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바꿔가는 ‘개미 디자이너’ 들의 이야기

희망제작소는 앞으로 12회에 걸쳐 유럽의 사회혁신 사례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합니다. 이번 연재는 밀라노 공대 산업디자인박사 과정에 재학중인 백준상님이 관련 보고서를 번역해 보내주신 글로 이루어질 계획입니다. 이번 연재가 한국사회에 사회혁신과 사회창안을 알려가는 일에 보탬이 되고, 한국에서 관련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께 좋은 참고 사례가 되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오늘날 디자인의 새로운 역할과 가능성을 제안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    



소개글 및 서문번역_
백준상 (밀라노 공대 산업디자인 박사과정)   ☞ 소개글

유럽의 사회혁신 사례가 담긴 보고서 ‘창의적 커뮤니티(Creative Communities)’는 2004년부터 3년간 밀라노 공대(Polytechnic di Milano)와 9개의 기관들이 컨소시움을 구성해 진행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입니다. 이 보고서는 유럽의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사회적 욕구를 불만 표출이나 부정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 보다, 자발적이고 창의적이며 긍정적인 방법으로 해결한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이 보고서에 실린 글들을 요약 ? 번역해 희망제작소 홈페이지를 통해 연재할 계획입니다.

기존의 접근 방식과 다르다고 해서 대안적 해결안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사례들은, 비록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 등장한 것이기는 하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지속가능한 사회 ? 경제 ? 환경에 기여하기에 그 가치가 남다릅니다. 첫번째로 소개할 보고서의 글은 밀라노 공대 디자인학과의 에지오 만지니(Ezio Manzini)  교수가 쓴 ‘ 아이디어들의 실험실 – 곳곳에 퍼져있는 창의성과 새로운 행동 양식’ 이라는 제목의 서문입니다.

[##_1C|1354186256.jpg|width=”550″ height=”389″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보고서 ‘창의적 커뮤니티(Creative Communities)’의 표지_##]
아이디어들의 실험실 – 곳곳에 퍼져있는 창의성과 새로운 행동 양식


다가올 다음 몇 년 이내에, 우리는 보다 제한된 양의 자원으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역주: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시점에 와 있음을 공감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웰빙(Well-being)의 개념에도 변화를 가지고 올 것입니다.
 
지속 가능한 사회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산업사회가 가르치고 대변해 온 ‘더 많이 소비하면서, 사회적 가치는 더 적은’ 웰빙과 대치되는 새로운 개념의 웰빙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사고 방식과 행동양식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향해 큰 걸음을 내디딜 수 없습니다. 지속 가능성을 위한 발걸음은 기존의 상황과 시스템을 유지하는 방식으로부터의 단절(discontinuity)을 통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시스템 차원의 단절이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거시적인 시스템 변화는 지역 사회 차원에서 발생하는 미시적이고 작은 규모의,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변화의 토대 위에서만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미시적인 변화를 인식하고 관찰함으로써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시스템의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기존의 삶의 양식과 생산 양식에서 야기되는 문제들을 통해 볼 때, 오늘날의 사회는 소위 ‘막힌 시스템(blocked system)’이라 부를 만합니다. 기업들과 정치인들은 ‘대중(people)’이 변화를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반면 대중은 ‘기업들’과 ‘정치인들’이 정체되어 있으며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않기 때문에 사회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디자이너들 또한 자신들이 이 정체된 시스템의 덫에 걸려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들의 상상력은 기껏해야 새롭기는 하지만 쓸모는 없는 제품을 창조하는 일에 머물 뿐입니다. 최선의 경우, 간혹 사회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소개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노력도 결국은 본질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은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노력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교착상태를 깨기 위해서는 현실을 대변하는 대상을 바꿔야 합니다. 더 이상 이 사회를 ‘대중’, ‘기업’, ‘정치인’과 같은 표준화된 개체로 구분할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르거나 상반된 관점을 가진 개인들로 이루어진 집단과 커뮤니티(Community)로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을 통해 우리는 조금 더 혼란스러워질지도 모릅니다. 보다 다양하고 역동적이며 덜 막혀 있는 현실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문제들만큼이나 다양한 예의 대안적인 삶과 행동 양식들이 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 사례들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새로운 개념의 웰빙, 생산, 경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할 씨앗이 됩니다.

창의적 커뮤니티는 무엇이 다른가

앞으로 소개될 다양한 사회혁신 사례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이 사례들은 지역 사회 수준에서 이루어진 급진적인 혁신 사례들입니다. 즉, 기존의 행동 양식을 거스르는 새롭고, 전혀 다른 (그리고 본질적으로 지속 가능한) 접근입니다. 예컨대, 공간과 물건을 공유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고, 건강에 좋고 질 높은 식생활을 복원하며, 수동적으로 서비스를 받기만 하던 사회 구성원들이 서비스를 직접 디자인하고 개발하는 적극적인 주체로 바뀌는 과정을 담은 사례들입니다.  

둘째, 이 사례들은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최적의 방법을 찾으려한 개인들에 의해 주도 되었습니다. 창의성과 기업가 정신을 가진 이들은 전체 시스템의 변화를 일으키겠다는 거창한 목표가 아닌, 개인적인 동기를 갖고 일상의 요소들을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들은 앙리 푸앵카레 (Henri Poincar?, 역주: 프랑스의 수학자)의 말대로 기존의 요소를 결합해 새롭고 쓸모 있는 조합을 만들어냈기에 ‘창의적 커뮤니티’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그들이 속한 지역사회에 깊이 뿌리박고 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지역의 자원(사회적, 자연적)을 활용하여 직간접적으로 새로운 방식의 사회적 교환을 증진시킵니다. 동시에 유사한 목적을 가진 다른 커뮤니티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경험을 교환하고 문제들을 공유합니다.
 
이로써 이들은 지역적이면서 동시에 국제적인 성격을 가지게 됩니다. 무엇보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사례들이 개인적인 동인으로 촉발되었지만, 그것이 사회적 ? 환경적 이익과 부합되는 새로운 방식을 소개한다는 점입니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디자인, 디자이너

끝으로 변화하는 사회에 있어 디자인의 역할을 제안하려 합니다.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변화를 추구하려면 사회혁신과 기술혁신, 제도혁신들이 연결되는 선순환이 필요합니다.

이 선순환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우선 앞에서 언급한 창의적 커뮤니티와 같은 사례들을 발굴하는 노력과 더불어, 이들을 효율적으로 성장시키고 퍼뜨리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디자인은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을 관찰하고, 그 특징을 정의하고, 이들의 발생에 영향을 끼치는 시스템을 도식화함과 동시에 잠재적인 아이디어를 시나리오의 형태로 창조하는 역할이 바로 그것입니다. (역주: 시스템 도식과 시나리오 제작은 서비스 디자인에서 사용되는 도구의 예)

디자이너는 전통적으로 정의되어 오던 디자인의 문화적, 기능적 역할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대정신에 맞는 디자이너의 역할이 무엇인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디자이너를 사회 활동가로서 바라보는 관점을 배워야만 합니다. 이미 모두가 디자이너인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살펴볼 사례들에 등장하는 ‘적극적인 소수자(active minorities)’들은 새로운 삶과 행동 양식을 창안해 내고 있습니다.

오늘날 디자인은 비단 스튜디오에서만 행해지고 있지 않으며, 디자이너만의 전매품도 아닙니다. (역주: 경영학, 컴퓨터공학 등 타 학문에서도 디자인적 사고를 도입하고 있으며, 디자인과 타 학문 사이에 겹치는 분야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또한 창의적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일반 대중들도 넓은 의미에서의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전문가로써 디자이너의 역할은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디자이너들이 가진 ‘비전을 창조하는 능력’ – 예컨대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것을 상상하는 능력 – 과 이런 ‘비전을 실체화 할 수 있는 능력’을 이용해 ‘솔루션 제공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회혁신의 맥락에서 보면 디자이너들은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변화 중개자(agent)가 되는 것입니다.

☞ 보고서 원문보기

[##_1L|1188595549.jpg|width=”100″ height=”141″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에지오 만지니(Ezio Manzini, Politecnico di Milano)

에지오는 밀라노 공과대학 산업 디자인과 교수이며, 지속가능성을 위한 디자인과 혁신 연구 단위의 대표입니다. 산업 디자인 정책에 있어 전략적이면서도 지속가능한 디자인 분야의 박사과정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그의 연구는 해결방안 개발과 시나리오 수립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생산-서비스 시스템과 지속가능성>을 비롯해 몇 권의 책을 집필했습니다.  

☞ 이미지 및 소개 출처



● 연재순서

1. 밀라노 공대 에지오 만지니 교수의 서문
2. 노인들을 위한 행복한 공동 주거 (네덜란드)
3. 스스로 짓는 친환경 집 (영국)
4. 건강한 먹거리로 지역을 연결하는 로컬푸드 밴 (영국)
5. 유기농을 지원합니다, 케레스의 정원 (프랑스)
6. 자전거가 되살아나는 자전거 벼룩 시장 (핀란드)
7. 자동차 공유로 돈도 절약하고 환경도 지키고! (이탈리아)
8. 재활용과 고용을 한꺼번에! (핀란드)
9. 책은 쌓아두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교환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독일)
10.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자조 공동체 (에스토니아)
11. 학교는 예술가가 필요해! (네덜란드)
12. 결론: 한국판 창의적 커뮤니티 나와라!

담당 _ 회원재정팀 이성은 연구원 (leeagle@makehope.org)

Comments

“유럽을 바꿔가는 ‘개미 디자이너’ 들의 이야기”에 대한 5개의 응답

  1. 도시락 아바타
    도시락

    완전 감동받았습니다!! 전 디자인이란 그저 예쁘고 멋지게 만드는 것인줄 알았어요. 디자인이 좋다.디자인이 별루다 그러잖아요? 눈에 보이기에 그럴듯한 것에만 주목하느라 필요없는 것들만 생산해내는 디자인의 새로운 관점을 전해주셨네요. 그러고보니 희망제작소에서 말하는 소셜디자인의 의미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다음 글을 기다립니다~

  2. 이다영 아바타
    이다영

    산업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너무 공감가는 내용을 읽어서 좋습니다 ^^ 제가 배우는 디자인을 통해 사회디자이너가 되고 싶은데, 아직 걸음마 단계라 앞으로 더 넓게 공부하려구요ㅎㅎ 계속 좋은 내용 부탁드려용!!!

  3. 도시락 아바타
    도시락

    산업디자인/정보디자인/시각디자인… 디자인의 분야?? 너무 다양해서..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산업디자인은 뭘 공부하시는 건가요? 뭘 디자인하는 분얀가요???

  4. 밥상 아바타
    밥상

    12번 한국판 창의적 커뮤니티에 어떤 게 있을까요? 리스트에 있는 사례들이라면 어느 정도 한국 사회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실험일텐데…

  5. joon 아바타

    한국판 창의적 커뮤니티 사례 아시는 것이 있다면 서로 공유 했으면 좋겠어요. 간단한 소개나 웹사이트 링크를 알려주시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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