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자치/기획①] ‘진짜’ 주민자치로 가는 길

지방자치법이 32년만에 전부 개정되었습니다. 민주주의의 기반은 주민자치에서 시작되지만, 이번 개정안에서 ‘주민자치’ 조항이 삭제되어 논란과 과제를 남겼습니다. 민관협치 활성화 등 주민의 참여 통로를 확장하는 시도가 이어진 만큼 향후 사회적으로 어떤 기반을 마련해야 하는지, 통장이나 이장처럼 우리 동네에서 주민 자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지역 주민으로서 참여를 촉진하는 인센티브제를 운영하고 있는 사례를 모아 세 편에 걸쳐 전합니다.

[주민자치/기획②] 통장, 반장? 주민이 참여하는 법
[주민자치/기획③] 주민참여를 포인트적립으로?

2020년 12월 9일, 지방자치법이 32년 만에 전부 개정되었습니다. 국회 본회의를 통해 법안이 의결되기에 앞서 2일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에서 관련 내용이 의결되면서 안밖으로 논란이 일어났는데요. 바로 ‘주민자치회 근거조항’이 모두 삭제된 채로 의결되었기 때문입니다.

본 회의 의결되기 전에 관련 조항을 다시 살리기 위한 공동성명이 이어졌으나 결국 관련 조항이 삭제된 채 법이 개정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지역 현장에서는 ‘주민자치가 없는 지방자치법 개정’이라는 규탄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지방자치법 32년만의 개정, 그러나 ‘주민자치’ 조항은 삭제

우리는 왜 지방자치법 개정에 주목해야 할까요?
주민자치회 근거조항 삭제는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요?

개정된 다른 조항들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와 같이 공공기관의 역할 정리 및 권한 변화를 위한 내용인 데 비해 주민자치회 관련 조항은 주민들이 직접 주체가 되어 행사하는 역할 및 권한에 관한 것으로 그 의미가 남다릅니다. 즉, 주민자치회 관련 조항은 지역 내 주민들의 일상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삭제된 주민자치회 조항은 ‘풀뿌리자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자치회 운영과 기능수행에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하고 있는 주민자치회에 공적인 동력이 되는 부분으로, 2013년부터 지금까지 시범사업으로 추진되어 온 ‘주민자치회’가 시범사업이라는 딱지를 띄고 주민대표기구로서 역할을 확립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는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행정안전부에서는 보도자료를 통해 입장을 밝혔습니다. 기존 제도와의 차별성 등을 조항삭제 이유로 들었고, 운영방안에 대한 추가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인데요. 소위원회 속기록에 따르면 기존 주민자치위원회와의 차별성과 주민자치회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우려가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주민자치회는 주민자치위원회와 질적으로 다르고 자치발전에 많은 역할을 하며, 운영상의 문제점에 대한 보완방법과 정치적 중립의무조항 명시 등의 대안과 관련한 의견들이 오갔지만 결국 삭제된 것입니다.

지방자치법 개정안에서 주민자치회 조항이 빠졌다고 해서 주민자치회 추진이 멈추는 것은 아닙니다. 개정된 지방자치법 제17조 주민참여권 강화 조항(주민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결정 및 집행과정에 참여할 권리 신설)을 통해 주민자치회 운영 목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또 지방4대 협의체는 주민자치회 설치와 관련해 추후 개정을 통해 보완할 것을 밝혔습니다.

안타깝지만 주민자치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주민들은 이 상황을 통해 정부의 정책 추진 과정에서의 현실적 난관을 명확히 인식했고, 개선지점을 요구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법의 의무사항에 따라 추진하는 게 아닌 주민이 주도해 주민자치회 운영에 필요한 사회적 기반을 단단하게 마련하는 기회로 삼는 게 필요합니다. 주민자치회 운영,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주민자치회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주민자치회의 특징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동안 추진한 사례들을 살펴봐야 합니다.

먼저 지방자치법에 주민자치회의 근거조항 신설이 중요했던 이유는 지역 내 주민자치회 위상과 관련한 태생적 특징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주민자치회는 기존의 주민자치위원회,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새마을지도자협의회, 자율방범대, 마을공동체, 사회적경제, 평생학습네트워크, 동복지협의체 등 지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직능단체 및 주민조직을 포괄해 주민대표기구라는 위상을 갖고 활동하는데요.

지역별 편차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공개모집을 통해 주민자치회를 구성해 운영합니다. 지역 내 이미 형성된 다양한 활동 단위가 있기 때문에 공식적인 대표자격을 부여하지 않으면 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법적으로 그 위상과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향후 지방자치법 개정을 통해 반드시 반영해야 할 사항이며, 법 개정 이전에 지역 내에서 조례를 제정해 그 기반을 형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주민자치회 시범실시 및 설치‧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법적 기반 위에 운영하고 있는데, 이 자치법규 내 주민자치회를 주민대표기구로 하는 정의가 필요합니다.

주민자치의 위상 정립에 더해 적절한 운영 지원도 필요해

지역 내 위상 정립과 함께 중요한 것이 주민자치회의 역할과 운영 지원입니다. 주민자치위원회의 주민자치회 전환이라는 표현이 곳곳에서 쓰이고 있지만, 기존 주민자치위원회가 주민자치회로 모두 이관되는 것이 아닌데요. 주민대표조직으로서 새롭게 시민을 모집, 구성해 지역계획을 수립하고, 주민총회를 통해 사업을 확정해 직접 실행까지 하는 것으로 그 역할이 대폭 넓어졌습니다.

넓어진 역할을 지역 특성에 맞게 운영하기 위해 다수의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지역별 모델을 연구해 실행기반을 만들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에서는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참고가 될 주민자치형공공서비스구축사업_주민자치 분야 매뉴얼을 제공하고 있으며, 서울시 역시 마을공동제치원센터를 통해 서울형 주민자치회 시범사업 매뉴얼을 배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부는 매해 주민자치박람회를 통해 우수사례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주민자치박람회는 2020년 총 19회를 운영했으며, 주민자치, 지역활성화, 학습공동체, 주민조직 네트워크, 제도정책 분야에서 우수사례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박람회 역사가 긴 만큼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주민자치회로 진화하기까지 주민들이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는지 학습할 수 있는데요. 이는 앞서 법 개정과정에서 언급한 주민자치회에 갖는 우려를 불식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주민자치회의 긍정적인 면에 대한 공감대를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민자치는 말 그대로 주민이 스스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위한 공익적 활동을 스스로 지속하기 위해서는 많은 학습과 사회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대의 민주주의가 기반인 우리 사회에서 주민자치를 대안적으로 결합해 운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초기에 소수의 주민이 아닌 누구에게나 열린 주민자치회가 운영될 수 있도록 사회적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 오지은 경영지원실 연구원 agnes@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