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의 싱크탱크들](3)미래 연구소(Institute for the Future)

미래연구소(Institute for the Future)
: “통찰을 위한 예측”

글 : 박원순(희망제작소 상임이사) ? 홍일표(희망제작소 선임연구원)
사진 : 최은진

디자인 회사인가? 싱크탱크인가?

124 University Avenue, Palo Alto. 이 주소로 두리번거리며 찾아가보니 2005년 내가 스탠포드대학 객원교수로 와 있을 당시 매일 지나쳤던 바로 그 건물이었다. 그때는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했으니 이런 연구소가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사무실 구조, 배치, 안내데스크, 책상, 벽, 포스터, 사무용품과 소품 등이 모두 한눈에 들어왔다. 마치 디자인연구소나 디자인회사에 들어온 착각이 들었다. 그만큼 시각적이고 화려했다. 그러고 보니 벽에 붙은 도표나 보고서, 차트 등이 모두 시각적이다.

[##_1M|1214725918.jpg|width=”670″ height=”368″ alt=”?”|*사진 : 팔로 알토(Palo Alto)에 위치한 미래연구소의 사무실 안. 이곳에 들어가면 이곳이 어떤 디자인회사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진다. 보통 연구소의 사무실과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옆의 전략적 통찰력 프로세스(Strategic Visioning Process)의 도표 모두 비주얼하여 눈에 띈다._##]
25년 전에 변호사를 그만둔 사람

내가 변호사를 그만두고 비영리단체(NPO) 일만 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디렉터이자 스탠포드 공학 학부의 부교수인 폴 사포(Paul Saffo) 자신은 이미 25년 전에 변호사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한참 선배인 셈이다. 그는 자신의 비밀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활동이나 업무가 물론 개인적 목적을 위함이지만 또한 공공의 목적을 위한 변화를 유도해내지 못한다면, 당장 이 기관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후에 보듯 이 연구소의 주된 고객은 기업이고 그 용역으로 이 기관을 운영해가지만, 그 결과나 목적이 반드시 기업의 이익에만 한정되어 있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설명을 듣다 보면 그가 참 매력이 있는 사람으로 느껴진다. 통찰력이 있고 창의적일 뿐만 아니라 열정이 있고 공익적이다.

그는 한국도 꿰뚫고 있었다. 국가역할의 변모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는 한국을 도시국가(city state)로 간주한다. 싱가포르와 마찬가지로 서울과 그 인근에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이 모여 살고 있으니 이것이 도시국가가 아니냐는 것이다. 한편 그는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의 보존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북한과의 관계가 정상화되면 DMZ 지역을 환경보전지역으로서 보존하는 것과 관련된 일에 본인도 참여하고 싶다는 것이다. 관광객을 많이 끌어들일 수 있으니 수지가 맞는 공익적 사업일 수도 있다고 한다. 이것의 개발은 범죄라는 극단적인 용어까지 썼다. 사실 새만금의 개발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창의적으로 자신의 위상을 설명하다

그는 이미 희망제작소 소개문과 나의 이력서를 다 읽고 이해한 뒤였음이 분명하다. 도대체 이 사무실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보고 이곳이 뭐 하는 곳인가 하고 어리둥절해 하는 우리들에게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그는 이렇게 도표를 그렸다.

[##_1M|1371964777.jpg|width=”670″ height=”310″ alt=”?”|*사진 : 미래연구소와 희망제작소의 특징과 위치를 간단의 두 개의 축으로 설명하고 있는 폴 사포 교수. 연구기관과 기업, 연구와 행동(실천) 가운데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는 가를 분석기준으로 삼는다. _##]
그는 미래 연구소는 하이브리드 상태와 같다고 말한다. 자신들은 정책 측면과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후버 연구소와 같은 학술연구기관과 산업에 대한 비즈니스적 행동에 집중하는 맥킨지 컨설팅회사의 중간 쯤 되며, 연구와 실천 사이에서도 그 중간 쯤 된다는 것이다. 즉 조망하고, 예측하며, 미래 연구소의 그 통찰력이 고객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라지만, 행동을 취하는 것은 연구소가 아닌 고객들이라는 것이다. 맥킨지가 행동을 위한 통찰을 주로 한다면, 미래 연구소는 통찰을 위한 예측을 한다고 말한다. 그에 비하면 희망제작소는 비즈니스보다는 연구조사기관으로서, 학술적 정책 연구보다는 실천적 연구 쪽에 더 무게를 두는 기관으로서 분류하고 있었다. 그림 하나로써 미래 연구소와 현 연구기관들의 위상을 한눈에 들어오게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예측학의 새로운 경지

본래 미래 연구소는 세 사람의 전직 랜드 연구소(RAND Corporation) 연구원에 의해, 지난 1968년에 설립되었다. 폴 바란(Paul Baran), 올라프 헬머(Olaf Helmer), 자크 발레(Jacques Vallee)가 바로 그 사람들이다. 특히 헬머는 델파이(Delphi) 조사방법을 창안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델파이법은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오래된 질적 예측 방법의 하나로,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되풀이하여 모으고, 교환하고, 발전시켜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세 설립자들은 당시 군사 관련 연구에만 집중했던 랜드 연구소를 떠나 미래 연구소 초기부터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론을 새로이 개발하는 일에 집중했다. 이 시기는 21세기에 대하여 예측하려는 움직임이 태동한 때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미래 연구소의 초기 비전은 다른 싱크탱크들에서 사용하게 될 방법론을 개발하는 데 있었다는 것이다. 즉 원래 미래 연구소는 지금처럼 직접적인 컨설팅을 주로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1년간의 시행착오 후 이들은 우선 10년의 미래를 가능한 한 정확히 예측하는 일부터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5년 이후부터 주요 트렌드를 담은‘10년 예측’(10 Years Forecast)이라는 보고서를 매년 발행해 왔다. 당시에도 개인 인터넷 주소를 가지고 있을 만큼 미래 연구소의 연구들은 인터넷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발전했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예측은 미래 연구소만의 창안은 아니다. 이미 기후와 환경 예측을 매년 해오고 있는 지구 감시망(Earth Watch)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가능한지, 당신들이 한 예측이 지금까지 맞아왔는지를 물었더니 사포는 이렇게 대답했다.

“정확한 예측(prediction)은 물론 불가능합니다. 당신이 종교 근본주의자이며 신의 의도대로 세상이 이루어진다고 믿지 않은 이상 말이죠. 다만 예측은 현재의 상황에서 보다 더 가능하고(possible), 그럴듯하고(plausible), 개연성이 높고(probable), 더 좋아할 수 있는(preferred) 것을 찾아가고, 동시에 불확실성을 줄여가면서 기업이나 사람, 사회에 대한 미래를 좀 더 잘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help visualize the future). 불확실성을 아는 것은 가능성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즉 이 기관이나 자신은 결코 미래학자(futurist)가 아니라 예측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래 연구소는 계속해서 ‘예측’과 ‘현실’의 차이를 본다. 그것은 생각보다 간단하다고 한다. 좋은 예측은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논리적이어야 하고, 믿을 만해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지만 현실상황에서 시기적으로 미래 예측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이나 사건의 성격을 짚어낼 수 있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는 우리 모두가 사실 예측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집을 사면서 부동산 경기를 예측하고, 집을 나서면서 그날의 날씨를 예측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직업으로서 예측하든 것의 어려움은 예측된 결과를 가지고 행동하도록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이사회에 직접 출석해서 의견을 교환하는 한편 고객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논의하는 것을 중시 여긴다. 심지어 고등학생들과 만나서 질의하는 시간도 미래를 살아갈 이들과의 대화이기에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고객과 협력하여 일하면서 그들의 통찰력을 성장시키고 행동하도록 만들 수 있을 때 마술은 일어난다는 것이다. 예측에 대한 그의 글은, 2006년 5월에 하버드대학교에서 출판되었다.

[##_1M|1181285052.jpg|width=”566″ height=”491″ alt=”?”|*사진 : 01~10까지의 짧은 글들은 앞으로의 10년 동안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현상들을 대한 설명이다. 예컨대 이 자료 왼쪽 상단의 06번 사진을 보면 영화 티켓이 한 장 있는데, 이 티켓 오른쪽 부분에서는 당신이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친구들의 위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초대해서 영화를 볼 경우 5달러의 할인을 제공한다는 설명이 있다. 이것은 미래에 나타날 새로운 인스턴트 시장과 관련된 서비스와 네트워킹의 힘을 보여주는 하나의 가능한 사례이다. _##]
미래 연구소는 이러한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론으로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개발하여 발전시켜 왔다. 하나의 선택이라기보다 이러한 다양한 방법론을 적용해가면서 가능한 한 미래를 예측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오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하나의 수단으로서만 규정하고 그것조차도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다시 강조한다.

● 지도 제작(mapping)
● 인종, 민족, 인구학적 테크닉(ethnographic techniques)
● 전문가, 워크숍과 인터뷰
● 시나리오 발전과 분석
● 표본 조사(survey)와 계량적 분석
● 콘텐츠 원활화(content facilitation)
● 인공 산물(artifacts)

심지어 이 기관의 창립자가 발명한 델파이법조차도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지도(map)를 사랑하기도 하고 증오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도가 연구를 시각화하여 책을 읽을 시간이 충분히 없는 현대인에게 쉽게 특정 영역의 주제를 선별하여 탐구할 기회를 줄 가장 유용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예측의 모두를 표현하거나 표시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그는 내비게이션을 이용함으로써 가능한 폐해를 예로 든다. 그래서 이에 대한 여러 실험을 여전히 취하고 있다고 한다.

주된 고객은 기업, 수입은 그 용역비

미래 연구소는 결국 기업을 상대로 미래 시장이나 환경을 예측하고 그 대안과 대비책을 제공해주는 용역 수익으로써 운영되는 기관이다. 어떻게 보면 컨설팅회사와 비슷하다. 그러나 단기적 대안이나 처방책을 마련해 주는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 관점의 대책을 마련하고 그것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한 임무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국제 경제 네트워크의 미래에 대한 연구기관인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크(GBN, Global Business Network)의 관심사와도 유사한 예측을 하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핵심적인 예측을 담아내고 그에 적합한 사회적 가치를 부가한다는 측면에서 미래 연구소는 또한 차별성이 있다. 미래 연구소는 담배회사 등 몇몇 사회적 위해를 불러일으킬만한 대기업과의 계약은 삼가는 등의 방침이 있기도 하다. 대부분의 연구소원들은 다른 컨설팅회사에서도 충분히 인정받을 재능 있는 인재들이지만 단기적인 작업에 시달리기 쉬운 그곳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 남아있다고 사포는 설명한다.

[##_1M|1293535108.jpg|width=”670″ height=”289″ alt=”?”|*사진 : 연구소의 주요 고객 기업들과, 연구소의 역사와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폴 사포 교수._##]
기업용역 외에도 재단 등에서 받는 아주 소액의 지원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무시할 정도이다. 또 과거 거래했던 두 재단이 있었는데 기금 프로젝트에서 오히려 손실을 봤다고 한다. 간접비용을 지불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규모 재단만을 상대할 수 없는 것이 큰 딜레마 중의 하나이다. 한편 그는 정부와 함께 일하는 것은 악몽에 다름 아니라고 말했다. 초기에는 연구소 대부분의 일이 정부 기관을 위한 것이었지만 1980년대 무렵 대거 변화가 있어 기업에 대한 조언에 몰두하게 되었다. 정부 기관은 그만큼 관료적이고 비용이 많이 들어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이들이 개발해온 업무영역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① 다채로운 고객 프로그램(Multi-Client Programs): 이것은 특정기업이나 고객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친 이슈를 공익적 관점에서 조사하고 연구하며 예측함을 말한다. 여기에는 10년 예측(Ten year forecast), 과학기술 수평선(Technology Horizons) 및 건강 수평선(Health Horizons) 프로그램 등이 포함된다.
② 주문에 따른 예측(Customized Forecasts)
③ 비즈니스 기회를 표현하는 지도(Emerging Business Opportunities Map)
④ 몰입 학습(Immersive Learning)
⑤ 현장 조사와 경험적 체험(Field Trip & Experiential Experience): 여기에는 유사혁신사례 등을 견문하기 위한 현장 방문 및 연설과 세미나 등이 포함된다.

설명 자료를 보면 미래 연구소의 고객은 한국에서는 삼성이 유일하지만 딜로이트(Deloitte)와 유니레버(Unilever) 등 세계의 쟁쟁한 대기업이나 유명한 비영리기관들이 수두룩하게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시장이 아주 작다고 말한다. 심지어 아주 최악의 비즈니스(terrible business)라고 규정한다. 이 방면에선 아주 큰 조직이긴 하지만 실제 용역의 수주라든가 업무 수행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대부분 고객들은 당장 확인되는 어떤 결과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사포 교수의 설명이다.

설득과 프레젠테이션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들, 필요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려니 자연스럽게 설득과 프레젠테이션의 기술을 발전시키지 않을 수 없다. 이 사무실이 온전히 비주얼하고 화려한 디자인으로 가득 차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도표와 시각적인 프레젠테이션으로 훨씬 잘 설득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 연구소에는 전문적인 디자이너와 아트 디렉터들이 여러 사람 근무하고 있다. 사무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사회적 현상을 분석하고 그 현황과 흐름, 미래 예측을 도표와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개발한다. 그러나 그는 또한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인간적인 신뢰관계가 뒷받침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더욱 강조한다.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고 인간적인 신뢰를 보여줄 때 비로소 충분한 설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우아하고 능숙한 말솜씨로 사람들을 일시에 설득한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인간적으로 신뢰될 수 없다면 그것은 사상누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간혹 최악의 선택을 한다. 그는 이라크 사태 개입과 대량살상무기를 동원한 전쟁결정이 바로 그것이라고 핏대를 올린다. 미래 연구소의 역할은 포괄적 메시지를 통해 새로운 도전과 위험요소의 극복방안을 제시하고 무엇이 가장 좋은 선택인지를 조언하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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