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상주면에 200명이 눌러앉은 까닭은-몽덕 희망원정대

누렁이 몽덕이와 희망제작소가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을 찾아 방방곡곡을 다닙니다. 경쟁이 아닌 연대, 개인이 존중받는 공동체, 자연을 해치지 않은 삶은 가능할까요? 되나 안되나 진짜 해본 사람들을 만납니다. 한 달에 한 번 몽덕이가 물어오는 희망 원정기를 전합니다.

남해상주동고동락협동조합

반려견 몽덕이, 제가 일할 때 몽덕이를 봐줄 친구, 그 친구의 개 노을이까지 데리고 경남 남해 상주면까지 6시간 운전, 이것은 극한직업. 몽덕이는 노을이가 영 별로입니다. 끝까지 거리를 유지하려다 결국 포기하고 노을이에게 기댑니다. 이 대식구를 끌고 상주면 은모래해변까지 간 까닭은 이종수(54) 남해상주 동고동락협동조합 이사장을 만나기 위해섭니다. 인구 1600명 정도인 이 마을이 수상합니다.

은모래해변 바로 앞에 있는 상주중학교, 폐교 위기에 놓였던 이 학교가 2016년 대안학교로 바뀌면서 경쟁 대신 연대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모였습니다. 대안적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작당이 시작됐습니다.

노을이가 별로이지만 결국 자포자기로 노을이에게 기댄 몽덕이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 2010년, 어느 날, 경기도 용인에 살며 부동산자산관리회사(PFV)에 다니던 이종수 이사장은 42살에 귀촌 준비를 시작합니다. 한 해 전 옛 직장 후배가 술 한잔 하자면 전화했는데 손님 접대 중인 그는 ‘내일 얘기하자’며 끊었습니다. 그날 후배는 자살합니다. 투자실패 때문이었어요.

이 이사장은 학생운동하다 1997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한 대기업에 취직했습니다. 그해 가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졌습니다. 부서마다 해고 할당량이 떨어졌고 결혼 안 한 그가 나왔습니다. 그 뒤 벤처회사, 건설회사에서 직장인으로 살며 주식, 선물옵션 투자도 열심히 했습니다. “어느 날 보니 제 삶이 피폐하더라고요.” 큰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할 즈음이었습니다. 부부는 아이를 학원 순례하며 키우고 싶지 않았답니다. 그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때까지 가족은 전국 방방곡곡을 다닙니다. 한 신문에서 상주중학교 소식을 듣고 이 이사장 부부는 이곳에 정착하기로 했어요. 일단 마을 이장님과 친해졌습니다. 동네 모든 정보는 이장으로 통하니까요.

2016년 상주중학교에 이어 상주초등학교까지 대안학교로 지정됐습니다. 대안교육을 고민하는 학부모들이 모였죠. 2017년 이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이 모여 동고동락협동조합을 만듭니다. 목표는 두 가지. 마을과 학교를 연계하는 교육공동체를 만들자! 그 공동체를 지지할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자! 이 이사장은 이집 저집 몰려다니며 같이 공부하고 계획하던 그 시절이 “참 즐거웠다”고 합니다.

남해상주동고동락협동조합 이종수 이사장

협동조합에서 처음 만든 건 상상놀이터입니다. 그냥 큰 방입니다. 학교 끝나면 원래 여기 살던 애들, 도시에서 이사 온 애들 모여서 놉니다. 이 아이들이 ‘은바지’클럽을 만들었어요. ‘은모래바다를 지키는 상주초 아이들’의 준말입니다. 해변에서 놀며 쓰레기를 함께 줍습니다. 협동조합은 마을교육공동체연구회를 꾸려 인문학 강좌도 엽니다. 식당 ‘식량창고’를 열어 지역 농산물로 돌봄급식을 만듭니다. 협동조합 빵집 ‘동동’도 열었어요. 거기서 비건빵도 팝니다.

이 빵집 셰프는 원래 서울 북촌에서 빵집을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할 장소로 빵집이나 카페를 꿈꾸던 이 이사장이 지역 마늘 특화 공모 사업에 마늘로 빵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내 덜컥 선정됩니다. 문제는 빵을 만들 줄 모른다는 거! 이 이사장은 후배인 북촌 빵집 셰프를 꼬십니다. ‘네가 서울에서 빵을 만들어서 보내면 내가 소스를 얹을게.’ 말도 안되는 계획이죠. 셰프가 아예 남해로 와 눌러앉았습니다. 사람이 좋아서 사람이 모입니다.

협동조합 마을빵집 ‘동동’.

이 마을은 작은데 꿈은 큽니다. 이 협동조합은 무려 자본주의의 대안이 되는 ‘생태계’를 만들겠답니다. 열쇳말은 ‘전환’입니다. 경쟁 대신 연대, 소비 대신 생태, 개별성이 보장되는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일자리, 교육, 주거, 문화를 이 생태계 안에서 연결해 자생력을 확보하려 합니다. 남해의 스티브 잡스들입니다.

당장 닥친 일은 ‘인생 학교’입니다. 내년 착공 예정인데요. ‘삶의 전환’을 꿈꾸는 사람을 위한 학교입니다. 무엇을 배우냐고요? 이 이사장은 생태적 자급자족 시스템을 갖춘 ‘파머컬쳐 농장’ 그림을 그립니다.

제가 반려견 몽덕이까지 끌고 간 이유 중 하나는 이 협동조합에서 계획하는 노인의 삶에 반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리는 미래는 이렇습니다. 노인이 친구, 마을 젊은이들과 여생을 보냅니다. 어디 외딴 요양원으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마을이 느슨한 확대 가족이 됩니다. 요양원을 마을 단위로 만드는 거죠. 혼자 거동이 어려운 노인들은 그곳으로 옮기며 자기 집은 청년들에게 장기임대하거나 팝니다. 마을에서 젊은이들이 꿈을 이뤄가는 걸 보며 여생을 사는 겁니다.

이 이사장은 엄청 바쁩니다. 주 7일 일합니다. 할 일이 많습니다. 공동체 일자리도 늘려야 합니다. “힘들 때 많죠. 그런데 우리 다 알잖아요. 제 세대가 만든 이 세상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거, 아이들을 이렇게 교육하면 안된다는 거. 그런데 그 길을 계속 가잖아요. 불안 때문에.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래서 이런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해요. 삶을 전환한 10명이 새로운 10명을 만들고… 말하고 보니 다단계 같네요.”

2015년 남해는 소멸위기 5위 지역이었고, 상주면은 인구 40%(702명)가 65살 이상이었습니다. 그간 상주초등학교 학생 수는 36명에서 2023년 3월 63명으로, 중학교는 18명에서 92명으로 늘었습니다. 2016년 이후 학부모나 청년 200여명이 상주로 들어왔습니다. 42명으로 시작한 협동조합 회원은 220여명으로 늘었습니다.

동고동락협동조합 공동체가 주최한 캠프에 참가한 청소년들. 동고동락협동조합 제공

협동조합에서 만든 상상놀이터에서 조영(44) 마을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6년 전 아이를 상주중학교에 보내려 여기로 왔다는군요. “울산에 살 때였어요. 아이가 친해지고 싶은 애가 있는데 학교 끝나면 어디로 가버린대요. 자기도 거기 다니고 싶다는 거예요. 그 친구는 복지관에 다녔어요. 우리 아이도 다녀도 되냐니 소득이 얼마 이하여야 한다더라고요. 그렇게 분리되는 거예요. 여긴 그런 거 없어요. 다 뒤섞여 놀아요. 도시에 살 때 엄마들이 아이들 친구를 맞춰줘야 해요. 학원 같이 보내는 식으로요. 그 패턴에 못 들어가면 놀이터에서 혼자 놀아요. 여기선 제가 낄 여지가 없어요. 하루는 마을 애들이 와 우리 집 창문을 두드리며 그러는 거예요. ‘ ○ ○ 야, 놀자!’ 아, 이게 가능하구나.”

해송이 병풍을 친 해질녘 은모래해변, 호젓합니다. 개 몽덕이는 뽕 맞은 거 같습니다. 분홍색 똥꼬까지 빛납니다. 차 타고 오는 내내 자포자기한 얼굴이더니 혀가 쭉 빠지도록 달립니다. 수도권인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합니다. ‘몽덕아, 우리 남해 가서 살까?’ 해변을 실컷 달린 몽덕이는 쿨쿨 자고 있습니다.

*김소민 시민이음본부 연구위원/monduck@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