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희망탐사65 중소기업인, 지역문화의 디딤돌 되다


참 대단하다. 한 중소 기업인이 작은 도시의 문화와 예술을 키우고 있다. 그는“정치인에게 기부하면 세금공제를 통해 그대로 되돌려 받는데, 문화 후원 역시 그렇게 해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는“한 기업인이 매해 10만 원씩만 보태도 지역의 문화가 달라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가 조금씩 지역의 문화를 바꾸고 있다. 힘겹게 돈을 모으고, 문화행사와 축제를 열었다. 그와 동료들이 시작한 예술제는 이제 시민들의 자발적인 주도로 꾸려진다. 말 그대로‘시민의 축제’로 자리 잡았다. 한 중소 기업인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작은 변화다. 2월15일 군포를 찾아 디딤돌문화원의 최승교 이사장을 만났다. 그 변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왔다.

[##_1C|1101151186.jpg|width=”560″ height=”420″ alt=”?”|디딤돌문화원 최승교 이사장과 홍지영 실장이 한자리에 앉았다. ⓒ희망제작소_##]작은 지방도시의‘메세나’

최 이사장은 15년째 작은 용접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중소기업인이다. 공고를 졸업한 그는 원래 한 대기업의 공장에서 일을 했다. 공장에 다니며 자신만의 사업체를 꿈꾸었던 최이사장은 이를 실행에 옮겼고 자신의 바람대로‘사장님’이 되었다.

“제가 비록 사업은 작게 했지만 노동자들을 위해 배려할 것이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중 노동현장의 분위기를 바꾸어보자고 마음먹었고,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죠.”

때마침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지역에 정보문화센터를 열었고, 최이사장은 운영을 맡는다. 한국노총 출신으로 당시 군포 시장을 맡고 있던 김윤주씨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000년에는 사단법인 디딤돌문화원을 설립했고, 군포시 문화센터를 위탁받아 운영하게 된다.

“처음에는 지역의 선배로서 후배들이 일하는 것을 도와주는 마음이었죠. 일을 계속하며 문화 활동이 얼마나 지역에 보탬이 되는지 마음으로 느꼈습니다. 군포 쪽에는 중소기업이 몰려있습니다. 제가 활동하던 중소기업인 교류 모임이 있었는데,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모임으로 만들어갔습니다. 모임의 성격이 바뀐 거죠. 이 모임은 현재 디딤돌문화원뿐 아니라 지역의 다른 문화예술기관도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그의 편이 되어 주지는 않았다. 지역의 경영인협회나 협동조합에도 손을 내밀었지만, 호응을 얻지 못했다. 최씨의 활동을 지원하던 지방자치단체장이 퇴임하고 나면 관청의 관심도 줄었다. 지속적인 도움을 주는 이들은 모두 최씨 주변의 지인들이었다. 주로 노동자 출신 중소기업인이 많다. 10여 명이 꾸준히 그와 뜻을 같이하고 있다.

기업 돈 10만 원이면 지역문화가 달라진다


“노사관계 개선을 통해 이직률을 줄이고 싶습니다. 문화, 예술 사업이 여기에 도움을 줄 수 있죠. 이러한 활동을 통해 지역 중소기업 경영인들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일본 동경 근처의 아지키시를 갔더니 시민들이 자율적으로‘시민의 날’행사를 치르더군요. 시민이 진행하고, 기업이 지원하는 겁니다.‘아, 이거구나’했죠. 군포에도 1천여 개의 중소기업이 있습니다. 이들이 시민을 도와 행사를 진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디딤돌문화원에서 일하고 있는 실무 기획자들이 마음껏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와 상공인모임을 꾸준히 설득해서 함께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한 기업인이 10만 원씩만 후원해주면 지역 문화가 달라져요. 주변에 기업들 보면 이미 준조세 형태로 매년 100만 원 이상을 내고 있습니다. 10만 원 후원은 힘들지 않습니다. 정치자금처럼 세액공제 혜택도 있어야죠. 현실은 힘듭니다. 모임이란 모임은 모두 나가면서, 중소 기업인과의 접촉을 늘리고 있습니다. 서로 얼굴을 잘 알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죠.”

군포문화센터는 예산의 70%를 수강료 등 자체 수익으로 마련하고 있다. 취미나 외국어 강의 외에 핵심 사업으로 꼽고 있는 것은 인문학 강의다. 성인을 대상으로‘군포아카데미’라는 강의를 열고 있는데, 앞으로 계속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문화예술교육은 주로 아이들 몫이다. 최 이사장은“문화예술교육은 아이들의 자아 존중감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지방에서는 철학, 역사, 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서울과 비교하면 도서관의 장서도 부족하죠. 대부분의 도서관 프로그램들이 어린이 대상이고요. 성인을 위한 독서, 성인을 위한 인문학은 접하기 힘듭니다. 인문학을 통해 문화의 질을 높일 수 있는데 말이죠.”

여성 수강생이 대부분이었던 기존 강의에 비해 인문학 강의에는 나이 지긋한 남성들의 발걸음이 잦다. 출석률이 높고, 수강생들도 적극적이다. 아직은 기초적인 총론 수준의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지역 오피니언 리더를 대상으로 한 심화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_1R|1030465863.jpg|width=”260″ height=”347″ alt=”?”| 최승교 이사장은 오롯이 시민의 힘으로 꾸려나가는 축제를 꿈꾼다. ⓒ희망제작소_##]시민의 축제, 디딤돌문화제

“센터에서 강의를 진행 한 후 10월이면 그동안 배운 것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바로 디딤돌문화제의 시작입니다. 7년째 하다 보니 자리를 잡게 되었네요. 지금은 시민들이 직접 축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의 축제. 최이사장이 말하는 디딤돌문화제의 자랑이다. 지역의 아마추어 동호회들이 참여하는 공연에서부터 예술가들이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그가 소개한 축제 일정은 내실 있는 프로그램들로 가득하다.

“소규모 축제이기 때문에 장점이 있습니다. 초기에 시민들은 단순히 참여만 하고, 기획은 전문가들이 맡았죠. 시간이 흐르자 축제에 참여했거나 자원봉사를 했던 시민 중에 직접 축제를 만들어가는 데 관심을 갖는 분들이 생겨났습니다. 즐기는 축제에서 만드는 축제로 방향을 바꾸고 시민기획단을 모집했습니다. 4년째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시민기획단은 공연 ? 전시 ? 체험 등 여러 부문으로 나누어 회원을 모으고, 축제를 준비한다. 처음에는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내는 일조차 쑥스러워 했던 시민들이 점점 적극적으로 변해갔다. 한 해 축제가 끝나면 바로 다음해 축제 기획에 매달리는 시민도 있다. 시민들은 직접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수공업 방식으로 축제를 준비한다.

“시민들이 예술 공연을 접하는 안목이 달라졌어요. 이제는 시민기획단의 역할이 센터 직원들의 역할보다 더 커졌습니다. 운영의 주체가 완전히 바뀐 거죠. 기획단에서 열심히 활동하다 지금은 직원이 된 시민도 있답니다.”

공부방 아이들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디딤돌문화원은 취약계층 아이들에게 문화예술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기존의 공부방에서는 제공하지 못한 교육이다. 그는“양질의 교육을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고 싶었다”고 했다. 군포의 구시가지에는 저소득 가정이 많다. 예전부터 이 지역에서 운영돼 온 공부방들은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수 교사 확보가 중요하지만, 인건비는 복지 예산의 지원대상이 아니다. 운영비를 쪼개고 쪼개 교사 인건비를 마련하는 것이 공부방의 현실이다.

“공부방이 아이들을 보호하는 기능밖에 못합니다. 교사들은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는 일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죠.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일은 엄두도 못 냅니다. 우리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게 되었죠. 직원들이 가서 보조교사를 하고 수업 참관을 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찾고 있습니다.”

그가 가장 중점을 두는 일은 지속적으로 공부방에서 활동할 교사 양성이다.

“기왕이면 지역의 인재를 키우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한 후 교사를 찾아서 직접 교육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3년째입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외부에서 온 교사들에게 경계심을 품었지만, 지금은 신뢰관계가 형성되었죠. 학습 도우미 역할을 하는 자원 활동가들도 교육해 배치하고 있습니다.”

‘근로자 1/2 행복찾기 프로젝트’는 군포지역 노동자들의 복지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문화 행사를 개최하고, 퇴근 시간 이후 참여하는 교육프로그램도 제공한다. 인생의 반을 노동으로 채우는 근로자들이 나머지 절반의 삶만큼은 재창조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일이다.

“노동자들이 정년도 빠르고 노동시간도 깁니다. 미래를 준비할 시간도, 구체적으로 고민할 여력도 없죠. 직접 사업장을 방문해 사업주와 노동자를 만나고 있습니다. 퇴직 이후를 대비해 창업 컨설팅을 제공하는 한편, 삶의 여유를 찾고 실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강의도 열고 있죠.”

[##_1L|1383944247.jpg|width=”260″ height=”347″ alt=”?”|매해 10월 열리는 디딤돌문화제는 벌써 7살이 되었다. ⓒ희망제작소_##]자원봉사자들이 운영의 일선에 서다

군포문화센터에서는 현재 80여 명의 자원 활동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역할은 단순한 보조업무에 머무르지 않는다. 사업 기획의 영역만 직원들이 맡고, 실질적인 운영은 자원 활동가들이 담당한다. 최이사장이 센터 운영을 시작할 때부터 꿈꿔왔던 시스템이다.

“오랫동안 센터를 운영해 오다 보니 시민들 가운데‘마니아’그룹과 동아리들이 자생적으로 생겨나더라고요. 이들과 함께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해갑니다. 자원 활동가들에 대한 지원과 교육은 센터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죠. 시민들에게 자기발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희망탐사’ 코너를 통해 안양 석수시장 예술공간‘스톤앤워터’의 박찬응 관장을 소개한 적이 있다. 디딤돌문화원은 스톤앤워터와 파트너십을 맺고 함께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역의 열악한 환경에서 문화예술운동을 벌이고 있는‘닮은꼴’동지들이 서로 힘을 보태고 있는 셈이다.

“군포로 한정했던 활동 범위를 안양까지 넓혀보자고 마음먹었죠. 안양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박찬응 관장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습니다. 2년 전의 일입니다.”

군포문화센터는 스톤앤워터와 함께 예술가와 학교를 연결해주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교사들과도 협력관계를 맺어 3년간 시범사업으로 추진된다. 한 때 학교에서의 문화예술교육에 활발한 공공지원이 이루어진 시절이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지금이야말로 힘을 모아 미래의 문화예술교육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라는 것이 최 이사장의 생각이다.

“현재 다양한 문화 관련 단체들이 모여 ‘문화예술교육단체협의회’를 조직하고 대안적 사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과거 문예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으로부터 이루어진 공공지원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견해가 많았습니다. 문화 관련 단체의 역량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죠. 축제기획교육과정 등 민간이 맡았던 영역을 공공기관에서 흡수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민간단체들이 지원금을 타기 위해 자신의 영역과 상관없는 사업에 억지로 공모하는 경우도 있었죠. 어려워도 자체 예산으로만 사업을 꾸려가는 단체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는 각종 사회복지시설의 행정적 통합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군포 시장이 군포문화센터, 여성회관, 청소년수련관을 모두 시설관리공단으로 넘기려 하고 있습니다. 성남이나 수원 등에서는 이미 시설관리공단이 모든 복지시설을 일괄 관리하고 있죠. 이들 지역에서는 시설의 공공기능이 위축되어 시민들의 사랑과 관심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위탁이 아니라 직영이 되는 겁니다. 시장이 시설관리공단을 통해 시설마다 자신과 친한 사람을 앉히는 거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운영을 맡아야 하는데 거꾸로 가고 있죠. 군포는 어떻게 될는지 걱정스럽네요. 현 여당은 시설관리공단으로의 통합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군포 시민 모두와 함께 축제를 여는 꿈

중국의 작가인 노신은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는 어떤 사람이 간 길을 함께 걷고 있거나 아무도 걷지 않은 땅을 지금 혼자 걷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길이 될지 안 될지는 알 수 없고 무엇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로지 우리가 걷는 길이 의미를 갖도록 노력하고 그것의 가치를 지켜가기 위해 늘 성찰하는 방법밖에는 없을 듯합니다. 군포문화센터가 2001년 개관 이후 많은 시민과 함께 길을 걷다 보니 새로운 길이 되었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군포문화센터 발간 <배움과 문화의 향기 속에서 함께 걸어온 2006년> 내용 중 일부

최승교 이사장이 말하는 길은 노신이 말한‘아직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인지 모른다. 앞으로의 꿈을 물으니 그는 의외로 소박한 답을 들려준다. 자신이 시작한 디딤돌문화제가 시민 전체의 축제가 되는 것뿐이란다.

“시민과 모든 과정을 공유하고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고민하면서 시민 전체를 아우르는 축제를 하고 싶습니다. 디딤돌문화원 이사들도 전문성을 가진 사람, 경제적으로 후원하는 사람, 지역민들과 가까운 사람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죠. 각자가 맡은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민들의 참여도를 보세요. 제 꿈이 꼭 실현되리라고 믿습니다.”

디딤돌문화원은 1995년 한국노총 문화센터로 출발해 사단법인으로 발전한 문화교육 전문단체입니다. 2001년부터는 군포문화센터를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정책연구, 각종 문화행사 개최, 평생학습 프로그램, 출판사업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함께 누리고 더불어 사는 문화교육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군포문화센터 홈페이지 www.happygunpo.or.kr)

정리_ 이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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