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인뉴스/충청리뷰]‘실천하지 않는 지식은 죽은 것’

‘실천하지 않는 지식은 죽은 것’
‘행동하는 지식인’ 이재은 충북대 교수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재난관리연구소장으로 전국돌며 세미나·현장조사 중


물에 잠긴 농경지와 주택, 아우성치는 이재민, 지자체의 늑장대응에 따른 질타, 이재민돕기 성금모으기 운동…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들이다. 우리는 해마다 이맘 때 쯤 태풍과 집중호우로 한바탕 몸살을 앓는다. 올해도 아마 예외는 아닐 것이다.

지난 4~6일 충북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27억 9000만원의 재산피해가 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집중호우가 계속돼 피해액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럼 언제까지 사후약방문식 대처만 할 것인가.

이재은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41)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그는 요즘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뛰고 있다. 희망제작소 재난관리연구소장, 위기관리 이론과실천 대표, 충북대 위기관리연구소장, 이재민사랑본부장. 이 교수가 맡고 있는 직함들이다. 이제 사십 줄에 접어든 교수가 중량감있는 단체 대표를, 그것도 4개씩이나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눈길을 끈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모두 몸으로 뛰어야 하는 꽤 고단한 자리들이다. 명함을 장식하는 직책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자신도 이렇게 살다가 머지 않아 탈진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할 정도로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고, 또 현재 쏟고 있다. 바쁜 것도 바쁜 것이지만 이 교수의 존재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가 자연재난 앞에서 속수무책 당하는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내놓기 때문이다.

희망제작소 재난관리연구소장
이 교수의 전공은 위기관리다. 박원순 변호사를 중심으로 한 민간 싱크탱크 연구소 ‘희망제작소’는 지난 4월 재난관리연구소 문을 열었다. 51명의 연구원을 두고 우리사회 각 분야 문제점에 대안을 제시, ‘다크호스’로 등장한 희망제작소는 민간과 시민사회 영역에서 국가 재난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재난관리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교수는 몇 차례 고사 끝에 초대 소장직을 맡았다. 전공으로 보자면 딱 들어맞는 일이지만, 이미 벌여놓은 일이 많아 다른 사람을 추천했으나 다시 역추천을 받고 말았던 것.

“사회가 고도화 될 수록 화재, 붕괴, 폭발, 침몰, 추락으로 인한 피해가 커진다. 그동안 이런 재난을 관리하기 위한 노력들을 정부와 학계에서 해왔는데 이제는 민간에서 나서야 한다. 우리 연구소는 23명의 연구원들이 6개 팀에서 일하고 있다. 전임연구원 2명을 뺀 나머지가 모두 교수들인데, 분담해서 일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이 연구소의 최대 장점이자 미덕은 현장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백면서생’을 거부하고 책상머리에서 일어난 교수와 연구원들은 요즘 하계대장정을 끌어가고 있다. 지난 6월 10일 시작해서 오는 17일까지 7차 세미나와 현장조사를 실시하는데 하나같이 현실과 현장에서 답을 구하고 있다.

이 교수의 말이다. “첫째 날은 세미나, 다음 날은 현장조사 하는 식으로 전국을 돌고 있다. 세미나를 할 때는 학자·공무원·시민단체·시민 등이 함께 모여 우리나라 재난관리의 문제점은 어떤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토론한다. 그리고나서 지난해 태풍 에위니아와 집중호우 피해를 어떻게 복구했는가를 현장조사한다. 진천군 백곡면을 시작으로 단양, 진주, 성주, 평창, 목포, 강릉 등의 지역을 돌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복구공사의 중요한 문제점들을 밝혀냈다. 이재민의 농경지와 주택을 배려하지 않고, 전답이 잘려나가도 나 몰라라 하는 등 피해자가 빠져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재난을 당하지 않는 이상 쉽게 잊고 만다.

수재의연금을 내는 것으로 모든 것을 끝내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심을 갖고 보면 복구공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피해자들이 몇 년씩 고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점에서 재난관리연구소가 피해지역 실태를 점검하는 일은 매우 의미있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이 교수는 이 말 끝에 “경북 성주군에 29가구가 매년 침수를 당하는 곳이 있는데, 군에서는 390억원을 들여 배수펌프장을 설치한다고 한다. 그러나 훨씬 적은 돈으로 연립주택을 지어 이주시키는 게 낫다. 이는 복구공사가 행정기관, 건설업자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동기생들과 만든 이재민사랑본부
지난해 9월 발족된 이재민사랑본부는 이 교수가 만든 단체다. 이재민을 위한 자원봉사 업무부터 법·조례 제정운동까지 다양한 일을 한다. 청주 청석고 출신들이 개교30주년 기념사업으로 중앙공원 중식제공·독거노인 영정사진 찍어주기·무료이발·무심천 환경정화운동 등의 봉사활동을 한 뒤 뭔가 사회에 보탬이 될 만한 일을 찾던 중 이 교수의 제안으로 이재민 돕는 일에 나선 것.

그는 농촌지역 저소득층 주민들이 재난에 가장 많이 노출, 이중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다가 동기생들과 봉사단체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재난이 발생하고 3주 동안 자원봉사자의 70%가 빠져나간다. 사실은 그 이후 할 일이 더 많은데 초기에 왔다 가고 마는 것이다. 우리 모임에서는 ‘이재민 사랑’이라는 소식지를 만들어 이재민들의 사정을 행정기관과 재난관리 전공학자들에게 알리고 있다.”

150명의 회원을 둔 이재민사랑본부에서는 매월 5000원씩 내는 ‘한 끼 클럽’과 매월 1만원씩 내는 ‘두 끼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회원들은 또 희망제작소 재난관리연구소에서 재난지역 현장조사를 갈 때도 동행한다. 이 교수는 당초 충북이재민사랑본부라고 했으나 전국적으로 회원들을 모으기 위해 ‘충북’자를 뺐다고 말했다.

그는 이 외에도 위기관리 이론과실천 대표로 이 분야에 관한 논문집 ‘한국위기관리논집’을 지속적으로 발행해 오고 있다. 행정학·정치학·사회학·기상학 등을 전공한 학자들이 모인 이 모임에서는 1년에 2~3 차례 학술회의를 열고 1년에 2번 학술지를 발간한다. 청주에서 시작한 만큼 모임도 청주와 서울에서 번갈아 하고 있다. 뜨거운 여름을 뜨겁게 살고 있는 이재은 교수. 행동하는 지식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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