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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8일. 울긋불긋하게 가로수가 물들어가는 가을날에 상일동 시장 한가운데 자리 잡은 ‘함께 크는 우리’ 작은 도서관을 찾았다. ‘함께 크는 우리’는 작은 도서관의 조상격으로 20년이 넘은 곳이었다. 도서관을 찾아가는 시장길 양옆으로는 노점상이 줄지어 자리 잡고 있었다. 서울인데도 서울 같지 않은 소박한 풍경이 남아있었다.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 된 작은 도서관에서 정선옥 관장을 만나 재미있고 활기 넘치는 도서관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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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작은 도서관에 들어서자 정선옥 관장은 주방 테이블에서 몇몇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도서관 안쪽 무대에서는 아이들과 어머니들이 공연 준비에 한창이었다. 왁자지껄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유리창으로 보이는 작은 방안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엎드려서 책을 보고 있었다. 활기와 평온이 공존하는 낯선 풍경이었다. 일반적인 도서관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정선옥 관장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작은 놀이방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무대와 주방이 있는 도서관

“우리 도서관은 프로그램이 아주 다양해요. 공연을 하다 보니 벽을 허물 수밖에 없었고 또 다른 방이 필요해서 칸막이를 설치했죠. 지금 인터뷰하는 이 작은 방에서는 주로 유아를 위한 프로그램을 하고 있어요. 주방은 활용도가 굉장히 높아요. 먹거리를 만들 수 있고, 먹거리가 있으니까 또 사람들이 자주 모이게 되지요. 요리 동아리를 만들자는 이야기도 나왔어요. 소규모 모임을 할 때는 편하게 주방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해요. 예전에는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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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을 정하지 않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는 도서관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은 아주 단순해요. 그냥 누가 ‘이런 프로그램이 어때?’라고 하면 공지를 하고 사람들을 모으는 거예요. 프로그램은 다함께 만들어가고, 역할은 미리 정하지 않아요. 참가자들이 모두 함께 하는 거죠. 지난번에 불꽃놀이 프로그램을 할 때는 일찍 모인 분들이 고무줄을 가지고 와서 전래 놀이를 하면서 기다렸어요. 불꽃놀이 진행도 참가자들이 다 알아서 했어요. 걱정인형을 만들자고 하면 누구는 집에서 솜을 가져오고, 프로그램이 끝나면 뒷정리도 다 알아서 해요. 행사를 하는 날에는 서로 먹거리를 가지고 와서 나눠 먹어요. 이용자들이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어 가는 것이 이 작은 도서관의 운영법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즐거운 도서관

“우리들끼리 약속한 게 있어요. 도서관은 즐거워야 한다는 거예요. 책임과 의무는 적고 재미가 가득한 도서관을 만들자고 했어요. 의무감이 생기면 그 모임은 오래 지속할 수가 없어요.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야 오래 가죠. 도서관의 중심은 마을 공동체예요. 모두 마을 사람들이고 도서관을 매개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거지요. 예전에는 하루 한 개 프로그램만 있었는데, 지금은 하루 2-3개가 돌아갈 만큼 여러 동아리가 있어서 서로 공동체 의식을 갖자고 얘기하고 있어요. 오래 된 동아리라고 우선권을 주장하지도 않고, 모두 ‘우리’라는 생각을 가지니까 일정이 겹쳐도 서로 배려하면서 기꺼이 양보하고 그래요. ‘모든 동아리는 오픈하고, 폐쇄성을 갖지 않는다.’ ‘행사는 함께 한다.’ ‘규칙은 쉽고 간단하게’ 하자고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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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에 따라 선택하는 도서관

“공공도서관은 사람들을 지속해서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없지만, 작은 도서관은 마을 공동체이기 때문에 이 모임 저 모임에서 계속 만나게 돼요. 서로 이어지면서 관계가 확장되는 장점이 있어요. 작은 도서관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할 때,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 우리 도서관은 다른 도서관이야’ 크게 떠들어도 되는 도서관, 그림도 그리는 도서관,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도서관, 어머니들이 바느질을 하러 오는 도서관을 만들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어떤 도서관을 가고 싶은지, 어떤 도서관을 좋아하는지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일 뿐입니다. 저는 관장인데도 개인적으로 책 읽을 때는 평생학습관에 갑니다. 제가 읽고 싶은 추리소설이 이 도서관에 없기 때문이죠. 아이 셋이 있는 가족은 공공도서관에 가기 힘들어 이곳으로 오셨어요. 물론 여기에 책만 읽으러 오는 것은 아닙니다. 책을 읽을 때는 다른 도서관으로 가기도 하면서 자연스런 선택이 이루어지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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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옥 관장이 ‘함께 크는 우리’에서 일한 지는 3년 남짓 되었다. 작은 도서관이 마을 중심에 든든하게 자리 잡고 활력을 불어넣기까지는 정 관장의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열린 마음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에는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바람이 무엇인지 물었다. 정 관장은 ‘더 많은 마을 사람들이 이곳을 알게 되고 작은 혜택이라도 마음껏 누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함께 크는 우리’는 작은 도서관이지만 동네 사람들이 모두 놀러 와도 좋을 만큼 넉넉한 울타리를 만들고 있었다.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은 스스로 재미를 만들면서 더 많은 이웃들과 나누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마을에는 어떤 작은 도서관이 있을까’ 한번 찾아 봐야겠다고.


글/사진
_ 조준형 (34기 뿌리센터 인턴연구원)
_ 장우연 (뿌리센터 선임연구원 wy_chang@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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