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란한 상황에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친구나 친지가 있나요?” 올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분석 결과를 보면, 이 질문에 한국인 응답자 18.9%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10명 중 2명 꼴입니다. 한국의 사회적 고립도는 OECD 국가 중 끝에서 4번째로 심각한 상황이랍니다. 1인가구도 가파르게 늘고 있죠. 전체 가구의 34.5%로 이제 ‘혼삶’이 한국의 대표적인 가구 형태입니다. 혼자 산다고 외로운 건 아닙니다. 곰돌이 푸우나 스머프는 혼자 살지만 외롭지 않습니다. 문제는 느슨한 연대, 공동체가 붕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희망제작소는 지난 9월, 10월 ‘고립X연결 시민강연: 외로움을 잇는 사람들’을 세 차례 열고 ‘고립탈출 대작전’을 시작했습니다. 김현수 성장학교 별 교장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유승규 안무서운회사 대표, 김태진 ㈜동네줌인 대표, 책 <에이징 솔로> 저자인 김희경 작가, 박진옥 (사)나눔과나눔 상임이사가 고립이라는 사회적 질병을 진단하고 연결의 가능성을 나눴습니다. 아주 주옥 같습니다. 그 내용을 지면 중계합니다.
“솔로는 혼자 살지 않아요”
-김희경_<에이징 솔로> 저자
“책 <에이징 솔로>에 혼자 사는 40~64살 여성 19명과 노년에 들어선 2명을 인터뷰해 담았어요. 2015년부터 사실상 1인가구가 우리나라의 주류가 됐습니다. 물론 사회적 문제도 증가합니다만 꼭 병리적 현상이라고 할 수 없어요. 세계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모든 나라에서 1인가구가 증가합니다. 도시화가 진전될수록 1인가구는 느는데 도시가 혼자 살기 편하기 때문이죠. 또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의 수와 생계를 혼자 꾸려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늘면서 1인가구도 증가합니다.
가구원 중 40~64살 사이 사람을 1명 이상 포함한 가구가 중장년 가구인데, 전체의 62.4% 차지합니다. 그 중에서 중장년 혼자 사는 1인가구는 20%예요. 중장년이 있는 다섯 집 중 하나가 혼자 사는 거예요. 우리나라 1인가구 지원대책은 2020년대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청년층이나 노년층을 대상으로 합니다. 중장년 정책은 이혼, 실직하고 고립사 위기에 처한 중년 남성들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요. 정책이 너무 단면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서울시 통계를 보면, 자발적으로 혼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전체 중장년 1인가구 중 60%라고 분류하고 있어요. 1인가구를 외로움, 고립과 직결해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서울시 1인가구 조사를 보면 삶의 만족도가 2017년에 비해 2021년에 늘었고요. 불만족보다 훨씬 높아요. KB금융경영연구소가 벌인 1인가구 보고서를 보면, 4050 중장년 1인가구 여성들의 삶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아요.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비율이 절반 정도에요. 전체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죠. 1인가구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 중 가장 지우고 싶은 이미지’로 ‘외로워 보인다’를 꼽았어요. 1인가구 현재 걱정거리를 조사했더니 남성은 외로움이에요. 그런데 여성은 20대에 5위, 30대에선 3위 40대에선 4위 50대에선 4위에요. 오히려 여성들에겐 1위가 경제에요. 그다음엔 안전, 건강이고요. 남녀 중장년 1인가구의 요구가 다른 거죠. 이런 점을 감안해서 정책이 설계되어야 해요.
고립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터뷰했던 내용을 소개하면,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도와달라고 말할 줄 아는 것이 도와줄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해요. 그런 게 자기 돌봄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서로의 꼴을 봐주는 연습이 중요해요. 이 관계가 나에게 소중하니까 나는 저 사람을 감당하겠다는 마음을 내는 게 공동체에선 굉장히 중요하다고 해요. 일상 속 미세한 상호작용도 고립을 벗어나는 데 굉장히 큰 도움이 돼요. 동네 마트 매니저, 세탁소 아주머니, 동네에서 가끔씩 마주치는 이웃들과 한두 마디 주고받는 일상 속 미세한 상호작용이 사람들의 고립감을 경감시켜줍니다. 온라인이 아니라 대면접촉의 기회를 늘려가야 해요. 집도 직장도 아닌 제3의 장소, 마을 운동장, 카페, 도서관 같은 공간과 관련해 지방자치단체들이 할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공영장례는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인기척”
– 박진옥 나눔과나눔 상임이사
“장례를 치르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돈입니다. 2015년 대한민국 평균 장례비는 1380만 원입니다. 두 번째는 법적으로 장례를 치러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누가 장례를 치를 수 있냐면 법률혼과 혈연관계만 치를 수 있어요.(올해 장사법이 바뀌었는데 이 부분은 뒤에서 다룹니다.) 장례할 사람이 없는 경우가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장사등에 관한 법률(장사법)에 따르면, 장례할 수 있는 사람은 첫 번째가 배우자, 두 번째가 직계 존비속, 세 번째는 형제자매입니다. 이 세가지 범위를 연고자라고 해요. 만약 연고자가 없거나 장례를 치르기 어려운 형편이면 행정기관이 하도록 돼 있습니다. 시신을 인도해 장례를 치를 사람이 없는 사람을 무연고 사망자라고 부릅니다. 연고자가 있지만 경제적 이유, 관계 단절 탓으로 연고자가 시신을 위임하지 않아서 무연고 사방자가 되는 경우가 전체 무연고 사망의 70%입니다.
무연고사망자 수는 계속 늘어날 겁니다. 개인이 잘 살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라기보다는 고립, 단절, 경제적 어려움으로 발생하는 장례 빈곤입니다. 대안으로 저희 나눔과나눔에서는 공영장례를 제안해 왔어요. 서울이나 공영장례가 운영되는 몇몇 지방 정부를 제외하면 장례 치를 사람이 없는 사람들은 장례 없이 안치실에서 화장장으로 바로 갑니다. 공영장례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애도가 가능하도록 공공 빈소를 마련하고 장례 시간을 보장합니다.
‘내 뜻대로 장례’로 나아가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내 장례를 해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지금은 어렵습니다. 저희 캐치프레이즈가 ‘혈연과 제도를 넘어 동행의 관계로 가자’입니다. 가족을 확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관계 중심으로 제도를 어떻게 개편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법률혼과 혈연관계가 아니면 장례를 못하는 문제를 저희가 지속적으로 제기했고요. 가족대신 장례지침이 마련되고 올해는 법률로도 명시됐습니다. 가족 아닌 사람도 장례할 수 있는 길이 조금 더 열린 거죠. 하지만 연고자가 없다는 게 확인되거나 연고자가 시신을 위임하겠다고 명확하게 밝힌 이후에야 가족대신장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족대신장례를 치르려면 한 달을 기다려야 해요. 안치비가 하루에 10만원입니다. 무엇보다 공무원들이 이 제도를 잘 모릅니다. 처음부터 고인의 뜻대로 장례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내 뜻대로 장례’가 보장되어야지만 실질적으로 가족이 아닌 사람도 장례를 치를 수 있어요.”
※ 시민강연 라이브 영상 중 김희경 작가님의 강연 동영상은 공개되지 않으며, 질의응답 부분만 보실 수 있습니다.
– 글: 김소민 희망제작소 시민이음본부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