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가 세상을 바꿔요

퇴근하면 손가락 까딱하기 싫습니다. 오늘도 배달음식인가요? 플라스틱 용기들을 보면 심란합니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인데 어찌 된 게 밥상은 점차 초라해집니다. 내 건강뿐 아니라 지구 건강까지 해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듭니다. 희망제작소는 ‘삼시세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실천하는 혁신가 4명을 초대해 지난 3월 온라인으로 ‘먹거리x시민 강연’을 열었습니다. 그 내용을 지상중계합니다.


“어미닭은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1강: 밥에 진심이 된 농부박사- 이동현 ㈜미실란 대표

“편리함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었을까요? 우리가 쓰고 버린 미세플라스틱이 지구 생명체를 위협하고 있죠. 채식 중심이던 식단이 육식 중심으로 바뀌면서 너무 많은 동물들이 공장식 축산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소고기 소비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어마어마합니다.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미생물학자입니다. 꿈꾸는 농부과학자로 살고 있습니다. 둘째 아이 아토피가 심했어요. 혈변을 볼 정도로요. 아토피 탓에 아이가 고기, 생선 등 20가지를 못 먹었습니다. 면역력을 키우고 먹어도 탈이 안 나는 걸 고민하다 발아현미를 만났습니다. 18년간 발아현미 연구의 시작이죠.
이론과 현장이 어우러져야 답을 찾겠더라고요. 전남 곡성에서 직접 농사를 지었습니다. 처음에 278품종을 심었어요. 화학비료, 제초제 없이 발아현미에 적합한 품종을 찾은 거죠. 논습지의 다양한 생물들도 고려하며 농사지었어요.
쌀의 좋은 영양분은 쌀눈에 들어있어요. 어미 닭은 진실을 알고 있죠. 닭은 백미, 밀가루 안 좋아합니다. 똑똑해요. 철새들은 논에 나락을 먹고 4000km를 이동합니다. 발아현미는 생명을 품은 쌀이에요. 농촌진흥청, 분당제생병원, 전남대학교와 함께 국가연구과제(2015-2017)로 당뇨, 비만 임상실험을 거쳐 효과를 입증했습니다.
장에는 200조 마리 세균이 사는데 유익균과 유해균의 비율이 85:15입니다. 잘못된 음식 먹으면 그 비율이 역전돼요. 장은 행복호르몬인 세로토닌을 분비합니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면 장내 착한 미생물 수가 올라가고 행복 호르몬도 업돼죠. 오늘 하루 어떤 음식을 드셨는지 기록해 보세요. 자기 똥도 자세히 관찰해 보세요. 똥이 황금빛이고 10cm 이상 굵다면 건강한 겁니다. 한 달 동안 기록하면 미래가 바뀝니다. 곡물, 채식 지향 식생활로 온실가스도 줄일 수 있습니다.
저희는 종자, 들녘을 지키기 위해 손 모내기하고 낫으로 탈곡해요. 친환경 유기농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고가에 매입해 발아현미를 만듭니다. 생태 교육을 이어가고요. 농업과 문화가 조화로운 ‘섬진강 문화벨트’를 만들려고 해요.”


“세상엔 25000가지 토마토가 있어요.”
2강 그래도 팜, 타협하지 않고 지켜낸 결실-원승현 농업회사법인(주) 그래도팜 대표이사

“1983년부터 꾸준히 유기농업을 해온 부모님이 타협하고 싶은 순간마다 되뇌셨던 단어가 ‘그래도’입니다. 아버지는 ‘농사는 평생 100번도 연습하기 힘든 직업’이라고 하셨어요. 그만큼 대를 잇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브랜드디자이너였는데 세상에 브랜드디자이너는 많지만, 브랜드디자이너 출신 농사짓는 사람은 없으니까, 대를 잇기로 했어요.
17가지 성장 원소만 있어도 식물은 자라지만 토양 재배한 맛과 향을 따라잡을 수는 없죠. 현재 한국 농법은 너무 생산성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한국 토양은 유기물이 적고 비옥도도 떨어져 농경지로는 취약합니다. 한국은 화학비료 오남용으로 OECD 1위입니다. 비료와 농약 많이 쓰다 보니 한국 토양의 미생물이 많이 없어졌어요. 저희는 땅의 유기물 선순환 체계를 갖추려고 발효유기물을 투입해요.
두 번째 중요한 것은 종자죠. 전 세계에 토마토 종자는 2만5천 여 개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엔 다양한 토마토가 없을까요? 한국에선 단맛이 없으면 맛이 없다고 합니다. 또 말랑해진 토마토는 불량품 취급해요. 그래서 토마토가 아니라 토마토가 되기 전 아이를 유통하죠. 완전히 익은 뒤 딴 토마토 드셔보셨어요? 향에서 20배 차이 납니다.
청년 창업농들이 자기만의 씨앗을 갖는다면 경쟁력이 생기지 않을까요? 저희가 종자 확보에 나선 이유입니다. 종자 로열티가 비싸지고 있어요. 한국 환경에 잘 맞는 걸 고르려고 종류별로 심어봤습니다. 그중 20종이 살아남았어요. 그런데 시장에선 과일은 달아야 하고 많이 달리면 최고라고 해요. 토마토에 사과향을 주입하기도 해요. 소비자가 변하면 저희 같은 농장도 유지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맛의 취향에서 멀어진 거 같습니다. ‘이 토마토는 내 취향이냐 너는 어떤 토마토가 좋아?’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매일 밥상이 세상을 바꿔요.”
3강 삼시새끼로 바뀌는 세상-노민영 (사)푸드포체인지 대표

“우리가 먹는 음식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푸드포체인지는 어린이 식생활 교육을 합니다. 제철인지, 어디서 왔는지, 누가 생산했는지 생각하고 맛보는 교육이지요. 아이들이 “음식 먹으면서 이렇게 집중해서 맛보긴 처음”이라고 해요. 동물 복지도 교육해요. 양쪽 팀이 각각 퍼즐을 맞추는데 다 맞추면 한쪽은 공장식 농장의 닭 케이지 면적, 다른 하나는 동물복지 환경에서 자라는 닭이 차지하는 면적이 되죠.
스스로 요리하는 법도 가르쳐요. 요리는 꼭 필요한 삶의 기술입니다. 제철 음식, 친환경, 국내산 식재료를 고르는 법, 밥물 잡는 법, 불 조절하는 법 등을 알려줘요. 마지막으론 텃밭 교육입니다. 씨앗을 심고 가꾸고 수확해요. 봄나물 냄새 맡아보고 먹어보고요.
저는 예전에 외식 전문회사에서 마케터로 일하고, 푸드스타일리스트로도 활동했어요. 국제 슬로푸드 협회에서 설립한 이탈리아 미식과학대학에서 ‘슬로푸드’ 철학을 배웁니다. 슬로푸드를 알고부터는 그동안 먹거리의 겉모습을 중요시했던 관점이 먹거리와 사회문제를 연결하는 관점으로 바뀌더라고요. 소비자의 먹거리 선택은 투표 같아요. 투표는 자신이 선택한 무언가를 응원하고 힘을 실어주는 일이죠. 먹거리 생산자의 가치를 알아줄 수 있는 소비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한국에 돌아와 소비자 식생활 교육을 시작했어요.
저는 매일 밥상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어요. 친환경, 동물복지, 공정무역, 제철 먹거리를 택하고, 주변에 생협이 있는지 직거래 장터가 있는지 살펴 집이나 직장을 선택해요. 4일요일에 한 주 ‘밀프랩’을 하고 냉장고 안을 살핍니다. 집밥을 먹으면 식문화를 이어가고 쓰레기도 줄일 수 있으니까요. 한 주 식단을 카톡으로 기록해둡니다. 주 5일 일하면서 집밥 하는 게 쉽진 않죠. 퇴근 후 빨리 차려 먹을 수 있도록 주말에 재료를 미리 준비해둬요.”

* 슬로푸드(Slow Food) 운동 :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으며 먹거리가 지역의 사회, 환경, 지역경제, 농업 등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소비자에게 알려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음식을 선택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활동


“시장의 모든 채소는 아름다워요.”
4강 삶을 연결하는 시장 마르셰 이야기- 이보은 마르쉐시장기획자

“저는 생활협동조합과 여성환경연대에서 일했습니다. 2008년 4대강사업이 시작되면서 전국 강이 파헤쳐졌어요. 어느 날 참담한 마음으로 새벽에 낙동강 지천에 갔는데 강변에 너구리, 멧돼지, 고라니 발자국이 찍혀있었어요. 이 강물은 뭇 생명이 함께 마시는 것이구나. 그래서 ‘내 컵으로 물을 떠 마시자’ 캠페인을 했어요. 먹거리, 자연을 우리 몸으로 받아들이는 데 관심을 두게 됐어요.
2011년 옥상에 농사짓기부터 시작했어요. 쓰레기 가득한 옥상 세 개를 치워 문래, 홍대, 합정에 텃밭을 만들었어요. 농부 시장의 바탕이 되어준 경험이죠. 2021년 후쿠시마 지진이 일어났는데 우리나라도 먹거리 걱정을 하더라고요. 우리 먹거리가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알 수 있다면 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2012년 10월 농부, 요리사, 수공용예가가 함께 농부 시장 마르쉐를 시작했어요.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정기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장소죠. 소농은 소득을, 소비자는 신선한 먹거리를 얻는 지역 공동체 교류의 장입니다. 소농과 소비자 사이 통로가 좁을수록 농부는 기회를 잃고 유통, 가공업자 힘이 막강해져요.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 다양한 길을 만드는 게 중요하죠. 농부 시장 열풍은 세계적으로 불고 있어요. 1999년 미국에서 175개였다가 2019년엔 8,771개로 늘었어요. 지금은 9천 개가 넘죠.
2012년 시작한 마르쉐는 지금까지 시장을 250차례 열었어요. 8900여 팀 생산자가 참여했고 소비자 50만명이 방문했어요. ‘대화하는 농부 시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만들어진 관계가 일상으로 이어져 일손 돕기나 공부 모임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씨앗이나 레시피를 공유하기도 하고 공동경작도 하죠. 먹거리로 삶을 연결하는 겁니다. 마르쉐엔 채집, 소규모 가족농, 토종 씨앗으로 자연 재배하는 청년 농부들이 참여해요. 지구를 회복하는 농사죠. 마르쉐 시장이 아니면 딱히 물건을 팔 공간이 없는 분들이에요. 수공예가들은 주방에서 쓸만한 제로웨이스트 용품을 만들고요. 요리사들은 요리를 위해 재료를 찾는 게 아니라 농부들이 생산한 재료를 위해 요리를 찾아요. 마르쉐 손님들이 모아 준 종이봉투가 농부들의 포장지가 돼요. 시장의 모든 채소는 아름답습니다. 농업의 다양성, 맛의 다양성을 이어가고 싶어요.
당신의 장바구니에는 뭐가 담겨있나요? 장보기로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아요. 함께 더 좋은 먹거리를 나누고, 나의 선택으로 좋은 농부들이 자립하고 지구생태계가 건강해질 수 있다면? 대형마트 바코드보다 재래시장, 동내 시장에서 이웃과 대화하며 먹거리를 나눠보면 어떨까요?”

📺 먹거리x시민 강연 1강, 2강 다시보기
📺 먹거리x시민 강연 3강, 4강 다시보기

정리 온영한, 김소민 시민이음본부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