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하철에서 종이 신문을 읽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집에서도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 인터넷으로 원하는 정보만을 골라 보는 데 너무나 익숙해졌다. 어쩌다 종이 신문을 보게 되어도 인터넷으로 보던 습성대로 빠르게 훑어 보고 싶은 기사만 골라 본다. 그런데 그 어느 유명한 신문보다 열독률이 높은 신문이 있다. 바로 ‘마을신문’이다. 활발한 마을공동체 활동으로 잘 알려진 강북구의 삼각산재미난마을에서는 강북구청에서 발행하는 신문 지면 한 켠에 마을 소식을 전하고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최근 마을신문 창간준비위원을 모신다는 공지가 눈에 띈다. 이 공지를 통해 엿본 마을신문의 면면은 ‘일상적으로 지역과 소통’하고, ‘주민 참여를 확대해 마을 속 공감과 참여의 장을 만들’기 위한 매개다. 마을 활동가들이 흔히 듣는 질문 중 하나가 ‘ooo마을은 oo동인가요? 아니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마을인가요?’이다. 삼각산재미난마을 이상훈 사무국장은 신문 발간 계획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마 신문이 배포되는 곳까지 ‘마을’이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요” (제민일보, 2013.7.16)
반송동 희망세상 김혜정 회장이 십오 년 전 마을에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처음 한 일이 마을신문 ‘반송사람들’을 매달 발행하는 일이었다. 다른 유수의 신문들은 있으면 보고 없으면 마는 식의 취급을 받지만 달랑 4면짜리 타블로이드판 ‘반송사람들’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신문이다. 중앙 일간지에서는 다루어 주지 않는 나의 이야기가 ‘반송사람들’에는 실려 있기 때문이다. 구보에는 구청장이 하는 일이 나오지만 마을신문에는 나와 이웃, 우리들의 소식이 있으니 궁금하고, 내 사진이라도 실리면 보고 또 본다. 6천 부를 발행해 집집마다 배달하고 이야기를 나누니, 절로 소통의 계기가 된다. 동네 아줌마들이 기자다. 슬리퍼 끌고 와서 수다 떨다가 마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게 기사가 되는 일이 자연스럽다. 반송동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주민이 주인이 되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었다. 구에서 하는 행사에 동원되어 박수나 치고 가는 대상이 아니라 주민이 주체가 되는 마을 말이다.? 처음에 한 일이 마을신문을 만드는 일이었던 것도 주민이 마을의 일을 알아야 진정한 마을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반송동은 1960~70년대 부산시 곳곳에서 철거된 판잣집 주민들이 단체로 이주한 마을이다. 패배감과 소외감에 젖어 있던 마을 사람들이 “제대로 살아보자”며 1998년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었다. 희망세상 김혜정 대표는 내가 살면서 불편한 일이 있을 때 ‘누가 해결해 주겠지’가 아니라 ‘우리가 해보자’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마을 만들기의 첫 시작이라고 말한다. 부지불식간에 쓰레기 집하장처럼 지저분해진 골목 한 귀퉁이가 있다 치자. 구청에 민원을 넣어 치워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구청에서 청소해 놓은 그곳에는 얼마 못 가 다시 쓰레기가 모인다. 다른 방법도 있다. 마을 사람들 몇이 다른 한 사람씩을 데리고 나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의논하고 함께 치운다. 화단을 만들거나 벤치, 평상을 만들어도 좋을 것이다. 같이 청소하자고 할 때 거들떠도 안 보던 이웃도 지나다 기웃거린다. ‘수고하네’ 하며 음료수 한 병을 건넬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새로 단장한 공간은 다시 쓰레기장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마을이다.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을 위한 봉사모임을 꾸리기도 하고, ‘좋은 아버지 모임’과 같이 스스로 마을을 사랑하는 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영화, 독서, 퀼트, 인형극, 풍물, 자녀문제 연구 등 교육, 문화, 취미 소모임을 만들었고, 주부대학, 어린이 택견, 학부모 교실 등 각종 교양 강좌를 개설했다. 인문학 책 읽기 모임, 요리 모임,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반찬을 만들어 봉사하는 모임도 있다. 무슨 모임이든 만들어지는 것은 환영한다. 사람들이 모이고 함께 뭔가를 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소모임을 해보라고 독려는 하되 목적이 뭔지, 계획이 뭔지 따져묻지 않는다. 그래서 숱하게 많은 소모임이 생겨나고 없어졌다. 단, 소모임은 없어지더라도 사람은 남아야 하고 성장해야 한다는 지향은 포기하지 않는다. 자기 성장이 있어야 오래 갈 수 있기 때문이고, 그러한 성장에서 변화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_1C|1369567870.jpg|width=”450″ height=”298” alt=””|느티나무도서관 건립기금 후원자들을 소개하는 손수진 활동가_##]
반송 사람들은 마을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우리 아이들에게 반송은 고향인데, 우리 아이들에게 고향은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2006년, 이들은 마을도서관을 건립하기로 한다. 열람실에 아침부터 자리잡고 앉아 수험공부를 하는 도서관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놀이터를 꿈꾸었다. 처음에는 돈 많은 사람들로부터 기부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리스트를 만들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생각을 바꾸었다. 한 사람이 큰 돈을 내도록 할 것이 아니라 주민들 여럿이 조금씩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주민들이 일인 만 원에서 몇백 만원까지 쌈짓돈을 내놓았다. 그렇게 해서 일정한 기금이 모이자 오히려 외부에서 후원이 들어왔다.‘아이들의 돼지저금통도 할머니의 쌈짓돈도 아빠의 비상금도 아낌없이 모아 1억이 되었습니다. 우리 마을 희망의 도서관이 되었습니다. 세상을 밝히는 희망의 돈, 국민이 만듭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국민은행의 후원이 기업광고를 통해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주민들의 의지와 정성을 보았으리라. 그래서 후원금이 보기 좋고 보람도 있게 쓰이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으리라.
결과적으로 1억 6천만 원을 주민들이 모으고 외부에서 2억 원을 후원받아 2007년 ‘느티나무도서관’을 만들 수 있었고, 다양한 마을 활동의 거점이 되었다. 애초에 생각했던 것처럼, 또는 그 이상으로 이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이 아닌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도서관 밖으로도 나간다. 지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찾아가는 도서관’이 운영되고, 초등학교에서는 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후원금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에게 책 한 권과 가방을 선물한다. 올 봄에는 초등학생 280명, 중학생 500명이 선물을 받았다. 동네 어른들이 우리 마을 아이에게 입학 선물을 주는 셈이다. 이렇게 동네 어른은 어른 역할을 하게 되고, 우리 아이는 마을의 아이로 큰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활동가들은 5월이 다가오면 그 어느 때보다 바빠진다. 해마다 오월이면 ‘어린이날 한마당’이 열린다. 부모가 없거나 맞벌이로 바쁜 아이들을 위해 기획한 행사인데, 이제는 마을잔치와도 같이 여겨진다. 올해로 15년째를 맞은 이 축제에는 매년 주제가 있다. 15회의 주제는 ‘평화’였다. 아이들과 함께 평화를 염원하는 바람개비 1천 개를 만들어 마을 곳곳에 설치했다. 이 행사 역시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준비한다. 관에서 지원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행사의 지속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날 축제에는 주민의 10~20%가 참여하는데, 민간 주도 행사로는 드문 일이라 한다.
[##_1C|1405489639.jpg|width=”450″ height=”299″ alt=””|어린이날 행사를 위해 설치한 바람개비_##]
마을카페 ‘나무’는 주민들이 함께 운영하는 마을기업으로, 천연화장품 만들기 강좌나 영화 상영회가 열리기도 하고 주민들의 소소한 모임이 이루어지는 마을 사랑방이다. 노트북과 빔프로젝터가 있는 세미나룸도 있다.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은 영유아 엄마들과 어르신들인데, 이들을 어떻게 조직하면 좋을까를 고민한 결과다. 이 카페 하나를 여는 데 거의 삼 년이 걸렸다. 공부에 쏟은 기간이 2년, 본격적인 준비에도 1년이 걸렸다. 아직도 운영이 녹록하지는 않다. 하지만 엄마가 동네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아이들이 엄마가 필요할 때 엄마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돈이 잘 벌리면 더 좋겠지만 마을기업에서 돈을 버는 행위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
소모임이 없어지는 것보다야 출혈이 크겠지만 마을카페도, 다른 어느 마을의 마을기업들도 없어질 수 있을 것이고 지금까지도 많은 시도가 좌초되었다. 실패일까? 마을기업은 비즈니스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마을활동이지, 마을에 초점을 둔 사업이 아니다. 따라서 사업체로서의 생명이 다 해도 마을활동의 성과와 경험이 남았을 것이고 그 마을기업을 계기로 마을 사람들을 한번 더 돌아본 ‘사람들’이 남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실패가 아니다.
[##_1C|1185244158.jpg|width=”450″ height=”298″ alt=”마을카페 나무”|마을카페 나무_##]
나는 마을에 살고 있을까?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마을은 고향이 될 수 있을까? 우리 아이가 학교에 가 있을 시간에 가게 앞을 지나칠 때 동네 어른이 ‘무슨 일 있니?’ 하고 물어봐 주는 것이 마을이다. 마을 활동이란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갖고 서로의 삶에 무례하지 않게 간섭하는 일이다. 그래서 꾸준히 수다를 함께 떠는 것이 어떤 행사를 치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마을 사람들은 같은 목표를 향해 질주할 수 없다. 서로 너무나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빼곡한 공동주택에 들어차 있는 대도시의 마을에서 서로 공감을 이루는 일은 더 힘들다. 어쩌면 반송동의 이야기가 십오 년 해온 일이라기엔 작은 일들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을활동은 오히려 더디가는 게 옳다. 특별히 잘난 사람이 있어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모여서 함께 하고 이 일을 왜 하는지 고민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마을은 사업이 아니라 프로젝트가 아니라 삶이다.
글_ 김보영 (뿌리센터 선임연구원 boykim@makehope.org)
* 이 글은 2013년 4월 희망제작소에서 울산동구 마을공동체학교의 일환으로 부산 반송동을 견학한 내용과
김혜정 님(희망세상 회장)의 강의를 재구성하여 정리한 글입니다.
* 이 글은 월간 아젠다 11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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