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특강/후기] 우리는 왜 미술이 어렵다고 생각할까?

희망제작소는 평창동에서 성산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다양한 시민과 마포구 지역주민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한 연속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그간 시민참여, 고향사랑기부제를 주제로 한 세미나와 일상에서 변화를 일구는 활동가와의 대담 등을 진행했습니다. 또 명사특강으로 많은 시민을 만나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6일에는 김정헌 작가(4·16재단 이사장)와 함께 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 현장을 소개합니다.

희망제작소는 올해 시민의 십시일반 후원으로 공간기금을 마련하여 시민연구공간 희망모울을 조성했습니다. 이번 명사특강의 강연자로 모신 김정헌 작가는 한국 진보미술 진영의 민중미술 작가이자 현재 시민의 성금과 적극적인 격려로 창립된 4·16재단 이사장을 지내고 있습니다. 4·16재단이 세월호 참사를 되새기고, 인간의 존엄한 가치가 보장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듯이 김 작가는 일평생 미술을 통한 변화를 일구는 데 앞장서고 있는데요. 희망제작소는 지난 6일 김정헌 작가와 함께 ‘세상을 바꾸는 문화예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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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학교 다닐 때 미술 수업에서 좋은 점수 받으셨어요?”

김정헌 작가의 물음에 이날 자리에 참석한 시민들은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입시 위주 교육에서 예체능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한데요. 김 작가는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40년 가까이 미술교육 분야에 헌신했지만, 여전히 미술교육에 관한 물음을 안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한 일 중에 가장 실패한 게 ‘미술교육’이다”라고 일갈할 정도로 말이죠.

그도 그럴 것이 과거나 현재나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미술은 ‘예체능’의 일부로만 치부되는 동시에 미술을 가르치는 교육방식 또한 매우 경직돼있기 때문입니다. 김 작가는 “오로지 실기로만 구성된 미술수업이기에 그 결과도 성공과 실패로 갈릴 수밖에 없으니 사람들이 미술을 가깝게 느끼기 어렵다”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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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작가는 교육자로서뿐 아니라 화가로서도 대중과 소통하는 게 화두였습니다. 1980~90년대 비판적 리얼리즘을 표방한 민중미술운동, 시민과 소통하기 위해 시작한 동인 ‘현실과 발언’ 등의 활동도 그 연장선입니다. 김 작가는 지난 1997년 개인전 전시장에 인디밴드를 섭외하는 색다른(!) 시도를 벌이기도 했는데요. 작품 전시에 지인을 초대할 때마다 미술에 관해 부담을 갖거나 굉장히 어려워한다는 걸 몸소 느꼈기 때문입니다.

“파리만 날리는 전시장에 공연하는 밴드를 오게끔 했어요. 사람들을 만나려고요. 밴드명 때문인지 전시장에 동네 사람 몇몇이 오긴 했죠.”(웃음)

김 작가는 그림을 통해 대중과 교감하는 게 막힌 것 같다고 했지만, 그는 여전히 우리네 현실을 두드리는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광주 5·18과 난초’(2001), ‘박정희와 유신이 내는 소리’(2003), ‘6·10 항쟁과 2002년의 시청광장’(2003), ‘4·19와 이승만 바로보기’(2004) 등 굴곡진 현대사를 관통한 작품들은 우리에게 유효한 생각거리를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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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작가는 작품을 그리게 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만약 여러분이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그저 생각나면 나는 대로, 생각나지 않으면 그렇지 않은 대로 그려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우면 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스스로 느끼고, 그리는 데서 무엇이든 시작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김정헌 작가의 저서 중 인상 깊은 말을 전합니다.

“많은 생각들이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여러 경로와 과정을 통해 작가의 작품으로 탄생하지만, 작품은 작품대로 사회와 여러 관계를 맺는다. … (중략) … 내가 아무리 우리의 삶 속에서 끄집어낸 생각들을 그림에 담는다 해도 관객에게 내 생각의 전이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교감과 소통도 꽉 막힌 상태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작품에 담은 그림의 생각들은 고독할지라도 그들의 독자적인 항로를 해쳐갈 것이다. 그들은 열광하는 관객을 만나지 못할 지라도 작품은 항시 관객들과 대화와 협상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작가의 손은 떠난 작품들은 이를 해석하고 완성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 한국현대미술선031 ‘김정헌’ (HEXAGON 출판) 중에서

– 글: 방연주 | 이음센터 연구원·yj@makehope.org
– 사진 : 손정혁 | 정책기획팀 연구원·kfclub@makehope.org
– 사진 : 이음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