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불만을 통해 소통했다

편집자 주: 이 글은 ‘서울 멋대로 불만합창단'(희망제작소 조직)의 단원인 이영주님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불만합창단 단원으로 불만을 이야기하고, 내 옆에 앉은 사람들의 불만을 듣고, 모인 400 여 개의 불만 중 우리가 부를 불만을 정하고, 가사를 만들고, 노래 연습을 하고, 거리에 나가 노래를 부른 모든 과정을 함께 한 후의 소회에 대한 기록입니다. 불만합창단을 설명하는 그 어떤 설명보다 생생하고, 불만합창 페스티벌을 묘사한 그 어떤 글보다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불만합창단이 궁금하신 분들, 불만합창 페스티벌에 가고 싶었지만 못 가신 분들, 그리고 불만합창 페스티벌을 함께 하신 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_1C|1320748593.jpg|width=”600″ height=”400″ alt=”?”|서울 멋대로 불만합창단의 공연 모습 (사진: 송정아) _##]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올해 내가 했던 일들중에 가장 의미있는 일이라고 꼽고 싶은 불만합창 페스티벌.

처음엔 단순히 엘리스 누나의 블로그를 통해 ‘재미있겠다’라는 이유로 참가한 불만합창단 이었다. 사실 처음 참가 할 때는 이게 이런 규모의 축제를 기획하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고, 이것을 기획한 희망제작소의 존재 유무도 몰랐다. 그리고 불만합창 페스티벌을 1주일 앞두고 희망제작소를 만든 박원순 변호사가 유명한 사람인지 알았을 만큼 사전적인 지식이 전무했던 난, 페스티벌 직전까지 이 행사의 거대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희망제작소에서 기획한 이 행사는 마찬가지로 희망제작소에서 주관하는 사회창안주간과 더불어 진행되었으며 전국 8곳의 지역에서 각기 조직된 불만합창단이 모여 함께 불만을 노래하는 그런 행사였다. 처음에 단순히 서울에서 모여 우리끼리(?)만 일발성 공연을 갖는 줄로만 알았던 나에겐, 생각 외의 진지함을 요구하는 셈이 되었던 것이다.

생각 외의 진지함을 요하는 그런 축제라는 것을 알린 첫 타자들은 취재진들이었다. 불만합창단의 서울 지부(?)인 ‘서울 멋대로 합창단’의 첫모임에는 없었던 취재진이 한 주가 지나면 지날 수록 많아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5주차와 첫 거리공연 때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취재진들에게 둘러 쌓여 봤으니, 할 말 다한거지. 우리 합창단은 합창단원 수보다 많은 취재진들과 함께 한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사실 나는 그 많은 취재진들이 그닥 부담스럽다거나 거슬린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지만 아무래도 처음 마음가짐인 ‘재미’에 집중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아마 5주차에 취재 온 모 방송국의 피디 때문일 것이다. 화재집중팀은 이 페스티벌을 축제가 아닌 경연대회로 생각하는 듯 했다. 불만합창단이란 것을 최초로 조직한 올리버와 텔레르보 부부는 이것이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이 주된 목표가 아닌 ‘불만을 노래로 표현하는 것’ 이라고 생각했던거 같고, 내가 처음 합창단 모임에 갔을 때 들은 설명에 의해도

이 페스티벌은 내 불만과 남의 불만이 상충, 혹은 경쟁하여 우위를 가리는 것이 아닌, 내 불만과 남의 불만의 동질감, 혹은 이질감을 느끼고 동의하고 생각하는 축제라고 이해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난 이 축제에 단순히 재미있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참가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방송국은 이 축제를 확실히 경연대회라고 받아들이고 취재에 임했고, 인터뷰에서도 그런 의도를 가진 질문이 나왔다. ‘몇 등 할 거 같냐’, ‘이 중에서 노래를 가장 잘 하는 사람은 누구냐’. 그 취재진이 함께한 마지막 자리에서 난 느꼈던 거 같다.


[##_1C|1304233314.jpg|width=”660″ height=”439″ alt=”?”|불만합창단 첫 모임, 10분동안 200개가 넘는 불만이 약 17명으로부터 나왔다! (사진:희망제작소)_##]‘아, 이거 잘 불러야 되나?’

사실 나 노래 그렇게 못하지는 않는다. 음악도 많이 듣는 편이고, 보컬은 하지 않았지만 밴드도 조직했었고, 전혀 다르지만 국악을 배우면서 민요도 어느정도 배웠다. 그런데 난 가곡이나 클래식엔 문외한이다. 잘 듣지도 않는 장르를 잘 부를리가 만무하지 않는가. 게다가 몇몇 지인들은 잘 알고 있듯이 내가 학업에 소홀해 정규 중-고등학교 과정을 상당히 생략해 수료한 관계로 난 하다 못해 음악시간에 나오는 노래 조차 잘 모르고 잘 부르지 못한다. 무대에 선다고 해도 떨리지 않는다.

사물놀이를 하면서 만 명 가까히 모인 무대에도 서보았고, 아무것도 없이 달랑 악기만 들고 마로니에 공원에서 다섯시간 이상 뻐겨 본적도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긴장하거나 떨리는 문제가 아닌 본질적인 문제다. 난 가곡을 불러본 경험이 거의 없다.

그리고 우리 합창단의 곡은 분명 클래식에 가까운 가곡이었다. 차라리 다른 팀처럼 기존의 대중가요를 개사해서 불렀다면 별로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불만합창’정신에 너무도 충실히 입각한 팀이었고, 당연히 곡도, 가사도 자작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불만합창’ 제 1정신을 너무 충실히 지켜왔다.

‘연습은 4~5 차례로. 이 모임 내에 곡을 만들고 가사도 정하라. 그리고 노래 연습도 적당히. 너무 잘부르려고 노력하지 말아라.’

[##_1C|1371392545.jpg|width=”660″ height=”495″ alt=”?”|10월 10일 멋대로 불만합창단의 첫 번째 거리공연 (사진: 정미소) _##]물론 이것은 한 도시의 불만합창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과정을 최대한 단순히 하면서 날것의 이미지를 살린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열리는 불만합창 페스티벌은 여러 개의 도시에서 모인 합창단이 한자리에서 연속해서 공연을 갖는 것이다. 한국 정서상 경연대회의 이미지를 지우기는 힘들다. 심지어 그 자리에 나온 여타 도시의 합창단원들조차 이 축제를 경연대회의 한 자락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이렇게 ‘생각 외의 진지함’이란 난제는 내 앞에 불현듯-마지막 연습 때 떠올렸으니까-나타났고 대처할 시간도 짧았다. 마지막 연습과 페스티벌의 간극은 이틀.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사실 난 이 노래를 잘부르지 못하는데. 나말고 다른 단원들은 이 축제를 처음부터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어쩌지. 폐가 되지는 않을까. 이러한 고민은 물론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날 거리공연에서 불만합창을 처음으로 기획한 올리버 코차 칼라이넨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의 공연이 훌륭하다고 칭찬했으며, 한가지 단점이 있다면 너무 가사집에 집중해서 고개를 숙이는 것 이라고 말했다. 이 노래는 잘 불러야 좋은 노래가 아니라 잘 나눠야 좋은 노래라는 걸 그제서야 다시 알게 되었다.(그 전날에 김씨도 이야기 했었는데, 역시 창안자가 이야기 해주는 것과는 파급력 자체가 다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 합창단원중 그 누구도 노래를 잘 부르는 것에 방점을 찍은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재미를 찾는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천군만마를 얻은듣한 듬직함이 느껴졌다.


[##_1C|1295370448.jpg|width=”660″ height=”440″ alt=”?”|서울 멋대로 불만합창단의 공연. 우리의 즐거움이 느껴지시나요? (사진: 이문섭)_##]우여곡절 끝에 맞이한 행사 당일, 그래서 난 행사에서 자유로웠다. 못불러도 괜찮다라는 생각보단 잘 부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행사장에 들어섰다. 처음이면 어떠랴. 이 노래는 다른 방식으로 감동과 웃음을 불러이르킬 수 있다는데. 행사장엔 역시 많은 취재진이 있었고, 까칠할거라 생각했던 무대 연출가도 있었다. 나에겐 별 상관 없었다.

난 노래를 불러 상을 타러온 것이 아니라, 남의 불만을 듣고 내 불만을 말하러 온 것이니까.

물론 그날 나를 우리 합창단의 단장으로 착각한-우리 팀만 그런 듯, 우리는 처음부터 단장이 없었다. 굳이 단장이라고 표현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느새 스테프의 탈을 쓰고 너무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수많은 취재진들과 음향감독, 스테프들에 의해 많은 질문을 받고 사진도 찍혔지만 그런 것들도 나에게 긴장감을 불어 넣지는 못했다. 나 자신이 불만합창의 원 취지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공감하고,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리허설이 끝나고도 계속해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던 몇몇 팀들과 예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말했다던 어느 사람의 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행이 우리 합창단원들은 모두가 노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바람직한 불만쟁이들 이었기 때문에 나의 바람처럼 우리의 연습은 길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박원순 상임이사가 지나가는 투로 ‘이 팀은 연습 안해요?’라고 한 질문에 우리는 웃으면서 ‘그건 불만합창단의 취지와 어긋나는 행동이잖아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 난 재미와 공감을 위해 참가했고, 그것은 옳은 결정이었다.

공연시작이 다가오며 사람들이 속속 공연장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들이 많은 좌석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함께해준 관객들도 많았다. 200석이 가득 찬 공연장을 처음으로 빛낸건 아이들이었다. 봉천동의 소녀들로 구성된 밤바다 소녀들의 공연은 정말로 훌륭했다. 그리고 분명 기술적으로 잘 부른 노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의 공연이 아름다웠던 이유는 빛나는 소녀들의 미소와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그녀들의 불만 때문이었다. (버스비) 300원 낸다고 자신들을 무시하지 말라는 가사는 초등학생의 진짜 불만이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어떤 거대한 상이 걸려있어서도 아닌 순수한 불만을 내뱉고 싶었던 아이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들은 정말로 빛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들도 이것이 재미있었을까. 나처럼 재미를 찾아 온 것일까.

[##_1L|1106367409.jpg|width=”250″ height=”324″ alt=”?”|관악 한울림 불만합창단의 공연 (사진: 이문섭) _##]살면서 느낀 모든 불만들의 향연이 펼처졌다. 구성원이 다향한 만큼 불만도 여러가지였다. 장애인 야학 학생들은 또렷하지 않은 발음으로도 신나게 불만을 불러제꼈다. 같은 불만을 이야기 해도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혹은 다른 불만을 이야기 해도 나의 불만처럼 느껴졌다. 똑같지만 다른 사람들. 그리고 장애인들만 느낄 수 있는 여러가지 불만들. 휠체어가 들어가기는 협소한 엘리베이터, 길 곳곳에 산재해 있지만 우리는 느낄 수 없는 높은 턱들. 차갑게 식은 김밥 먹기 지겨워하는 사람들, 이물질이 들어간 음식, 미국산 소에 분노하는 이야기들.

우리 공연 때문에 무대 뒤에서 대기하며 들었다는게 굉장히 아쉬울 정도로 좋은 공연이었다. 단지 뒤에서 듣기만 했는데도 몸이 절로 움직이며 흥겨워졌다.

북아현동 주민과 추계예대 학생들이 함께한 세번째 공연은 자신들의 터전에 대한 불만이었다. 높은 언덕이 싫다, 가로등 없는 골목길. 오지 않는 마을버스, 돌아가는 마을버스. 여러 가지 불만들이 있었고 그것이 꼭 북아현동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느껴졌던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드디어 우리의 차례가 돌아왔다. 우리는 사실 걱정했다. 대중가요를 개사한 노래들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 노래가 약간 처지는게 아닐까 하는 고민이었다. 신나고 재밌게 부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그중엔 다행이도 노래실력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남들이 뭐래도 우리는 즐긴다는 기운이 강했고, 공연장엔 어느새 누구도 무대에 올라오는 팀의 노래실력을 상관하지 않았다. 불만을 노래하는 것엔 그런 힘이 있었다.

무대 위로 올라갔다. 떨리지도 긴장되지도 않은 채 난-아니 우리 모두는 반주가 시작되길 기다렸고 반주가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훌륭한 무대였다. 자화자찬이 아니라 실로 그러했다. 부르는 모두들, 듣는 모두들이 하나되어 즐기고 있었다. 이 축제가 점점 절정으로 달려간다고 생각했다. 노래를 마친 나에게 들려온 노래 참 잘불렀다는 칭찬도 우리가 모두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을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는 것과 같이 들렸다.

난 정말 내게 불만이었던 가사들이 당신에게도 불만인가요 라며 물었고 관객들은 그렇다, 혹은 아니다 라고 반응해 줬다. 소통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불만을 통해 소통했다.

처음에 불만합창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른 것이 있었다. 부정적인 의견을 긍정적으로 표출하는 방법. 불만이라는 어찌보면 부정적인 요소를 노래라는 긍정적인 방법으로 표출한다. 재미있다. 노래라는 것에 불만이 휘둘려 약해지지도, 불만이라는 것에 노래가 휘둘려 무거워지지도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 우리는 그냥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유쾌함, 통쾌함, 상쾌함. 노래를 부르고 객석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마지막 취재진에게 했던 말. 난 정말로 오랜만에 속 시원하다고 생각했다. 그 기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 객석으로 돌아갔다.

중간에 게스트의 공연이 끝나고 다섯번째 불만합창단이 등장했다.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공연을 한 그들은 말 그대로 즐거운 불만합창단. 장애여성공감이라는 단체에서 조직된 그들. 당연히 불만 많을 그들이 불만을 이야기 하면, 세상은 그녀들에게 꼬였다라고 말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불만이 내 불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른 불만이 있었지만 그것은 북아현동에 사는 주민들과 파주 금촌에 사는 나와의 차이와 다를 게 없다. 특히 잘못된 전통을 거부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따라간다는 가사는 정말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 불만은 장애에만 국한 된것이 아니었다.

여섯 번째로 진주에서 올라온 꾀꼬리 불만합창단의 노래가 이어젔다. 진주여성민우회가 조직한 합창단은 우리에게 친숙한 여행을 떠나요를 개사해 불만을 노래했다. 전화가 와서 이 공연을 놓쳤는데, 마지막에 앵콜로 불러서 굉장히 당황했다.

일곱 번째로 누리꾼 불만합창단이 올랐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나오기에 힘들었다는 그들의 말과 불만들을 부르는 자태는 너무 상충되는 것이었다. 가사도 좋고 노래도 좋았다. 역시 촛불 누리꾼들이 만든 단체라 그런지 정치적인 가사가 많았다. 소화기로 메이크업 물대포로 클렌징, 최소한 우리에게 온수를 달라던 가사가 기억에 남는다.

여덟 번째는 공연장에 많은 반향을 일으켰던 불만메들리그룹 익산 불만합창단의 순서였다. 무려 여섯개의 곡을 개사한 방대한 메들리도 메들리지만 남녀노소 모두 한 자리에 모인 모습. 우리 멋대로 불만합창단이 섭외(?)를 실패했던 4~6세의 어린이들까지 함께한 그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아이들의 깜찍한 율동-물론 자주 틀렸다. 하지만 틀린 게 중요한게 아니다. 노래를 잘부르는 게 중요한 덕목이 아닌 것처럼-과 친숙한 노래들을 개사한 노래들은 사람들을 업템포로 이끌기 충분했다고 생각된다. 특히 불만합창 페스티벌에 때아닌 꽃미남 출연은 여성 불만이들의 춘심을 자극해 엄청난 호응을 얻어 내었다. 그리고 그 꽃미남 청년의 퇴장을 끝으로 불만으로 하나되어 신나게 논 불만합창 페스티벌은 끝이 났다.

[##_1R|1235604204.jpg|width=”400″ height=”266″ alt=”?”|불만으로 하나되어 신이 난 자리 (사진: 이문섭) _##]불만으로 하나되어 신이 났다. 즐거웠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불만이 가득한 자리가 그렇게 재밌고 신나는 자리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러길 바라고 간 나에게도 굉장히 이상한 체험이었으니까. 나의 글로 피상적인 느낌만 받는 다른 이들은 분명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체험해본 나로서는 그 자리가 즐겁고 신나고 재미있는 자리였다고 부정하기 힘들다. 실로 불만 가득히 재미있는 자리였으니까.

부정적인 요소를 긍정적인 방법으로 표출하는데 성공했다.폭력과 투쟁 없이도 그 자리는 여러가지 불만들이 서로 이해되고 받아들어지고 있었다. 대통령을 앉혀다 놓고 불렀으면 정말 그도 이해했을 거라고 믿을 만큼, 우리는 노래로 불만을 이야가 하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_1C|1386360811.jpg|width=”660″ height=”440″ alt=”?”|불만합창 페스티벌을 내내 지켜 보며 응원과 찬사를 아끼지 않은 올리버 (사진: 이문섭)_##]

그날 자리에 참석한 올리버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들이 만들어 논 도구를 한국에서 훌륭하게 진화시켰다. 이제 불만합창은 훌륭한 소통의 장이 되었다.나도 동의한다. 불만을 노래한다는 것은 소통의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처음부터 한 얘기지만 불만합창이 그리고 이 불만합창 페스티벌이 가지는 진정한 장점은


미치도록 재미있다는 것이다.



생각 외로 너무 긴 글이 되어버렸다. 짧게 적고 새로 사귄 친구(=올리버) 자랑을 하려고 했던 계획이 어긋났다. 다음 번에 써야겠다.


너무 긴 글에 집중을 할 수 없는 성급하고 산만한-나같은 사람을 위한 세 줄 요약.

이거 좀 짱인 듯
못오신 님들 깝ㄴㄴ
참 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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