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주민자치센터’ 봤나요?

<박원순의 희망탐사 57>

‘한국샤프’라는 곳에서 노조를 결성하고 노동운동을 하다가 회사에서 잘렸고 10여 년 동안 소송도 했다. 노조 활동 중에 만났던 사람들이 늘 내 가슴에 환한 빛을 준다. 그 후에 대학도 다니고 성공회대학 NGO대학원을 다니면서 새롭게 사회적 인식을 키웠다. 6년간 영어를 가르치며 돈만 벌었는데 너무 가슴이 팍팍해 마을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생긴 인천참여자치연대의 실행위원으로 일도 했다. 주민자치센터에서 새로운 주민운동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이혜경 씨)

나는 전혀 사회운동에 대해 몰랐다. 동네에서 슈퍼를 운영하고 있다. 주민자치센터의 위원이 되었고 총무가 되었다. 총무가 많이 움직이면 그 센터가 잘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 동네에 사는 이혜경 씨가 훌륭하다는 소리를 듣고 삼고초려해서 데려왔다. 함께 일하면서 나도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전국자치센터박람회에서 발표도 해보고 다른 자치센터에 조언도 준다. (이부종 씨)

[##_1C|1035060113.jpg|width=”466″ height=”311″ alt=”?”| 이부종 주민자치센터 위원. 푸른샘 도서관장(왼쪽)과 이혜경 희망을 만드는 마을사람들 풀뿌리활성화위원장. ⓒ희망제작소 _##]슈퍼를 운영하는 평범한 시민 이부종 씨와 주민운동가 이혜경 씨, 지난 2005년과 2006년 연거푸 전국 주민자치박람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가좌2동 주민자치센터에는 이 두 사람이 있다. 이 두 사람은 살아온 배경도 다르고, 역할도 다르지만 주민참여를 이끌어내고 그 힘으로 가장 훌륭한 주민자치센터, 어린이도서관을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주민들과의 끊임없는 논의와 토론을 거쳐 마을의 10년 앞을 고민하는 의제까지 만들어냈다. 이제 이 두 사람이 안내하는 주민참여의 세상으로 가보자.

10년 동안 동네에서 할 일을 찾다-가좌2동 주민자치센터 마을의제팀이 생기다

우선 인천 서구 가좌2동은 어떤 동네인가. 한마디로 일반인들의 잣대로 말하면 좋은 동네가 아니다. 집값은 오르질 않고, 더 좋은 아파트나 곧 값이 오를 집을 찾아나서는 주민들의 이사가 잦으며, 주변에는 공단이 있어 여러 공장이 입주해있다. 땅값이 싸면 공기라도 좋아야 만회가 될 텐데, 공장이 주변에 있으니 공기가 시골만큼 좋지도 않다.

하지만 마을이라는 곳이 주민간의 소통의 공간이며, 주민토론이 살아있는 공간이고, 어린이와 어른, 문화와 예술이 모두 함께하는 공간이라 생각한다면, 이 마을은 그 어느 마을보다 좋은 마을이다.

[##_1L|1012874569.jpg|width=”302″ height=”430″ alt=”?”|▲ 주민자치센터를 알리는 홍보포스터. ⓒ희망제작소_##]”현재는 좋은 조건이 아니죠. 공장도 있고, 집값이 쑥쑥 오르는 것도 아니니 이사도 잦고 하지만, 우리 마을은 10년 후를 생각해요. 마을에 주민자치위원회가 있었는데 지난 2004년에 앞으로 10년 동안 마을에서 할 일을 찾아보자며 젊은 위원들이 중심이 되어 뭉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이듬해부터 5000장이 넘는 마을 사진을 찍으며 오랫동안 살고 싶은 살기 좋은 마을의 모색을 찾아왔고, 수차례 토론과 워크숍을 벌여 7개항의 마을의제를 선정하기에 이르렀죠. 그리고 지난해 드디어 10년 미래를 위한 아름다운 마을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마을의제팀 결성식을 갖게 됐어요. 주민 스스로 이렇게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모두 하나의 목소리를 내며, 모두 하나의 방향을 향해서 발을 내딛은 거죠. 그것 자체가 큰 성과였다고 생각해요.”

가좌2동 마을 도서관인 푸른샘도서관을 만들어가면서 더욱 마을의제팀의 필요성이 확고해졌다. 처음부터 그들의 마음이 하나로 맞았던 건 아니다. 마을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서로 달랐다. 아파트 자치회와 부녀회, 주민자체센터 문화강좌의 수강생이나 자생단체들 모두 서로의 입장에 따라 이해와 바라는 바가 달랐다. 그래서 그들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찍은 사진을 보며, 우리의 문제가 무엇이고 달라져야할 방향이 무엇인지를 논의했다. 6개월 정도 토론하고 주민자치센터 분과위원회를 열었으며 워크숍도 개최했다.

이렇게 해서 결정된 가좌2동의 마을의제는 ‘문화와 예술이 숨 쉬는 마을, 주민토론의 광장이 있는 마을, 재래시장을 보호 육성하는 마을, 어려운 이웃과 소통하는 마을, 평생교육이 가능한 마을, 어린이 체험학습이 지속적인 마을, 나무와 풀, 사람이 어우러지는 마을’ 등 7개 항이다.

이 과정에 주민들의 토론과 민주적 의사결정이 있었다. 무엇 하나를 결정할 때마다 토론을 벌였다. 이것이 마을의 의제와 결정을 밀고 나가는 힘이 되고 있다. 이 마을의제는 그러한 힘을 통해 구체화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

[##_1R|1071950226.jpg|width=”245″ height=”377″ alt=”?”|▲ 주민자치센터의 회복. ⓒ희망제작소 _##]”우선 ‘작은 문화와 예술이 숨쉬는 마을’이 되기 위해 작은 음악회를 개최하고 있고, ‘어려운 이웃과 소통하는 마을’이 되기 위해 ‘나를 찾아가는 여행’프로그램을 하면서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 23명과 푸른샘 도서관, 가좌초등학교가 연계해 만남의 자릴 넓혀가고 있습니다.

또 ‘재래시장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마을’의 프로그램으로 우리 마을 재래시장 옆에 들어오는 대형마트에 대응하여 재래시장 번영회와 간담회를 가지며 고민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들의 힘을 하나로 뭉치는 것이 생각보단 쉽지 않아요. 하지만 마을 재래시장을 살리는 다양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어요.”

처음부터 쉬운 일이 어디 있을까? 서로 이해가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사람들이 모여서 부딪치면서 서로간의 신뢰성이 생겨난다.

신뢰를 쌓는다는 것, 신뢰가 쌓였다는 것은 하나의 띠를 묶고 길거리에 나가 큰 목소리를 외치는 것에서만 얻어지고,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상대방과 차를 마시고 대화하고, 함께 웃고, 그렇게 서로 어울려 사는 삶 속에서 깊어지고, 드러나는 것이다. 모든 것의 키워드는 ‘사람’이고 이혜경씨, 이부종씨는 주민자치위 활동을 통해 이를 가슴에 새겼다.

푸른샘 도서관, 1개월에 만들 것을 1년에 걸쳐 만든 이유
-주민들의 참여로 만들어내고 주민의 참여로 운영된다

[##_1L|1302293770.jpg|width=”433″ height=”323″ alt=”?”|▲ 푸른샘어린이도서관 전경. ⓒ희망제작소 _##]마을의제팀을 만들어낸 계기가 됐던 것이 이 마을의 ‘푸른샘어린이도서관’이다. 가좌2동 주민자치센터 3층에 있는 푸른샘 도서관은 주민들이 스스로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낸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다. 하지만 작은 도서관을 가득 채운 아이들의 눈들이 어느 곳보다 반짝이고, 마을사람들의 정이 가득 묻어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책장과 유리블록 사이로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살, 책읽기에 알맞은 조명과 따뜻한 방바닥,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과 벽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 아이들의 작품들이 푸른샘 도서관을 말해준다. 이곳은 더구나 1년에 후원금으로 1만 원 이상 내면 1년 동안 무료로 책을 볼 수 있다.

푸른샘 도서관을 만들어내고 이끌고 있는 이혜경 씨는 푸른샘 도서관이 탄생하기까지의 산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행정의 지원을 받아 뚝딱 만들면 한 달에 만들 수 있지만 1년이 걸렸어요. 원칙이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나가자는 거였으니까 시간이 더 걸렸던 거죠. 주민들과 함께 만들고 이후에 주민들이 운영해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는 고민, 어떻게 참여하게 할지부터가 고민이었어요.

도서관 이름을 짓고, 책 모으는 일 등은 부녀회에서 맡아 진행을 했습니다. 한 달에 2000원씩 내는 후원회원 75명을 따로 모았고, 동사무소에서 도서관 공간을 내주었고, 서가와 에어컨, 선풍기 등은 모두 주민들이 힘을 모아 보탰습니다.

만드는 과정에서 주민들과 함께 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그래야만 정말 살아있는 마을의 도서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맞는 길이었다고 생각해요.

현재 도서관을 운영하는 자원활동가가 모여 있는 샘동아리에는 관장을 포함해 18명이 있고, 이분들이 도서관을 운영합니다. 아이들 프로그램도 일상적으로 7가지가 있고 체험프로그램도 한 달에 한 번씩 하고 있는데 이 모든 기획도 샘동아리에서 하고 있죠. 올해는 생태가 주제인데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살기 위해 고민하는 겁니다.”

샘동아리의 활동은 기본적으로 자원봉사다. 이에 자원봉사자를 찾기 위해 푸른샘 자원활동가학교를 열어 주민과의 만남의 자리를 넓히고 있다. 자원봉사자들과 주민들과의 이 만남의 자리는 매주 목요일에 펼쳐지고 있으며 이미 100회가 넘으면서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들도 처음에는 자신의 아이를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마을의 아이들로 시야를 넓히고 결국 마을 전체를 생각하게 된다. 한부모가정의 아이들에 대해서도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해볼 생각도 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삶이라는 배움을 스스로 얻으며 간다.

자생단체(관변단체) 연합회에 다름아닌 주민자치센터들

2000년 들면서 주민과 밀접한 행정의 변화를 가장 많이 보여준 곳이 바로 동사무소의 주민자치센터다. 주민자체센터는 읍면동의 기능전환의 일환으로 행정기능을 시군구로 이관하고, 그 공간과 서비스의 여력을 주민들과 힘을 합쳐 자율적인 공간 운영과 마을 운영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가운데 주민자치위원이 있는 것이고, 내가 만난 가좌2동의 이혜경 씨나 이부종 씨는 가좌2동의 주민자치위원으로서 단순히 주민대상의 강좌 프로그램 운영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주민들이 스스로 동네를 운영하는 기틀을 마련한 이들이다.

하지만 모든 주민자치센터가 가좌2동처럼 성공적으로 운영된 것은 아니다. 초창기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주민들이 모여서 한 목소리를 내는 것에 어색하던 그 시절에는 동사무소나 구청에서 그 기반을 우선 조성했고, 대체로 관변단체나 지역의 자생단체의 대표들로 주민자치위원회를 구성했다.

관의 지원을 받아 일하는데 익숙한 지역인사들이 중심이 된 주민자치센터가 저절로 돌아갈 리는 만무하고 많은 부분들은 행정공무원들이 대신 이끌고 위원들이 따라가는 형식이었다.

자발적인 주민들의 움직임이 적은 곳은 자유총연맹이나 자율방범대, 청년회 등의 관변단체나 자생단체들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생단체의 경우 자신의 단체를 돌보는 일만으로도 여유가 없을뿐더러, 그들의 존재가 오히려 일반 주민의 진입을 어렵게 해 주민자치센터가 자생단체연합회와 다름 아닌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사실 잘못 운영된 사례도 많았고, 자생단체연합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인 주민자치센터도 많습니다. 그래서 주민자치센터박람회를 통해 좋은 사례가 알려지고 있지만 아직도 관변단체의 모습으로만 비치는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아직 일부이긴 하지만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은 주민의 힘으로도 마을이 크게 달라질 수 있어요. 그 주민의 힘이 크게 되면 나머지 자생단체와의 새로운 관계도 모색해볼 수 있는 여지가 있죠. 이러한 것들이 결과적으로 푸른샘 도서관 만들기나 마을의제팀으로 나타난 겁니다. 이 두가지 사업, 팀이 결국은 가좌2동 주민자치센터의 양날개라고 말할 수 있죠.”

실제로 가좌2동의 마을의제팀도 한 때 자생단체들과 갈등 관계에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갈등을 극복했다. 갈등을 극복하고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은 여느 다른 주민자치센터가 잘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잘 모르다가 마을의제팀이 뜨면서 자생단체들의 일부에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는 생각에 반대한 경우도 있었어요. 시장 뒷골목에서는 주민자치센터에 시민단체들이 조종하러 들어왔다고들 이야기 되고 있었으니까요.

몇 년 지나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생기기는 했지만 생각을 바꾸기는 어려운 법이죠. 그러나 지금은 의제팀이나 도서관의 운영은 큰 흐름이 되어 이제 더 이상 반대할 수가 없게 됐어요. 그러면서 자생단체와도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고요. 인천 서구에서만 푸른샘도서관을 모델로 한 작은 도서관들이 5개나 생겨났죠.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어요.”

[##_1C|1088002608.jpg|width=”670″ height=”444″ alt=”?”|▲ 가좌2동 마을지도 ⓒ희망제작소_##]‘희망을 만드는 마을사람들’의 탄생

이혜경 씨는 최근 ‘희망을만드는사람들’ 풀뿌리활성화 위원장이라는 직책도 맡았다. ‘인천참여자치연대’와 ‘희망21’이 함께 힘을 합쳐 지난 6월 ‘희망을만드는마을사람들’이 만들어졌다.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사회를 바꾸는 일을 마을에서 찾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가좌2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혜경 씨가 참여하게 됐다

“마을에서 사람을 찾고 사람을 만나면서 동네를 바꾸자는 구호를 내걸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 길을 찾고 있는 중이죠. 밑으로부터의 인식을 같이 하고자 계속 토론을 하고 있고, 목적과 지향성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지 워크숍도 여러 차례 했습니다. 하지만 두 단체가 합쳐서 일을 하다보니 서로 마음을 맞추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회원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바가 서로 다르니까요. 마을 일은 너무 시간이 걸리니 구의원, 시의원을 내서 바꾸자는 사람도 있고 마을에 중심을 두자는 사람도 있고 아직은 서로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어요.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죠. 그래서 구별로 회원모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어렵고 지난한 과정이지만, 몇 명이 결론을 내기 보다는 회원들이 모두 토론하고 고민하며 길을 닦고 결론을 내야한다는 그들의 믿음은 맞다. 이제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회원이 600여 명이고 그 회비로 자립을 모색할 정도니 더딘 길이 더 탄탄한 정도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닌가.

한 사람의 경험이 옆 사람을 바꿀 수 있고, 한 마을의 경우 구 전체, 시 전체를 바꿔나가는 일이 지금 인천 한 귀퉁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인천의 한 귀퉁이에서 벌어지는 이 운동이 대한민국을 바꾸는 기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벌써부터 생긴다면, 너무 큰 꿈일까. 하지만 지나친 헛꿈은 아님을 이혜경 씨와 이부종 씨를 보며 알 수 있었다.

면담인사 – 이혜경 (가좌2동주민자치센터 위원, 푸른샘 도서관 자원봉사자, 희망을 만드는 마을사람들 풀뿌리활성화위원장)

이부종 (주민자치센터 위원. 푸른샘 도서관장.세일쇼핑 대표)

면담일시 – 2007년 12월 9일

면담장소 – 인천 서구 가좌2동 주민자치센터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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