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011년 1월, 공감만세의 필리핀 공정여행에 참가한 동화작가 이선희님의 여행 에세이 ‘편견을 넘어’를 12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공감만세는 공정여행을 진행하고 있는 청년 사회적기업으로 희망제작소의 청년 소셜벤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희망별동대 1기를 수료했습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조금 더 많은 분께 공정여행을 알리고, 또 다른 여행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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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을 넘어 (9) 마닐라 빈민지역 바세코의 검은 웅덩이 

다시 마닐라로 돌아왔다. 열흘 가까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유유자적 하던 시간들이 아스라이 느껴졌다. 도시로 돌아왔지만 우리는 도시의 편리함을 느낄 수 없는 곳에 있었다. 우리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 세계 최대 빈민 지역의 하나인 바세코(Baseco).

렌터카를 타고 케손시티(Quezon City)에서부터 시내를 달려 바세코로 향하는데, 중간에 딱 내리고만 싶었다. 무엇을 보게 될지 모르겠지만, 곧 보게 될 그 무엇을 보는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 무엇을 보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할지 어떤 마음을 먹을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 무엇을 받아들이기보다 내치고 도망칠까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바세코는 필리핀 공정여행을 신청할 때 가장 보고 싶은 곳이었다. 가난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 때문이다. 가장 보고 싶었지만, 가장 걱정되는 곳이기도 했다. 여행을 시작할 무렵, 필리핀 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며 공정여행을 인솔하고 있는 한 코디네이터에게 내 이런 심정을 고백한 적이 있다. 그때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부터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더럽고, 가난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단번에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마세요. 관심을 갖고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 말에 큰 안심이 됐다. 내 걱정이 참으로 어리석게 느껴졌다. 크게 숨을 쉬었다. 꿀떡 침을 삼켰다. 의연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렌터카는 서서히 바세코로 진입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는 한 이층 건물로 들어갔다. 바세코의 주민조직인 카발리캇(Kabalikat, 따갈로그어로 ‘어깨 걸고’라는 뜻)의 사무실이라고 했다. 대여섯 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책상과 플라스틱 의자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안쪽에는 냉장고와 싱크대도 있다. 벽에는 커다란 녹색 칠판과 낡은 책들이 꽂혀져 있는 책장이 있다. 이곳은 아이들의 공부방으로 이용되는 장소이기도 하단다. 여행자들이 온다고 공부방 아이들이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고 한다.

”사용자칠판이 있는 쪽을 무대로 하여 우리는 그 반대편에 플라스틱 의자를 다닥다닥 붙여 앉았다. 초등학교 3~4학년쯤 돼 보이는 어린 아이에서부터 고등학교 1학년쯤으로 보이는 큰 아이까지 예닐곱 명의 아이들이 무대에 섰다. 아이들이 준비한 것은 뮤지컬이었다.

소품으로 사용된 고양이 가면과 왕관 덕분에 등장인물이 고양이와 왕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내용을 이해하려고 아무리 귀를 기울이고 눈을 크게 떠도 도통 어떤 내용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작았고 몸짓은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무척 수줍어했고 무척 긴장해있었다. 무대는 허름한 공부방의 칠판 앞 좁은 공간, 관객 역시 대단할 것 없는 여행자 한 무리일 뿐인데 아이들은 마치 대강당의 높은 무대에서 천 명쯤의 관객을 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앞에는 수줍은 아이들이 서 있었다. 아이들 눈에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어색하게 웃고 있는 우리가 보였겠지? 뮤지컬이 끝나고 우리는 박수를 쳤고 아이들은 공부방을 나갔다. 그리고 여행 코디네이터의 이런 얘기가 이어졌다.

“이 아이들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주목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오늘 처음으로 뮤지컬의 주인공으로서 사람들, 그것도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 앞에 서고 박수를 받은 것입니다. 오늘의 기억이 아이에게는 큰 자부심으로 남을 거예요.”

어째서 나는 한 아이의 작은 목소리만 듣고 굳은 몸짓만 보았을까? 어느 배우가 겨우 내뱉은 첫 대사, 어느 배우가 겨우 움직인 첫 동작이 아니라 말이다. 아이의 꿈을 좀 더 응원해주지 못한 뒤늦은 소심한 커튼콜.

카발리캇 오피스를 나와 바세코 마을을 돌아보기로 했다. 렌터카에서 내리자마자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으니 이제야 바세코와 첫 인사를 나누게 된 것이다. 카발리캇의 대표인 조지와 총무인 마이옛, 그리고 바세코에 사는 마리아라는 소녀가 우리와 동행했다.


우리는 수많은 집과 학교와 시장과 수공예 작업장과 바다를 돌아보았는데 그 모든 것을 잇는 길에는 썩은 물이 고인 웅덩이가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마치 골프 코스 곳곳에 파놓은 벙커처럼 말이다. 우리는 공을  자신의 발을 빠뜨리지 않기 위해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우리가 걷는 길은 더러는 한 명이 지나가기도 힘들 정도로 좁기도 했지만 아주 넓어지기도 했는데 그 큰 길에서도 우리는 한 줄로 걸었다. 마치 우리만을 위한 길이 따로 있는 것처럼, 우리 눈에만 보이는 길이 따로 있는 것처럼. 그곳 사람들은 슬리퍼, 더러는 맨발로 다니는데 반해 우리는 모두 단단한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우리 둘레에는 바세코를 둘러싼 담장만큼이나 높다란 담장이 쌓여 있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바세코에 있으면서도 바세코에 있지 않았다. 그 모습이 스스로 꼴불견 같아 보였지만 길을 벗어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쓰레기 해변, 대형 화재로 인해 무너진 집터, 피부병에 걸린 개들과 벌거벗은 아이들, 이런 장면들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 머리와 마음속에 재빨리 전달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웅덩이, 썩은 물이 고인 그 웅덩이가 이곳이 바세코임을, 우리가 그 바세코 안에 서 있음을 절실히 깨닫게 해주는 증인이었다. 길을 걷는 동안 몸도 마음도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바닥을 치면 오르게 되어 있고 꾹 누르다 보면 터지게 되어 있다. 도저히 그 상태로는 한 시간도 그곳에서 지낼 수 없을 것 같았나 보다, 내 마음이. ‘더러워지면 어때?’ 이런 마음이 들자, 졸아 붙을 대로 졸아 붙었던 마음이 한 순간에 탁 풀어졌다. 그래, 더러워지면 어떠냔 말이다. 더러워지면 씻으면 될 것 아닌가. 몸이 닳아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내 몸 무엇을 그리 아끼자고 꽁꽁 싸매고 벌벌 떠느냔 말이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마을이다. 거짓말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고 생각했다.


둘 셋 씩 짝을 지어 홈스테이에 들어가기로 했다. 한 집에 왜 이렇게 적은 인원을 집어넣나 의아했는데 끼앙안과 달리 바세코는 집이 작기 때문에 한 집에 많은 인원이 들어갈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여행을 하는 동안 마음을 터놓을 수 있게 된 친구와 한 집에 들어가게 됐다. 든든했다.

다들 짝을 지어 홈스테이 집으로 흩어지려는데 한 중학생이 인사랍시고 “살아서 돌아옵시다!” 했다. 바세코 주민들 누구도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하더라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중학생의 뒤통수를 딱 때려주고만 싶었다. 왜 저렇게 생각이 없을까 화가 났다. 우리가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여기가 못 살 곳도 아닌데 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 중학생의 무개념에 화가 났다. 하지만 어쩌면 다른 이유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음속에 꽁꽁 숨겨둔 ‘도망가고 싶다’라는 속내를 적나라하게 까발린 중학생의 정직함에 당황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묶게 될 집은 다니의 집이었다. 다니는 마흔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로, 배가 툭 튀어나오고 머리도 반쯤 벗겨진 모습이 옆집 아저씨 같이 친근하고 푸근한 인상을 풍겼다. 우리는 어미닭을 쫓는 병아리처럼 그의 뒤를 쫑쫑 따라갔다.

한참을 걸어 우리가 도착한 곳은 작은 구멍가게 앞이었고 그는 이곳이 여동생의 집이라고 했다. 자신의 집에는 잘 곳이 없으니 이곳에서 자면 된다는 것이다. 집 안에 발을 들여놓을 새도 없이 우리는 저녁 장을 보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공정여행 코디네이터는 홈스테이 집으로 흩어지기 전 한 팀마다 500페소씩 나눠주었다. 홈스테이 가족들과 함께 저녁 장을 보라며 말이다. 대신 쌀이나 조미료 등과 같이 홈스테이 집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사기를 권했다.)

이미 해가 져 어둑어둑 했다.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결국 아뿔싸, 앞서가던 친구가 웅덩이에 발이 빠지고 말았다. 어두웠지만 그녀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다니는 난감해 하더니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녀는 운동화를 벗고 발을 씻었다. 그리고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고 길은 여전히 컴컴했다. 다시 웅덩이가 나왔다. 커다란 웅덩이였다. 다니가 성큼성큼 웅덩이로 들어갔다. 다니는 우리의 손을 잡아주며 징검다리처럼 놓인 작은 돌을 밟고 지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다니라고 그 물이 더럽지 않았을까?
그런데, 나는 정말 더러워져도 괜찮은 걸까?

글ㆍ사진_이선희
가늘고 오래 공부한 끝에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다방면에서 부족함을 절감, 불꽃 튀는 경험을 원하던 중 공정여행에 반해 청년 소셜벤처 공감만세의 일원이 되었다.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북촌을 여행하며 아이들이 스스로 동화를 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월간 토마토에서 어른이 읽는 동화를 연재중이다. 
● E-mail: sunheemarch@gmail.co?m  ●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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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만세는
‘자유롭게 고민하고 상상하며 길 위에서 배우는 청년들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 라는 구호 아래, 대전충남 지역에서 ‘최초’로 법인을 설립을 한 청년 사회적기업이다. 현재 필리핀, 태국, 제주도, 북촌, 공주 등지에서 공정여행을 진행하고 있으며 공정한 여행이 필요한, 공정한 여행을 실현할 수 있는 지역을 넓혀갈 생각이다. 공정함에 감동한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보자.  ● 홈페이지:
fairtravelkorea.com  ● 카페: cafe.naver.com/riceterrace


● 연재 목록
1.
나는 왜 공정여행을 떠났는가    
2.
필리핀 ‘골목길 미소’에 반하다  
3. 여자 여섯 명, 수다로 지새운 필리핀의 밤  
4. 끼앙안, 천국보다 평화로운    
5. 이푸가오의 독수리   
6. ‘천상의 녹색계단’ 앞에 말을 잃다
7. 계단식 논은 왜 무너져내릴까
8. 탐아완 예술인 마을, 그리고 바나나
9. 마닐라 빈민지역 바세코의 검은 웅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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