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추석이다. 오래 혼자 살아왔으면서도 해마다 두 번씩 돌아오는 명절은 여전히 돌부리처럼 걸린다. 주변의 공기가 마치 진공상태가 된 듯 적막하게 달라진 명절 전의 느낌은 어쩌면 나만 맛보는 고립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온 나라가 다같이 ‘가족’을 떼창 하는 바람에 안 그럴 수가 없다. 호기를 만난 상혼도 질 새라 가족과 사랑을 내세우며 매체를 달군다.

가족 없는 사람은 어쩌란 말이냐. 찾아갈 부모도 안 계시고 찾아와 줄 자식도 없는 노년의 1인가구는 안 그래도 뼈가 시리다. 그렇다고 명절을 피해 여행이라도 떠날 처지도 아니다. 알다시피 민족의 대이동, 그 대열을 거슬러 갈 수도 없고 먼 나라로 훌쩍 떠날 수 없는 경제력은 더 초라하다. 긴 세월을 1인가구로 살아왔다. 처음 혼자 살기 시작할 때만 해도 그리 흔한 삶의 형태는 아니었다. 덕분에 신기하거나 이상하다는 시선을 받아야 했다. 무슨 결격사유가 있거나 함량 부족 인간이라고 치부하는 것만 같아 먼저 말하지 못했다.

지금은 이유가 어찌 되었든 젊은이들이 독립하는 경우가 오히려 당연하게 여겨진다. 자식들이 부모를 떠나 독립하기도 하고, 마치 핵분열하듯 결혼해서도 부모를 모시지 않다 보니 결혼하지 않은 젊은이들의 독립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늘어난 1인가구, 그 그늘에는 이래저래 혼자 된 노인들의 1인가구도 잡초처럼 무성해졌다. 젊은이들의 독립은 어떤 경우 그들의 로망이기도 하다. 자유를 원하고 삶의 도전과 탐색은 탄력이 있다. 반면 노년의 1인가구는 어떤가. 대부분 쓸쓸하고 초라하다. 이름하여 ‘독거노인’. 그 명칭에 좋은 느낌은 하나도 없다.

혼자 노후를 맞으며 도시를 떠나 살고 싶었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 미리 자연에 스며드는 것이 도시에서의 개별적이고 고독한 삶보다 훨씬 나을 것 같았다. 그러자 사람들이 갖가지 이유를 들어 말리고 나섰다. 병원이 멀어 안 된다, 더 외로울 것이다. 나이가 가르치는 소심함 때문에 그 말들이 모두 진리라고 받아들였다. 사실 매체를 통해 알게 된 농촌의 배타성도 한몫 했다. 농촌의 고령화는 혼자 사는 가구가 많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래 한 마을에 살아온 사람들은 서로 오고가며 공동체에 가까운 삶을 나눈다. 좋아 보였다. 나의 원대로 자연은 나를 받아줄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공고하게 만들어진 그 분위기, 그 틈에 끼어들기에는 너무 늦어버려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십대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부모님 떠나시고 우리 5남매는 같이 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가족이었다. 차츰 하나 둘씩 짝을 만나 떠난 뒤 혼자 남은 나는 자연히 1인가구가 되었다. 손위는 아니지만 장남인 남동생 집에서 명절을 지내고 오면 잠깐이지만 피붙이와 나눈 교감은 가족의 온기로 남았다. 언제부터 그 일이 거북해지기 시작했다. 어린 조카들이 장성해 짝을 만나고 아이가 생겨 명절에 모이면서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지만 차츰 그들이 내 진정한 가족이 아니라는 자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 집에 머무는 동안, 전처럼 반갑고 화기애애하기보다 어쩐지 겉도는 거 같았다. 대화 내용이 다르고 일상의 관심사에 접점이 줄어들었다. ‘가족’이라는 참된 의미를 다시 톺아보게 되었다. 그들의 가계도에는 내가 없는 것이다. 곁으로 달아낸 듯한 선,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 새로운 가족이 형성되면 이미 형제는 그냥 형제일 뿐인 것이다. 손윗사람인 주제에 꾸역꾸역 부모도 안 계신 동생 집으로 명절을 쇠러 간다는 일이 점점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제대로 혼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자 외로움이 한기처럼 밀려 들었다.

비혼주의는 아니었지만 늦게까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딱히 가족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바깥에서 많은 사람과 부대끼다 집에 와 혼자 되면 비로소 편하고 행복했다. 그때는 외로울 새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홀가분한 날은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살다 보면 진정한 내 편(便)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가 있다. 이제는 어쩔 수가 없는데 그 내 편은 가족밖에 없다는 깨달음이 온 것이다. 마치 언젠가 다가올 노년이 관념으로만 그칠 것 같았는데 불쑥 현실이 된 것처럼 당혹스러웠다.

가족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사람들은 혼자 사는 것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사실 혼자 사는 일이 꼭 외롭고 적막하기만 한 건 아니다. 없는 가족을 그리워하기 전에 내게 주어진 이 혼자만의 시간을 나름대로 누릴 수 있는 길은 많다. 소소한 장점도 의외로 많다. 이것저것 예를 들 필요도 없을 만큼 주어진 자유는 경계가 없다. 우선 다 내 마음대로다. 삶의 주체는 언제나 나다.

어려서 들은 큰어머니의 일화. 당신이 비린 것을 싫어하는데 가족들을 먹여야 하니 할 수 없이 갈치를 조리하기 전 우물가에서 몇 번씩 패대기를 쳤다지. 혼자 살면 그럴 일이 없다. 내 입맛대로 산다. 설거지도 하기 싫으면 좀 미루기도 한다. 아무도 뭐라지 않는다. 아는 분이 혼자 사는 자유로움으로 샤워하고 벗은 채 그냥 나와도 좋다는 것 하나를 꼽았다. 그만큼 아무 시선도 의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다못해 텔레비전 채널권은 완전 독점이다. 가끔 주변 사람들이 보고 싶은 프로그램도 가족들 우선이라 볼 수 없다는 말을 한다. 물론 요즘이야 각자 방에서 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부자유스러운 것 같다. 밤늦은 귀가도 걱정이 없다. 가족과 공연한 일로 신경전을 벌일 일도 없다. 고통을 주지도 받지도 않는 밋밋한 시간은 생명력이 없다.

그런 자유는 좋기도 하지만 혼자만의 세계에서 좁아지는 사고와 이기적 고집에 잠식 당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두렵다. 안정되지 않은 정서 탓인지 가슴의 동계도 잦다. 심해지면 고독사를 떠올리며 진저리를 치기도 한다. 어차피 인생은 어떤 형태로 살든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혼자 살든 가족이 있든 내리는 눈, 비는 다 똑같이 맞게 되지 않을까.

어쩌다 희귀동물처럼 시선을 받던 젊은 시절의 독거, 이제는 주위의 걱정스런 시선을 받는 독거노인이 되었지만 아직은 지낼 만하다. 1인가구의 행복과 슬픔의 비례는 산술적으로 뻔한 기울기를 보인다. “결혼해서 가족을 만들어야 해” 결혼을 기피하는 젊은이들을 만나면 꼭 건네는 당부다. 나의 경험치가 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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