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열심히 살았을 뿐-지오(가명)

셋 중 한 가구는 혼자 삽니다. ‘홀로’가 외로움의 동의어는 아닙니다. 곰돌이 푸우는 혼자 살지만 외롭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혼자이면서 연결될 수 있을까요? 희망제작소는 지난 4월~6월 1인가구 에세이를 공모해 ‘기쁨과 슬픔’을 나누었습니다. 이 글을 쓴 지오(가명) 씨는 서울에 사는 40대 후반입니다.

다만 열심히 살았을 뿐

이런 글을 써본 지가 언제였던가. 아이가 둘이라 주말까지 꽉 채워 살며 전화도 조용히 받을 수 없는 동생네보다 난 훨씬 여유로울 거 같지만 실상 나를 돌아보고 잠시 멈춰 하늘을,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나무를 충분히 감상할 시간이 없다. 혼자이지만 삶은 똑같이 바쁘고 바쁘고 바쁘다.

누구나 아는 대기업에서 10년을 넘게 일하다 홀연히 저개발국가로 자원봉사를 떠났다. 급여는 낮아지고, 기업에서 NGO로 왔기에 잘난 척 할 거라는 낙인도 있었지만, 난 퇴사 후 또 10년이 넘게 사회적경제 안에서 자리를 잡아갔다. 그 사이 40살이 넘었다. 누구의 개입도 없이 자유롭게 내 인생을 내가 선택하고 싶어 단행했던 퇴사는 환희와 두려움, 고독감을 동시에 안겨줬다.

네팔과 르완다에서의 시간들은 좋았다. 하지만 국제개발의 한계와 문제들을 직면하며 모든 것을 걸었기에 모든 것을 잃은 듯 30대 후반에 길 잃은 어린 양이 되었다. 10년 넘는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 내가 목표 지향적이고 분석적이며 효율적인 방법을 끊임없이 찾는 speedy한 k-직장인으로 개조되었음을 여실히 깨닫게 됐다. 직접 사업을 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고집스럽게 내가 원하는 삶을 찾아 한눈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던 거 같다. 그런 사이 건강은 안 좋아졌고 회사 다닐 때 수술했던 다리는 더욱 불편해졌다. 생리도 불순하고 머리카락도 가늘어지며 얼굴도 푸석해져 부모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건강상 도저히 다시 개도국으로 갈 수 없어 한국으로 돌아와 이곳에서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친구들과 옛 동료들을 마주했다. 아직도 그 회사에서 만년 부장인 동기들, 결혼해 아이가 둘인 친구. 서로 놀랍고 반가워 술 한잔을 기울인다. 술 참 잘 했었는데… 지금은 심한 두통과 속이 좋지 않아 술을 거의 못하는 사람이 된 나. 옛날 그때처럼 “에이 한잔해” 하는 말이 참 배려가 없다 느껴진다. 그만큼 우리는 서로 너무 다른 길을 걸어 왔구나.

한국에서 병원을 다니고 조금씩 바뀐 대중교통에 익숙해 지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그렇게 한참을 지냈다. 조금씩 여기 사람이 되어 가며 한국이 나와 맞지 않다고 느껴 떠났던 이곳에서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난 지금껏 무엇을 한 것인가. 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다시 제자리인가. 그냥 뭘 위해 살아야 할지 캄캄했다. 우울함이 몰려오고 삶이 의미 없게 느껴졌다. 참으로 고독하게 내 삶을 찾아 열심히 고민하고 부딪힌 죄밖에 없는데 결국 난 지금 혼자이고 주변은 다 가족을 이루며 잘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국에 들어온 지 벌써 7년째가 되어 간다. 사회적기업, 중간지원기관들을 잠시 거치며 2020년부터 초기창업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경영 컨설팅을 시작했다. 사회적, 환경적 미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업들이 초기부터 제대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기틀과 사업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는 일이 내게 맞고 매우 보람 있다.

엄한 부모님 밑에서 가난하게 자라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 고생하신 부모님께 효도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옷, 물건부터 대학 학과까지 모두 나를 위한 내 선택이 없었고, 행복하지 않았으며, 내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을 몰랐다. 아마 언젠간 터질 풍선처럼 평생 그렇게 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폭발의 시작이 퇴사였고 그 이후 내 행보는 폭주 기관차였다. 그냥 가족의 시야를 벗어났으니. 늦게 배운 도둑이 밤새는 줄 모르듯이 미친 듯이 자유를 즐겼으나 빠르게 정답이 아님을 알았고 이내 또 다른 길을 찾았으나 뭐든 제때가 있는 법. 또 그렇게 미친 듯이 살 수 없는 나이와 체력이 되었음을 금세 알아차렸다.

나는 스스로 만족하는 삶의 기준이 높다. 현실과 타협해 회사를 계속 다니고 가족을 이루었다면 또 다른 행복을 느꼈겠지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갈망과 갈증 때문에 불행했을지 모른다. 적당히를 몰랐던 나란 사람은 본래 성향도 그러했으나 선택의 자유와 솔직함이 수용되지 않는 성장 환경이 복합적으로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환경과 성향은 선택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 그때 부모님의 방식은 최선이었다고 믿으며, 늦은 시기에 나를 위한 삶을 과감히 선택해 결국 그 일을 찾은 지금의 나에게 정말 고생했고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여전히 가지 않은 여럿이 복작이는 가족의 삶이 궁금하고 때론 부럽지만 난 지금의 가볍고 단출한 그리고 남에게 기대지 않는 삶이 나를 바로 서게 해 감사하고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 회사를 나올 때 생각했던 나만이 아닌 주변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은 여전하다. 그런 일을 계속하며 건강한 사회일원으로 나이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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