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 혁명으로 농촌 문화를 만드는 남상도 목사

전남 장성에 가면 의식주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한마음공동체의 남상도 목사가 있다. 시멘트 건물만 즐비한 시대에 2층 황토집이 세워지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예술이다”고 외쳤다. 모두가 화학 비료의 대안으로 유기농을 외치고 있을 때, 유기농의 한계를 지적하며 무투입 농업인 ‘예술 자연 농업’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러한 남상도 목사가 장성에서 일어나는 작은 혁명을 들려주기 위해 지난 7일 여름에도 내의 2개와 양말 여러 개를 겹쳐 신고 푹푹 찌는 서울까지 올라왔다.

더위에 쓰러지지 않고 강연장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내의와 양말이 실크이기 때문이라며 뽕나무를 심어야한다고 강조한다. 황토 집과 뽕나무, 무투입 농업이 농촌의 대안 그리고 세계화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희망제작소 농촌희망 기획강좌 ‘대한민국 최고의 농업고수로부터 듣는다’에서 남 목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몇 천년이 지나도 거기에는 황토집이 있을 것이다.”

21세기는 문화와의 싸움이다. 남 목사 또한 이러한 시대 속에서 ‘문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했고 그 종착점이 ‘황토집’이었다. 남 목사가 지은 황토 집은 쉽게 질려버리는 도심에 즐비한 시멘트 건물과 높이 쌓아올린 담장 안 화려한 궁궐과는 다르다.

모든 사람들이 발을 멈추고 감상할 수 있는 공공미술이 되기도 하고, 집 동선은 각진 곳 없이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 같기도 하다. 또 단단한 돌이 받쳐주고 있어 천년이 지나도 튼튼하며, 한옥의 단점을 보완한 2중 지붕이라 북풍이 없다. 남 목사는 “집 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마을의 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남 목사가 황토 집을 지을 때는 5가지 원칙이 있다. 몇 백 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는 안정성, 편리성, 건강성, 에너지 절약, 예술성이다. “우리 집 화장실에는 안방으로 향하는 창문이 하나 있어요.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반신욕을 하면서 몇 시간 동안 안방 텔레비전을 통해 오페라를 감상해요”

흙집은 음악을 듣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고 한다. 오페라도 모르던 남 목사가 오페라를 좋아하게 된 것도 흙집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라고. “앞으로 황토로 만든 오페라 하우스를 만들 예정이에요”

남 목사가 보기에는 최고의 주거인 황토집은 사실 사장되어 가고 있다. 모두가 돈이 되는 것만 찾다보니, 돈이 안 되는 황토 집은 개인의 취향에 의해서만 발전하고 있다. “사람들이 황토집이 빨리 무너진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흙의 원리를 모르고 하기 때문이에요” 남 목사는 “모든 것에 원리만 알면 어려운 것이 없다”고 한다.

“예술 자연 농업이라고 들어 봤나요?”

“지구를 천 년 이상동안 네모라고 생각한 것처럼 잘못된 것이 몇 천 년 동안 이어질 수 있어요. 그 중 하나가 농사에요”

모든 사람들이 비료의 대안으로 인분, 축분을 이용한 질소 공급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남 목사는 이 또한 인위적이라고 말한다. 남 목사는 일본에서 인위적인 어떠한 영양분도 공급하지 않고 토양 본래의 성질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 예술 자연 농업을 접한다. “예술 자연 농으로 생산된 농산물은 병충해에도 강할 뿐 아니라 맛과 질도 아주 뛰어나요”

남 목사도 처음에는 유기농으로 시작했다. 이 때 그는 생산뿐만 아니라 유통의 중요성을 알았다. 광주의 각 구마다 직판장을 설치했으며, 인근 거대 매장과의 경쟁에 대비해 아파트 단지에 작은 매장을 만들었다. “잘나가던 직판장을 모두 접고 아파트 대문 지키기 작전에 돌입했죠. 소비자들이 근처에서 농산물을 사먹으니, 좀 더 떨어진 거대 매장을 갈 필요가 없는 거죠” 남 목사는 “항상 앞을 보며 준비를 하고, 변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의 꿈은 뒷산에 뽕나무를 심는 거예요.”

남 목사는 뒷산에 뽕나무를 심어 실크 옷을 만들어 내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건강의 원리를 알면 절대 병에 걸리지 않아요” 남 목사는 여름에 내의 2개, 몇 개의 양말을 겹쳐 신지만 소재가 실크라 전혀 답답하지 않다고 한다. 실크는 다른 면과 다르게 몸의 독소를 밖으로 배출하기에 속옷의 소재로는 그만이라고 한다.

“뒷산에는 뽕나무를 심고, 황토 집에서 살며, 예술 자연 농으로 생산된 농산물을 먹고 좌우에는 자연 유치원과 노치원을 짓는 것이 꿈이에요” 현재 노 목사의 자연 유치원의 수강 인원은 200여 명이라고 한다. “폐교를 유치원으로 만든다고 했을 때 모두가 미쳤다고 했지만 지금은 대기자도 있어요”

남 목사는 모든 것의 스승은 자연이라고 한다. 자녀에게 무리한 관섭과, 1등만을 강조하는 교육은 잘못된 교육이라고 한다. “나는 자식을 키울 때 먼발치에서 바라만 볼 뿐 절대 관섭하지 않았어요. 모든 결정은 자식에게 맡기는 거죠. 이 모두가 자연이 가르쳐 주는 교육이에요”

“대안 없는 외침은 도태만 있을 뿐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남 목사는 일반적인 목사였다. 85년 이후 ‘이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정치 투쟁 중심의 목사가 되었고 90년 이후 유기농을 시작했다. 90년 초반에 한마음 공동체를 창설해 95년 유통을 강화하기 시작했고 2000년도 친환경 유기농, 황토 건축을 시작했다. “나는 5년 단위로 항상 변해요. 생명이 있는 것은 항상 변하는 게 이치지요”

예전에 그는 참 많은 강연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강연은 귀만 키울 뿐, 자신이 직접 보여주는 것 이외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남 목사는 “미국산 농산물에 맞서기 위해서는 대안을 만들어 내야지 소리만 질러서는 결국에 도태한다”고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한우리 공동체 같은 네트워크가 긴밀히 연결되어 잘못된 자본의 논리로만 돌아가는 시장과 맞서야 한다”고 말한다.

또 “농촌이 살기 위해서는 농촌만의 문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농사만 가지고서는 절대 농촌이 살지 않아요. 농촌이 도시보다 더 좋은 문화를 가지고 있어야 사람들이 모이는 거에요”

■ 강연 녹취록 보기☞클릭

Comments

“의식주 혁명으로 농촌 문화를 만드는 남상도 목사”에 대한 2개의 응답

  1. 고래 아바타
    고래

    ‘따뜻한 문화’가 살아숨쉬는 농촌이 도시보다 훨씬 잠재된 가능성이 크다고 믿습니다 ^^

  2. 전우석 아바타
    전우석

    동감입니다. 농촌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농촌의 미래는 분명히 달라지겠지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