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은둔 청년에 닿는 눈높이 정책을”

“곤란한 상황에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친구나 친지가 있나요?” 올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분석 결과를 보면, 이 질문에 한국인 응답자 18.9%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10명 중 2명 꼴입니다. 한국의 사회적 고립도는 OECD 국가 중 끝에서 4번째로 심각한 상황이랍니다. 1인가구도 가파르게 늘고 있죠. 전체 가구의 34.5%로 이제 ‘혼삶’이 한국의 대표적인 가구 형태입니다. 혼자 산다고 외로운 건 아닙니다. 곰돌이 푸우나 스머프는 혼자 살지만 외롭지 않습니다. 문제는 느슨한 연대, 공동체가 붕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희망제작소는 지난 9월, 10월 ‘고립X연결 시민강연: 외로움을 잇는 사람들’을 세 차례 열고 ‘고립탈출 대작전’을 시작했습니다. 김현수 성장학교 별 교장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유승규 안무서운회사 대표, 김태진 ㈜동네줌인 대표, 책 <에이징 솔로> 저자인 김희경 작가, 박진옥 (사)나눔과나눔 상임이사가 고립이라는 사회적 질병을 진단하고 연결의 가능성을 나눴습니다. 아주 주옥 같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해 중계합니다.

“외로움과 고립은 사회적 질병입니다”
– 김현수 성장학교 별 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국은 ‘고립의 국가’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무연고 사망자도 굉장히 많고요. 1인가구가 전체 가구의 30%에 육박하고 경제적 불안, 외로움, 아플 때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점을 호소해요. 우리 사회가 IMF 이후 빠른 속도로 개인화되고 있죠.
KB금융경영연구소가 매년 1인가구 보고서를 내는데, 2019년 자료를 보면 남성들은 20대만 빼고 30대~50대 모두 가장 큰 문제로 외로움을 꼽습니다. 반면, 여성은 20대부터 50대까지 가장 큰 이슈가 경제이고 40대, 50대는 건강입니다. 서울시 무연고사를 보면 취약지역에 사는 40대 ~60대 남성, 가족과 연락한 지 꽤 되고 만성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50대 남성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빈곤층이 밀집한 지역에서 더 많습니다.
사회적 불평등은 연결을 어렵게 만드는 큰 요인입니다. 상위 1% 소득점유율이 높은 나라로 미국, 영국 그다음이 한국이지요. 경쟁이 심하고, 패자가 부활할 수 없고, 능력주의에 집착하면서 제도적 평등이 불평등을 강화하는 상황이죠. 좀 더 평등하고 기본 소득과 커뮤니티 케어가 있는 사회로 가야 한다는 말은 많이 하지만 쉽지는 않은 거 같습니다.
2015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외로움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고립은 선택이 아니라는 거죠. 영국에서 외로움 부서가 생겼고, 외로움에 관한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최근 덴마크도 외로움에 관한 부를 설립했고요. 캐나다, 미국도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사회적 지지 정책들도 나왔죠. 1대 1로 만나고, 친구가 되어주고, 집단이 함께 만나고, 지역사회를 통해 돕고, 동호회나 지지모임을 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피플퍼스트’라는 장애인 단체 활동가들이 고용노동부를 점거했다 끌려갔는데요. 활동가 모임을 할 수 있는 예산을 윤석열 정부가 제로로 만든 것에 대한 항의였어요. 이런 지원 활동도 외로움을 치유하는 중요한 활동인데 정부가 예산을 깎아버리는 게 안타깝습니다.
코로나 이후에 사회적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소통을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영국 지자체에선 1인가구 밀집된 지역에 커피차를 보내요. 잠깐 나와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연결프로그램에 대한 안내도 받는 거죠. 중장년 남성들에게 반려동물을 연결하는 서비스도 합니다. 영국, 아일랜드에서는 50대 이상 남성 센터를 설립하기 시작했어요. 여기서 목공 기술을 나눈다든지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줘요.
우리나라 지자체도 외로움, 고독을 단절하기 위한 사업을 시도했는데 가장 유명한 게 서울 양천구의 ‘나비남 프로젝트’예요. 지역 50대 독거남을 전수조사해서 이웃과 연결한 사업입니다. 안타깝게도 일부 지자체에 머물렀지 국가 사업으로 진행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외로운 사람들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는 게 문제예요. 외로움과 고립이 한국의 큰 사회적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고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고립·은둔 청년에 닿는 눈높이 정책을”
– 유승규 안무서운회사 대표

“고립을 경험한 분들이 느끼는 감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단어가 ‘무섭다’예요. 우리는 무섭지 않은 사람들에게 고민을 털어놓게 돼요. 무섭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건 고립의 해소를 뜻합니다.
최근 보건복지가 8900명 대상으로 처음 실태조사를 했어요. 고립은둔 청년이 50만 명, 그중에서 은둔형은 24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고립은둔 청년이 전체 청년의 5% 규모인 셈이죠. 사실상 그들 가족의 삶도 온전치 못합니다. 관련 사회적 비용이 375조원에 달한다고 해요.
고립은둔한 사람들 사례를 발굴하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매주 저희는 방문 상담을 하는데요. 이런 실태조사에 응답한 적이 있냐고 물으면 거의 99% 처음 들었다고 해요. 서울시에서는 500명 대상으로 지원사업을 하고 있고 보건복지부도 시범사업을 벌일 예정인데 그런 사업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당사자들이 많습니다. 모집 경로의 오류 탓이죠. (저희 회사가) 연간 인터뷰를 150건 해요. 당사자들이 직접 신청하는 비율이 올라가고 있는데 그분들 99%가 유튜브를 보고 신청해요. 그런데 공공에서는 여전히 좀 낡은 형태의 홍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도 고립은둔에 대한 조례들이 많이 제정됐어요. 하지만 기본 정관 수준이 대부분이고 실질적으로 지원사업을 하거나 구체적인 조례들이 생긴 곳은 광주광역시 빼곤 많지 않아요. 광주는 은둔형 외톨이 지원 조례를 국내 최초로 제정했어요. 내년 하반기에 시 차원에서 공동생활 셰어하우스를 론칭할 계획입니다.
청년을 복지 대상으로 바라본 지도 얼마 안 됐고, 은둔고립 청년에 대한 이해는 최근에야 이뤄지고 있어요. 대상에 대한 이해가 없는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공급자 입장에서 프로그램을 설계할 수밖에 없어요. 10년 20년 은둔했다가 3개월 프로그램하고 탁 좋아질 수가 없는데 연속 사업이 많지 않아요. 재고립되는 인원이 많죠.
한 사람을 회복시키는 데 품이 많이 들고 오래 걸려요. 저희 쉐어하우스에서는 보통 아침 10시 반에 모여 기분을 나누고 습관을 점검해요.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청소도요. 당사자들을 또래와 접촉시켜주고 관계를 확장시켜 줘요. 올해엔 스탠딩 코미디 공연도 했어요. 이 모든 일이 재밌지만 또 너무 오래 걸리고 힘들어요..
내년엔 복지부에서 시범사업을 할 예정이에요. 4개 지역에서 전담센터를 만들어 운영할 예정이에요. 앞으로 지원이 많아지겠지만 모집 경로를 개선하지 않으면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낡은 것들을 개선하고 적절한 경로에서 깃발을 흔들어 친구들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상상력을 회복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도움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진입장벽이 낮은 프로그램이 있고 경로가 적절하다면 그들은 얼마든지 지원할 거라는 게 이미 증명됐어요.”

밥 먹다 연결된 자립준비 청년의 ‘사회적 가족’
-김태진 ㈜동네줌인 대표

“지난해 8월 자립준비청년 두 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기사를 읽었어요. 그 청년들이 살던 곳이 바로 제가 사는 임대아파트 길 건너편이었어요. 나는 잘 활동하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SNS에 ‘우리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일단 모입시다. 만나서 방법을 논의해 보자’라고 썼어요. 지난해 추석 첫 모임이 열렸어요. 우리가 뭘 할 수 있을지 편하게 이야기하는 자리였어요. 이어 80명이 참여하는 단톡방을 만들었어요. 이렇게 모이니 신기한 일이 생겨요. 자립준비청년 당사자 친구들한테 연락이 오는 거예요. 이 친구들이 자주 했던 말이 “사회적인 가족이 필요하다”였어요. 경제적 어려움도 당연히 있겠지만 관계적인 역할을 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사회적인 가족이 되려면 뭘 해야할까 고민했어요. 보통 가족들은 뭘 할까? 밥 먹더라고요. 지난해 11월부터 ‘월간 식구’라는 이름으로 한 달에 한 번 함께 밥을 먹기 시작했어요. 밥을 같이 먹다 보니 다양한 관계와 연결이 생겨요. 뭐가 힘든지, 어떤 사례가 있는지,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제도적 허점이 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거죠.
실질적으로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당장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뭘까? 결국은 법률, 조례, 제도를 만들어야겠더라고요. 광주시의회에서, 국회에서 토론회를 했어요. 관심 가질 만한 의원들을 연결하기 시작했어요. 광주에 5개 구 중에 지금까지 3개 구에서 조례를 만들었어요. 1개 구에서도 조례가 만들어질 예정이고요. 7월에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이 자립준비청년고용촉진법을 발의했어요. 그 내용이 5월 국회 토론회 때 나온 거예요. 광주시 조례도 곧 만들어질 거고요.
동네줌인이나 활동가가 이끄는 커뮤니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올해 당사자들이 ‘한울’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었어요. 제 올해 활동의 가장 큰 목표는 이 커뮤니티가 잘 자리 잡도록 돕는 것입니다. 지역과 연결하는 작업은 동네 줌인에서 계속하겠지만 자립준비청년 관련 활동을 하는 주체는 이제 ‘한울’이 돼야 해요.
이 친구들에게 동네줌인이 어떤 도움이 됐을까? 저는 딱 한 가지인 거 같아요. 어떤 어려움이 생겼을 때 이 친구들이 적어도 편안하게 연락할 수 있는 어른 몇 명은 생기지 않았을까요?”

-글: 김소민 희망제작소 시민이음본부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