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희망탐사 75 진정 세상을 바꾸려면 평생교육에 나서라

광명시는 1999년 전국 최초로 평생학습도시를 선언하고 평생학습원을 지었다. 교육부가 정식으로 평생학습도시 사업을 시작하기 2년 전의 일이다.

2002년부터 6년 동안 평생학습원의 운영은 성공회대학교에서 맡았다. 원장을 맡은 성공회대 고병헌 교수는 교육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평생교육에 접근했다. 인문학 교육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깨닫게끔 했고, 대안화폐를 통해 평생교육이 지역 공동체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시도했다.

2월 17일 서울 정동 성공회 성당 부근의 한 식당에서 고 교수를 만났다. 그는 평생교육을 통해 한국 교육에 대한 새로운 실험을 시도했고, 그 실험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성공회대와 고병헌 교수가 열정을 쏟았던 6년간의 교육 실험기를 들어보자.


교육이 권리인 사회


“처음에는 평생학습원 운영을 안 맡으려고 했습니다. 기관을 하나 운영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이죠. 성공회대 김성수 총장이 소외지역에 희망을 주고, 교육이 특권이 아닌 권리인 사회를 실현해보자고 말씀하시더군요. 고생스럽더라도 제가 가서 했으면 좋겠다고 설득하시기에 토 안 달고 들어가서 시작했습니다. 기관 운영 경험이 없어 복사골 문화센터와 YMCA 경험이 있는 임정아 교수를 삼고초려 끝에 모셨죠.”


[##_1C|1257752978.jpg|width=”400″ height=”533″ alt=”?”|고병헌 교수는 열정이 넘치는 학자이자 교육자, 그리고 실천가이다 ⓒ희망제작소_##]‘교육이 권리인 세상’이라는 비전이 정해졌다. 교육의 핵심 내용은 인문교육이었다. 수강생들과 함께 어떻게 삶을 살고, 어떻게 세상을 만들어갈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한국의 대학은 가르치는 경쟁이 아니라 선발경쟁을 하죠. 어떤 교육이 이루어지는가가 아니라 학교의 이름이 중요합니다. 초, 중, 고에서 하는 일반교육이 정상화된다면, 그 핵심내용은 인문교육이 됩니다. 삶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의식이 생겨야죠. 원만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을 초등교육에서부터 길러주어야 합니다. 삶을 위한 교육인 셈이죠. 그런데 이 교육이 대학 들어가는 교육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그가 ‘한국의 성인은 성찰적 사유능력을 상실한 것 같다’고 쓴 소리를 내뱉는다. 평생 교육의 키워드가 인문 교육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웃의 이웃인 우리 스스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바뀔 수 있습니다. 지역 사회에서도 이웃끼리 주차문제로 다투지 않을 때 비로소 세상이 바뀌었다고 느끼죠. 부모를 통해 세상을 접하는 아이들은 부모가 좋은 이웃이 될 때 사회 변화를 체감합니다. 그래서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는 겁니다. 인문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가정을 꾸리거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힘듭니다.”


문해교육도 철학이 먼저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섬세한 접근이 필요했다. 수강생이 사회를 성찰하는 능력을 키워가고,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서 학습원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이 이어졌다.

“문해교육을 실시하는 대부분의 기관에서는 글자 가르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합니다. 수단인 것을 목적에 갖다 두면, 수단의 정당성을 파악할 길이 없게 되죠. 글자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글을 통해 넓은 세상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죠. 강사들이 삶의 굴곡이 심한 할머니들에게 ‘이러시면 안 돼요, 글자를 외워 오셔야죠’라고 합니다. 그래선 안 됩니다.”

고 교수는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닌 교육 복지 차원에서 문해교육에 접근했다. 가난의 대물림으로 이어지는 정보와 지식 격차를 줄이기 위한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지식기반사회에서 지식과 정보의 격차는 학습격차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이 되어 한 세대가 지나면 가난의 대물림이 발생하죠. 사회복지가 사회적 불평등을 끊는데 주력한다면, 교육복지는 정보와 지식의 격차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최근의 정보는 문화적으로 코드화되어 있기 때문에 계층 간 정보 격차가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글자만 알려주는 문해교육으로는 안 되죠. 그래서 인문학을 접목하는 겁니다.”

그는 “수강 신청이 끝난 후에 찾아온 할머니들을 그냥 돌려보내서도 안 된다”고 강조한다.

“할머니들이 학습원까지 오는 데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합니다. 직원들은 접수가 끝난 후 찾아온 할머니에게 ‘다음부터는 일찍오세요’ 라고 말하며 돌려보내죠. 그냥 보내서는 안 됩니다. ‘할머니 잠깐 기다려보세요, 혹시 다른 기관에서 정원의 여유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 용기가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되죠. 만일 이번 기회에 힘들다면, 이후 다시 연락을 드리고 관계를 지속해나가야 합니다. 어떤 비전과 자세를 갖고 평생 교육에 임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범죄율 20% 줄인 인문교육

고 교수는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선 노숙인들의 모습에서도 인문교육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12시에 배식을 시작하는데 10시부터 줄을 섭니다. 기다리는 이들의 등이 맞닿을 정도로 줄이 빽빽하죠. 누가 끼어들면 마구 욕을 하며 쫓아냅니다. 인간의 불가피한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모인 건데 너무 몰인정하더군요. 배식을 기다리는 두 시간 동안 우리가 교육을 하고 쿠폰을 나누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학습원 수강생이 혐오감을 느낄지 모른다는 우려로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고 교수는 다시금 경찰서에서 노숙인 교육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경찰 측은 영내에 무기고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경찰의 생각부터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_1C|1213700712.jpg|width=”400″ height=”300″ alt=”?”|경찰관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교육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희망제작소_##]

“교육을 제안했더니 경찰관의 99%가 반대하더군요. 쉴 시간도 모자란데, 교육까지 받으라고 하니 반발한 거죠. 만날 피의자와 상대하면서 욕을 하고, 얼마나 삶이 거칠어졌겠습니까. 다도 교육을 하니 다리를 뻗고 야단이 나더군요. 그런데 교육을 시작한 후에는 99%가 계속 교육을 받고 싶다고 합니다. 삶의 결을 부드럽게 하고, 재테크 등 다양한 교육을 하니 순찰을 돌더라도 이전과는 다르게 합니다. 이 지역 범죄율도 20%가 줄었다고 하더군요. 제 이야기가 아니라 경찰관 이야기입니다.”


노숙인들의 방언이 터지다

노숙인 교육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한다. 기존의 사회복지 정책이 강조하는대로 직업훈련에 초점을 맞췄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프로그램을 잘 짤 수 있다고 믿었는데, 현장에서 해보니 달랐습니다. 직업훈련으로는 교육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죠. 훈련을 시키면 생산성이 높아지긴 하지만, 소득이 높아지지는 않더군요. 돈은 몇몇 사람들의 주머니로만 들어갔습니다.”

비록 직업 훈련을 통해 실용적인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인문 교육은 그들 삶에 변화를 가져왔다. 다시금 한 명의 인간으로 삶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인간으로서 자존감이 없으면, 서로가 서로에게 흉기가 됩니다. 너무 거칠어지죠. 우선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있어야 ‘저 사람도 누군가의 가장이고, 아버지 일 것’이라는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생기죠. 자살을 꿈꾸던 이도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집니다. 꿈이 있으면 당당하고 의연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죠. 또, 자신의 경험을 말로 풀어낼 수 없던 사람들이 교육을 시작하니 방언이 터지더군요.”


평생교육과 만난 대안 화폐


광명시의 ‘그루’ 운동은 2004년부터 여러 지역 기관과 단체들이 연합해 추진하고 있는 대안 화폐 운동이다. 평생학습원도 그루 운동에 동참해 왔다.

예를 들어 한 회원이 학습원에 물품을 기증할 경우 사무국에서는 회원의 그루 통장에 ‘3만 그루’를 적어준다. 이 회원은 후일 3만 원의 수강료를 내는 대신 3만 그루가 표기된 통장을 보여주고 평생학습원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지역 사회에서 소질과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못 갖습니다. 그 재능을 활용하고, 유통시킬 수 있는 광장을 만든 거죠. 직업이 없어도 기술이 있고, 사회적으로 유통시킬 수 있다면 이미 실직이 아닙니다. 대안화폐와 평생교육이 멋지게 결합할 수 있는 거죠.”

고 교수는 “대안화폐는 규모가 클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유통 관리와 신뢰도 확보의 문제 때문이다. 광명 그루는 유통의 계기를 교육에 집중 시켰고, 경제력이 없는 지역의 소외 계층이 교육의 기회를 얻는데 도움이 되도록 했다. 또, 그루운동은 지역 사회의 주춧경제(Core Economy)’를 탄탄히 다지는 역할을 했다.

“주춧경제는 가정이나 이웃 등 우리 삶을 지켜낼 수 있는 핵심적인 경제단위를 뜻합니다. 사실 시장 때문에 이런 경제 단위들이 많이 무력화 되었죠. 타인이 내 아이를 안으면 돈을 주어야 하지만, 내가 우리 아이를 안고 있으면 돈이 안 들지요. 미국의 경우 주춧경제의 규모가 전체 경제 규모의 48%에 이른다고 합니다. 지역 사회에서는 주부들의 다양한 일상 업무가 경제적으로 무척 중요합니다. 주부들이 모두 취업을 해 버리면 그들의 빈 영역을 채우기 위해 다시금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죠.”




“인문학의 위기는 삶의 위기다”


광명시 평생학습원의 운영 주체는 올해 들어 다른 대학으로 바뀌었다. 시장 한 사람의 뜻에 따라 우리나라 평생교육의 한 모델을 이루었던 성공회대의 실험이 잠시 주춤하게 된 것이다. 물론 고병헌 교수의 마음은 여전히 바쁘다.



[##_1C|1067763747.jpg|width=”500″ height=”375″ alt=”?”|광명 평생학습원 청개구리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독서 교육을 받고 있다 ⓒ희망제작소_##]“인문학의 위기는 삶의 위기입니다. 미래 사회에 대응할 수 있고, 정치적으로 독립된 인문학 연구센터가 필요합니다. 인문이라는 것은 인간의 관계입니다. 한 기업의 광고는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며 우리를 협박했죠. 부자 아빠 되자는 것도 우습지 않은가요. 나머지는 도매금으로 가난한 아빠가 되어버립니다. 사회적으로 회자되는 슬로건에 문제가 많은데,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죠. 지역사회 사람들이 스스로 슬로건을 정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고 교수가 몸담고 있는 성공회대의 평생학습사회연구소에서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빈민 지역, 교도소, 산업 단지 등 인문학이 뿌리내릴 수 있는 장소의 한계는 없다. 막힘없이 미래의 계획을 풀어 놓는 그의 눈이 반짝인다.

“서울시의 ‘희망의 인문학 – 서울 클레멘트 코스’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노숙인, 자활 근로자, 빈민 등을 대상으로 1년에 걸쳐 인문학 교육을 실시하죠. 안양 교도소 프로젝트는 모범수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와 인권연대, 지행연구소와 함께 하는 프로젝트로 성공회대가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고 있죠. 구로 디지털 단지 인근에서는 회사원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열 계획입니다. 성인을 가르치는 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정도 준비하고 있답니다.”

고 교수와 성공회대가 6년 동안 뿌린 씨앗은 이제 광명 시민들을 통해 싹을 틔울 것이다. 그가 한국 교육에 대해 던진 질문들은 사회 각 영역과 계층, 제도를 넘나들며 전파되고, 답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고 교수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반드시 그럴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정리_이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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