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물길은 시민의 별별 실험을 싣고 흐르네

강 주변에서 같이 시 쓰기, 수변에서 수집한 물체에 물방울 떨어트리고 관찰하기, 수변 악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시민참여형 연극 버스킹, 친환경 새집 짓기, 플로깅하며 요가하기….

서울 영등포구는 물 부자입니다. 도림천, 대방천, 안양천, 한강, 샛강이 흐르고 선유도, 여의도, 밤섬도 있습니다. 이런 물길, 잘 가꾸면 공동체의 구심점도, 지역의 매력을 끌어올리는 핫플레이스도 됩니다. 영등포 물길 주변에서 뭘 하면 재밌게 이웃과 친해질 수 있을까요? 시민들이 아이디어를 모아 직접 실험해봅니다. 희망제작소와 영등포문화재단이 함께 벌이는 ‘수변문화탐구생활-시민 실험 프로젝트’입니다. 별별 아이디어 중에 40팀이 뽑혔는데요. 10월 27~28일, 서울 영등포 술술센터에서 열린 ‘#수변에서 #00한 #실험하기 워크숍’에 모였습니다.

‘왜긴 왜야! 그만 물어’ 이 워크숍에 참가자들은 당분간 ‘왜’라는 질문만 들어도 짜증 날지 모르겠습니다. 박지호 희망제작소 연구위원의 ‘관찰과 문화도시의 이해’라는 강의 뒤에 그 ‘왜’의 파고가 참가자들을 덮칩니다. 왜 영등포 수변에서 하나? 왜 그걸 하나? 왜? 왜? 이 워크숍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프로젝트 피칭을 마친 뒤 PMI 삼각형을 그린 종이가 한 바퀴 돕니다. PMI는 Plus, Minus, Interesting의 약자입니다. 한 그룹의 5~6명이 서로 평가자가 돼 장점, 약점, 흥미로운 점을 적습니다. 아프지만 프로젝트의 구멍을 메우는 데 도움이 되는 건 ‘마이너스’ 항목들입니다. 비판과 지지가 오가며 프로젝트들은 점점 더 뾰족해졌습니다.

▲ 지난 10월 27일과 28일 열린 ‘수변문화탐구생활-시민 실험 프로젝트’ 워크숍 현장

🎋‘왜? 왜? 왜?’의 늪에 빠진 시민연구자들

이런 식입니다. ‘5인5색 디깅(digging)’ 프로젝트는 5명이 5개 수변을 산책하며 각자의 취향을 찾아 공유합니다. 산책 중에 만나는 장소와 사물에 자기만의 이야기를 입히는 것이죠. 예를 들어 ‘이 벤치 앉을 때마다 나는 이런 걸 해, 이런 노래를 들어’라며 공유합니다. 그러면 그 의자는 그냥 의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의자가 되죠. 그런데 “왜 할까요?” “타인의 눈으로 일상에서 새로운 걸 발견할 수 있잖아요. 취향이 다르다는 것도 확인하고요.” “공간의 의미를 여러 사람이 나누려면 어떻게 확산시킬지 고민하셔야겠네요.” “SNS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어요.” 아이디어를 보태기도 합니다. “5명의 세대나 성별이 다르면 더 좋을 거 같아요.” “SNS를 보고 사람들이 수변에 실제로 오는지, 아니면 온라인상에서 영등포 수변에 대한 피드를 늘리는지 실험해볼 수 있을 거 같아요. 두 결과 다 흥미롭겠네요.” “아! 좋은 피드백이었어요.”

‘꽃을 보듯 너를 보다’ 프로젝트는 사회적 약자를 영등포 수변으로 초대해 원예를 함께 하며 추억을 쌓자는 ‘힐링 제안’입니다. 현실적인 질문이 이어집니다. “수변에 그럴 공간이 있나요?” “도서관, 전시실 등 비어있는 공간들을 찾아보려고 해요.” “빌리기 쉽지 않을 수 있는데요.” 프로젝트의 전제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요양원이나 보육원에 사는 노인, 어린이들이 원예를 잘 접하지 못할 거라는 가설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오히려 문래동 철물점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바빠서 더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어요. 그분들을 초대해보면 어떨까요?” “아, 좋은 아이디어네요.” “그렇다고 너무 대상을 벌리지는 마세요. 한 달은 짧아요!”

▲ PMI 워크숍 현장

‘수변에서 플라워테라피 하기’ 프로젝트에는 방점이 압화 만들기 수업인지, 수변식물 탐색인지 애매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압화 클래스에 맞추자니 영등포 수변이랑 별 관련이 없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고, 수변식물 탐색에 맞추자니 적극적인 참여자 모집이 문제입니다. “수변에서 식물을 캐면 환경이 훼손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수변에서 볼 수 있는 식물을 사서 압화하면 어떨까 해요.” “그러면 꼭 영등포 수변이 아니어도 되지 않까요?” “식물은 참가자들이 캐는 건가요?” “아니요, 참가자들은 압화만요.” “그러면 보통 압화클래스랑 어떻게 다른가요?” “수변 탐색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사진을 찍어보는 사전 미션을 주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그렇게 적극적인 참가자를 어떻게 모을 수 있을까요?” “고민이 깊어지네요.”

🎋 참여자들 조언 덕에 점점 흥미진진해지는 실험

‘퀴어한 실험’라는 프로젝트는 퀴어들의 산책입니다. 왜 산책일까요? 이 프로젝트를 제안한 김O나 씨는 “산책로는 가장 사적이면서 동시에 모두의 공간으로 서로 거기 있음을 인지하지만 산책이라는 사적 행위를 훼방하지 않는 에티켓을 공유한다”고 설명하며 “퀴어를 안전하게 가시화하고 지역 사회와의 간격을 좁힐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합니다. 이 산책에 참여한 사람들은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지나칠 만한 작은 표식을 함께 하고 걷습니다. 일상 속에서 이웃이라는 걸 은근하게 드러내는 것이죠. “퀴어 혐오로 인해 공공장소에서 공격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험효과를 어떻게 측정할지 모르겠다”는 의문과 우려도 있었지만 “우리의 인식을 점검할 기회” “퀴어와 지역이 가지는 관계에 대한 유의미한 질문”이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도림천의 악사들’이란 짧은 다큐멘터리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개인정보, 초상권 동의를 받으라’는 현실 조언이 따랐습니다.

‘부모님께 나의 일상 선물하기’를 제안한 팀명 로월은 최근 독립해 서울 영등포구로 이사 온 1인가구입니다. 수변을 산책하며 사진을 찍고 부모님께 선물하자는 건데요. 이 프로젝트의 핵심 중 하나는 그런 활동을 함께 하며 1인가구끼리 친해지기입니다. 동네 친구 만들어 외로움 극복하기 프로젝트인 셈이죠. “이사온 지 얼마 안 돼 영등포 주변을 잘 몰랐는데 워크숍에서 프로젝트를 하기에 알맞은 장소도 추천받을 수 있어 좋았어요. 또 외로운 사람이 1인 가구만은 아닌데 1인 가구로 한정하면 모집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이 있어 참여자 폭을 확대해보려고요.”(로월)

이 글 처음에 소개한 ‘물체에 물방울 떨어트리기’ 기억하시나요? ‘주변 환경 특성 알아보기’ 프로젝트인데요.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점점 우리 주변을 관찰할 여유가 없어지잖아요. 물체마다 물방울이 스며드는 정도, 마르는 속도, 마르면서 남기는 자취가 다 달라요. 이를 기록해보며 관찰하는 능력을 기르는 거죠.” “왜 모두 관찰을 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도 나왔고요 “생각지도 못한 프로젝트인데 재밌겠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원래는 어린이 5명과 함께 하려 했는데 연령대를 넓히고 대상을 늘려 보려고요. 어떻게 모집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어요.”(김O롱)

 

🎋 한 달 동안 실험프로젝트 진행하고 기록…결과는?

이제 시작입니다. 참여자들은 한 달 동안 실험프로젝트를 완수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실험일지도 네이버 카페에 꼼꼼하게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희망제작소 연구원이 기록을 살피며 조력자 역할을 합니다.

‘샛강 나무토막에 꽃 피우기’ 프로젝트를 낸 ‘들이네’ 팀은 시민들도 함께 꽃을 꽂으며 사진도 찍도록 유도하겠다고 했는데요. 10월 30일 첫 일지를 올렸습니다. 팀원 세 사람이 프로젝트를 벌일 나무등걸을 찾아 산책했는데, 나무등걸이 주 산책로와 너무 떨어져 있어 시민 참여가 어려울 것 같다는군요. 더 좋은 실험장소를 찾았답니다. ‘들이네’는 이런 후기를 남겼습니다. “실험 장소를 찾다 보니 주변 풍경이 다르게 보이고 실험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졌어요.”

요가와 플로깅을 제안한 ‘요가다이브’ 팀은 벌써 선유도공원 잔디광장 대관신청서를 제출했네요. 실험이 만약 ‘실패’하더라도 참여자들은 성장할 겁니다. 이번 과정으로 영등포 수변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될 것 같습니다. 또 예산 짜기, 홍보 등 프로젝트 전체 과정을 돌파해봅니다. 이들이 실험하면서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지, 무엇을 알게 됐는지는 12월 8일 결과공유회에서 나누게 됩니다. 물방울 떨어뜨리며, 시민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요?

-글: 김소민 희망제작소 시민이음본부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