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시사IN 기자들이 희망제작소가 제안한 천개의 직업 중 일부를 직접 체험하고 작성한 기사를 시사IN과 희망제작소 홈페이지에 동시에 연재합니다. 본 연재기사는 격주로 10회에 걸쳐 소개됩니다.  


체험, 1000개의 직업 (1) 산촌 유학교사    

간밤에 내린 눈이 적당히 얼어 학교 옆 10m 경사길이 즉석 눈썰매장으로 변신했다. 초등학생 23명이 볏짚으로 채운 비료 포대를 깔고 앉아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난생처음 타보는 비료 포대 눈썰매에 신이 난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일은 가속도 붙여주기. “다리 들고, 바짝 누워!” 눈썰매 타는 요령을 가르쳐주며 힘껏 아이들을 밀어줄 때마다 다리는 후들후들, 허리와 팔은 얼얼했다. 그러나 체력 좋은 아이들은 지칠 줄 모르고 다시 출발선에 앉아서 외쳤다. “기자 샘, 한 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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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29일, ‘산촌유학 교사’라는 직업을 체험하려고 강원도 양양에 위치한 ‘철딱서니학교’가 진행하는 2박3일 겨울방학 캠프에 참가했다. 그곳에서는 노는 게 공부였다. 눈썰매 타기, 눈싸움하기, 그네 타기, 닭싸움하기, 림보 게임, 노래자랑, 얼음판 깨기, 보물찾기, 떡메 치기….


모두 금세 자연에서 노는 법을 터득하다

앞으로는 점봉산, 뒤로는 오대산 자락이 펼쳐진 양양군 서면 공수전리가 사흘 동안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배움터였다. 두메에서 컴퓨터나 게임기, 스마트폰처럼 만지작거릴 수 있는 물건도 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을 꽉꽉 채워 놀 수 있으리라고는 초보 교사나, 막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온 아이들이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메이플 스토리(온라인 인기 게임)’ 레벨 수치로 자기소개를 하고, 교사들에게 “어느 대학 나오셨어요?”라는 질문을 예사로 던지며, 집으로 돌아가면 국·영·수는 물론 화상 영어·영재과학·종이접기·수영·레고 건축까지 기본 6군데 이상 학원 뺑뺑이를 돌아야 하는 ‘우리나라 보통 초등학생’들은 그러나 금세 자연에서 노는 법을 배웠다.

문제는 몸과 마음이 굳어버린 초보 교사였다. 미끄럽고 울퉁불퉁한 겨울 논두렁길을 잘 걷지 못해 여러 번 꼬마들의 부축을 받았다. 눈썰매 타기 시간에는 푸석푸석한 눈 위에 어떻게 썰매 길을 만들 수 있는지 지식도 경험도 없어 쩔쩔매는 교사를 보다 못해 ‘좀 놀아본’ 동네 중학생들이 나서서 활주로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스마트폰을 꺼내 만지작거리다가 아이들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다. 자연에 몸을 던지고 논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과 친구 되기는 쉬웠다. 대학 시절부터 교생 실습이나 학원·과외 강사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많은 학생을 만났지만 이번처럼 아이들 앞에서 권위가 서지 않기는 처음이었다. 조금 더 살고 조금 더 배운 것을 무기로 무게를 잡을 수 있던 일반 교사 때와는 달리, 산촌유학 선생님은 시골에서 똑같이 먹고 놀고 모르는 것을 체득해가는 과정에서 아이들과 평등해질 수밖에 없었다. 학원 자습 선생님이 가장 무섭다는 초등학교 5학년 이범기군(13)이 매해 방학마다 산촌유학 캠프를 찾는 것도 “친구처럼 대해주는 샘(철딱서니학교 교사의 공식 명칭은 ‘친구샘’ ‘기자샘’과 같은 ‘샘’이다)들이 좋기 때문”이다.

산촌유학에도 갈등과 고난은 있다

사실 2박3일 캠프는 맛보기에 불과하다. 철딱서니학교와 같은 산촌유학센터는 여름·겨울방학을 제외한 학기 중, 영어를 배우러 외국으로 유학 가는 대신 자연을 배우러 산골로 유학 온 도시 아이들에게 농촌생활 교육을 제공하는 민간 교육기관이다. 가까운 초·중학교를 다니면서 방과 후 시간은 학원이나 PC방 대신 산과 들에서 보내도록 해, 공교육과 대안 교육이 자연스레 접목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2007년부터 산촌유학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철딱서니학교의 전교생은 2011년 1월 현재 초·중학생 33명. 공수전리 상평초등학교 공수전 분교와 읍내 양양중학교에 다니는 이 아이들의 학교 밖 생활은 온전히 철딱서니학교 샘 다섯 명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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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도시 아이들이 학원을 가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는 동안, 산촌유학 교사들은 어떤 활동으로 유학생의 방과 후 시간을 채울까. 철딱서니학교 센터장이자 교사인 친구샘(김현덕·36)은 “농촌의 사시사철을 좇아가면 뭘 하며 놀까 하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꽃피는 3월에는 진달래 화전을 부쳐 먹고, 임천에 황어가 올라오는 4월에는 물고기를 잡거나 복숭아꽃 핀 양양을 자전거로 트레킹하고, 화창한 5월에는 근처 강릉에서 열리는 단오제 구경을 가는  식이다.

농촌의 사계절을 제대로 체득하려면 무엇보다 농사짓기가 딱 좋다. 철딱서니학교 학생들은 샘들과 함께 매년 공수전 분교 옆 텃밭에서 옥수수·가지·깻잎·배추 따위를 손수 일궈 밥상에 올린다. 지난해에는 배추 800포기를 수확해 가을철 ‘배추 파동’을 무사히 비껴갔을 뿐만 아니라, 직접 김치를 담가 인근 독거노인과 소년·소녀 가장 30가구에 나눠주기도 했다. “씨앗을 뿌리고, 김을 매고, 거름을 주고, 그 열매를 거두는 작업에다 겨울철 동치미와 고구마를 먹으며 쉬는 농한기까지 제대로 한 번 사계절을 보내고 나면 아이는 물론 교사까지 자연의 순환과 성취의 기쁨을 절로 깨닫게 된다”라고 친구샘은 말했다.
     ”사용자하지만 산촌유학 현장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자연과 벗삼아 지낸다고 모든 아이가 금세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다들 사이좋게 지내는 것도 아니다. 갈등은 아이들끼리는 말할 것도 없고 아이와 교사, 교사와 교사,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도 곧잘 일어난다. 아무리 아이들과 자연이 좋다고 해도 결코 만만한 직업이 아니다. 기천샘(지성철·51)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 곁에 붙어 있어야 하니, 사실상 개인 시간을 갖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임시교사 노래샘(김태원·52)은 “이곳에서 일을 한다면 단순히 취직을 하는 게 아니라, 어느 공동체에 들어와 산다고 생각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산촌유학 교사들은 자기 일을 사랑한다. 기천문 같은 전통 무예를 공부한 기천샘은 ‘세상과 단절된 곳에서 자기 수련을 하면서 아래 세대에게 전통문화를 전수해줄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하고, 10년 전부터 농촌 운동에 뛰어든 친구샘은 ‘이 아이들이 10년 뒤 우리 농촌의 미래를 책임져주리라 기대하기에’ 산촌유학 교사 일에 자긍심을 갖는다.

이 직업은

어디에서 일할까?
철딱서니학교 외에도 강원도 양양에는 더채움학교·고마리작은학교 같은 산촌유학센터가 있다. 고산 산촌유학센터(전북 완주군)와 소호 산촌유학센터(울산시 울주군)처럼, 다른 지역에서도 산촌유학 프로그램 10여 개를 운영 중이다. 

어떤 사람이 필요할까? 교육과 농촌 문제에 사명감을 가진 사람, 교사 자격증 소지자 같은 제한은 없다. 다만 가까운 곳에서 오랜 시간 아이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숙식을 함께할 수 있는 미혼 남녀를 선호한다. 전통문화·예술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 ‘돼’와 ‘안 돼’를 규정짓지 않는 사람, 아이의 성장과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면 환영받는다.

근무 여건은 어떨까? 임금은 센터별·개인별로 차이가 있다. 월 100만~200만원 수준. 숙식을 제공받지만 하루 8시간 근무를 보장받기는 힘들다. 하지만 방학 기간과 격주 휴일 등을 고려하면 일반 직장과 비교해 쉬는 날이 적지는 않다.

그 외 전국산촌유학협의회는 오는 4월 ‘농촌유학 활동가 과정’을 개설해 산촌유학 운영자 및 교사를 양성할 예정이다. 


시사IN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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