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소시지가 미국 소시지를 이긴 것처럼

<박원순의 희망탐사 43>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곳에 섬진강 화개장터가 있다면, 경상도와 충청도를 잇는 다리는 ‘솔뫼농장’이다. 충북 괴산군과 경북 상주시가 접한 곳에 위치한 솔뫼농장은 충북도민과 경북도민이 함께 어우러져 운영하는 유기농장이다. 이 농장의 대표 이형근 씨는 상주 시민이고, 그 집 바로 앞에 사는 정천복 전 대표는 충북 괴산군민이다. 서로 다른 도민임에도 이들은 잘 어울려 산다.

또 솔뫼농장의 김의열 총무와 김기열 씨는 귀농인이다. 물과 기름처럼 서로 어울리기 어렵다는 귀농인과 토착주민들이 서로 형, 아우하며 잘 지낸다. 또 누구는 불교신자인데 누구는 가톨릭이고 또 다른 이는 기독교 신자이다. 농담으로 누구는 조상신을 믿는단다. 믿는 신앙도 제각각인 것처럼 이들이 생산하는 농산물도 제각기 다르다. 그리고 모두가 간부들이다.

하늘아래 한 마을, 한 농장, 한 마음이다. 이 아름다운 마을 사람들을 찾아가 보았다.(설명은 주로 김의열 총무가 담당했다. 장대하고 늠름해 보인 그는 아이를 다섯 명이나 낳아 기르고 있다).

경상북도 상주와 충청북도 괴산에 걸친 공동체 마을
[##_1R|1311919240.jpg|width=”449″ height=”337″ alt=”?”|▲ 박원순 변호사에게 농사를 설명하는 김의열 총무. ⓒ희망제작소_##] 솔뫼농장은 1994년에 다섯 가구로 처음 시작했다. 이 지역에서 유기농을 시작한 정천복 선생이, 지역 친구들과 농약 중독을 경험한 뒤 농약을 사용할 수 없었던 이들과 함께 솔뫼농장을 만들었다.

당시 유기농을 한다고 하면 관에서나 주변에서 빨갱이 취급하던 시절이었는데, 이들은 여러 사정 상 유기농을 할 수밖에 없었고, 유기농이라는 공통분모로 친목단체 비슷하게 솔뫼농장을 시작했다. 이후 조금씩 판매의 필요도 생겨 ‘한살림생협’과의 관계도 맺어졌다. 그리고 청주 예수회 정일우 신부가 이쪽으로 이사를 와서 돈도 끌어다주고, 판로도 알아보는 등 적극적으로 농장을 도와주었다.

친목단체 성격이 강했던 솔뫼농장은 이렇게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1996년 초에 영농법인으로 새로 발족했다. 농장터도 공동으로 사고 정부지원도 받아 건물도 지었다. 소비자들과의 관계도 늘어나고 여름마다 대학생이나 소비자체험 등 방문객도 늘어났다.

솔뫼농장이 있는 마을은 도 경계에 접해있다. 모두 친구 사이인데 한 쪽이 경상북도 상주이고 또 한쪽은 충북 괴산이다. 나중에는 귀농자도 들어왔다. 그래서 귀농자와 토착민이 함께 모였다. 종교도 다 제각각이다.

많을 때는 전체가구가 15가구까지 되었지만 정착하기가 힘들어서인지 일부 귀농자가 떠나 지금은 7가구가 살림을 한다. 예수회 공동체가 들어와 솔뫼농장을 함께 운영하고 있고, 어떤 수녀님이 결손가정의 아이들 15명을 모아놓고 공동체를 하고 있다. 많은 우여곡절과 다툼이 있었지만 민주적인 운영 방식으로 이런 갈등을 극복했다.

김의열 총무는 “솔뫼농장은 다른 공동체처럼 특출한 사람이 끌어간 것이 아니고 회장도 2년마다 한 번씩 돌아가면서 합니다. 여성도 회장을 한번 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지역 사람이 와서 회의를 관찰해보고 너무 민주적이라고 놀랐을 정도”라며 솔뫼농장의 민주적인 운영을 자랑했다.

일곱 가구가 만드는 친환경 다품종 소량의 농산품들
[##_1L|1390182219.jpg|width=”342″ height=”460″ alt=”?”|▲ 솔뫼농장의 작은 가공공장. ⓒ희망제작소 _##] 한 농장으로 묶여 있지만 이들이 생산하는 작물은 각기 다르다. 정천복 회원은 유기농 고추와 토마토, 인삼을 생산하고 김철규 이사는 유정란과 오미자, 벼농사를 짓는다. 특히 임산물 채취에 도사인데 이 곳 야산이 바로 백두대간의 한 자락이어서 송이, 능이버섯을 포함해 웬만한 임산물이 다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이형근 대표는 유기농 토마토, 고추, 벼농사를 하며, 한우 7마리를 키우고 있다. 김의열 총무는 여러 가지를 해보다가 지금은 수세미 농사를 하고 있다. 수세미를 가지고 목욕탕과 미용실, 학교 학생회(쿠션)에 납품한다고 한다. 작년에는 ‘한살림’에서 800평의 계약재배를 하기도 했다.

재배하는 작물은 각기 다르지만 이들은 일을 공동으로 한다. 농장회원들은 공동으로 못자리를 만들어 농사를 짓는다. 그리고 직책을 나눠 공동으로 농장일을 한다. 가공부장, 수도작분과장, 야채1분과장(고추, 토마토), 야채2분과장(고구마, 호박 등), 품질인증팀, 농장기계 및 시설관리 담당 등이 그것이다.

7가구밖에 되지 않아 모든 회원이 간부고, 모두 공동으로 맡은 일을 해나간다. 그렇게 생산한 농산물을 가공하는 것도 회원들의 일이다. 가공은 독립된 일이기 때문에 회원이라도 인건비를 준다고 한다. 그렇게 벌어들인 매출액 중 일부는 지역 사업에 많이 투자한다. 김의열 총무의 말이다.

“정관상으로는 연말에 배당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지역복지사업에 많이 쓰고 있습니다. 여름과 겨울에, 대학생들이 농장에 와서 보름 정도 지역학생들을 상대로 공부방을 운영하는데 그 공부방의 시설지원비와 겨울 난방비를 지원합니다. 회원들의 농산물을 판매하면 5%를 공제해서 농장운영에도 쓰고 공제액의 10%를 지역에 환원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가정이나 시설, 아프가니스탄 난민, 북한 용천폭발사고 피해자들을 지원하기도 했죠.”

농산물을 가공해서 벌어들이는 매출액은 작년에 8000만 원이었고, 금년에 1억 원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에는 소극적으로 한살림이 요청한 것만 했는데 이제 자신감이 생겨 올해부터 생산량도 늘리고 솔뫼농장 선전도 더 하고자 한다. 다만 공장 운전자금이 문제라고 한다.

“공장은 정부지원을 받아 지었는데 문제되는 것이 운전자금이었습니다. 제품의 원료비 등 8000만 원정도 묶여 있습니다. 그런데 인건비, 시설 보완비, 차 할부금 등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고추장 등도 1년간 숙성해야 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습니다. 돈이 바로 바로 회전이 안 되고 있는 것이죠.”

한국 농업, 잔뿌리가 강해야 이긴다
[##_1R|1119040926.jpg|width=”429″ height=”321″ alt=”?”|▲ 소량이지만 경쟁력있는 농산물가공품을 생산할 수 있다. 솔뫼농장의 장독. ⓒ희망제작소 _##] 하지만 이들은 가공 식품을 만드는 데 희망적이다. 그 희망은 이들이 내세우는 ‘잔뿌리 강화론’, 즉 가공 농산물의 브랜드화에 기인한다.

“독일에 소시지 브랜드가 3000개가 된다고 합니다. 낙농농가가 자신의 브랜드를 가지고 시장에 내놓는 것이죠. 사실 미국 소시지가 가격이 싸지만 독일 수출을 뚫지 못한 것이 독일 지역의 작은 브랜드가 워낙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결국 소농을 없애고 규모화 하느냐 아니면 잔뿌리들을 키워 강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규모화는 미국이 키워놓은 시장에 우리가 똑같은 방법으로, 미국이 바라는 방식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독일 모델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경상도 고추장, 전라도 고추장 맛이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는 소시지 강국은 아니지만 고추장 강국은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소농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제도적, 행정적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잔뿌리 강화론’은 소농에서 생산하는 가공 생산물의 브랜드화이다. 규모화, 일원화시키기보다 각기 다른 생산물이 소자본으로 생산될 때 다양성이 살아나고, 그 결과 경쟁력은 더욱 커진다는 논리다.

현재 솔뫼농장에서는 엿기름, 고추장, 메주, 된장, 조청, 호박즙 등을 만들고 있거나 앞으로 만들 계획이다. 그리고 송이버섯과 능이버섯 등 자연산 버섯을 가미한 고추장을 만들 계획이다. 고추장의 브랜드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김의열 총무는 이런 다양한 브랜드가 나올 때 경쟁력이 생긴다고 믿고 있다.

“집집마다 간장 맛이 다 다르지 않습니까. 독일과 미국 사이에 FTA 같은 것이 체결되었는데 독일포도주가 1000여 종이 미국으로 침투해 들어갔다고 합니다. 미국에 유리할 것처럼 예상되었지만 반대의 결과가 나타난 것이죠.”

김의열 총무는, 그러나 현재 식약청과 보건복지부에서 관장하는 가공식품 생산에 대한 기준이 너무 까다롭고, 소농을 살리는 것보다는 규모화를 유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설비는 식약청에서 요구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기본이 수억 원인데 우리가 할 수가 없습니다. 일부러 규모화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죠. 이런 제한을 과감하게 철폐하고 환경, 위생, 포장 등 지도를 강화해 주는 식으로 브랜드를 육성해 나가고 농업의 잔뿌리를 키워가야 합니다. 그러면 농업이 몰락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 가격보다 우리 맛을 중시하는 소비자층이 있습니다. 생협이나 직거래단체들이 점점 소비자층을 넓히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사례를 보면 판매유통 네트워크가 엄청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도적 장치만 마련된다면 이마트 소비자들도 안전하게 솔뫼농장의 농산물을 사먹을 수 있다고 봅니다.

위생상의 문제는 관리청에서 잘 지도하면 해결될 것입니다. 이런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 소비자와 직접 만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식약청과 보건복지부가 담당하는 것을 농림부로 이전하면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규모화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도계장이다. 닭으로 닭소시지를 만들 수도 있지만 현재의 도계 시스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도계장에서는 일정 정도의 규모가 되어야 도계를 할 수 있다. 소규모 도계는 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도계장을 이용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도계를 하면 그것은 불법이 된다. 솔뫼농장은 그래서 100마리든, 500마리든 소규모로 도계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건은 쉽게 하되 지도는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진실한 관계, 그리고 진실한 소통

솔뫼농장의 잔뿌리 강화론은 우리 농업이 나아갈 한 방향을 말해준다. 그 외에도 솔뫼농장은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방향으로 우리 농업을 살려나가고 있다. 현재 솔뫼농장은 서울 도봉구, 강북구, 노원구의 한살림 소비자 조직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결연을 맺은 지 이미 7년째이다. 생산지 방문도 이뤄지고 있고, 체험농장도 임대해주고 있다. 또 대보름잔치, 단오, 가을의 벼 베기 체험, 메뚜기 잡기, 추수감사제 등을 할 때 소비자들을 초청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솔뫼농장은 서울 역삼동 성당의 환경분과 아주머니들과도 자매결연을 논의하고 있는 등 소비자들과 직접 만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와중에 충북 청주에 ‘솔뫼를 사랑하는 사람들(솔사모)’이란 모임이 생겨났다. 여름과 겨울에 대학생들이 와서 지역의 아이들 70여명을 모아서 교육시키고, 솔뫼농장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내려와서 도와주기도 한다.
[##_1L|1049627461.jpg|width=”382″ height=”288″ alt=”?”|▲ 공동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솔뫼농장. ⓒ희망제작소 _##] 현재 솔뫼농장은 ‘솔사랑장터’라는 홈페이지도 운영한다. 쇼핑몰처럼 운영하고 있는데 아직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다. 인터넷 장사는 관심을 얼마나 기울이느냐에 따라 영향을 크게 받는데, 생산물이 나오는 철이 되면 회원들에게 메일도 보내고 편지도 보낼 예정이다.

“도시에서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면 덜 외롭습니다. 그 사람들도 좋은 마음, 편한 마음으로 돌아가고 우리도 덩달아 즐거운 거죠. 이런 과정에서 팬들도 생겨납디다.”

솔뫼농장이 바라고 있는 것은 진실한 소통이다. 농사를 지으려면 정성이 필요한 것처럼, 또 유기농산물은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믿음을 근거로 하는 것처럼, 솔뫼농장은 서로 믿는 사회를 만들어간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관계의 진실성, 이것을 해보고 싶습니다. 단순한 거래관계나 상업적인 관계가 아니라 좋은 마음, 진실한 마음으로 농사를 짓고 사먹는 사람도 우리 식구라고 하는 마음으로 일한다면 조금씩 달라질 것입니다.”

진실한 관계, 진실한 소통이 생겨날 때 유기농업은 더욱 그 뿌리를 튼튼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진실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솔뫼농장의 회원들은 논과 밭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면담일시 – 2007년 5월 19일 오전 12시

면담장소 – 충북 괴산군 청천면 이평리 180-1

면담인사 – 이형근(솔뫼농장 대표)
김의열(솔뫼농장 총무)
정천복(솔뫼농장 기계설비.시설관리)
김기열(솔뫼농장. 유정란)
김천규(솔뫼농장. 유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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