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다고 말하기로 결심했다
사실은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혼자 방 안에 내 세상을 만들어 놓으니 할 일이 너무나 많다. 혼자 놀 수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하게 다양하다.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가드닝도 하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정리도 하고, 가구 배치도 새로 하고. 요가도 하고, 가끔 뉴스도 읽고, 라디오도 듣고. 산책도 가고, 쇼핑도 하고, 장도 보고. 병원도 가고, 러닝도 하고, 등산도 하고. 카페도 가고, 외식도 하고, 사진도 찍고. 노래도 부르고, 기분이 좋으면 춤도 춘다. 혼자 산 지 8개월 차, 내가 만든 고독 속에서 점차 익어간다.
그러나 평생 모든 걸 혼자 할 수는 없다. 혼자 청계천을 걷고 있자면 나란히 벤치에 앉아있는 또래 사람들, 함께 러닝하는 무리들이 보이고, 혼자 카페에 앉아 있으면 내 아무리 결계를 친다 해도 여럿이 내는 활기찬 소리가 주변을 채운다. 혼자 텐동을 먹으러 가 바 자리에 앉으면 무리 속에 내 존재는 흐려지고, 사장님과의 어색한 눈맞춤만 남는다. 서울이라는 밀림에서 불특정 다수로 잘 숨어 지내다 가도 문득 ‘혼자임’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동안 잘 키워왔다고 생각한 고독과 성숙의 열매는 아직 덜 익어 떫다는 사실을, 한 입 베어 물고서야 깨닫는다.
혼자인 것에 익숙해질수록 새로운 감정에 맞닥뜨린다. 외로움. 단절. 고독. 고립. ‘아, 나 외롭구나. 자립심 강한 나도 평생 모든 걸 혼자 할 순 없구나. 친구가 필요하구나.’ 세상과 조금은 단절된 것 같은 이 기분이 마치 노이즈 캔슬링 걸어 놓은 에어팟 탓인 듯, 바깥 공기를 막고 있는 마스크 탓인 듯, 잠깐 에어팟과 마스크를 벗어본다. 세상과 더 닿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휴대폰 속, 혹은 기억 속에 파편으로 남아있는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간 건지, 답이 없는 물음만이 남아있다.
무엇이 이렇게 외롭게 할까. 왜 수많은 전화번호 속, “나 외롭다. 너가 필요해.”라고 용건 없이 전화 걸 수 있는 친구가 없다고 느낄까. 모두가 각자 너무나 빛나서 너무나 바쁘다. 어쩌면 너도 나와 똑같이 느끼고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 엄지손가락을 번호 위로 가져다 대지만 이내 화면을 잠근다. 내가 지금 느끼는 고독은 온전히 내 안에서만 영글어 가는 혼자만의 감정임을 알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서로의 감정을 너무 신경 쓰느라 서로의 고독을 잊은 채 지낸다. 내 고독에 파묻히느라 다른 사람의 고독도 나와 비슷할 수 있음을 잊고 지낸다. 외로움은 오늘도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서 저마다 모양을 피워낸다.
순두부찌개를 호호 불며 먹다 눈물이 고였다. 결심했다. 외롭다고 이야기하기로. ‘외롭다.’ 한 마디 꺼내기까지 마음 속 수많은 겹들을 풀어헤쳐야만 했다. ‘안 그래도 각자 서로의 이유들로 힘들 텐데. 내가 괜히..’, ‘나만 보고 싶나. 나만 만나고 싶고.’, ‘연락하기 미안한데.’ 따위의 수많은 겹들을 벗겨내고 “나 외로워.”라고 이야기했다.
서로 안아주자. 닿아 있자. 가까이에 숨 쉬자. 힘든 감정은 나누자. 지금 어디 있는지, 뭐 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답하자━ 이런 말을 전하고 싶었나 보다. 나는 사람이 고프다고, 사실은 혼자임이 외롭다고, 따뜻함이 필요하고, 같이 걷고 싶다고. 그리고 누군가 나와 비슷하게 느낀다면 내가 여기 있다고, 시들어가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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