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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디자이너는 생활 속 아이디어로 일상의 불편을 해소하는 사람, 혼자 고민하기보다 함께 이야기하고 궁리하는 사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 곁에는 생각보다 많은 소셜디자이너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도 소셜디자이너입니다.

지금 우리 곁의 소셜디자이너(5) – 정은빈 ‘청춘여가연구소’ 대표

딱 두 명만 있으면 된다. 정은빈 대표는 본인을 포함해 셋만 모이면, 즐거운 모의작당 끝에 시도때도 없이 만나고픈 재미x의미 가득한 커뮤니티를 뚝딱 만들어낼 것이다. 커뮤니티 디자인 전문가라는 수식어로는 모자란 그의 놀라운 능력은 사람을 좋아하는 타고난 기질도 있겠으나, 2013년 ‘커뮤니티가 도시를 바꾼다’를 모토로 청춘여가연구소를 설립한 후 다양한 사람들과 다채로운 커뮤니티를 꾸리며 다져진 탄탄한 기본기에서 비롯한다.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에 있는 청춘여가연구소를 진지 삼아, 정은빈 대표가 커뮤니티로 동네를, 도시를,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 청춘여가연구소 정은빈 대표

미술대학을 다니셨으니 학창시절부터 개인 창작활동에 익숙하셨을 듯한데, 커뮤니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미술대학 2학년 때 친구들과 디자인회사를 창업했으니까, 어찌 보면 그게 제가 성인이 되어 만든 첫 커뮤니티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웃음) 2년간 사업을 하다 복학했고, 졸업 후에는 전시기획, 광고디자인, 큐레이터 등 상업미술 영역에서 일했죠. 그런데 늘 마음 한 켠에 미술과 대중을 더 가깝게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어요. 고민하던 차에 저보다 10년 정도 경력이 많은 선배를 만났는데, 당시의 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을 하시더라고요.

시간이 흘러도 비슷할 거라면 혼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해보는 것이 낫겠다 싶어 다니던 갤러리에 사표를 냈어요. 청춘여가연구소를 열고 ‘우리동네 미술관 산책’이라는 작은 프로젝트를 시작했죠. 2012년경이었는데, 당시엔 도슨트(미술작품 해설) 프로그램이 드물었고 미술관 문턱이 조금 높았거든요. 강남역과 경복궁역 등을 포인트 삼아 인근 미술관을 돌아보며 함께 작품을 감상하는 커뮤니티를 꾸렸죠. SNS로 참여자를 모집했더니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참여해서 아주 재미있게 진행이 됐어요.

자신감이 좀 생겨서 다음엔 ‘인상주의 살롱’이라는 16주짜리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한국인들에게 가장 대중적이고 사랑받는 미술가들이 고흐, 마네, 모네 같은 인상주의 작가들인데다, 인상주의 전기와 후기를 거쳐 추상주의로 넘어가면서 근현대 역사와 철학이 압축되어 있거든요. 강의와 대중문화 속의 작품 리메이킹 등을 소재로 해서 소셜다이닝 형태로 진행된 프로그램이었는데, 호응이 커서 2017년까지 근 5년 가까이 운영했어요.

문화예술 커뮤니티로 시작하셨는데, 이후 지역과 사회 문제해결을 고리로 영역을 점점 넓히셨습니다.

모임을 하면서 ‘공간’이 가진 힘을 깨닫게 됐어요.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DIY(Do It Yourself)를 넘어 함께 해결하는 DIT(Do It together)라는 말을 그때부터 썼던 것 같고요. 공간을 열어 사람을 모으고 강연과 커뮤니티가 합쳐진 소셜다이닝 형태의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활동 영역과 분야를 조금씩 넓혀갔어요. 직장인 소셜오케스트라 ‘브레멘 음악대’를 결성해서 도시 직장인들의 취미활동를 통한 사회참여를 시도했고 스토리 경매인 ‘X의 유물’을 통해 물건에 대한 인식도 새롭게 해보려 했지요.

▲ 스토리경매 프로그램 “X의 유물”

개인의 작은 취향과 취미로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커뮤니티를 지속하는 과정에서 ‘소셜미션’ 즉, 우리가 사는 도시와 공동체의 문제를 고민하고 함께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게 됐습니다. 문화콘텐츠 커뮤니티 운영과 문화축제 기획, 도시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한 도시재생과 도시 브랜딩까지 자연스럽게 영역이 확장됐어요.
처음엔 혼자 연구소를 시작했고 필요에 따라 프로젝트팀을 구성해가며 2017년까지 운영했는데, 어느 순간 규모를 키우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왔고 2018년부터 내부조직을 꾸려 지금은 저와 9명의 직원들이 함께 일하고 있어요.

그간 진행하신 여러 프로젝트 중에서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를 꼽아주세요. 현재 주력하고 계신 일도 궁금합니다.

작년(2021년)에 경기도 안산에서 4.16(세월호) 가족들이 주체가 되는 축제를 진행했어요. 비극적인 그날의 일을 우리사회 전체의 안전을 생각하고 함께 위로하며 나아가는 계기로 만들 축제를, 4.16 가족분들이 손수 마련해 시민들을 초대하는 형식이면 어떨까 생각했죠. 그날 하루는 모두가 4.16 가족이 되어보자는 취지로 축제 제목을 ‘안산사람’이라고 지었어요. 가족분들을 교육하고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해 축제의 주체로 만들어 드리는 한편, 안산 화랑유원지에 팝업정원을 꾸며 오프라인 축제의 장을 만들고 코로나19로 참석이 어려운 시민들을 위해 ‘집으로 온 축제’ 카테고리를 마련해 축제 키트를 보내드리고 후기를 공유했어요.

▲ 4.16 가족들이 주체가 되어 진행한 축제 “안산사람”

지금 주력하는 프로젝트는 경기도의 농어촌 공동체를 조사·연구하는 것이에요. 저희는 그동안 서울을 ‘로컬’로 바라보고 지역 공동체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사업들을 주로 해왔는데요, 경기도의 농어촌 지역으로 관심을 넓혀 귀농·귀어인들을 중심으로 농어촌 공동체가 어떻게 변화해왔고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연구하고 있어요.

저는 이번 연구가 서울 시민들의 삶과도 관련이 깊다고 생각해요. 지금 서울에 살고 있는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서울 밖의 삶을 꿈꾸고 있잖아요. 귀촌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고 ‘내 생업이 있는 서울’과 ‘내 삶이 있는 농어촌’을 연결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려는 움직임도 활발하지요. 그동안 마을 브랜딩을 주로 했는데 산과 강, 바다가 있는 마을을 브랜딩해보고 싶고, 서울이라는 지역에 갇힌 사람들이 ‘관계인구’로서 다른 지역과 인연을 맺어 질적으로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도 싶어요.

진행하신 프로젝트 가운데 ‘마을 오지라퍼’ 활동이 인상 깊었습니다. 개인적이고 파편화되어 살아가는 도시민들에겐 무례하지 않은 수준의 ‘오지랖’을 독려하는 것이 커뮤니티 활동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을 오지라퍼’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관리형주거환경개선사업을 위한 주민 홍보단이었어요. 서울엔 오래되어 정비가 필요한 마을들이 있잖아요. 골목을 넓히거나 담벼락을 수리하거나 가로등과 CCTV를 설치해서 마을의 안전을 확보하고 주민들끼리 서로 소통하고 자립계획도 세워서 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사업인데, 관련 법령도 어렵고 지원 내용이 복잡하다보니 진행이 더뎠다고 해요.

▲ 시민홍보단 “마을 오지라퍼”에 참여한 마을 주민들

저희에게 사업 홍보 의뢰가 왔기에, 전문가들이 직접 교육을 하거나 홍보책자를 뿌리는 대신 마을 주민들이 직접 공부해서 이웃들에게 설명하는 서포터즈를 운영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마을 오지라퍼’를 모집했는데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주민들이 응모했고 1기와 2기로 나누어 총 40명가량의 서포터즈들이 관련 영상물까지 기획·제작하며 적극적으로 활동했어요. 저희는 참가자들이 친밀한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고, 전문가들에게 받은 교육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치환해 자발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드렸지요. ‘마을 오지라퍼’들이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주민 입장에서 쉽고 편안하게 설명하니 이해가 쉽고 공감도 얻을 수 있었어요.

성별, 연령, 직업 등이 제각각인 사람들이 친밀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함께 활동할 수 있는 비결, 다시 말해 정은빈 대표가 커뮤니티를 그처럼 잘 만들고 꾸려온 비법을 귀띔해주세요.

마을 공동체든 취향의 커뮤니티든, 가장 중요한 건 안전에 기반한 신뢰예요. 같은 취향과 취미, 목적을 가졌더라도 저마다 삶의 경험과 가치관이 다른, 정말 낯선 사람들이 한데 모이는 셈이잖아요. 커뮤니티 안에서 다른 구성원들에게 존중받을 수 있다는 안전감과 거기서 비롯된 서로간의 신뢰가 없으면 지속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은 우리가 각자 얼마나 다른지 깨닫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종종 코끼리를 상상해보고 각자의 상상을 이야기하거나 책상 위에 놓인 무언가를 그려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곤 해요. 동전 그리기를 예로 들면, 어떤 사람은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을, 어떤 이는 비스듬히 옆에서 본 모습을 그리고, 동전 주변의 사물이나 배경이 된 책상까지 그리는 사람, 동전의 옆면을 극대화하거나 안 보이는 뒷면을 상상해서 그리는 사람도 있어요. 그처럼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 깨닫고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상처 주는 일이 적을 거라는 안전의 틀, 신뢰의 틀이 형성되는 거죠.

▲ 인문학 강좌와 소셜다이닝을 결합한 커뮤니티 “인문학 식탁”

두 번째로는 밥을 많이 먹습니다. 식탁 좋아해요.(웃음) 먹을 걸 놓고 둘러앉으면 평등해지거든요. 나이나 지위, 오늘 무슨 일을 하다 왔는지에 상관 없이 그저 ‘같이 밥 먹는 사람’이 돼요. 배가 부르면 기분이 좋아지고, 한결 여유가 생깁니다.

어떤 사람들이 청춘여가연구소와 함께할 수 있나요?

‘누구나’예요.(웃음) 저는 행복한 삶을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 ‘청춘여가연구소’를 설립했어요. ‘청춘’은 청년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을 멈추지 않고 삶의 행복을 추구하며 성장하려는 개인, 그러니 전 생애를 뜻하는 말이고요. 행복한 삶의 핵심이 균형에 있다고 생각해 ‘여가’를 붙였습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행복한 사람에겐 반드시 친구가 필요하니, 나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잘 먹고 잘 놀며 살아가는 방법을 연구하는 곳이 저희 연구소인 셈이에요.

자기 안에서 질문을 발견해내는 분들, 더불어 행복한 삶에 걸림돌이 되는 문제가 무엇인지 묻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무언가 해보고 싶은 분들이 저희와 오래 인연을 맺으시는 것 같아요. 프로젝트에 함께한 시민들 중에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내가 더 행복해 질 수 있는 거구나’ 하는 발견을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발견이 도시와 세상을 조금씩 바꾸는 거겠죠. 그래서 ‘누구나’라고 생각합니다.

* 인터뷰 및 정리: 미디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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