서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내 문제’에서 출발을 하지만 ‘우리의 문제’로 범위를 확장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사회혁신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 글: 유진 시민주권센터 연구원 | jinryu@makehope.org
– 사진: 시민주권센터, 슬로워크, 씨닷, 협동조합 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