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 소셜디자이너스쿨 7강 – 젊은 기업가에게 전해 듣는 사회적 기업의 생생한 현장
며칠 전 교육 분야를 담당하는 선배 기자를 만났다. 그는 올해 초 한 고등학교의 해외 수학여행을 동행 취재했다. “담임선생님이 초면인 나를 붙잡고 그러는 거야. 이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암울하다고. 오죽하면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할까 싶더라. 우리나라 교육이 문제는 문제야.” 그런 줄 알았다. 요즘 20대는 성공을 위해 당연한 듯 남을 짓밟고, 다른 사람의 일 따위는 간단하게 무시해버리는 냉혈한인 줄 알았다. 이 두 명의 ‘훈남’을 만나기 전까지는.
[##_1C|1043030936.jpg|width=”400″ height=”266″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임동준 탐스슈즈 대표(좌)와 송호원 프리메드 대표._##]
임동준(32)씨는 5년 전 대기업 삼성물산에 입사했다. 원하는 해외영업팀에 배치됐고, 평생 가보지도 못할 수십 개의 나라를 돌아다녔다. 누가 봐도 성공한 삶이었고, 이대로만 간다면 성공할 삶이었다. 그러나 그는 3년 전 돌연 사표를 던졌다. 스스로도 꽤 만족하는 삶이었지만, 지난 10년간 그를 괴롭혔던 “좀 더 재미있는 일,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마침내 그를 움직인 것이다.
그는 현재 미국에 본사를 둔 탐스슈즈(TOMS Shoes)의 한국 수입·유통법인 이사를 맡고 있다. 2006년 미국의 한 청년 사업가가 만든 이 회사는 고객이 신발 한 켤레를 구매할 때마다 신발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한 켤레씩 전달하는 일대일 기부(One for One)를 창립 이념으로 삼고 있다. 임동준 대표는 “탐스슈즈를 발견한 순간 머릿속이 밝아지며 비로소 해야 할 일을 찾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송호원(24)씨는 현재 연세대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다. 그는 공부로 부모님 속을 썩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모범생’이고, 아버지를 따라 의사의 길을 택한 ‘착한 아들’이다.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고, 앞으로도 돈 잘 버는 의사로의 삶이 약속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여름 난생처음 ‘불효’를 저질렀다.
그는 현재 프리메드(FREEMED) 대표를 맡고 있다. 무료 진료봉사 동아리 회장이었던 그는 “아무리 좋은 일도 돈이 없으면 지속적으로 하기 힘들다”는 고민 끝에 뜻을 함께 하는 친구들과 프리메드라는 준 사회적 기업을 설립했다. 기부나 물품 판매로 돈을 만들어 저소득계층에게 무료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의료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이다.
송호원 대표는 “앞으로 계속 의사의 길을 걷게 될지, 아니면 컨설팅이나 투자 분야에 도전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프리메드 활동이 있었기에 훌륭한 의사도 컨설팅 전문가도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잘 나가는 대기업 직장인 타이틀을 버리고 대안 기업가의 길을 택한 임동준 이사, 성공이 보장된 의사로의 길을 잠시 유보한 채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돕고 있는 송호원 대표. 우리 시대의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 두 명의 ‘훈남’을 본격적으로 만나보자.
[##_1C|1118043420.jpg|width=”400″ height=”266″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SDS 4기의 마지막 강의였지만, 첫 강의 때와 마찬가지로 수강생들은 강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했다._##]
세계평화를 위해 대안 기업가의 길을 걷다 : 임동준 탐스슈즈 이사
“저는 세상의 좋은 것을 남들보다 먼저 알아보는 재주가 있어요. 희망제작소 소셜 디자이너 스쿨도 1기 출신이고, 탐스슈즈도 한국인 중에서 가장 먼저 발견했거든요.(웃음) 제 꿈은 ‘세계평화’입니다.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세계평화를 위한 저의 역할은 분명합니다. 탐스슈즈를 좋은 모델로 성장시켜 대안 기업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구체적 비전과 실질적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임동준 이사도 헤맬 때가 있었다. 막연히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많은 이들이 그렇듯, 월드비전 등 국제NGO로 이어졌다. 하지만 차마 지원서를 낼 수 없었다. NGO 무경험자를 뽑아줄지도 의문이었고, 막상 들어가더라도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그때 한 사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전 세계의 새롭고 독창적인 사업 아이템을 소개하는 스프링와이즈닷컴(springwise.com)이다.
“2006년 10월 스프링와이즈닷컴에서 처음 탐스슈즈를 발견했어요. 설립 4개월 만이었죠. 사실 좋은 일을 하고 싶어도 먹고사는 문제를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탐스슈즈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는 아이템이었죠. 첫 사업이라 어려움도 많았지만 지금은 삼성물산에 다닐 때 월급만큼은 벌고 있어요. 좋은 일도 하고 돈도 벌고, 행운아인 셈이죠.”
탐스슈즈는 설립 6개월 만에 아르헨티나 아이들에게 1만 켤레를 전달한 것을 시작으로 2009년 4월 현재까지 약 14만 켤레의 신발을 기부했다. 처음에는 1년마다 자원봉사자들을 이끌고 직접 전해줬는데, 지금은 규모가 커져 해당지역 NGO에 일임해 연중 수시로 전달하고 있다. 최근에는 발이 코끼리 발처럼 붓는 PODOCONIOSIS 질환이 발병하는 지역에 집중 지원하고 있다. 이 질환은 오염된 토양을 접촉했을 때 감염되는데, 유일한 예방법은 신발을 신는 것이다.(첨언을 하자면, 내가 신발 한 켤레를 구매하면 가난한 아이들이 신발 한 켤레를 받을 수 있다는 탐스슈즈의 슬로건은 소셜 디자이너 스쿨 3강 때 최혜정 세이브더칠드런 자원개발부장이 소개한 유니세프 ‘물의 날 캠페인, 세이브더칠드런 ‘신생아모자뜨기 캠페인’과 유사하다. 역시 사람들을 열광시키고 동참하도록 만드는 기획의 비법은 한 길로 통한다.)
[##_1C|1129945294.jpg|width=”400″ height=”266″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임동준 탐스슈즈 대표는 말한다. "제 꿈은 세계 평화에요"_##]
탐스슈즈는 광고나 홍보를 일체 하지 않는다. 이익의 대부분은 돈이 없어 신발을 살 수 없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탐스슈즈는 세계 셀러브리티(유명인사)의 핫 아이템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르헨티나 민속화인 알파르가타에서 모티브를 얻은 탐스슈즈는 숱한 캔버스화 중에서도 디자인 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예요. 별다른 홍보는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2007년 7월 쇼핑몰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6월 현재 총 4만2000켤레가 판매됐어요. 입소문이 비결이라면 비결이죠. 탐스슈즈는 영리기업입니다. 그래서 저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장사꾼’과 ‘대안 기업가’로 양분됩니다. 하지만 신발을 구매하는 나의 작은 행위가 다른 이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임동준 이사의 꿈은 나이 사십이 됐을 때 사업모델로서도, 금전적으로도 미래 대안 기업가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도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저도 직장을 그만두고 탐스슈즈를 시작하기까지 무척이나 고민하고 갈등했어요. 대단한 결심이 필요했던 거죠. 그런데 의외로 강을 건너와 보니 이쪽에도 저 같은 사람이 많더라고요. 사실 별거 아니었던 거죠. 오히려 지금은 마음이 편안합니다. 앞으로도 장사꾼이 아닌 브랜드 가치 공유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겁니다.”
돈 없어도 치료 가능한 대안 병원을 꿈꾸다 : 송호원 프리메드 대표
송호원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농담처럼 “학원을 차리자”고 말했다.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들에게 학원 강사는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었다. 그러나 정작 대학은 “아버지도 의사고, 아버지의 친구도 의사여서” 의대에 진학했다. 스스로 말하길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 인간 본연의 연민으로” 다른 학교 의대생들과 함께 무료 진료봉사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판자촌이나 노숙자, 외국인 근로자들을 진료하다보면 당장 이식수술이 필요한 분들이 허다해요. 장기가 태부족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장기이식 순위를 매기는데, 가장 첫째 조건은 조직세포의 적합성 여부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수술 후 평생 주입해야 하는 면역 약품을 구매할 능력이 있느냐가 관건으로 작용해요. 그때부터 ‘모두가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만들자’가 우리의 도전과제가 된 거죠.”
송호원 대표는 벤치마킹할 모델을 찾기 시작했다. 돈이 많은 사람에겐 더 많은 돈을, 돈이 적은 사람에겐 무료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인도의 아라빈드 안과병원과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칼얀병원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국내 의료사각지대의 ‘빈틈’을 찾아내기 위해 각종 저소득층 대상의 진료 시스템에 대한 조사도 병행했다.
“무료진료소는 주로 의과대생들이 자원봉사를 하는 거라서 전문적 진료는 불가능해요. 비교적 저렴한 공중 보건소가 있긴 하지만, 오후 6시에 문을 닫으니까 저소득 근로자들이 이용하기엔 한계가 많죠. 개인병원은 비용이 턱없이 비싸고요. 일단 전문적 진료는 뜻을 함께하는 의사 선생님들을 섭외했고, 진료시간은 프리메드 버스로 해결했어요. 높은 이동성을 활용해 주말에 저녁 늦게까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_1C|1032817135.jpg|width=”400″ height=”266″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모두가 치료 받을 수 있는 병원을 만들고 싶습니다"_##]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다. 턱없이 비싼 약값이나 수술비용을 대학생들이 감당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기서 대학생만이 가능한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프리메드에 의대생, 간호대생, 약대생뿐 아니라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을 모집한 것이다. 경영학, 디자인학, 의류학, 건축학, 언론홍보학 등 많은 학생들이 동참했다. 현재 프리메드는 의료본부와 경영본부로 운영되고 있으며, 10개 팀에 총 50명이 활동하고 있다.
“마케팅을 전공하는 친구는 기업 버스 외벽에 프리메드 광고를 실어 기업 이미지를 좋게 하는 대신 돈을 받는 수익모델을 만들었고, 디자인을 전공하는 친구는 프리메드 심볼 등을 새긴 티셔츠나 가방 등을 제작해 판매했어요. 최근에는 대학생을 타겟으로 다양한 학용품을 디자인해 팔고 있습니다.”
프리메드의 대표 상품은 ‘1000원 수술’이다. 긴급 수술이 필요하지만 돈이 없어 치료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을 선정하고, 프리허그, 스티커 붙이기 캠페인 등을 통해 1000원씩 기부를 받아 수술비를 지원하는 것이다.
“프리메드에서 활동하려면 돈을 모을 참신한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고, 자신이 돈을 벌겠다는 욕심이 없어야 해요. 대학생만이 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죠. 그러다보니 중간에 힘들어하고 나가는 친구들도 제법 있어요. 그래서 최근에는 운동회나 다양한 내부 행사를 열어 동기부여를 하고, 힘들어도 즐거운 조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더 이상 제 자신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없단 거예요. 이미 늙은 거죠.(웃음) 제가 빠지더라도 조직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드는 것이 저의 남은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훌륭한 의사가 될 겁니다. 지켜봐 주세요.”
우리는 단지 두 명의 ‘훈남’만을 만났을 뿐이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글_ 권지희(제4기 소셜디자이너스쿨 수강생, 前 여성신문사 기자)
사진_ 김규철(희망제작소 인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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