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통신 (5) 그들은 왜 지진 피해지역에서 축제를 벌였나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동북지방에서 뭔가 큰 지진이 일어난 것 같다는 소식을, 열도 남단에 있는 미야자키 시내 사무실 한 켠에서 인터넷 뉴스를 통해 처음 접했다. 서둘러 TV를 켜니, 엄청난 화면이 잇달아 비춰졌다. 언론 매체의 연이은 보도는 모두 피해가 어디까지 확대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앞으로 일본은 어떻게 될 것인가’ 라는 공포감과, 천문학적인 사상자와 행방 불명자 수를 보면서 ‘뭔가 해야 되는데…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넋 놓고 바라볼 수 밖에 없는가…’ 하는 분노와 무력감을 느꼈다.
미야자키는 작년에 구제역 파동과 신모에타케(新燃岳) 화산 분화 등 거듭 재해가 발생해, 전국적으로 많은 지원을 받아 왔다. 미야자키 사람들도 이런 지원에 뭔가 보답해야 한다고 항상 생각해 온 터이다. 그래서 동북대지진이 발생하자, 큐슈(九州), 쥬고쿠(中?), 시고쿠(四?) 지역을 중심으로 동북 지방에 가서 현지 주민들과 함께 재해 복구 활동을 펼치기 위해 ‘T-ACT(동북에서 행동하자)’라는 모임을 설립했다.
4월 초, 가솔린 급유가 가능해지자 우선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재해 지역으로 날아갔다. 동북 지방 연안부 약 500km에 이르는 재해 지역은 피해 규모가 상상을 훨씬 초월해 개인이나 단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막막하기만 했다. 정부나 지방자치 단체, 사회복지협의회와 비영리단체(NPO) 등 조직이든 개인이든 모두 혼란 속에 뒤범벅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사태 수습까지는 시간이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효율적인 구호 활동도 많이 눈에 띄어 ‘좀 더 잘 대처할 수는 없을까’ 안타깝기도 했다.
현지에 다녀온 뒤 ‘장기간에 걸쳐 한 곳에서 지원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금 연휴 기간 동안 각지에서 달려와 북적였던 자원봉사자들도 연휴가 끝나면 감소할 것이다. 연휴 뒤 자원봉사자가 급격히 줄 것에 대비해, 케센누마시(?仙沼市) 카라쿠와 반도(唐桑半島)에서 2~3개월 정도 집중해 지원 활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또한 쓰나미가 남기고 간 잔해물을 치우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복구를 향해 한 발 내디딜 수 있도록 피해 지역 커뮤니티와 함께하며 힘이 돼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우선 큐슈 지역과 미야자키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보내기로 했다.
1000km이상 떨어진 먼 곳에 자원봉사자들을 파견하려면 자금이 필요하다. 4~5월에 걸쳐 기금을 모금하고 인원을 모집해 5월에 케센누마 시내에 작은 아파트를 빌려 활동 거점을 확보했다. 케센누마에서 활동했던 다른 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 텐트 생활을 했는데, 우리는 장기간에 걸친 지원 활동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숙소가 필요했다. 훗날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잘한 일이었다.
[##_Gallery|1141330165.jpg|T-ACT 실행위원회 모임|1288715812.jpg|T-ACT 사전설명회|1006428272.jpg|자원봉사자 선발대 출정식|1313434172.jpg|쓰나미 잔해를 치우고 있는 자원봉사자들|1318412699.jpg|재해 지역에서의 활동|width=”400″ height=”300″_##]
6월 18일, 12명의 1진 자원봉사자들이 미야자키에서 케센누마시로 출발해 지원 활동을 시작했다. 상시 6~18명의 자원봉사자들이 2주간 머무르면서 활동을 이어갔다. 리크젠 다카다시(陸前高田)와 오오시마(大島)로 가서 쓰나미 잔해물 처리 작업반과 마을만들기를 위해 지역 커뮤니티에서 활동할 반으로 인원을 나누었다. 마을만들기 반은 커뮤니티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가해 지역 주민들과의 관계를 만들어 가면서, 이를 바탕으로 재해 지역에서 어떤 활동을 펼칠 것인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갔다.
의논 결과 재해 지역에서 지역 마쯔리(祭-각 지역마다 행하는 일본 전통 축제)를 재개하기로 목표를 정했다. 해마다 열리던 마쯔리였으나, 올해는 중지하자는 것이 지역 주민들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아직 행방조차 알 수 없는 가족이 많은데, ‘마쯔리’ 를 할 기분이 아니라는 것이 지역 주민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지역 주민들의 마음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이렇게 낙담에 빠져 있을 수 만은 없다.’, ‘어느 시점에선 전향적으로 한 발 내디디지 않으면 안 된다.’ 주민들의 마음이 마쯔리 개최 쪽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인가?’ 당초 주민들 사이에는 미야자키에서 느닷없이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을 경계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계심은 활동을 계속해가는 동안 신뢰와 이해로 바뀌어 갔다. 지역 주민들이 솔선해 지원을 요청하기도 하고, 집으로 자원봉사자를 초대해 식사를 함께 하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어부들로부터 대지진 당시 쓰나미로 부터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은 이야기도 들었다. TV로만 보고 들었던 긴박한 상황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역 주민들과 마음을 터놓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카라쿠와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은지 3개월. 성대한 마쯔리를 열 수 있게 되다니 꿈만 같았다. 마쯔리를 준비하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제안한 것은 촛불공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촛불공을 만들고, 양 옆에 각자의 마음을 담아 글과 그림을 그려 넣은 뒤, 점등식을 열어 쓰나미에 희생된 사람들의 혼을 달래주자는 의도였다.
카라쿠와의 여름 마쯔리는 오후 1시에 시작해 오후 8시 불꽃놀이로 마무리되는 긴 행사였다. 밤 점등식에서 사용할 촛불공 만들기 워크숍은 준비해둔 재료가 다 떨어질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미야자키의 목재업자 한 분이 촛불을 장식할 헌화대를 무료로 제공해주기도 했다. 마쯔리는 대성황을 이루었으며, 무엇보다 지역 주민들이 즐거워 하는 모습에 기뻤다. 지역 주민들에게 활기를 되찾아 주는 것이 마쯔리의 가장 큰 목표였는데, 어느 정도 달성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복구를 향한 움직임도 한발 한발 나아갔다. 지역의 주산업인 어업도 다시 재개되어 8월 17일, 5개월만에 고기잡이에 나서는 어부들을 위해 ’출항 어선 배웅하기’ 행사도 가졌다. 출항하는 배에는 고운 빛깔로 염색한 풍어 깃발이 걸렸고, 가족과 관계자들은 갖가지 색의 테이프와 군함 행진곡으로 항해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면서 배웅했다.
시내 호텔과 여관의 여주인들로 구성된 ‘케센누마 동백회’ 회원들은 오카미(女?, 일본 전통 여관의 여주인장) 복장을 단체로 갖추어 입고 나오기도 했다. 긴 항해를 나가는 선원들의 비장한 얼굴과 이들을 웃는 얼굴로 격려하는 모습, “다녀 오세요!”라며 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드는 모습에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_Gallery|1305609528.jpg|재해 지역 주민들과의 미팅|1324004973.jpg|카라쿠와의 여름 마쯔리 |1250706204.jpg|촛불공 점등식 |1272650355.jpg|어선 출정식|1289177953.jpg|어선 출정식|width=”400″ height=”300″_##]
일본은 지금까지 경제 발전을 우선하는 삶의 방식을 취해 왔지만, 이번 대지진을 거치면서 삶의 방식과 신념을 새로이 만들어 가야 할 것 같다. 그러지 않는다면, 이번 대지진으로 희생된 수많은 분들에게도 몹시 죄송한 일이다. 다음 세대의 삶을 어떻게 쌓아 갈 것인가, 우리 일본인 모두가 시험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주민들의 마음 속에 우리의 활동이 남아주길 바라면서, 복구를 향한 지원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글_ NPO법인 미야자키문화본포 이시다 타쯔야 대표
번역_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westwood@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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