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희망제작소 홈페이지에 유럽 사회혁신 사례 보고서를 번역해 보내주고 있는 백준상씨가 지난 6일 희망제작소를 방문했습니다.

백준상씨는 현재 밀라노 공대 산업디자인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유학생입니다.
 
원순닷컴 글보고서 번역 글에도 잠깐 소개 되었듯 에지오 만지니 교수의 지도 아래 ‘사회혁신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디자인’에 대해 연구 하고 계신 분입니다. 
 
멀리 이탈리아에서 잠깐 귀국한 길에 짬을 내어 평창동을 찾은 준상씨는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에게 자신의 연구 분야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해서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디.자.인. 하면 떠오르는 것은?

우선 준상씨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는 간단히 말해 ‘디자인의 관점에서 본 사회혁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준상씨가 속한 연구소도 디자인 학과소속이고요.

”사용자흔히 디자인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나 도면을 이용해 뭔가를 그리는 시각적인 작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죠. 디자인에 대한 저의 이해도 이런 상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 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사회혁신이라는 용어자체도 굉장히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데다 이를 위한 디자인이라니요? 자신의 사회적 주장을 담은 포스터나 시각매체를 디자인하는 것일까 하고 단순한 생각을 하기도 했죠.

자, 우선 이들이 정의하는 사회혁신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대단한 혁신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각각의 개인들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킨 사례들이죠.”

기본적으로 이들은 공적 기관이나 정부의 도움 없이 시민들 스스로 자발적인 욕구와 실행을 통해 이뤄가는 사회혁신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특정 주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노인복지, 교통, 식량, 여행, 이웃 간의 협력 등 다양한 분야를 포괄합니다.

준상씨와 동료 연구자들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이러한 사회혁신 사례들을 수집하고 있다고 하네요. 

예를 들어 브라질 등에서는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농산물 공동구매 모임을 조직해 신선한 농산물을 값싸게 구매하고 있고요, 케냐에서는 주민들이 마을의 유휴 인력과 퇴직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마을을 위해 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관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용자범죄로 악명 높은 컬럼비아에서는 지역민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같이 모여 운동도 하고 야간에 음악회를 열기도 했더니, 범죄율도 줄고 야간 활동에 대한 공포심도 줄일 수 있었다고 하네요.

중국에서는 사람들이 시간은행이라는 걸 만들었다고 합니다. 돈이 아닌 시간을 매개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은행인데요, 자신이 노동력을 제공한 만큼의 시간이 저축되어 나중에는 그 시간만큼의 노동력을 이웃들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한국의 두레 같은 개념이네요.        

사례를 모았다, 그 다음엔?

귀가 솔깃하는 사례들이긴 하나,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거늘…….
이들은 다양한 사회혁신 사례들을 수집한 뒤 어떤 일을 하는 걸까요?

“이런 사례들이 모여 구조적인 사회혁신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런 사례들의 전 세계 동시다발적 확산을 위해서는 디자인적 사고가 필요하죠. 즉, 다양한 사회혁신 아이디어들을 쉽게 실행에 옮기도록 도와주는 게 디자인의 역할입니다.”

슬슬 사회혁신과 디자인의 접점에 대해 설명드릴 차례군요. 우선 준상씨가 설명한 사회 혁신의 과정을 거칠게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사람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 → 사회혁신 사례를 통한 현실화 → 계속 복제 & 확산
 
“이러한 과정들이 쉽게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을 디자인을 통해 지원하는 겁니다. 크게 3개의 주체를 지원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는데요, 첫째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현실화 하고자 하는 시민 그룹입니다. 둘째는 지역기관이고요. 셋째는 이런 아이디어들을 비즈니스 모델에 삽입 할 수 있도록 기업들을 지원합니다.”

”사용자자, 그럼 구체적으로 디자인이 이들을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지 준상씨의 설명을 들어볼까요?

“제가 예전에 제품 디자인을 할 때 사용했던 여러 기법들을 현재의 연구에서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품 디자인을 할 때 시나리오 기법이라는 것을 사용하는데요.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경우 시장조사 등을 통해 발생 가능한 상황들을 미리 예측해봅니다. 실제 사용자가 제품을 접했을 때 어떤 변수들이 발생하는지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해보는 거죠” 

이런 시나리오 기법을 통해 사회혁신 사례들의 경우도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도출해낼 수 있다고 합니다. 디자인 작업에서 사용하는 ‘시스템 맵’이라는 기법도 사회혁신 사례 연구에 적용하고 있다고 하네요.

시스템 맵은 서비스나 제품에 대해 이해관계자들을 정의하고, 이들 사이에서 정보 혹은 자본이 어떤 흐름을 보이는가를 분석하는 기법이라고 합니다. 그 내용을 자세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를 사회혁신 사례 연구에 접목하면 지역에 존재하는 수많은 주체들의 역학관계(?)를 좀 더 효과적으로 분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자인 하는 분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연구실에서도 디자인 사무소 같은 데서 흔히 볼 수 있는 ‘Mood Board’ 를 만들어 놓고 관련 이미지들을 붙여 놓은 채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교환하죠.”       

이제 조금씩 ‘사회혁신 사례를 디자인 한다’는 말의 의미가 머릿속에 그려지시나요? 디자이너들의 작업이 어떤 식으로 사회 혁신 사례 확산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조금 감이 잡히시는지 모르겠네요.

“디자이너들이 제품만 디자인 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소비자들이 농산물 생산자와 직거래를 하는 시스템도 일종의 사회적 서비스라고 할 수 있죠. 사람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만 갖고는 바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죠. 전문적인 관리도구와 경영능력 개발 등이 필요합니다. 디자이너들이 사회혁신 사례 연구를 통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패키지를 제공하는 겁니다.”

”사용자원래는 한 편의 글에 이 날 준상 씨로부터 들었던 모든 내용을 다 소개해드리려고 했는데, 작성하다보니 글이 제법 길어지네요.

이 날 준상씨는 오늘 소개해드린 내용 말고도 흥미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셨답니다.
아래의 주제들은 두 번째 글을 통해 썰을 풀도록 하겠습니다.

– 휴대전화 디자이너로 일하던 준상씨는 왜 사회혁신 디자인에 눈뜨게 되었나?
–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탄생한 배경은 무엇인가?
– 현재 연구 작업의 한계는 무엇인가?
–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작업, 한국에서는 안 될까? 희망제작소 사업과의 접점은?

이 날 준상씨의 발표를 통해 디자인에 대해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귀한 시간을 쪼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신 백준상씨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희망제작소 콘텐츠팀(ktlu@makehope.org)
사진_임상태 인턴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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