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문을 연 수원시 평생학습관은 희망제작소가 위탁 운영하는 공공교육기관입니다. ‘서로 배우며 함께 성장하는 정다운 우리 학교’를 지향하는 수원시 평생학습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여러분께 그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평생학습 초점] 시민교육을 말하다
(5) 도덕적 정치적 힘을 갖춘 민주시민을 위하여
그동안「평생학습초점」에서 ‘시민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오랜 기간 다양한 교육 주체들을 통해 진행되어 왔던 시민교육은 그 다양성만큼이나 정의도, 주제도, 내용도, 방식도 모두 다릅니다. 이에 짧은 몇 편의 연재 기사로 모든 것을 담아내고 정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고민하고 있고, 일어나고 있는 시민교육에 대한 현황과 생각들을 조금이나마 엮어 내고 이를 통해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해보는 시도의 한 걸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평생학습초점 시민교육을 말하다’ 마지막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민주시민을 위하여
1980년대 후반 ‘시민’과 ‘시민사회’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현대적 재발견이 시도되고 있다. 이 논의의 급속한 발전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정치적 사회적 맥락이 크게 작용했다.
첫째, 1970년 중반부터 1980년대 말까지 세계 곳곳에서 정치 민주화의 물결이 일어났다. 제3의 민주화 물결이라고 불리는 이 흐름은 동유럽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로 정점을 이루었다. 1980년대에 구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사회의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반체제 지식인들은 19세기 이래 묻혀 있었던 서구의 시민사회 논의를 부활시켰다.
둘째, 그동안 선진 민주주의를 이룬 서구 사회가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해 시민의 ‘참여 민주주의’를 더욱 요청했다. 다수결 원리와 정당정치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공공선을 확대하기 위해 기존의 제도정치를 넘어 시민 자신이 정치의 한 주체로 직접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것의 한 방안으로 새로운 기제로서 협치(協治/共治, governance)방식이 도입되었다.
셋째, 국가와 시장의 실패 조짐을 보이자 그것의 대안으로 시민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를 보완하는 제3의 대안으로 시민사회와 시티즌십(시민권/시민성) 개념이 제창되었다. 제3의 영역, 비정부기구, 비영리기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자발적 결사체와 이에 상응하는 사회적 자본이나 시민적 교양/예의(civility)가 국가나 시장의 폭력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제창되었다.
민주화항쟁 이후 확대된 시민교육 활동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지 지배, 오랜 냉전적 억압과 군사독재로 인하여 시민의 사회참여, 정치참여의 기회가 극도로 제한받았고, 그로 인해 국민들은 신민적 태도를 내면화하며 순응적인 태도를 보였다. 국민윤리교육, 국민정신교육, 이데올로기 교육, 사회정화교육, 반공안보교육 등 다양한 이름의 순치/길들이기 교육이 진행되었다. 그러던 것이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으로 교육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체제유지적 공민교육은 약화되거나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민중교육’으로부터 시작된 시민교육은 시민사회의 발전과 함께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민주주의 안착과 시민의식 성장은 80년대 민주화운동 이후 정치사회적 노력과 함께 시민사회 주체들이 다양한 주제와 방법으로 진행한 시민교육도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
그 결과 풀뿌리지역사회에서의 시민교육, 자기주도학습, 참여학습, 체험학습, 봉사학습, 학습동아리의 결성과 연대적 실천, 참여자 중심의 교수방법 등의 교육방법이 제창되었고, 지금까지도 시민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특히 과거에는 몇몇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교육들이 국가적 차원에서 확대되고 다변화되었다.
하지만 시민교육 주체들의 열악한 환경은 증대되는 교육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못하고, 활성화와 연대보다는 교육의 획일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시민교육에 대한 명확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적 동원이나 진영 논리의 수단으로서 활동되는 취약성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정치 민주화가 역주행하면서 학교 민주화도 뒷걸음치게 되고 시민교육 또한 퇴보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게다가 학교교육은 대학입시라는 선발 기제에 압도되면서 단순 지식을 암기하는 훈련장으로 변질됨으로써 시민교육은 구호 또는 문서로만 남아 있다. 국가의 교육이념이 이상적으로 시민교육을 주창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서는 순응적 시민 기르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재의 교학사 국사 교과서 파동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민주적’이지 못한 민주시민교육과 민주적 시민성을 위한 교육
그동안 우리의 시민교육은 ‘민주적’이지 못했다. 말로만 민주시민교육이었지 실제 이전의 공민교육이나 국민교육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교육은 국민의 단합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함양하는 체제 내지 정권 유지 교육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민주적’ 시민교육이 제창되고 있다. 시민교육 앞에 ‘민주적’ 이라는 형용사를 붙인 ‘민주적 시민교육’(democratic civic education)은 시민교육에 대한 반성과 성찰에서 나온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바람직한 ‘민주적 시민교육’은 ‘민주적 시티즌십을 위한 교육’(education for democratic citizenship)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적 시티즌십을 위한 교육은 민주적 절차와 사회정의, 그리고 지속가능한 생태적 보존을 위한 가치에 중심을 둔다. 오늘날 민주적 시티즌십은 책임 있는 시민, 참여적 시민, 정의로운 시민, 민주적 시민, 인권적 시민, 평화적 시민, 환경적 시민, 다문화적 시민, 지구적 시민 등 다양한 정체성과 역량을 가진 시민으로 확장되고 있다. 민주적 시민성 교육은 단순히 정부에서 제공하는 시민적 지식을 기계적으로 전달하거나 순응적 덕목을 주입하는 ‘공민교육’이 아니라, 민주주의 이론에 바탕을 둔 ‘민주적 교육‘(democratic educ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동의를 바탕으로 한 정부의 한 형태이고, 교육정책이 교조주의와 강압적 힘보다는 이성과 논의에 바탕을 둔 열린 토의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민주시민은 권리와 의무/책임을 지는 ‘지위’를 가져야 하고, 국가나 일상생활 속에서 서로 다르게 느끼는 ‘감정’을 가져야 하며, 참여, 투표, 사회적 연대, 지역사회 활동 등 ‘실천’을 해야 한다. 이러한 민주시민의 자질/역량을 갖추려면 의사소통하며 대화하는 기술, 사회적 환경 속에서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는 능력, 공적 토론에 참여하는 능력, 비판적 사고 능력 등을 포함한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잘 듣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타협하고, 토의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직접 체화되는 민주주의를 경험해야
그런데 학생들이 학창시절 민주주의 경험을 하지 못하였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민주적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다. ‘비시민인 학생’이라는 존재가 순식간에 ‘성숙한 시민’이 될 수는 없다. 민주시민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노력과 실천을 필요로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신민(臣民)의 상태로 머물고 말 것이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이 공동체의 민주적 시민이 되려면 학습하고,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타고난 자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동을 ‘미래의 시민’으로서뿐 아니라 ‘현재의 시민’, 최소한 ‘준시민’(準市民)으로 대우해야 한다. 배우는 과정에 있고 아직 미성숙하다는 이유 하나로 학생을 어린애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배우는 과정에 있고 미성숙하고 약자의 처지에 있기에 아이들은 상처받기 쉬우며, 그러기에 더욱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또한 민주적 시민사회화가 가능하려면 다양한 결사체(association)를 결성하여 굳어진 사회체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권리의 옹호와 함께 시민적 교양을 갖추어야 한다. 책 읽는 모임 등 문화 활동도 동반하고, 이들 중간매개집단을 통한 대화, 논의, 토론, 담론 등이 활발하게 교환되어야 한다. 그래야 교양을 가진 시민계층이 태동할 수 있다. 교양시민계층이 태동되고 발전되어야 시민사회는 견고해질 수 있다. 책을 읽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행동과 봉사로 발전된 인문학적 실천을 해야 한다. 그래야 ‘gown’과 ‘town’의 만남이 가능하다.
학교운영위원회라는 ‘제도’의 도입에서 보듯, 그 제도를 움직이고 있는 사람의 의식, 즉 ‘학부모의 의식’이 준비되지 않아서 학교운영위원회 제도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은 교양을 갖춘 시민계층의 취약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치의 혁명 없는 제도의 도입은 타락하기 쉽다. 제도가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가치관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학교구조의 혁신과 함께 학교문화의 혁신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교육 문제 해결은 제도/구조의 혁신과 가치/의식의 혁신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학생의 생활/삶의 문제는 구조/정치의 문제인 동시에 문화/가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극단적인 구조주의나 문화주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학교민주주의 구현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없다. 그러기에 학생에 대한 권위주의적 통제를 억제하고 학생의 보다 나은 삶의 질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적 권리를 신장하면서도 주체의 시민적 덕목/시민정신을 동시에 함양하여야 한다. 신뢰하고 경청하고 협력하고 부조하고 연대하는 삶의 태도가 형성되지 않으면 시민문화의 형성은 더욱 어렵게 될 것이다.
생활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렇게 볼 때 우리에게는 ‘생활민주주의’가 매우 절실하다. 존 듀이가 강조한 바 있듯, 그것은 단순히 민주주의 제도에 의해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삶의 양식’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민주시민은 어려서부터 보고 배우는 지속적이고 의도적인 훈련과 습관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했듯 용기 있는 사람이 되려면 용기 있는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단순한 앎에 머물지 않고 행위를 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성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루소가 강조한 바 있듯 시민의 역할은 선거 때 한 번의 투표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가정생활, 경제생활, 문화생활, 정치생활 속에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배우고 참여하고 실천하는, 평생에 걸친 일련의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다.
부조리한 현실에서는 권력의 정의를 향한 폭로적 민주주의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밖을 향한 그 폭로의 목소리가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와 내면의 폭력화로 침전되어서는 안 된다. 마음의 폭력이 침전되면 민주시민의 탄생은 불가능하다. 억압 체제 하에서 밖을 향해 낸 폭로의 목소리만큼이나 안으로 부메랑 되어 돌아온 폭로나 분노의 마음을 진정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폭력적 시민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흔히 목격하듯 공식 석상에서는 민주주의를 외치면서도 뒤풀이 자리에서는 폭력적으로 변하는 시민을 많이 본다. 이런 시민의 경우 논리적 대화는 잘하면서도 공감적 대화를 잘하지 못한다. 민주주의를 머리나 입으로만 이해하였지 가슴이나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언행불일치가 심하면 민주시민은 탄생될 수 없다. 이런 시민의 경우 눈매가 사납고 얼굴이 굳어 있다. 이런 태도를 가진 시민이라면 자신 안에 파시즘화된 마음을 치유해야 한다. 그러하기에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제 3의 길을 제창한 앤서니 기든스는 ‘정서적 민주주의’를 요청한 바 있다.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시민교육은 인권교육과 인격교육의 결합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정의를 향한 인권교육이 밖을 향한 구호/주장 운동으로 편향되지 않기 위해 안의 내공을 튼튼하게 하는 성숙한 시민을 양성하는 인격교육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 제도적/문화적 폭력을 인식하는 ‘인권’의 가치를 주창하면서도 자기 내면의 심리적 폭력을 제어할 수 있는 ‘인격’의 가치를 동시에 체득해야 한다. 폭력을 극복하는 상태는 마음/내면의 평화와 구조/세상의 평화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마음의 성향과 태도인 ‘도덕적 힘’과 함께 사회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정치적 힘’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그것이 ‘개인적 깨달음’과 ‘사회적 깨달음’을 두루 갖춘 시민으로 자라게 하는 시민교육의 이상적 모습일 것이다.
글_ 심성보 (부산교육대학교 교수, 흥사단 교육운동본부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