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만드는 사람들, 지역을 살리는 사람들

“생각은 국제적으로, 행동은 지역적으로 하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항상 관심을 갖고 좋은 사례는 받아들이되, 그러한 열린 마음을 내가 살고 있는 지역과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라는 주문일 겁니다. 모두가 21세기는 세계화 시대라고 하는데 오히려 지역에 중심을 두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0월 17일 ~ 19일 3일 간 부천, 진안과 완주 그리고 서울에서 개최된 국제세미나 지역을 만드는 사람들, 지역을 살리는 사람들 은 바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자리였습니다. 세계화,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개인과 지역 공동체는 소외되고 지역의 특성을 무시한 획일화된 개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고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지역에 기반을 둔 사회혁신과 지속가능한 개발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것이지요.

이번 행사에서는 한발 앞서 지역에 눈을 돌린 영국의 사례와 늦은 시작에도 불구하고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어내고 있는 한국의 사례를 통해 정부와 NPO, 그리고 시민이 함께 하는 사회혁신과 지역개발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해보았습니다. 영국의 선두적인 NPO 로컬리티(Locality), 커뮤니티 링크 그리고 영 파운데이션(The Young Foundation) 관계자들이 초청되었고, 한국의 성미산마을, ㈜이장, 북촌과 서원마을 만들기 사례를 통해 한국의 농촌ㆍ도시형 지역개발의 역사와 현황을 살펴보았습니다.

행사 첫날인 17일에는 부천시청 어울마당에서 도시형 지역개발에 초점을 맞추어, 18일에는 전북대 대강당에서 농촌형 지역개발에 초점을 맞추어 발표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인 19일에는 서울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에서 비공개 행사로 사회혁신과 지속가능한 지역개발 관련 사례 발표와 종합토론이 이어졌습니다. 3일간의 행사에서 논의된 내용을 간략히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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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파운데이션은 20세기 최고의 사회혁신가인 마이클 영에 의해 설립된 영국의 대표적인 싱크앤두 탱크(Think and Do Tank)입니다. 영 파운데이션의 지역과 자문 프로젝트(Local and Advisory Projects) 디렉터인 니콜라 베이컨은 사회혁신이란 기존의 사회문제를 새로운 접근 방식을 택해 해결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대부분은 해당 지역민들로부터 나오고 여기에 능력과 기술을 갖춘 전문가 집단의 조언이 더해질 때 실현가능한 대안이 도출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The U’라는 시민대학은 공동체를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지역의 자원활동가들과 영 파운데이션의 전문적인 조언이 만나 지역 주민의 삶과 가정, 공동체에 긍정적인 영행을 끼치는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사회혁신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권력과 자본을 가진 지방 정부 간의 적극적인 소통에서 시작됩니다. 북서 런던지역의 해로우에서 실시된 갱 활동 연루 청소년 감정회복 훈련은 청소년 범죄율을 낮추고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는 지역 자선단체와 지방의회, 경찰, 영 파운데이션이 협력해 실시한 프로그램입니다. 영 파운데이션의 이러한 활동과 비전은 적극적인 소통과 평등한 협력의 중요성에 대해 한국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도 ‘자산관리’ 필요해

로컬리티는 1970년대부터 마을 만들기와 지역 재생을 진행해온 지역별 비영리기관의 연합체인 DTA(Development Trust Association)가 지속가능한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네트워크 기관 Bassac과 통합해 탄생한 단체입니다. 지역이 가진 자산(에셋)으로는 사람과 건물, 토지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스티브 와일러 로컬리티 대표는 이 중 가장 중요한 자산이 지역 주민들이고, 그들이 주체로 참여해 토지와 건물 등의 소유권을 확보하고, 지역공동체를 위해 사용하여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자산을 소유함으로써 지역공동체들은 장기간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고, 이는 지역주민의 자신감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로컬리티는 이러한 지역공동체에게 컨설팅을 통해 기술적, 관리적 지원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의 서수정 연구위원은 종합토론 시간을 통해 한국에서 공공자산의 소유권을 민간에게 이전하는 것은 쉽지 않음을 지적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이 가진 자산을 지역이 활용할 수 있는 거점으로 활용하는 것이며, 지역에 흩어져있는 자산을 어떻게 잘 쓸 것인가를 조사하고, 지자체에서도 이러한 사업의 필요성을 중앙정부에 요청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_Gallery|1270950298.jpg||1369583221.jpg|영 파운데이션 니콜라 베이컨 디렉터|1279095675.jpg|로컬리티 스티브 와일러 대표|1273785345.jpg|커뮤니티 링크 제랄딘 블레이크 대표|width=”400″ height=”300″_##]

커뮤니티 링크(Community Link)는 로컬리티의 650여 개 회원 단체 중 하나로 지역 자산을 활용해 지역주민을 위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간지원단체입니다. 제랄딘 블레이크 커뮤니티 링크 대표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지역 공동체가 지방 정부로부터 유휴지, 공유지 등의 토지나 비어있는 건물을 싼 가격에 매입ㆍ대여해 경영하면서 창출되는 수익을 지역 주민의 공공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에셋 매니지먼트(자산관리)를 소개했습니다. 커뮤니티 링크는 구청 건물로 쓰이다 방치된 역사적 건물을 지방의회로부터 125년간 무상 임대 받아 자신들의 근거지로 삼고, 이를 지역공동체를 위한 다양한 사업에 활용했습니다. 에셋 매니지먼트의 사례는 현재 한국의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하고 있는 유휴지나 공유지, 빈 건물 역시 지역공동체를 위해 활용할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한국의 지역공동체

경원대학교 도시계획학과 정석 교수는 공동체를 파괴하고 도시경관을 훼손하는 재개발 사업의 대안으로 마을만들기 사업을 소개했습니다. 북촌한옥마을은 동네와 건물을 보전하고 한옥의 가치를 재발견한 대표적 마을만들기 사례이며, 서원마을은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의견 제시로 활기찬 마을 만들기를 진행하고 있는 사례입니다. 이러한 마을만들기 사업에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시범사업을 확대하고 단독주택을 지원해야하며, 주민 스스로 마을만들기 조례와 행정조직을 만들 수 있도록하는 시스템도 도입해야 합니다. 종합토론에 함께한 스페이스빔 민운기 대표도 지역 개발 시 전면철거 방식이 아니라 기존의 역사문화자원을 보존하고 지역공동체를 가꾸는 것이 중요다하며, 주민간의 따뜻한 이웃애와 같이 계량화할 수는 없지만 소중한 가치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도시 공동체인 성미산 마을은 생활의 필요와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지역주민들의 자치적인 협동의 역사를 잘 말해주는 곳입니다. 이번 세미나에는 성미산마을극장의 유창복 대표가 초청되었습니다. 성미산 마을은 15년 전 공동육아에서 시작해 주거권 내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되는 사회적기업 성미산마을극장과 생활협동조합, 대안학교, 유기농 먹거리 매점, 레스토랑 등을 공동 운영하는 도심형 공동체입니다. 유창복 대표는 마을 문화의 키워드로 자발성, 토론문화, 다양성 인정, 양성평등 문화 등을 들며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공동체가 도심형 공동체의 목표가 되어야 함을 역설했습니다.

임경수 대표가 운영하는 ㈜이장은 지속가능한 농촌과 지역개발을 위한 컨설팅, 생태마을 공동체 조성 등의 사업을 펼치는 사회적기업입니다. 임 대표는 현재 한국 농촌의 문제를 해결하고 세계화에 대응하기 위한 대안으로 ‘생태지향 지역공동체’라는 개념에 주목합니다. ㈜이장과 서천군, 귀촌한 도시민들이 협력해 만든 산너울 마을 공동체는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대안에너지, 생태건축을 추구할 뿐 아니라 공동체 텃밭을 가꾸고, 공동체 규약을 제정했습니다. 주민참여 공동체의 성격을 지닌 대표적인 사례이며, 이를 통해 한국 농촌지역 개발의 새로운 미래 하나를 그려볼 수 있습니다.

[##_Gallery|1169146063.jpg||1096052296.jpg|완주 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가 입주해 있는 폐교 건물 |1326073337.jpg||1098271647.jpg||1154771255.jpg||1179013617.jpg||1362804150.jpg||1054982813.jpg||1030636381.jpg||width=”400″ height=”300″_##]

국제세미나 진행팀과 영국 초청자들은 18일 오후 완주 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를 방문했습니다. 이 곳은 폐교를 지역주민들의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입니다. 누렇게 벼가 익어가는 들판을 한참 가로질러 도착해보니 시골 학교의 정겨운 정취가 물씬 느껴졌습니다. 세련된 실내 인테리어는 시골 정경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커뮤니티비즈니스란 지역주민들이 지역의 자원을 이용해 스스로 지역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지속가능한 사업모델로서, 무너져가는 지역공동체의 재생과 자립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으로 최근 주목 받고 있습니다. 완주 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는 이러한 지역의 움직임을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입니다. 지방정부와 기업, 주민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하고, 협력구조를 만들거나 연계 사업을 진행합니다.

멀리 들판 너머로 노을이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지역주민들이 문화활동 겸 수익사업의 일환으로 직접 만들었다는 소박한 찻잔으로 차 한잔의 여유를 만끽했습니다. 지역주민들과 현장에서 함께 발로 뛰고 있는 완주 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 직원들은 영국인 참가자들과 열정적으로 대화하며 현재의 고민을 나누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조언을 얻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역의 특수한 상황이나 주민의 요구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개발에 부조리함을 느끼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관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을 겁니다. 내가 사는 지역이 더 재미있고 활기찬 곳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그 역할을 누군가가 대신해 주기를 바라는 경향도 있고, 스스로는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청중들은 이러한 고민을 적극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매회 세미나가 끝날 무렵 진행된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지역 개발의 대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고, 그만큼 주민들의 요구가 커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는 세 명의 영국인 초청자들도 쉴 틈 없이 빡빡한 스케줄을 단 한마디의 불평 없이 소화해내는 열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한국의 작은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긍정적인 변화와 진행속도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서로의 사례를 공유하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자신들이 훨씬 더 많이 배워간다며 고마워했습니다. 국제세미나 ‘지역을 만드는 사람들, 지역을 살리는 사람들’은 한국 지역 공동체의 가능성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글 : 교육센터 이영은 위촉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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