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O는 정부의 동반자

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이 전하는 일본, 일본 시민사회, 일본 지역의 이야기. 대중매체를 통해서는 접하기 힘든,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에 대한 이야기를 일본 현지에서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안신숙의 일본통신 (16)
NPO는 정부의 동반자

서울에서 온 손님들과 함께 <카나가와현(縣)민 활동 서포트센터>를 오랜만에 다시 찾았다. 요코하마역을 나와 잘 정리된 이정표를 따라 5분 정도 걸어가면 15층 건물이 서있다. <카나가와현(縣)민 활동 서포트센터>가 입주해 있는 빌딩이다. 현관을 들어서니 아기자기한 상품들이 진열돼 있는 토모시비(뜻:등불) 상품 판매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상품들은 모두 현내 소규모 작업장에서 만든 것들이다. 소규모 작업장은 일반 취업이 힘든 중증 장애인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만든 작업장으로 현재 현내에만 약 500여 개의 작업장이 있다고 한다. 토모시비는 작업장의 상품 판매처 개척 등을 지원하고 있는 ‘NPO법인 카나가와현 장애인 지역 작업소 연락협의회’가 운영하는 점포들 중 하나다. 맛있게 구워진 마드레느와 가죽 필통을 하나 사서 8층 <카나가와현(縣)민 활동 서포트센터> 사무실로 올라갔다.   


[##_1C|1226155993.jpg|width=”385″ height=”267″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토모시비 상품 판매대_##]


카나가와현(縣)을 움직이는 NPO의 힘

시모모토 쇼고(下元省吾) 소장님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왠지 공무원이라고 하면 권위적일 것이라는 나의 선입견을 깨고 우리를 살갑게 맞이해 주신다. 그는 <카나가와현(縣)민 활동 서포트센터>에 대해 이렇게 설명을 시작했다.

“<카나가와현(縣)민 활동 서포트센터>는 현민들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사회공헌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시설입니다. NPO는 다양한 지역 문제와 사회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파트너입니다. 현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을 지원하고, 보다 활성화시키는 것은 곧 지역 발전으로 이어집니다.”

예로부터 카나가와현은 노동운동, 민족운동, 인권 문제 등의 시민운동이 활발했던 곳이다. 근래에도 고령자와 육아 문제, 환경 및 공해 문제, 외국인 노동자 가족 문제, 노숙자 문제, 평화 운동 등, 다양한 분야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NPO 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물론 때로는 정부에 비판적인 NPO의 활동을 처음부터 긍정적으로 바라봤던 것은 아니었다.


[##_1C|1267323531.jpg|width=”400″ height=”30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신 시모모토 쇼고 소장님_##]
지진 현장에 달려온 자원활동가들

NPO 활동을 등한시하는 분위기가 바뀐 것은, 1995년 1월 새벽에 발생한 한신 대지진 이후이다. 한신 대지진은 5,500명의 인명 피해와 20만 가옥의 파괴 등,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가져왔다. 무너진 건물 잔해 밑에 깔려 있는 재해자들을 구조하고, 생활을 돕기 위해 앞장선 것은 공공조직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시민 자원활동가들이었다. 한신 대지진은 일본 사회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훌륭하다고 믿었던 행정과 공공 조직의 한계를 확인했으며, 시민활동의 중요성과 위력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1995년을 ‘볼란티어 원년’이라고 부른다.

이런 사회적 요구를 가장 빠르게 받아들인 곳이 카나가와현이었다. 한신 대지진이 발생한 해부터 시민활동을 종합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거점 시설을 설립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그 기능과 사업 내용, 설비 등에 대해 시민과 협의하면서 조례를 제정한 뒤, 1996년 <카나가와현(縣)민 활동 서포트센터>를 설립했다. 일본에서는 처음 만들어졌으며, 이후 설립된 전국의 지방 자치 정부의 서포트센터의 모델이 되었다.
 
NPO 활동가들의 공동 사무실로 이용

 “<카나가와현(縣)민 활동 서포트센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현내  NPO 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 센터는 NPO들의 공동 사무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모모토 소장은 센터 이곳저곳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실 비영리단체이고 민간 단체인 NPO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재정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자신만의 사무실을 갖추기까지는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새로 설립된 단체가 아니라 할지라도 기부 문화가 빈약한 일본 사회에서 많은 후원회원을 모아 재정적인 기반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NPO 활동을 도울 때 우선적인 것이 활동 공간을 지원해 주는 일이다.

시모모토 소장은 9층과 10층에 있는 ‘볼란티어 살롱’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이곳은 사전 예약 없이 누구나 와서 자유롭게 회의나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화이트보드와  콘센트까지 갖춰져 있는 미팅 테이블, 컴퓨터 작업 코너, 비품 관리를 위한 로커, 홍보물이나 자료 등을 제작할 수 있는 작업 코너, 우편물과 팩스를 받아주는 각 단체별 우편함까지 갖쳐줘 있어서 각 단체가 활동하는데 큰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단체들끼리 교류와 협동도 이뤄질 것이라 기대된다.


[##_Gallery|1036202451.jpg|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는 공간|1408879762.jpg|사무공간으로 활용하는데 부족함이 없다|1074142854.jpg|여성 활동가를 위해 어린이 놀이방이 마련되어 있다|width=”400″ height=”300″_##]
“회의실과 미팅룸, 홀, 전시장이 있어서 NPO 활동가들이 회의나 교육, 그리고 각종 이벤트와 행사를 개최할 때도 이곳을 이용합니다.”

소장님은 다시 맨 꼭대기 층의 회의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카나가와현(縣)민 활동 서포트센터>에는 공동의 사무실로 사용할 수 있는 볼란티어 살롱 외에도, 6층과 7층에 크고(42명 규모) 작은(12명 규모) 미팅룸이 16개 있다. 또한 3,4층과 15층에는 12명에서 90명 규모의 회의실도 16개 있다. 마침 모두 사용 중이라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마이크, 오디오, 비디오, 프로젝터, 슬라이드 등 관련 설비 등이 충실하게 갖추어져 있다. 그 밖에도 300석 규모의 행사가 가능한 2층 홀과, 1층 전시실까지 있어서 각종 이벤트와 전시 행사에 사용된다.

작년(2012년) <카나가와현(縣)민 활동 서포트센터>에 등록한 단체는 약 2,400개, 미팅룸 등의 시설 이용자 수가 약 40만 명, 하루평균 1,000명이었다고 한다. 설립 당시보다 약 200%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그만큼 카나가와현의 시민활동이 활발해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해진다. 이처럼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비결을 소장님에게 여쭤 봤다.

“요코하마역에서 가까워 교통이 편리하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현내 NPO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과 네트워크를 강화하는데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곳곳에 이용자들 앙케이트 조사지를 비치해 놓고 항상 이용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_1C|1287023029.jpg|width=”400″ height=”30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NPO 관련 서적을 대여하고 있다_##] 

“조성금 정보, 시민활동 관련 정책 정보 등, NPO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각 단체들이 진행하는 이벤트나 활동 정보, 자원활동가 모집 등의 정보를 시민들에게 홍보하는 일도 우리 센터의 중요한 역할이죠.”

시모모토 소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우리를 도서 코너와 정보 코너로 안내했다. 전시대에는 각 단체의 정보지와 이벤트 홍보물이 정리되어 있고, 서고에는 NPO 활동과 관련한 서적이 약 1,000권 정도가 꽂혀 있다.

정보와 홍보는 그 단체의 활동력의 중요 요소이다. 그래서 <카나가와현(縣)민 활동 서포트센터>는 직접 현내 NPO들에게  정보 제공자로, 또 홍보 대행자로 나서고 있다. 시민활동 관련 정보와 NPO들의 활동 사례를 알리기 위해, 월간 정보지 ‘Junction’을 발행하고, NPO 정보 사이트 ‘카나 파이오 스테이션’과 캠페인 사이트 ‘카나챠리’ 를 운영하면서, NPO와 NPO, NPO와 시민들 사이의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_Gallery|1052917420.jpg|현내의 시민사회단체 홍보물을 비치하고 있다|1281685809.jpg|현내의 시민사회단체 홍보물을 비치하고 있다|width=”400″ height=”300″_##]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상담실

 우리는 9층 볼란티어 살롱으로 다시 돌아와 상담실로 갔다. 마침 한 남성이 두 명의 어드바이저와 상담을 하고 있었다. 그는 회사에서 사회공헌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파트너가 돼 줄 NPO를 찾고 있다고 한다. 상담하는 어드바이저는 ‘소셜 코디네이트 카나가와’라는 민간단체에서 파견한 사람들이다. 전문성을 위해 상담 업무는 관련 단체에 위탁해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이 기업에 적합한 사회공헌활동을 추천해 주기도 하고 적합한 NPO를 찾아 소개해 주기도 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연결시켜 주기도 한다. 

2011년 상담 내용을 보면,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가 217건으로 가장 많고, ‘자원봉사활동가를 구하고 싶다.’가 144건, ‘NPO 법인화에 관한 상담’이 85건, ‘단체 운영과 활동에 관련된 상담’이 80건, 그리고 ‘단체의 자금 및 회계 처리, 세무’ 등에 관한 전문적인 내용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전문적인 상담에 대응하기 위해, NPO법인화, 재무, 회계, 홍보, 관리 등 특별 상담 세미나도 정기적으로 개최한다. 이들 상담을 포함해 재작년에는 총 709건, 하루 평균 2.8건의 상담을 실시했으며, 그 중 50건은 코디네이트까지 이어졌다고 한다(출처:2011년 <카나가와현(縣)민 활동 서포트센터>사업 보고서).  

[##_1C|1029511560.jpg|width=”400″ height=”30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누구나 사회공헌활동 관련 상담을 받을 수 있다_##]

현의 출자금으로 운영되는 커뮤니티 펀드

최근 많은 서포트센터들이 NPO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커뮤니티 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2001년 <카나가와현(縣)민 활동 서포트센터>에서 만든 ‘카나가와 볼란터리 활동 추진 기금21’(이하 기금21)은 그 자금 규모가 다른 커뮤니티 펀드보다 현저하게 커서 많이 놀랐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기부금이 아니라 100% 현의 출자로 운영된다는 사실은 매우 의외였다. 이 기금은 오카자키 전 지사가, ‘협동의 시대-행정과 시민 섹터의 협동에 의한 지역 사회 만들기’를 제창하면서, 시민활동 기반 강화를 위해 현 발행채를 이용하여 100억 엔(약 1,100억 원) 기금을 출자해 만들었다. 당시 카나가와현은 재정 파탄 직전이었으며, 재무 관료 출신의 오카자키 전 지사는 현재정의 건전화와 정상화를 내걸고 당선된 사람이었다. 세비 지출은 최대한 삭감하면서도, 시민활동에 대한 지원은 아끼지 않았던 그의 통찰력이 놀랍기만 한다.

설립부터 지금까지, 31개의 단체가 협동 사업 부담금(현과 공익 활동을 협동으로 추진하는 단체를 대상으로 1,000만 엔의 조성금을 최장 5년까지 지원)을, 44개의 단체가 볼란터리 활동 보조금(사회혁신을 위해 자주적으로 활동하는 단체을 대상으로 연 200만엔의 보조금을 최장 3년까지 지원)를, 61개의 단체가 볼란터리 활동 장려금(우수 활동 단체에 대한 표창으로 100만 엔의 상금을 지원)을 지원받았다. (출처:카나가와 볼란터리 활동 추진 기금21 홈페이지)


[##_1C|1001432294.jpg|width=”400″ height=”30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카나가와 볼란터리 활동 추진 기금21을 받은 단체들_##]
 
지역 일꾼을 키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1층으로 올라가니 ‘카나가와 커뮤니티 컬리지 강의실’이라고 적힌 방이 두 개 있다. 서포트센터가 NPO 활동의 활성화를 위해 기금 21 다음으로 준비한 것이 바로 ‘카나가와 커뮤니티 컬리지’다.  NPO 일꾼들과 시민들이 지역활동에 필요한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학습의 장이다. 공간-자금-인재 양성을 통한 NPO지원을 순차적으로 완성해 가고 있는 셈이다. 

2006년부터 3년간 시민활동에 필요한 강좌를 실험적으로 운영해 2009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카나가와 커뮤니티 컬리지’는 3년간 189개의 강좌를 개설해 총 5,291명의  수강자를 배출했다. ‘카나가와 커뮤니티 컬리지’는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역 활동에 참가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미 활동을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드는 기회가 되었다.

[##_1C|1058244614.jpg|width=”400″ height=”266″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수업 중인 카나가와 커뮤니티 컬리지 강의실 _##]

NPO는 정부의 동반자

현재 일본 광역 자치 단체, 기초 자치 단체들의 시민 활동 서포트센터는 민간 중간 지원 센터를 포함하여 약 330여 개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이 <카나가와현(縣)민 활동 서포트센터>를 모델로 하고 있으며,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은 다른 서포트센터로 확산돼 가고 있다. 가장 먼저 설립되기도 했지만, 그만큼 활동 내용이 선진적이라고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카나가와현(縣)민 활동 서포트센터>가 선진적인 모델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NPO는 정부의 동반자!’ 라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활동을 했기 때문이라는 확신이 든다. 즉 시민의 힘, 그들이 결집한 NPO가 지역과 사회 문제 해결의 새로운 담당자라는 생각이다. 아직 NPO를 색안경 끼고 보는 보수적인 한국  정부와는 거리감이 너무 크게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활동 방침에 대해 묻자 시모모토 소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카나가와현(縣)민 활동 서포트센터>는 지금까지 선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앞으로도 선진적인 서포트센터로 남기 위해 지금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 만들기를 위해서는 NPO와의 강한 네트워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새롭게 중간 지원 조직에 대한 지원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중간 지원 조직이 NPO와 행정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글_ 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 westwood@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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